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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난초가 있는 화단

꽃구름피는언덕 4 2164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청명한 새벽이다.
마지막 남은 샛별의 스러짐을 보려고 게으럼을 떨치고 일찍 일어났다.

향내 토하던 이른 장미와 백합은 지고 어느 시인때문에 유명해진
순박한 접시꽃도 조금씩 일생을 접는 냉기도는 늦여름  새벽의 화단이다.

시골의 화단이래야 도시의 그것에 비하면 초라 하기 그지없다 하겠지만
나는 그래도 이 화단에 항시 눈길을 주며 살뜰이 보듬는다.

잔설이 채 녹지 않은 이른 봄에 낙엽송 잎파리 만큼 파아란 꿈을 갖고 자라는 아들 녀석들과 앞산에서
진달래를 힘이 자라는데 까지 캐다 심고 붓꽃이며 마타리등 산꽃들을 욕심 내어 심었었다.

들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는 푸른 수풀속에 웃고 있는 패랭이도 캐다 심고 이웃에서
반찬 해 먹으라고 준 도라지도 청초한 도라지꽃을 보려고  그냥 화단에 심었다.

언제나 가만히 앉아 웃고 있는 채송화의 겸손, 정다운 봉선화......
그 중에는 지난해 가을 남편이 채집해다준 들국화 씨앗도 조심스레 뿌렸다.

화단 둘레에는  울타리삼아 탱자 나무는 아니지만  해바라기를 둘러 심고
키큰 해바라기 꽃대에 주홍색의 꽃이 또는 청보라색 꽃이 앙증맞은 넝쿨콩을 올렸다.

남편은 시골꽃, 도시꽃, 외국꽃(칸나,아마릴리스등) 할것 없이 들어찬
이 볼품없는 화단이 몸살이 날거라고 말렸지만,

그예 한술 더 떠서  지난봄, 꽃보다 예쁘게 뾰족히 금빛을 띈 초록색잎이 싱그러운
산난초의 구근을 큰 바구니에 하나 가득 앞산에서 가지고 왔다.

여늬때의 힘없다는 말은 엄살이고 꽃밭 만드는 힘은 따로 있다고 놀리는
남편이 별 밉지 않고해서 돌로 막은 화단 주위를 빙 둘러 심어 놓아서
다투어 자랑하는 봄꽃에 뒤지지 않고 6월까지는 멋진 청년같은 산난초의 푸른 잎을 볼수 있었다.

7월 들어 언제 부터인가 잎 무더기가 소문도 없이 스러져 흔적도 없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백일홍이며 나팔꽃,분꽃등의 꽃들이 제철을 맞아 저마다 아름답게
피어있고 , 밤을 밝히기 좋을성 싶게 박꽃도 하얗게 피고 해서
산난초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이 경이로움과 놀라움을 금할길 없는 일이
이작은 화단에서 일어난 것이 아닌가?

뜰을 나서자 마자 샛별을 보기는 커녕, 우아하고 신비한 미소를 띈 산난초의 자태에
가슴이 시려오고 하늘은 이미 철보다 이른 가을빛으로 더 높다.

잎이 있으면 꽃이 없고 꽃이 있으면 잎을 못보는 이 산난초를 ( 개난초라고도함.)
일반적으로 상사화라고 부르는데 정말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처럼 슬픈듯한 상사화의  갑작스런 출현으로
빈 가슴 가득 분홍빛 옛 연서들이 떠오른다.

잎은 꽃을 그리워하고 꽃은 잎을 그리워하는 상사화...산난초.....
예전에는 서양란의 화려함에 놀라기도 하고 조금  길러 보기도 하였거니와

한란이니 춘란이니 해서 난을 수집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취미가
들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보다 참으로 고상하다고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가까이 할 수 없을것 같은 어려움에 난을 기르기를 시작하다 그만 두었다.
그리고는 난에 대한 미련이 별로이 남지 않았다.

고향집 뒷뜰 같이 정이 가는 이 상사화를 이 늦여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까?
도회에서 오래 산 탓에 보고 싶던 야생화에게 욕심을 부린것이 못내 미안하다.


설령 이 산난초처럼 옮겨심은 들꽃들이 잘 적응한다고 해도 역시 들꽃은
산야에 있어야 산과 들을 빛내주고 자유스런 몸짖으로 한층 더
위대한 인간의 뒷 배경이 되리라.

사람 역시 제 있는곳, 제자리를 지키고 혹은 유지 하는 것이
보는 이들에게나 자신에게나 편안하고 안정된 은근한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오늘 아침 산나초가 선물한 이 신선한 사건을 일상의 잔잔항 행운이라 여기며
남을 바꾸려하지 않고 궤도 억지로 수정하기를 바라지 않으리라.

나 스스로 상사화나 들꽃에 다가가는 순응과 조화와 겸손을 가지고
비현실적인 이상에서 벗어나 제자리 찿기의 교훈과  진정한 감화의 교훈을
모든일에 적용하며 살아야 겠다.

"좋은 사람은 좋은 말을 해주고 훌륭한 사람은 모본을 보이고
위대한 사람은 감화를 준다"는 말의 의미가 사람이 아닌
산야의 들꽃에서 배우는 이 시골 사는 행복!

오늘 아침!
갑자기 피어난 아련한 연분홍색의 꽃무리로 인해 기쁜 내 눈에
어느 사이 샛별은 뵈이지 않고 박꽃도 수줍게 창을 닫고
대지엔 어느듯 가을 햇발이 산등성을 타고 퍼져온다.










 






 
4 Comments
애나 2003.08.15 08:47  
  꽃구름님의 글에는 늘 꽃이 피는듯 합니다.시간이 여의치않아 제대로 글 감상도 못하고 댓글도 못 드림을 용서해 주세요.
꽃구름피는언덕 2003.08.15 08:52  
  감사합니다.
애나님~ 하고 불러야 더 정다울것 같은
고운시 쓰시는 분이 제 부족한 글 보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평화 2003.08.15 22:13  
  꽃구름피는언덕님!
야생초 향기가 가득 담긴 수필를 읽으면 제가 꼭 그대가 된 듯 기분이
참 싱그러워집니다.
이 생에서는 영원히 만날순 없지만 그리움으로 피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상사화!!!

언젠가 그대가 수필집을 내게되면 제가 젤 먼저 살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지기를...

꽃구름피는언덕 2003.08.19 13:39  
  다시 장마가 시작되는지 연일 비가 내립네요.
해운대는 조용해 졌나요?
늘 보족한 글에 용기를 주는 평화여!
그 격려로 언젠가는 이름붙힐 글 쓰고 싶군요.
우정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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