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그 무형의 향기를
어머니 , 그 무형의 향기를
박 원 자
얼마 후면 새로 지은 집에 이사가기 위해 하나씩 준비해야 하는 일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오래된 이불을 바꾸는 일이다. 쓰던 걸 다 버리고 새 이불로 장만하면
많은 돈이 들것이고 그냥 가져가자니 새집에 격이 맞지 않을 것이고....
집을 짓는 일이 아주 기쁘고 보람된 일이나 생각보다는 엄청난 돈이 들어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가 결혼 할 때 가지고 온 솜이불은 내 고향 새무게 밭에서 어머니가 손수
목화를 심어 그걸 타다 만든 이불이다. 그 해 커다란 목화밭에서 굽은 허리를
펴시지 못하면서 막내딸 혼수밑천으로 목화를 따시던 어머니.
밤이면 방안 가득히 목화를 펼쳐놓으시고 씨를 가르면 목화에서 나온 벌레가
방안에서 기어다니면 벌레가 징그러워 엄살을 떠는 막내딸에게 목화에서 나온
벌레라 깨끗하다고 잡아내시던 어머니..
어머니는 혹시나 아들일까 늦동이로 나를 낳으셨건만 딸을 낳아 죄인처럼
기도 못 펴시고 일만 하시다가 허리가 굽어 엄마 같은 큰언니와 목화를 이고
함평에 가서 이불솜으로 타오던 날 .
그 날은 흰눈이 내리고 바람도 제법 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
2월 28일 날 결혼을 했으니 겨울방학 끝 무렵에 갔던 거 같다.
큰언니와 먼지가 펄펄 나는 공장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이고 왔던 그 솜으로
결혼이불을 만들고. 이불홑청은 내가 재봉틀로 붙이고...
그 세월이 벌써 얼마나 흘러버렸는지....
요즘은 목화솜이 아주 귀하니 그걸 다시 타서 이불을 만들면 새 이불처럼 좋다고
여기저기서 조언을 해주어 오랫동안 미루었던 일을 하게 되었다.
이불가게 아줌마도 이렇게 좋은 솜은 지금은 구할 수가 없다고 솜이불을 세 채를
만들어 주셨다.
순간 농이 작아 얼만 전 솜이불 한 채를 친척에게 주어버린 일을 후회했다 .
명주이불 둘, 양모이불 둘, 솜이불 셋
새로 다시 만든 이불을 보면서 어렸을 적 허리춤에 감춰두셨던 사탕을 꺼내 주시면서
"내 강아지...."
하시던 말씀.
초등학교 1학년 때 눈이 너무 많이 와 흰고무신에 새끼줄을 감아 학교까지 업어다 주시던 일 .
까만 가마솥 뚜껑에 밀개떡을 해주시던 일
양철 바케쓰에 수박을 담아 우물에 담가두었다가 주시던 일.
김장하시던 날 배추 속잎에 깨소금을 묻혀 제일 먼저 한 잎 넣어주시던 일....
막내딸이 다녀가면 동네 어귀에 나와 앉아 내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앉아 계시던 모습.
내일 돌아가시는데 오늘 찾아간 외손자 내 아들에게 허리춤에서 용돈을 꺼내 주시며
아직도 죽지 않고 있어 미안하다 하시던 너무도 그리운 내 어머니
막내딸이 이렇게 잘 살고 이제 새집도 지어 이사가는데 살아계시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나는 이불집에서 찾아온 이불을 정리하며 아무도 없는 방에서 솜이불과 요를 펼치고
그 속에 누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내 어머니의 그 무형의 포근한 향기를 맡고 또 맡았다.
(2005. 12. 31)
※새무게 밭- 샘위의 밭을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목화꽃 속에는
연노랑 예쁜 얼굴
땡볕에 부끄러워
연분홍 마음이 진 자리
희미한 등잔불 아래
다듬잇돌 두드리며
긴긴날 설움하나
달래시던 어머니 얼굴
달빛에 젖은 옥양목 적삼
옷고름 풀어 다시 매면
목화송이로 피어나던
어머니의 사모곡
물레가 돌고
물레가 돌고
밤이 이슥하도록
낡은 창호지문에
그림자로 남아 계시던
그리운 어머니
박 원 자
얼마 후면 새로 지은 집에 이사가기 위해 하나씩 준비해야 하는 일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오래된 이불을 바꾸는 일이다. 쓰던 걸 다 버리고 새 이불로 장만하면
많은 돈이 들것이고 그냥 가져가자니 새집에 격이 맞지 않을 것이고....
집을 짓는 일이 아주 기쁘고 보람된 일이나 생각보다는 엄청난 돈이 들어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가 결혼 할 때 가지고 온 솜이불은 내 고향 새무게 밭에서 어머니가 손수
목화를 심어 그걸 타다 만든 이불이다. 그 해 커다란 목화밭에서 굽은 허리를
펴시지 못하면서 막내딸 혼수밑천으로 목화를 따시던 어머니.
밤이면 방안 가득히 목화를 펼쳐놓으시고 씨를 가르면 목화에서 나온 벌레가
방안에서 기어다니면 벌레가 징그러워 엄살을 떠는 막내딸에게 목화에서 나온
벌레라 깨끗하다고 잡아내시던 어머니..
어머니는 혹시나 아들일까 늦동이로 나를 낳으셨건만 딸을 낳아 죄인처럼
기도 못 펴시고 일만 하시다가 허리가 굽어 엄마 같은 큰언니와 목화를 이고
함평에 가서 이불솜으로 타오던 날 .
그 날은 흰눈이 내리고 바람도 제법 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
2월 28일 날 결혼을 했으니 겨울방학 끝 무렵에 갔던 거 같다.
큰언니와 먼지가 펄펄 나는 공장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이고 왔던 그 솜으로
결혼이불을 만들고. 이불홑청은 내가 재봉틀로 붙이고...
그 세월이 벌써 얼마나 흘러버렸는지....
요즘은 목화솜이 아주 귀하니 그걸 다시 타서 이불을 만들면 새 이불처럼 좋다고
여기저기서 조언을 해주어 오랫동안 미루었던 일을 하게 되었다.
이불가게 아줌마도 이렇게 좋은 솜은 지금은 구할 수가 없다고 솜이불을 세 채를
만들어 주셨다.
순간 농이 작아 얼만 전 솜이불 한 채를 친척에게 주어버린 일을 후회했다 .
명주이불 둘, 양모이불 둘, 솜이불 셋
새로 다시 만든 이불을 보면서 어렸을 적 허리춤에 감춰두셨던 사탕을 꺼내 주시면서
"내 강아지...."
하시던 말씀.
초등학교 1학년 때 눈이 너무 많이 와 흰고무신에 새끼줄을 감아 학교까지 업어다 주시던 일 .
까만 가마솥 뚜껑에 밀개떡을 해주시던 일
양철 바케쓰에 수박을 담아 우물에 담가두었다가 주시던 일.
김장하시던 날 배추 속잎에 깨소금을 묻혀 제일 먼저 한 잎 넣어주시던 일....
막내딸이 다녀가면 동네 어귀에 나와 앉아 내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앉아 계시던 모습.
내일 돌아가시는데 오늘 찾아간 외손자 내 아들에게 허리춤에서 용돈을 꺼내 주시며
아직도 죽지 않고 있어 미안하다 하시던 너무도 그리운 내 어머니
막내딸이 이렇게 잘 살고 이제 새집도 지어 이사가는데 살아계시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나는 이불집에서 찾아온 이불을 정리하며 아무도 없는 방에서 솜이불과 요를 펼치고
그 속에 누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내 어머니의 그 무형의 포근한 향기를 맡고 또 맡았다.
(2005. 12. 31)
※새무게 밭- 샘위의 밭을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목화꽃 속에는
연노랑 예쁜 얼굴
땡볕에 부끄러워
연분홍 마음이 진 자리
희미한 등잔불 아래
다듬잇돌 두드리며
긴긴날 설움하나
달래시던 어머니 얼굴
달빛에 젖은 옥양목 적삼
옷고름 풀어 다시 매면
목화송이로 피어나던
어머니의 사모곡
물레가 돌고
물레가 돌고
밤이 이슥하도록
낡은 창호지문에
그림자로 남아 계시던
그리운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