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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말

비솔 5 1553
사랑한다는 말

언제인가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접한다.
연애편지를 쓰며 구애하던 젊은 날 그토록 듣고 싶었으나
좀처럼 듣기 어려웠던 말,
‘사랑해요, 사랑합니다.’라는 말. 그 말을 이제 반백의 나이가 된
지금에서야 듣고 산다. 그것도 아주 자주, 그래서 요즈음 나는 사랑의 홍수 속에
빠져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녁 식사 후 가족과 함께 중랑천 변을 달린다.
잘 정화되어 이제는 고기가 사는지 낚시하는 사람도 보이고,
철새도 날아드는 개천.
그 개천 양변을 따라 가설된 조깅로에는 저녁때만 되면 걷는 사람,
뛰는 사람, 자전거와 린나이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로 붐빈다.
이렇게 걷고 운동하는 사람들은 둑 밑 조깅로에서 오가는데,
둑 위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남녀를 자주 만난다.
목회자 부부인 듯, 남자는 기타를 치며 찬송가를 부르고 여자는 유희를 한다.
여인은 둑 아래 걷고 뛰는 사람들을 향해 손짓도 하고
노래에 맞춰 대사하듯 말을 건넨다.
팔로 하트모양을 만들며 내게도 소리친다.
“사랑합니다, 사랑해요오.”
여인이 나를 사랑한단다. 그것도 아주 젊은 여인이,
숨을 몰아쉬며 따라 오는 처자식이 있는 나를 사랑한단다.

어버이 날 편지가 왔다.
대학에 들어가려고 재수하고 있는 딸이, 다니고 있는 학원 주소로 하여
편지를 보내온 것이었다.
원하는 대학에 못 들어가 부모님 걱정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말,
아빠 이젠 스트레스 그만 받고 건강 잘 챙기라는 말,
그런 말들 끝에 딸은 이렇게 썼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딸은 곧잘 사랑한다는 말을 쓴다. 작년까지 가족과 떨어져 살 때,
인터넷 메일을 가끔 보내왔다.
그리고 편지 말미엔 이렇게 아빠 사랑한다는 말을 쓰곤 했다.

전방에서 함께 근무하던 옛 부하장교로부터 휴대폰 문자 메시지가 왔다.
내가 그처럼 젊은 장교이던 시절엔 주로 편지를 썼었다.
동으로 서로, 전방에서 후방으로 철새처럼 옮겨 다니며,
함께 근무하다가 헤어진 전우에게 편지를 써 그리움을 달랬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장교들은 휴대폰이나 인터넷으로 그걸 대신한다.
그 장교는 헤어진 후 남쪽으로 가 근무하다가 이제 다시 전방으로 간다며
이렇게 메시지를 맺고 있었다.
‘연대장님 사랑합니다.’
난 더 이상 그의 연대장이 아니건만 그는 지금도 나를 연대장이라 부르며,
같은 남자인 나를 사랑한단다.

사랑한다는 말이 유행하는 세상이다.
텔레비전을 봐도 그렇다. 군부대와 관련된 프로그램에 나온 병사도
“어머니 사랑합니다”, “ㅇㅇ야 사랑해”,
골든벨 울리는 학생 프로그램에 나온 여학생들도, 거리에서 인터뷰하는
선남선녀들도 사랑한다는 말을 거침없이 해댄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누구를 상대로 사랑한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다.
어려서 부모님께도, 젊은 날 연애편지를 주고받던 여자에게도, 그리고 중매 반
연애 반으로 결혼한 아내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해 본 기억이 없다.

생각해 보면 우리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부모님이 서로에게나 자식들에게나 그 누구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 말은 대체로 신세대가 자주 쓰고 구세대는 잘 안 쓰는 말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을 드러내 놓고 하기보다는
사랑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민족이었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마음이요, 행동이었다.
그래서 한용운 님도 이렇게 시를 읊었던 게 아닌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합니다/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 사랑의 진실입니다…."

그렇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버이가 자식을 아끼고 위하여 한없이 베푸는 사랑이나,
남녀간에 정을 들여 애틋이 그리는 사랑, 이웃을 위하여 너그럽게 베푸는 사랑,
그리고 하나님이 긍휼과 구원을 위하여 인간들에게 베푸는 사랑….
이 모든 종류의 사랑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진정한 마음이요, 실천이다.
꼭 말로 표현해야 사랑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지나가는 목회자 부부가, 우리 딸이, 옛날 부하장교가 내게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흥얼흥얼 콧노래가 나왔고, 나는 ‘나 혼자만의 내’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는 우리 속의 나’임을 느끼지 않았던가.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더라도 남을 기분 좋게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한다는 말은 좋은 말이다.

그렇다면,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자. 그러나 이왕이면 진실로 사랑하자.
사랑한다고 하면서 결혼했다가 금방 헤어지는 사랑, 겉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며
속으로 다른 것을 바라는 그런 사랑이 아닌,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조건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변하지 않는, 그런 사랑을 말하자.
나와 네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고 자주 말하고
이 말이 마음과 행동을 선도해 나가면, 이 세상은 사랑이 강물처럼 넘실거릴 게
아닌가. 우리는 그 강물에 배 띄워 둥실둥실 행복하지 않겠는가.

오늘 저녁엔 나도 집에서부터 한번 해 볼까?
"사랑한다 아들 딸아. 사랑해 여보."

04. 7월 어느 토요일




5 Comments
바다 2004.07.03 23:11  
  들어도 들어도 듣고 싶은  사랑한다는 말
과연 나는 이 말을 내가 듣고 싶은 만큼
내 주위분들에게 몇 번이나 자신있게 해보았을까?
이 글을 읽으면서 사랑의 의미를 깊이 새겨본다.
평화 2004.07.04 12:45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하면서 그 사랑의 측정할 수 없는 크기와 깊이
사랑에 말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나 하였으며
책임감을 또 얼마나 생각해보았던가....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하고 진실되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하느님처럼 자비로운 큰 사랑을 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비솔님! 감동적인 훌륭한 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요.*^-^*
평화 2004.07.04 13:18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수호자가 되기를
길 가는 여행자들을 위해 내가 안내자가 되기를
강을 건너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리가 되며
빛을 염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등불이 되기를
휴식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안락한 휴식처가 되기를

진정한 사랑이 담긴 참 좋은 글 같아 옮겨봅니다.
오숙자.#.b. 2004.07.04 20:14  
  사랑한다는 말
이보다 더좋은 말이 있을까...

사랑을 주는데서 기쁨오고
사랑 받는데서  행복오고

기쁨과 행복을 일구는 일이
이리도 쉬운데
그런데
왜 그리도 어려울까....
나비 2004.07.05 03:14  
  중요한것은 사랑한다고 말할때에 찡그리고 하는 사람은 없지요!
사랑하다고 말할때의 표정은 밝고 수줍고 아름답지요!
그래서 사랑응 언제나  어디서든 ......그렇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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