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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노래

비솔 4 3048
황혼의 노래
                    조병설

 대구 변두리에서 근무하던 그 가을, 나는 금호강변 갈대처럼 휘청거리고 있었다.
 10월의 진급자 명단은 현 계급에서 군 생활을 마감하라는 명령서가 되고 말았다. 그 동안 생의 방편으로 한 길을 선택해 허위단심 숨차게 올라왔는데, 고갯길이 문득 끝난 것이다.
 퇴근을 하면 유난히 썰렁한 독신숙소를 뛰쳐나와 동산을 오르거나 거리를 헤매곤 했다. 산기슭에서 늦가을 소슬바람에 몸을 맡긴 채 지는 해를 바라보는 시간이 많았다.
 태어난 시간인 탓일까, 여유 있고 풍요롭기 때문일까. 나는 하루 중 황혼녘을 가장 좋아한다. 그러나 누가 인생노정에서의 황혼을 달갑다고 하랴. 황혼의 완숙미를 칭송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건 고개 숙인 노년을 위로하는 것이라 치부해 왔었다. 그런데 이제 내 인생도 그 황혼을 향해 가는가, 가야할 길은 내리막뿐인가. 노을지는 서녘 하늘을 향해 한숨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날도 나는 숙소를 나와 동산 기슭에서 그렇게 서성이다가 산너머 쪽을 향해 발을 옮겼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고 싶었다. 20분도 채 안 걸었는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동리가 나왔다. 그곳에 살면서 숙소와 사무실만을 오가며 그저 일에만 파묻혔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지난 군생활은, 주변의 산과 나무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그저 길만 보고 오르던 세월이었다.
 교회와 학교를 지나 어느 골목을 지나는데 어디선가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소리 나는 쪽으로 가보니, '성악'이란 간판이 눈에 띄었다. 한참을 문밖에서 들어봤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여인이 가곡을 부르고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노래였다. 군가와 유행가에 묻혀 명곡과 가곡을 잊고 살았던 거다. 음률을 타고 고향과 추억이 몰려왔다. 가곡 속엔 시골중학교 음악 선생님과 고등학교 시절의 낭만파 친구, 서정의 청춘도 들어 있었다.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갈 길이 막히니 이젠 추억을 읊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다. 둘째 동생쯤 되어 보이는 여선생이 피아노를 치며 성악을 가르치고, 그 옆에서 그녀의 남편이 거들고 있었다. 나이 많은 사람도 성악을 배울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녀가 남편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대학 다닐 때 교회에서 특송을 했는데, 남편은 그녀의 노래에 반했던 연하의 고등학생이었다고 한다. 결혼 후 남편은 시행착오의 세월을 보냈고 여인이 가족을 부양한 듯했다. 남편은 뒤늦게 뜻을 세워 신학을 공부를 하여 나이 40이 넘은 후에야 목사가 되었다고 한다. 좀 늦었지만 사랑을 전파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 얼마나 잘 된 일이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그녀 옆에서 어린 남편은 계면쩍은 듯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바람 따라 무작정 헤매던 동산에 새로 길을 냈다. 퇴근하면 산기슭을 걸어 그 낯선 거리로 향했다. 학교 다닐 때 익혔던 쉬운 가곡부터 배웠다. '기다리는 마음'으로 시작하여 '고향 그리워' 향수에 젖고, '보리밭'을 지나 '그리운 금강산'에 올라 '청산에 살리라' 노래를 했다. 대개 귀에 익은 노래였는데, 어느 날은 내가 전혀 들어보지 못한 노래를 배우라고 그녀가 권했다. 제목이 '황혼의 노래'라며, 그녀는 노래에 얽힌 이야기도 소개해 줬다.
 대개 가곡은 시에다가 작곡가가 곡을 붙인 게 많으나 이 노래는 작사 작곡가가 한 사람이었다. 실향민 김노현이 시를 쓰고 스스로 곡을 붙인 가곡이다. 그는 학창시절 음악공부를 하다가 부친의 뜻에 따라 치과의사가 되었단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못하다가 늦은 나이에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이 노래가 바로 그 새로운 시작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고향은 이북 대동강변이었는데 고향 생각이 날 때마다 백마강을 찾았다. 낙화암에서 백마강과 고란사를 바라보며 어릴 적에 놀았던 대동강과 부벽루를 그리곤 했다. 그의 나이 50 고개를 넘어선 어느 봄날, 그렇게 백마강을 내려다보던 그의 눈에 진달래가 만발한 고향의 강언덕이 아롱져 왔다. 마침 해가 서쪽 수평선에 잠기는 황혼녘이라 애수는 더욱 짙었다. 나이로 보아서도 인생의 황혼으로 향하던 그로서는 더욱 고향이 그리워졌다. 시인도 아니면서 그는 사무친 마음을 이렇게 글과 선율로 토해냈던 것이다.

 아지랑이 하늘거리고 진달래가 반기는 언덕
 헤어진 꿈 추억을 안고 오늘 나는 찾았네
 내 사랑아 그리운 너 종달새에 노래 싣고서
 그대여 황혼의 노래 나는 너를 잊지 못하네
 마음 깊이 새겨진 사랑이 아롱지네
 맑은 시내 봄꿈을 안고 어린 싹은 눈을 비빌 때
 그 옛날의 아련한 모습 내 맘에 새겨진다
 
 우연하게도 이 노래를 만들던 당시의 그와 같은 연배여서 더 그랬을까. 노래를 배우며 나는 가사에 취하고 곡에 취했다. 작곡가 김노현이 낙화암에 올라 고향을 그렸을 그 심정으로, 동산 기슭에 올라 이 노래를 불렀다. 황혼의 서녘하늘을 향해 노래를 뿜어내면 저녁 노을은 고향의 봄 풍경이 되었다. 아지랑이 하늘거리는 보리밭과 진달래 만발한 언덕, 풀피리 꺾어 불던 그리운 이들의 모습, 그리고 산마을을 감돌아 흐르던 홍천강의 맑은 물살도 거기 노을 속에 있었다. 그가 백마강에서 대동강을 찾듯, 나는 늦가을 삭연(索然)한 황혼 속에서 고향의 봄을 찾고있었다. 

 황혼의 노래를 부르며 나는 또한 인생의 황혼을 생각했다.
 불혹(不惑)이 지나 어려운 뜻을 세운 성악가의 남편과, 지천명(知天命)을 넘어 새로운 시작을 했던 치과의사도 있지 않은가. 가을이 간다는 건 새로운 봄이 온다는 것이요, 하나의 길이 끝났다는 건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는 게 아니던가. 길은 오르막만 있는 게 아니라 내리막도 있다. 오를 때에는 길만 보이나 내려갈 때는 세상이 보인다. 오르막이나 내리막이나 고개는 어차피 하늘 아래 있다.
 그 가을 노을지는 산기슭에는 그렇게, 인생의 황혼도 얼싸안아야 할 대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2005. 3.)
4 Comments
장미숙 2005.05.17 17:43  
  '오를 때에는 길만 보이나 내려갈 때에는 세상이 보인다.' 하신
잔잔한 말씀에서 느끼는 바가 큽니다.
좋은 글 주시어 감사합니다.
별헤아림 2005.05.17 21:05  
  깊이 있는 글 올려 주셔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애증과 회한 그리고 최선을 다하지 못한 아쉬움.
많은 것들을 조용히 견디면서 또 다른 황혼의 꿈을 키워야 하는 나이. 20대 초반의 희망적이고 푸른 꿈은 아니라 해도 조용한 가운데 인내와 사랑으로 쌓아야 할 인생의 깊이와 향기를 그려 봅니다.
<황혼의 노래 >
저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곡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사연까지 곁들여 주시니~~~!
비솔 2005.05.18 09:31  
  별헤아림 님,
장미숙 님,
졸작을 읽고 마음을 함께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계절의 여왕 이 5월에 아름다운 마음의 여왕 되시기
바랍니다.
김메리 2005.05.18 19:04  
  덕분에 오랜만에 황혼의 노래 악보 출력해서
피아노치며 불렀습니다
가곡 지식이 왕창 늘어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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