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불고호텔 앞에서
인터불고호텔 앞에서
권선옥(sun)
서늘한 가을 바람이 곁에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가을은 나의 마음에 색색의 나뭇잎으로 한 잎 두 잎 그 잎사귀를 떨구며 나를 물들인다. 저녁 식사 후 읽지 않을 책 한 권을 들고서 집을 나선다. 집에서 가까운 인터불고호텔 앞 공원길이 나의 산책로가 된 지는 이미 몇 달 전부터이다. 여름의 뙤약볕을 피하다 운동하는 걸 거른 적도 많았었지만 오늘같은 저녁 때야말로 그저 부담 없는 친구랑 살아가는 얘기 나누며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인터불고호텔의 대표 권영호씨는 원양업으로 사업 기반을 일구었다고 한다. 그리고 주로 스페인에서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자신이 번 돈으로 스페인에 '애국가'를 작곡하신 안익태 선생이 살던 집을 125억에 인수하여 130억을 들여 수리를 한 후 안익태 선생의 부인의 사후에는 박물관으로 보존하는 방향으로 문화사업에도 기여하시는 분이시라는 기사를 떠올려 본다. 호텔 주인이 세금을 포탈해서 조사를 받는 기사를 읽었다면 호텔건물만 보여도 찜찜했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인지 이 공원을 오가면서도 좋은 생각들을 더 많이 하게 된다. 호텔 앞에는 공원 주차장과 호텔 주차장도 있지만 주차장을 이용하는 차량 외에도 공원을 통과해서 고모령으로 향하는 길가엔 불법 주차 차량도 즐비한 편이다. 공원 안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불법 주차 차량들이 그리 흉하게 느껴지지 않고 그저 사람 살아가는 정다운 풍경이고 하나의 배경처럼 여겨진다.
오늘은 어제보다 약간 일찍 공원으로 나왔다.
일찍이라고 해도 시간은 밤 8시 30분. 이제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 오는데 산책과 운동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해 본다. 800M의 공원 산책길을 다섯 바퀴 돌면 50분 가량이 걸린다. 두세 바퀴 도는 동안은 <로사리오 기도>를 드리면서 산책을 한다. 그 다음으로 자판기의 커피를 한 잔 빼어서는 자동차문을 열고 들어가서 의자를 편하게 젖힌다.
차창 밖의 무성한 가로수가 흔들리는 것을 보며 자연을 느낀다. 흔들리는 나뭇잎들 사이로 은은하게 불 밝힌 가로등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대로 밤이라도 샐 것만 같다.붉그레한 가로등이 빛을 잃어가는 새벽이 올 때까지. 차량의 라디오를켠다. KBS 제1FM에서 흘러나오는 <정다운 가곡>을 들으면서 커피를 마신다. <정다운 가곡>이 끝나는 밤 10시에는 <당신의 밤과 음악>시간이다. <당신의 밤과 음악>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을 한 곡 듣고는 다시 밖으로 나온다. 훌라후프와 윗몸 일으키기를 50분간 하고는 운동을 마친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르더라도 그 몇 년을 하루같이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성실하게 운동을 하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때로는 밤 깊은 그 시간에도 친구랑 통화를 하기도 한다. 밤을 낮 삼아 일을 하고, 공부를 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때로는 통화 중에 엘리베이터다 지하철이다 해서 통화가 끊기기도 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그녀를 알면서 제대로 된 삶의 깊이를 배우고 제대로 된 삶의 무게를 느낀다.
내 앞에 놓여진 시련 앞에서 나에게 용기를 주고 위로를 주고 바쁜 가운데서도 시간을 내어 이것저것 챙겨 주는 그녀를 보면서 고마움 이상의 그 무엇을 가슴으로 싸 안는다. 늦은 나이에 돈을 벌어서 학교를 다니고 글을 쓰고 직장에 관련된 연수를 위해 밤을 밝혀 일하는 그녀를 생각하며 너무 늦은 나이에 나는 처음으로 부모님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 본 적도 없고, 돈을 모아 본 적도 없고, 병원 가는 길에 한 번 태워 드리고 보살펴 드린 일도 없다. 이십 대 후반의 나이에 돈을 번다면서도 대학원 입학금과 논문학기 등록금을 부모님께 부담지운 철없는 행동을 한 일이 왜 지금에야 생각이 나는 걸까. 서러운 서른 살까지 공부시키고 혼수 마련해서 시집 보낸 맏딸. 그 딸이 마흔 여덟이 된 지금 어두운 인생의 길목에서 갈 곳을 몰라 방황하고 있다.
<2004. 9. 16.>
권선옥(sun)
서늘한 가을 바람이 곁에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가을은 나의 마음에 색색의 나뭇잎으로 한 잎 두 잎 그 잎사귀를 떨구며 나를 물들인다. 저녁 식사 후 읽지 않을 책 한 권을 들고서 집을 나선다. 집에서 가까운 인터불고호텔 앞 공원길이 나의 산책로가 된 지는 이미 몇 달 전부터이다. 여름의 뙤약볕을 피하다 운동하는 걸 거른 적도 많았었지만 오늘같은 저녁 때야말로 그저 부담 없는 친구랑 살아가는 얘기 나누며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인터불고호텔의 대표 권영호씨는 원양업으로 사업 기반을 일구었다고 한다. 그리고 주로 스페인에서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자신이 번 돈으로 스페인에 '애국가'를 작곡하신 안익태 선생이 살던 집을 125억에 인수하여 130억을 들여 수리를 한 후 안익태 선생의 부인의 사후에는 박물관으로 보존하는 방향으로 문화사업에도 기여하시는 분이시라는 기사를 떠올려 본다. 호텔 주인이 세금을 포탈해서 조사를 받는 기사를 읽었다면 호텔건물만 보여도 찜찜했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인지 이 공원을 오가면서도 좋은 생각들을 더 많이 하게 된다. 호텔 앞에는 공원 주차장과 호텔 주차장도 있지만 주차장을 이용하는 차량 외에도 공원을 통과해서 고모령으로 향하는 길가엔 불법 주차 차량도 즐비한 편이다. 공원 안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불법 주차 차량들이 그리 흉하게 느껴지지 않고 그저 사람 살아가는 정다운 풍경이고 하나의 배경처럼 여겨진다.
오늘은 어제보다 약간 일찍 공원으로 나왔다.
일찍이라고 해도 시간은 밤 8시 30분. 이제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 오는데 산책과 운동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해 본다. 800M의 공원 산책길을 다섯 바퀴 돌면 50분 가량이 걸린다. 두세 바퀴 도는 동안은 <로사리오 기도>를 드리면서 산책을 한다. 그 다음으로 자판기의 커피를 한 잔 빼어서는 자동차문을 열고 들어가서 의자를 편하게 젖힌다.
차창 밖의 무성한 가로수가 흔들리는 것을 보며 자연을 느낀다. 흔들리는 나뭇잎들 사이로 은은하게 불 밝힌 가로등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대로 밤이라도 샐 것만 같다.붉그레한 가로등이 빛을 잃어가는 새벽이 올 때까지. 차량의 라디오를켠다. KBS 제1FM에서 흘러나오는 <정다운 가곡>을 들으면서 커피를 마신다. <정다운 가곡>이 끝나는 밤 10시에는 <당신의 밤과 음악>시간이다. <당신의 밤과 음악>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을 한 곡 듣고는 다시 밖으로 나온다. 훌라후프와 윗몸 일으키기를 50분간 하고는 운동을 마친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르더라도 그 몇 년을 하루같이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성실하게 운동을 하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때로는 밤 깊은 그 시간에도 친구랑 통화를 하기도 한다. 밤을 낮 삼아 일을 하고, 공부를 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때로는 통화 중에 엘리베이터다 지하철이다 해서 통화가 끊기기도 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그녀를 알면서 제대로 된 삶의 깊이를 배우고 제대로 된 삶의 무게를 느낀다.
내 앞에 놓여진 시련 앞에서 나에게 용기를 주고 위로를 주고 바쁜 가운데서도 시간을 내어 이것저것 챙겨 주는 그녀를 보면서 고마움 이상의 그 무엇을 가슴으로 싸 안는다. 늦은 나이에 돈을 벌어서 학교를 다니고 글을 쓰고 직장에 관련된 연수를 위해 밤을 밝혀 일하는 그녀를 생각하며 너무 늦은 나이에 나는 처음으로 부모님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 본 적도 없고, 돈을 모아 본 적도 없고, 병원 가는 길에 한 번 태워 드리고 보살펴 드린 일도 없다. 이십 대 후반의 나이에 돈을 번다면서도 대학원 입학금과 논문학기 등록금을 부모님께 부담지운 철없는 행동을 한 일이 왜 지금에야 생각이 나는 걸까. 서러운 서른 살까지 공부시키고 혼수 마련해서 시집 보낸 맏딸. 그 딸이 마흔 여덟이 된 지금 어두운 인생의 길목에서 갈 곳을 몰라 방황하고 있다.
<2004. 9.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