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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농사

꽃구름언덕 2 2583
낙엽송나무에 푸른 구슬 같은 새순이 돋고 땅으로 부터 따뜻한 기운이
살금살금 피어올라 아지랑이가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곤 할 때,
농사에 문외한인 우리 가족은 지난 해 보다는 더 성공적으로 감자 농사를 지어 보겠다고
단결을 하여 감자씨눈을 따고 감자박사(?) 친구의 말을 순종하여
양파 망에 감자 눈을 넣어 먼저 싹을 틔운 다음, 석회와 재를 뿌리고
제법 작년보다 예쁘게 이랑을 만들었다.

산속의 뻐꾸기 소리 음악으로 들으며 아이들도 신이 나서 밭고랑을 누비고 다녔다.
우리 마을에서 가장 많은 아홉 고랑의 감자 밭이다.
실상은 없는 시간 쪼개서 해야하기 때문에 힘들까봐 조금만 심기로 했다.
서울서 친구들이 내려오면 많이 주려면 더 심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신문에 오르내리는 주말 농장을 비웃으며
맨발로 땀을 흘렸다.

거기다가 작년에는 비닐 멀칭을 하지 않아 싹만 무성했다고  분석하고
올해는 까만 비닐까지 오일장에 가서 사가지고 왔다.
이웃집 아저씨가 까만 비닐도 된다기에.......
감자농사의 성패를 논하는 것은 여기서 부터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정성들여 심은 지 한 열흘이 지났는데 연세 많으신 동네 어르신 말씀,
“까만 비닐은 뚫고 심어야제 안 그러면 감자도 밤중인줄 알고 싹이 안튼데이”
하시는 게 아닌가? 실망스러웠지만 지난번 보다는 밭 장만도 잘 했고 경험이 있는 만큼
비닐만 뚫어주면 되겠다 싶었지만  까만 비닐 속, 어떤 위치에 감자가 있단 말인가?
하는 수 없이 검은 비닐을 다 벗겨내고 흰 비닐을 씌우려니
뒷집 할머니 하시는 말씀, “비 좀 맞혀서 해야 잘 자라제”하신다.

그리하여 이 순진한 가족들은 또 머뭇거리고 있는데
이번에는 윗집 할아버지 말씀, “밑 걸음 했는가?” “네”
“그래가지고 감자 묵겠나?”
“몇 고랑 안 되는데요?” 라고 여쭈었더니 “다만 한 골을 하더라도 감자의
크기와 맛이 다른데 우째 거름을 안하노?“ 하시면서 어른들 집에
두음을 가져가라신다.

이에 우리는 더욱 잘 하는 일인 줄 알고 질줄 모르는 지게로 넘어지며
드디어 거름을 펴게 된다.
그리고 나서 그 이랑에 흙을 다시 덮고 열흘 된 감자를 일일이 뒤져 찾아서는
그 위에 두 번째 감자를 심었다.
그리고 밤중인줄 알까봐 하얀 비닐로 씌워 주었다.

모는 밭 정리를 다 하고 연장을 챙기고 주먹만큼 큰 대관령 신품종
감자를 수확할 생각을 하며 힘들지만 만족한 마음으로 “노동은 축복이야”를
이야기하며 집으로 돌아오고 그리고, 근 보름이 지나도 하얀 비닐을
뚫고 나오는 감자의 파란 싹이 보이질 않았다.
깜빡 잊고 비닐을 덮지 않았던 자투리 고랑엔 벌써 건강한 초록색의 감자가 자라고 있었다.

또 사람들은 진단을 내리며 가물어 그러니 조금만 기다리란다.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우리는 적당한 간격으로 구멍을 내고,
파보았더니 통통한 싹이 올라오면서 모두 윗부분이 썩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실패 감을 맛보며 또 다시 시도를 했다.
그야말로 감자와의 쟁투였다.
거름을 준 다음 독성이 빠진 며칠 뒤에야 감자를 심어야하는데
바로 심은 것이 거름독 때문에 화근이었다.
다시 눈을 따서 빠진 부분을 메우고 심었다.

다른 사람들은 감자 꽃이 피게 생겼는데 그제야 파종을 한 셈이다.
그래도 심은 데로는 거두리라 믿으면서.......
그러나 농사가 그리 호락호락 한 것이 아니다.
정말 정확한  때에 맞는 환경을 만들어 주며 정성을 드리되
 감자가 생장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줄때 자라는 것이다.
바쁜 일 때문에  돌봐주지도 않고 풀이 호랑이가 새끼 칠 정도로
자라서 감자 싹은 점점 작아지더니 몸살을 한 탓에 꽃도 제대로
못 피우고 잡초에 항복하고 말았다.

감자 농사는 실패지만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만고불변에 이치를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배우는 학습이 되었다.
감자를 캐내고 김장을 심어야 한다기에 할 수 없이 추수(?)를
하게 되었는데 한 바구니에 차는 알량한 감자가 심은 씨눈만도 못한 양이라서
그날 저녁은 감빛 노을도 달빛 들어 감미로운 창가의 고요도,
그리 아름다이 뵈지 않고 과정을 통한 결과를 깊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는 했으나 농사에 관하여 어두워서 이렇게 된 것이다.
세상사 ,인간사, 모든 일에도 심은 대로 거두는 이치는 변함이 없는 법,
잘 심었어도 잘 가꾸어야하고 좋은 상태를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깊이 깨닫는다.

이웃집에서 사공이 많아 이집 농사가 이렇게 되었다며 위로와 인정으로 밥그릇만한 감자를
한 소쿠리씩 가져다 주셨다.
우리 집의 감자 수확  보다 더 많아진 감자를 보며 다음해에는 더욱 잘 하리라.
삼십 배 백 배의 결실을 얻도록 올바른 방법으로 심고 가꾸어서 수확의 기쁨을 누리리라.

때로 우리가 깨달음을 얻는 데는 긴 세월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이 교훈을 감사하며 오늘 저녁  메뉴는 소금을 살짝
뿌린 찐 감자로 정해야겠다.
                          <1994년 9월 어느 날의 일기 >
2 Comments
오숙자.#.b. 2003.11.13 11:20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이 세상 모든 생명들...
그러니 세상 만물을 다 수용하는
흙은 참으로 위대함의 모체라는 생각입니다

2.3 년전 뒷마당에
고추, 가지, 상추등 조금 심어보았는데
그것이 제데로 자라주지 않아요
그냥 흙에다 심고 물주면 되는줄 알았지만
그렇게 쉬운것이 아니였습니다

첫째 흙이 좋아야되고
야채따라 간격도 있고 또 기둥도 달아 줘야하고
비닐로 흙도 덮어줘야 되고...등등

2년 연속 실패한후
더욱 농사지으시는 분들께
감사함을 알게 되었죠
그리고 농산물의 귀중함을...

꽃구름 언덕님!

그런데 하나 자신있는것은
강아지 키우는것이에요

표정과 증세등 이제
척보면 많이 알게되었고
대화도 어느정도 가능하답니다
알고보면 신비의 세계랍니다.
꽃구름언덕 2003.11.15 01:09  
  오교수님! 그 예쁜 강아지랑 이야기도 하신다구요?
참으로 생명있는 모든 것은 아름답고 신비 그자체입니다.
저도 교수님처럼 곡식과 채소랑 꽃들과도 깊은 마음
속 얘기를 할수 있었으면 하고 늘 친해지려하는데
제가 항상  자연의 섭리와 소리를 듣는 귀가 운둔한것 같습니다.
천연계는 맑은 영혼을 가진 삶에겐 아주 훌륭한 스승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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