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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이런 날에는 말이죠

barokaki 4 765
가을이란 것이...
(2004년 9월 19일 일요일)


날씨가 너무 좋구나. 그렇지만 난 나가지 않았다.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과 그 내음만 맡았을 뿐,

밖으로는 나가지 않았다.

밖으로는 나가지 않은 채, 여러 곳을 다녀왔다.

그래 그곳이었지. 그때, 이렇게 청명하고 약간은 서늘한 날,

난 거기에 서 있었드랬지.

창 밖으로는 또 나를 녹이는 그 황금빛 햇살이

흰 벽에 부딪치고 있었고,

사위는 고요했다.

아. 정말 날씨가 예술이구나.

이렇게 상쾌할 수가 있을까.

어느 산, 골짜기의 실하디 실한 나무바람과

수없이 희번뜩이는 물비늘이 희롱하는

그 강변의 모래밭, 그렇지, 그 모래밭과 산,

골짜기가 가슴에 와 담기는 것 같구나.

나는 밖으로는 나가지 않고 떠다니는 구름과 간질이는 바람,

애무하는 햇빛을 만나고 있었다.

나는 날개 없는 하나의 상상체로써,

저 푸르른 하늘에 노니는 구름 사이로 유영하며,

아, 그런가, 시공을 잃은 하나의 상상체로써,

그 무한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싶었는가,

내가 흙먼지를 풀풀 날리던 목행동 D-24호의 옆 마당에서

쓰러질 듯한 코스모스를 부연 눈으로 응시하며

외롭고 두려운 고적감에 젖어

먹먹한 미래감의 절망에 싸여

서녘을 바라볼 때에도

이렇게 날씨는 예술이었드랬지.

그리고 이런 날씨가 꼭 추석을 연상시키는 것은

그 싸늘한 옷의 촉감이 촉감일 것이 아직은

두터운 옷으로 갈아입지를 못해 얇은 나일론 같은 옷촉감이

나의 가냘픈 다리를 매만질 때에,

비릿한 조기 냄새와 탕국의 냄새가 같이 이 공기에 남아 있어서

그 감정을 더욱 진하게 했었었다.

이런 날에는 그저 기운과 감정이 잦아들어서 사실
 
아무런,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렇겠지, 그래서, 난 이 좁은 창이 주는 공간 앞에서

이렇게 궁상을 떨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저 아래 아이들의 노는 소리가 들린다.

그 아이들 주위로는 분꽃이, 노랗고 불그레한 분꽃이

가는 여름을 노래하고 있을 것이었고, 어쩌면

버려진 화분에서 싹이나 돋고 있는지도 몰랐다.

“칼 갈아요~~!” 부황기 있는 노인이 찾아왔구나.

뙤양볕 피해 응달진 곳에 좌판 깔던 부황끼 있는 노인이
 
또 찾아 왔구나.

그의 숫돌 옆으로 지금 이 순간, 조변(早變)한 목련 잎 하나,

떨어질라능가. 아. 날씨가 예술이구나.

높은 하늘엔 여전히 바람이 휭휭 불고

서녁 구멍으로 내다보이는 불암산은 여전히 가찹도다.

불암산 계곡물은 이제쯤은 찰 것인데,

무고한 토종닭들은 왜 그의 모가지가 비틀리는지 모른다.

어쩐지 이런 날은 바다에도 가고 싶어진다.

그래, 바다였었지, 바다도 계절을 탓었었지.

모래 발자욱의 함성이 아직은 남아 있던 사장(沙場),

마도로스도 아닌 것들이 마도르스 흉내를 낸다며

담배에 술잔에 새벽이 기우는 것도 모르고

꼬부라진 목청에 취기를 흘리우던 그 사장,

그 사장에 잦아들던 그 여름의 추억이, 새카매져 가는

바다와 함께 그야말로 수포(水泡)로 돌아가던 그 바다에

가고 싶으잪구나.

하. 날씨가 예솔이구나. 




4 Comments
해야로비 2004.09.21 15:39  
  정말....날씨가 예술이죠?
서들비 2004.09.22 00:23  
  아~!
그런 마법이 있었군요.
저도 환상적인 날씨가 날 괴롭힐땐
절대로 밖으로 나가지 말고
자유로운 유영을 해 볼까 봅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
음악친구♬ 2004.09.23 01:08  
  가을날의 추억~!

맞아요
오늘 맑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
박하 사탕을 먹고 숨 크게 들이쉴때의 그 시원함같은...

나비 2004.09.25 12:39  
  날씨도 예술! 상상도 예술입니다!
저도 같이 시간과 공간을 너머 환상의 유희를 잘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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