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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습작>엄마의 붉은 치맛자락 中 악마의 유혹<1>

별헤아림 5 2515
2003.12. 22.(월요일)

엄마의 붉은 치맛자락

1.악마의 유혹

한겨울의 찬 기운과 어둠을 가르고 그녀는 영남권내륙화물기지인 고속도로변의 C휴게소로 빠지는 샛길로 접어든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노란색 바탕에 검은색 표지판이 마치 제 집을 찾아가는 이정표마냥 눈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즐비한 화물차들이 저들만의 거만하고 육중한 무게로 접근이 껄끄러운 군상처럼 버티고 있다. 무슨 시위라도 하는 양.
 그녀는 주로 승용차들이 주차한 휴게소 앞줄에 자신의 차를 주차시키고는 남편이 구두 발로 둘러차서 군데군데 찌그러진 운전석 문을 연다. 차에서 내리면 그녀는 어김없이 더 망가진 운전석 뒤쪽 문을 훑어본다. 손잡이 근처의 약간 꺾인 부분에서는 직선으로 녹이 흘러내린다. 8개월 정도 된 새 차라서 굳이 시선을 두지 않으면 그냥 넘어갈 정도란 것이 그녀가 자신의 차를 고치지 않고 그냥 타고 다니는 이유이긴  했다. 하지만 돈이 들기 때문에 미루었다는 것이 나름대로 더 큰 이유였다.
 두 번째로 남편이 더 강도를 높여 여러 군데 차기도 하고 주먹으로 차체를 내려치기도 했다. 그 일은 차체가 손상된 것 이상으로 그녀의 마음에 회복하기 어려운 뚜렷한 상흔을 남겼다. 막다른 길에 가까웠음을 확신하게 되는 순간 증거물로 제시할 생각으로 모든 것을 미루었다. 그리고는 차를 탈 때나 내릴 때 자신의 마음에 그 서늘함을 덧칠하는 것이다.

 무심히 하늘을 바라보니, 달은 없다. 오늘은 동지이고 또한 음력으로 11월 그믐이다. 내일은 12월 초하루다. 이제 시간도 11시를 넘어 자정을 내닫는다. 지금 이 순간은 그믐도 초하루도 아니다. 그녀는 달을 생각했다. 태양과 함께 떠서 함께 지는 -그믐달도 아니고 초승달도 아닌 - 바로 이 순간의 달을. 지금은 지구와 달과 태양이 일직선상에 놓여 있는, 그래서 달은 그 형체를 지구 어디에고 나타낼 수 없는 그런 순간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과 내일의 달이 함께 뜨고 함께 질 것이다. 아니 어쩌면 태양이 서산을 넘어간 짧은 순간, 한 가닥 곡선의 초승달이 보이지 않게 떴다가는 바삐 태양을 뒤따라 서산으로 질 것이다.
 그녀는 잠시 동안의 쉼표 시간이 지나자 다시 보름 후의 그 시간을 떠올렸다. 태양과 한 순간도 함께 하지 않고 정반대의 위치에서 자신을 환하게 드러내고 웃고 있을 만월의 보름달을. 함께 하지 않음으로 드러날 수 있고, 존재할 수 있다는 것들에 대해서도.
 내일부터 태양은 조금씩 그 길이를 늘일 것이다. 태양이 떠 있는 낮 시간이 아주 조근씩 길어진다는 거. 그래서 옛 사람들은 동지가 지나면 새해가 시작된다고 했다지 아마. 동지에 액운을 막는다는 의미로 팥죽을 먹는다는 부질없는 습관에 마음이 내려앉는 것은 나이를 먹어 간다는 의미 이상으로 삶이 고단하다는 뜻도 담겨 있으리라. 시골에서 가져온 팥이 작년 것도 남아 있고, 올해의 약팥도 남아 있지만 팥죽 만들 시간이 여의치 못 했다. 그래서 늦게라도 아니면 사려 갈까 하는데 5층에서 살고 있는 그녀보다 다섯 살 많은 이혼녀가 물김치와 함께 한 상 차려다 주었다. 마침 잘 되었다 싶어서 얼른 저녁을 먹고는 서둘듯이 북으로 북으로 두 시간 동안 차를 몰아갔다가는 돌아가는 길이었다.

북으로 북으로 두 시간 동안 110Km로 달려가는 곳은 <악마의 유혹>이다.

그녀는 화장실에 들렀다가 몇 개의 음료수 캔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리고는 남은 생수병과 <악마의 유혹>주황색 '카라멜 마키아토' 한 개와 하늘색 '모카 초코' 두 개를 차 문 주머니에 눌러 넣고는 정리를 마친다. 의자를 젖히고 편한 자세로 기댄다.
-고속도로 운행 카드 교환 시 적발 시스템 가동-
 그런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상하행선 출입증을 서로 교환하여 통행료의 액수를 줄인다는 말인가 보다. 그렇다면 어떻게 적발한다는 거지? 부질없이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게 무어 있으랴.
 고개를 가로 젓다가는 생각이라도 난 듯 <악마의 유혹>을 한 모금 마셨다. 프랜치 카페 '카라멜 마키아또' 주홍색이다.
 그녀가 인스턴트커피로 <악마의 유혹>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1년 반 전이다.
 어느 여름날 더위를 피해서 팔공산을 올랐다.
 동생네와 고기를 구워서 저녁을 먹고 야외 공연을 보던 밤이었다. 동생댁이 아이들을 시켜서 맛있다고 사 온 인스턴트커피의 상품명이 <악마의 유혹> 노란색이었다. 풀밭에 자리를 깔고 별밤에 마신 여름날의 커피 맛. 그 후로 그녀는 중독 된 사랑을 하듯 그 사랑만큼이나 색깔을 달리 하는 인스턴트커피 <악마의 유혹>만을 마신다.

그리고는 그녀도 <악마의 유혹>처럼 중독 된 사랑을 한다.

그녀는 의자를 바로 하고는 다시 밖으로 나와 찬 공기의 서늘함을 코끝으로 느끼며 어두운 빈 하늘을 쳐다보더니, 담배를 꺼내 문다. 고개를 젖혀 공허한 하늘을 향해 따듯한 연기를 힘껏 뿜어 올려 본다. 이내 사라져 버린다. 형체도 없는 것들.
 별이 보이는 곳으로 가고 싶다.

별이 보이는 곳
- 막다른 길 -

와락 밀려오는
막다른 길에서
국방색 천막 트럭이 움직인다.
공사차량 운송차량으로 즐비한 광장에
사람들은 별로 할 일이 없는 듯
내동댕이쳐진 신문의 활자는
-물류대란-
-수출 차질-
-천문학적 숫자의 재정 손실-
이미 너무 깊은 상처로 무감각해진 단어들
밤 깊은 고속도로 질주하던 그 시간에
어슴프레 희미한 그림자로
흔들림 없이 버티고 있다.
별들도 떠나버린 그믐 밤
가로등 불빛 온몸으로 받으며
끝 간 데를 묻지 말자
광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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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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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친구 중에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며 H자동차 서비스센터에 과장으로 근무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에게 들렀을 때만 해도 남편이 1차로 그녀의 차에 가한 기물 파손이라 그 정도가 미미한 데도 불구하고, 서비스 센터란 곳이 각진 부분이 들어갔으니까 문짝 두 개를 바꾸라는 것이었다. 대금은 60만원. 과장이란 친구가 직원이 문짝 갈란다고 그녀에게 전한다. 그녀는 그 순간 누가 60만원 그냥 준다고 해도 한국의 경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없다고 했다. 다시 친구가 직원에게 돈이 없다고 하니까, 판금하는 데 38만원이라고 했다. 다음에 고치겠다고 했더니, 친구가 외상으로 해 주겠다고 했다. 돈은 신경 쓰지 말고 니 마음대로 나중에 나중에 달라고 했다. 그래도 그녀는 그냥 타겠다고 했다.
 
5 Comments
바다 2004.01.05 14:20  
  별헤아림님!
여러모로 놀랍습니다.
시 수필 소설 이렇게 여러 장르를 마음대로 주무르시는
님의 창작력에 뜨거운 찬사를 보냅니다.

<악마의 유혹>읽고 두 달 전쯤에 냉장고에 넣어두고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던 프렌치카페를 꺼내 보고 그 놈이 <악마의 유혹>인줄 처음 알았답니다.

도대체 우리 집 냉장고로 들아간 그 녀석들이 저를 유혹을 못했나봐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학교 사정이 잘 해결되어 음악회날 뵙게 되기를 빕니다.
늘 건필 건강하시길~~
별헤아림 2004.01.06 09:10  
  바다님!
 한 번 뵌 님의 웃는 모습이 선하게 떠오릅니다.
전문가가 아니어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순수 습작 단계입니다.
<내 마음의 노래> 게시판의 인사말로 시작된 세월이 1년 4개월로 접어 드는군요. 그 전에는 인터넷에 글자 한 자 띄우질 못 했거던요.
바다 2004.01.06 09:36  
  별헤아림님!
저도 그랬어요. 이 <내 마음의 노래>에서 처음으로 인터넷에 글을 띄운 이 시대의 가장 순수한 (???) 소녀랍니다. 저도 영산아트홀에서 잠깐 뵌 웃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아지랑이처럼 아롱거린답니다. 이번에 뵈면 봄비 맞은 산처럼 아주 선명하게 다가오리라 생각해요. 
 
사은 2004.01.06 21:41  
  <내 마음의 노래 음악회>에 나도 가고 싶은데 시간이 여의치 못해서...... 아무튼 언젠가 우리 얼굴과 얼굴을 볼 때가 오긴 오겠지요. 행사가 성공적으로 잘 되시기 바랍니다. 바다님! 별헤아리님! 글쓰는 열정이 보기 좋습니다. <a href=http://cafe.daum.net/mizpah2003에 target=_blank>http://cafe.daum.net/mizpah2003에</a> 한 번 놀러 오세요!
별헤아림 2004.01.29 13:02  
  사은 김광선 목사님 언제 음악회에서 뵙기를 바랍니다.
저는 제 삶이 진지하지 못 한듯 하와 목사님 신부님 수녀님을 뵈면 왠지 어렵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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