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밥 줍던 날
햇밤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나니 또 다시 온다는 태풍의 영향으로
가을비가 내리는데 풀벌레소리로 사위가 조화로운 교향곡의 밤인 듯 합니다.
지난번 태풍에 온 논에 벼가 쓰러져 걱정하시는 마을 어른의
일을도와 드리려고 여러 가정들이 의기투합을 했어요.
일요일이라 이 바쁜 가을철에 부지깽이도 쓰인다는데
뉘라서 한가할리 없지만은 안노인이 수술도 하셨고 해서 날을 잡았습니다.
우리부부도 청량산으로의 산행을 뒤로 미루고 일은 잘 못하지만
새참이라도 축낼량으로 부지깽이 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여 참여를 하였어요.
서너마지기 논에 (약 1000여평) 하나도 남김없이 쓰러져서 콤바인이 탈곡을 할수 없게 되어서
여럿이 벼들을 일으켜 세우고 콤바인 두대가 지나가면 신기하게도 가
지런하게 탈곡이 되어서 포대에 나락이 담겨지더라구요.
난생 처음 논이랑 고추밭에서 여럿이 어울려 일을 하니 참 좋은 체험이었지요.
남자분들은 주로 논에서 일을 하고 여성들은 또 메뚜기 떼들이 날으는 고추밭에서
가을햇살 받아 붉은 고추를 따고 예쁘게 색이 난 사과를 따는데
정말 정말 보기만 해도 풍요롭고 재미가 있었어요.
소백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아래 마을에서 산처럼 물처럼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의 심성들은 늘 좋은 것은 나누고 서로 돕는
것이 생활이 되어있지요.
메뚜기떼가 연신 날아오르는 길옆 코스모스꽃밭위로는 잠자리떼가 장관이고
메꽃과 달개비꽃이 파스탤톤의 조화로운 그림을 그리는 밭둑에 앉아 새참을
먹고 산에서 내려오는 샘물을 주전자로 마시니 모두 기운을 또 내시더군요.
요즘 모두 패트병등을 쓰지만 옛날 양은 주전자는 새삼 추억의 물건이지요.
유유히 흐르는 흰 구름을 보며 깨끗한 야채 쌈으로 먹는 점심맛은
어느 요리사의 식사보다 비길수가 없는 맛이었지요.
점심 식사후! 애들 자라서 어른 된다는 말처럼 아름아름 벌어진 밤나무를 가만둘리 있겠어요.
어르신이 내 주시는 긴 장대로 어떤 분은 나무위에 올라가 흔들고 ....... .
밤나무 밑에서 연신 아야! 아야! 비명을 지르면서도 알밤 줍는 재미에
수 십년전의 소년,소녀로 돌아간 듯 깔깔거립니다.
나도 어릴적 알밤을 주우려고 부모님 몰래 잠도 안자고 있다가 새벽4시쯤
살금 나와서 석유로 밝힌 호롱불을 담은 초롱을 조심스레 들고
개울건너 밤나무 아래로 가서 불어오는 가을 바람에 머리에 혹이 나면서도
알밤을 줍던 기억이 새롭더라구요.
그때 다친 팔의 흉터를 보면서 나혼자 웃으면서 그 오래전 가을의 알밥줍는
일을 오늘에 그대로 재현해 본 하루였어요.
사과밭에서는 김규환 선생님곡의 <푸른열매>란 가 곡이 생각이 났겠지요?
물론 빛나는 초가을에 떠오르는 노래가 어디 한 두곡이겠습니까만.,
유난히 저는 합창곡이던 남성 독창이든 여성 연주자가 부르든
과수원을 보면 아니 농사하시는 분들을 보면 존경심이 들고
이 가곡이 생각난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조용한 과수원
소리없이 맑은 시내 흘러가는데
나뭇잎 사이 사이 조롱조롱 매달린
저 푸른 열매들 푸른 열매들
어느새 저렇게도 자랐을까요?
꽃피던 가지마다 동그란
푸른 얼굴 어루만지면서
말 없이 가꿔나가는 저 손길을 보라
아! 진정한 사랑의 그 즐거움이여
아! 애태워 키우는 참 기쁨이여
참 보람이여"
정말 조용하고 감동있는 곡과 시라고 생각되지요.?
제가 가만히 불렀는데 앵콜이 나와서 할 수 없이 관객을 위해서 사양하지
않고 고향이란 노래를 또 불렀죠 뭐.
태풍도 온다해서 걱정하신 어르신께서 이제 그 많은 일들을 여럿이해 주어서
오늘 밤부터 편히 주무시겟다고 고마워 하시면서 좀더 알밤을
주우라고 연방 장대로 밤나무를 치십니다.
한되나 되는 고 까맣게 빛난는 알밤을 쪄서 금방 따온 사과랑
저녁을 먹는데 어쩜 그렇게 입안 가득 가을이 느껴질까요?
여러분 가을을 드셔보셨나요?
알밤속에 주인 어른의 인정이 들어 있고 이웃간의 사랑이 친구들간의 추억이 베어있고
우정의 맛이 더해져서 완전한 보양식이 된것이 분명합니다.
내일은 힘이 날거예요. 지금 많이 피곤하지만요.
마음이 깨끗해 지는데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한가지는 고통과 고난을 겪는 것이고
또 한가지는 깊이 사랑하는 것이랍니다.
가을비가 내리는 이밤!
맑은 가을하늘 같지는 않아도 마음이 조금 더 깨끗해 지는 느낌의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