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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꿈

비솔 8 2182
  자전거 꿈


 어릴 때 내가 자란 마을은 평지가 별로 없는 산촌이었다.
강원도를 '비탈'이라고도 했는데 바로 우리 시골 같은 마을 때문에 생겨난 말인 것 같다.
산도 밭도 비탈이고 논도 비탈을 계단식으로 만들었으며 집도 대부분 비탈을 파내 지은
것이었다. 자동차는커녕 자전거도 탈 수 없는 곳이었다. 탈것이라곤 나무로 판을 짜고
바퀴를 만들어 사람이 끌고 다니는 장난감 '구르마'가 고작이었다.

 살던 마을에서 5리 정도는 골(谷)을 타고 내려가야 자전거를 볼 수 있었다.
대여섯 살쯤 되어서 아랫마을에 처음 내려가 자전거며 차를 보았을 때의 경이로움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초등학교에 들어 가 학교 가는 길에 처음 어떤 아저씨 자전거 뒷자리에 탄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는 내가 자전거와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산과 나무들과 강이 마구
내 쪽으로 오는 것 같아 어지럽기도 하고 몸이 붕 뜨는 것 같아 어쩔 줄 몰라 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니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비탈길이 많아 자전거에서 내려 손으로 끌고 가는 곳이 많았으나 그 친구가 부러웠다.
어쩌다 뒤꽁무니에 타보기 위해서는 그 친구에게 잘 보여야했다.
찌르릉 찌르릉 비켜나세요, 비켜야 할 사람이 별로 없어도 소리를 내고 지나가는
친구 자전거를 보며, 난 언제나 저런 걸 타보려나 꿈을 꿨었다.

 내가 처음으로 자전거 타는 걸 배운 것은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가 되어
전라도 광주에서 교육을 받을 때였다. 휴일을 하루 앞두고 동기생들이 다음 날
자전거 하이킹을 하자고 했다. 아직 자전거 탈 줄을 모른다고 말할 수 없어서
간다고 해 놓고 보니 걱정이 됐다. 가까운 친구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배우기 쉽다며 가르쳐 주마했다. 근처 자전거포에서 자전거를 빌려와 연병장에서
자전거 타는 걸 배우기 시작했다. 친구가 뒤에서 잡아주었으나 넘어지고 또 넘어지며
밤늦도록 자전거 타는 걸 배웠다.
너무 잘 넘어져 이상하다며 그 친구가 자전거를 타더니 그도 넘어졌다.
알고 보니 빌린 자전거는 뒷 브레이크가 고장나 앞바퀴로만 제동이 걸려
앞으로 고꾸라지곤 했던 거다.
 다음 날, 나는 자전거를 다른 것으로 빌렸다. 그리고 동기생 몇 명과 함께
30여 Km의 먼 거리 자전거 하이킹을 이상 없이 할 수 있었다.
갈 때는 휘청휘청 진땀을 흘렸으나 올 때는 자신 있게 휘파람까지 불면서.

  결혼을 하고 군 숙소에 입주하면서 나는 처음 내 것으로 자전거 한 대를 구입했다.
우마차 길과 논둑 길을 지나 부대까지 자전거로 출퇴근을 했다.
아내는 퇴근할 무렵이면 숙소 앞 길모퉁이까지 나와 내가 탄 자전거를 기다렸고,
날이 어두울 때면 '찌르릉' 자전거 소리에 귀기울였다.
휴일이면 가끔 아내를 뒷자리에 태우고 들판으로 시장으로 달렸다.
 아들이 태어난 후, 아내의 관심이 내게로부터 아들 쪽으로 옮겨간 것만큼
내 자전거의 한 자리는 아들 몫으로 옮겨갔다. 아들이 어린 아기였을 때는
자전거 앞쪽에 설치한 유아용 의자에, 좀 커서는 뒤쪽으로 옮겨가면서
아내는 나와 내 자전거로부터 멀어져 갔다.

 그 아들이 자라 어른이 된 지금, 우리 집엔 자전거 한 대가 있다.
기어까지 달린 제법 고급 자전거인데 아파트 베란다 귀퉁이에서 먼지만 쌓여간다.
어린 시절 그토록 타고 싶고 가져보고 싶었던 그 자전거가 이제 별 쓸모도 없고
차마 버릴 수도 없는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다.
 어쩌다가 한 번 꺼내어 아파트와 건물 숲 속으로 달려보나, 옛날처럼 산이 오고
강이 오질 않는다. 휭휭 지나가는 자동차 물결에 밀려, 가는 것인지 마는 것인지 
답답하고 다리만 아플 뿐이다.
 이 자전거는 '찌르릉'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빠라바라' 나팔소리를 낸다.
한참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에 와도 길모퉁이에 마중 나와 있는 사람도 없고,
"빠라바라' 소리를 내도 아파트 고층에 있는 아내가 그 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 
 세월 따라 고무신과 '구르마'에서 자전거로, 자전거에서 자동차로 나를 이동시켜주는
나의 발은 발전이 되었지만, 나를 기쁘게 해주고 나를 감동시키는 크기와 빈도는
그 반비례가 아닌가.
 
 아, 자전거를 타고 고향엘 갈까.
아직 비탈이긴 하지만 살던 마을 집 마당까지 찻길이 났으니 갈 때는 주로
끌고 올라가야 하지만 내려올 때는 신이 나겠지.
나를 향해 산이 오고 강도 오고 구름 속을 나는 기분이겠지.
어릴 때 어떤 어른이 나를 태워줬듯 내 지나가는 시골 소년 태워주면
그도 나와 함께 구름 속을 날겠지. 아내는 다시 동구 밖까지 나와 나를 기다리거나,
' 빠라바라' 내가 돌아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겠지….

베란다에서 먼지 쌓인 자전거를 보며 난 또 다른 자전거 꿈을 꾸어본다.


    '04. 4.
8 Comments
바다 2004.04.15 11:36  
  학창시절 교련 숙제가 있었습니다.
자전거배워오기였습니다.

그 때는 자전거가 아주 귀한 시기라 학교 운동장에서
말만큼한 아가씨들이 배우는 대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남학생들도 합세해 신나게 밀어주고...
제 친구하나는 가속도를 내어 달리다가 고꾸라져 팔꿈치가
바수어져 거의 한학기를 깁스를 한 채 학교를 다녔고 속없는
저는 아버지상을 치른 그 뒷날도 자전거를 배워야 했습니다.
시골길을 달리다가 그만 차가운 물논에 빠져버렸습니다.

그 당시는 단순히 학점을 따기 위해 배웠지만 그 뒤에 여러모로
유익한 일들이 많이 있었답니다.

비솔님의 글을 읽고 잠시 학창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산처녀 2004.04.16 02:19  
  한참 옛날에 저는 호흡이 잘안되는 병에 걸렸었읍니다
목표를 일어버리고 많은 방황끝에 생긴병이였죠
의사 선생님 말씀이 울지못하고 웃지못하고 소리 지르지 못해서 저 심층바닥에서 일어나는 반란이라고
일명 신경성성이라는 어처구니 업ㅄ는 진단을 받았죠
그때부터 남편 은 저를 자전거에 태우고매일저녁 강둑으로 소풍을 나갔죠
추워서 자전거를 탈수없을때까지
<생사를 갗이했던 전우야>를부르면서
비솔님의 글을 읽노라니 그때가 떠오르는군요.
비솔 2004.04.16 23:49  
  바다님,
이제 그렇게 배운 자전거를 타고 고향엘 가 아버님을 뵈시지요.
저도 더 늦기 전에 자건거를 타고 고향에 가 아버님 산소에
절을 하고 싶습니다.

산처녀님,
울고 웃고 소리지르지 못해서 병이 나셨었군요.
자전거 타고 강둑을 달리는 그 모습만 떠올려도
그 병이 다 나았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강도 풀리고 꽃이 폈으니
다시 그 곳에서 자전거를 타시지요.
이젠 '강이 풀리면'이라는 가곡을 부르며.
지난 번 노래모임에서 배웠던...
김건일 2004.04.21 09:27  
  자전거 꿈 잘 읽었습니다. 누구신지는 잘 모르지만 글이 잘 정돈 되어있어서 마음을 가지고 읽어보니 할말은 다한것 같습니다. 자전거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표현 되어서 기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나도 어릴 때 자전거를 가지는게 소원 이었는데 기계를 기구를 잘 만질줄 몰라서 언제나 속아서 헌자전거를 돈주고 샀으나 며칠 못타고 고장이 나서 버린적이 몇번이나 됩니다. 돈이 없어서 고물 자전거를 샀기 때문이지요. 그런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글 이었습니다. 수필 이라고 할까요. 좋은 수필 이었습니다. 
 
비솔 2004.04.21 13:52  
  김건일 시인님, 졸작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저는 지난 가곡 배우기 모임 때 처자식과 함께 참석했던 사람입니다.
그 때 시인님의 시 낭송 듣고 감동했습니다.
2회 모임 때 다시 뵙게 되기를 고대하겠습니다.
김건일 2004.04.21 14:26  
  그랬던가요. 몰라 뵈어서 죄송합니다. 혹시 수필가가 되고 싶은 생각이 계신지 문인협회 부이사장으로 한사람 이라도 더 문인을 만들고 싶어서 물어봅니다. 선생님의 글은 충분히 수필가로서의 자격을 가졌다고 생각 되어집니다. 아마츄어로 계셔도 괜찮지만 전문가로 등단 하심도 좋을듯 합니다.
비솔 2004.04.22 09:52  
  김건일 부이사장님,
졸작을 좋게 평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실은 작년에 보잘 것 없는 글로 문예지를 통해 등단해 있습니다.
아직 미천한 능력이라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앞으로 부이사장님께 좋은 지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a href=mailto:bsc0406@hanmail.net>bsc0406@hanmail.net</a> 조병설 드림
김건일 2004.04.23 08:10  
  몰라 뵈었군요. 그런데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 하셨으면 가명으로 하시지 마시고 필명으로 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가명으로 글을 발표하면 누가 누구의 작품을 표절한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하게 됩니다. 좋은 작품을 쓰고 계시군요. 앞으로 더욱 좋은 글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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