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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습작> 엄마의 붉은 치맛자락 中 악마의 유혹<2>

별헤아림 0 1320
2003. 12. 24. 수요일

 2. 크리스마스 이브.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저녁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는 도중에 이미 약간의 취
기어린 얼굴로 휘청거리며 들어섰다.
 "마누라~. 우리 결혼 기념일인데, 한 잔 해야지."
 "...... ."
대꾸도 않고 하던 일을 계속하는 아내의 등 뒤에서 그는 근처 가게에서 산 듯 검은
비닐봉지 속에서 가장 키가 큰 하이트맥주 한 병을 꺼낸다.
 장미 꽃다발이나 케익을 사 온 것도 아니고, 자신이 마시기 위해서 사 들고온 맥
주 한 병에 '결혼기념일'을 들먹거리는 것조차 그녀로서는 가소롭다는 듯 거슬린다
는 듯한 표정이다.
한 때는 남들처럼 꽃병에는 장미꽃 다발을 꽂고, 뭔가 그들만의 보편적 가족 행사
를 생각해 본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성격적으로 분위기 있는 영화 한 편나 누구
에게 자랑할 만한 저녁 만찬 같은 것을 오히려 성가셔 하는 것이 그녀의 체질이다.
그저 결혼이 그녀에게 준 것은 본능적으로 사랑하고 아낄 수 있는 아이가 생겼다는
것에 위안을 삼을 뿐 그녀는 남편을 사랑한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가끔씩 사
상이 맞지 않는다는 말을 아주 드믈게 한 적이 있을 뿐 덤덤하기만 하다. 그저 객
관적 상관물처럼 바라보면서 가끔 자신이 정말 그의 아내이고 그와 사랑하면서 가
족을 이루었는지를 반문해 본 적이 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선뜻 내키지 않는
감정은 그녀로서도 어쩌지 못 하는 것이라 무시하고 사는 것이다. 사상이 맞지 않
는다든가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말을 한 번씩 투욱 툭 던지지만 누구 하나 심각하
게 마음을 쓰지는 않는다.그저 하는 말이겠거니 웃을 뿐.
 그녀는 냉소적인 표정으로
 "결혼 기념일은 무슨 결혼 기념일? ...... . 12월 25일. 내일인데...... ?"
 "그러니까, 이-브."
 "휴-유. ...... ."
 작은 한숨이 새어나오고 그녀는 말상대를 하지 않기로 작정이나 한 듯, 그릇을 씻
는 그녀의 손에 힘이 가해진다. 하던 일을 마치고 딸이 거처하는 문간의 작은 방으
로 그녀가 들어가 버린 뒤에도 남편은 혼자 식탁에서 맥주를 한 병 다 마시고, 뒤
베란다로 가서 매실주를 더 가져 와서는 서러운 인생의 쓴맛을 삼키듯 잔을 들이킨
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깨어난 이른 아침.
 다섯 시가 훨씬 지났건만 아직 사방은 어둠속에 잠겨 있다.
 신은 겨울 밤을 보이지 않는 자물쇠로 채워 놓은 듯 아침은 좀체로 열릴 것 같지
가 않다. 그 무거움을 어두움을 지나 그녀는 여기저기 불을 밝힌다. 함께 자고 함께
깰 누군가를 그리는 습관은 열 서너 살 이후 줄곧 그녀의 뒤통수를 잡고 놓질 않는
다. 그녀가 딸을 낳고 그 딸이 말을 배울 때까지의 기간을 제외하고는.기저귀 갈며
우유병 물리며 어린 딸을 손에서 놓지 않던 그 2년의 기간 만큼은 그녀 자신을 찾
지 않아도 외롭지 않고 억울하지 않았던 유일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식탁을 행
주로 닦고 싱크대에서 다시 그릇을 씻기 시작한다. 남편은 술을 마시고 집에 왔을
때나, 집에서 술을 더 마셨을 때나 빠짐없이 꼭 라면이나 국수를 끓여 먹고 잠을
잔다. 식탁에는 지저분하게 흘린 국물자국과 면발이 말라 있고 주방 바닥에는 라면
이나 국수 조각이 발을 찌른다.
 세탁기를 돌리고, 거실을 청소기로 밀고 대충 닦고는 아침 준비를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된장찌게와 햄 반찬 그리고 남편이 먹을 콩나물국을 끓여 놓고 집을 나선
다. 시간이 빡빡하다. 빠듯한 기차 시간 때문에 화장도 않은 노리짱하면서도 약간
검은 듯한 얼굴로 차를 몰아간다. 역 근처의 큰길 한켠의 조금은 작은 도로에는 찬
서리에 얼어서 꼼짝 않고 자고 있는 승용차와 트럭이 보인다. 사이를 비집고 그녀
는 자신의 차를 주차시킨다. 그리곤 숨이 차도록 역을 향하여 뛰어간다. 기차에 오
르기 위하여.
 악마를 마중 나가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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