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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향기 (수필)/ 2014년 문학서초

송인자 9 2078
(수필)

노년의 향기
                           
나이가 들면 어떤 신념을 갖는다는 것조차 좀 더 완고해졌다는 다른 표현이 아닐까 싶다. 나이든 분 중에는 온 세상이라도 품을 듯 따뜻한 분도 계시지만, 아주 사소한 일에도 속 좁게 벌벌벌 화를 내는 이가 있다. 언제 어디서건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악착을 떠는 노인의 모습은 차마 쳐다보기조차 민망하다.

아이가 심통 부리는 것이야 귀여울 때도 있지만 노인이 주름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성질내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흉하다. 아무리 ‘사람이 나이 들면 다시 애 된다.’는 말이 있지만 이는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나도 이제 나이가 드니 그런 추한 모습을 보이게 될까 싶어 스스로를 경계하게 된다.
 
서비스 업체인 우리 회사, 조금 전 기사 중 한명이 내게 심한 잔소리를 했다. 그는 내 앞을 오가며 종일 허탕치고 돌아다녔다며 쫑알거렸다. 평소 보일러 고장 접수를 받을 때면 간단한 설명으로 내 선에서 끝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이것저것 캐묻지 않고 걸려오는 족족 넘겼더니 고장 아닌 게 많았나 보다. 그럴 때 기사의 기분을 백분 이해한다. 그가 하는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러함에도 기분이 언짢았다. 굳이 언짢은 이유를 따져보자면 내용보다는 말투 때문이다. 꼬장꼬장 따지려드는 것이 마치 제 손아래 동생 버르장머리라도 고치겠다는 투다. 기분이 나빴지만 참았다. 화를 내면 또 뒷수습이 문제여서다.

나는 평소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은 아니다. 내게는 화난 감정을 지속적으로 끌고 나갈 만큼의 에너지가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잠시 미운 감정에 사로잡혔다가도 금방 사그라져버리고 만다. 그리고 나이가 드니 이제는 세상에 이해되지 않는 사람도 별로 없다. 젊어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독한 사람을 봐도 ‘얼마나 상처가 많았으면 저렇게 됐을까?’ 싶어 측은한 맘이 든다. 물론 때로는 참지 못하고 화를 내기도 하지만 그러고 나면 ‘내가 왜 그랬을까?’하고 후회하게 된다. 그래서 참는 것이다.

나이가 드니 이제는 가슴 설레는 일은 없고 매사가 심드렁하고 쓸쓸할 뿐이다. 사람이 나이 들면서 변하는 건 외모만이 아니다. 목소리도 탁하게 변한다. 굵은 톤이 안정감을 줄 때도 있지만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젊은 애들의 음성은 하이 톤이라 싱그럽다. 그 높은 음역이 듣기 좋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었단다. 그래서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을 갖춘 대기업에서는 종업원들에게 “어서 오세요.”, “안녕하십니까?”등 고객을 응대할 때 ‘솔’음을 내게 한단다.

지금 이 순간도 옆자리 젊은 여직원의 경쾌한 웃음소리에 질투가 나려한다. 그러나 나는 잔잔한 미소를 띠어 그녀에게 긍정을 표한다. 표정만 본 그녀는 내 마음은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내 질투의 원인은 주로 열등의식 때문인 것 같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늘어만 가는 허리둘레와 처진 눈꺼풀 등 생물학적 변화도 그렇고,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대처하는 능력 면에서도 그렇다.

 내게도 찬란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 달리는 기억력으로 노래 가사 하나 외우기도 힘들다. 뭔가를 암기해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써 두려움이다. 그래서 아무도 내게 기억하지 못했음을 꾸짖지 않는데도 홀로 의기소침해지고 만다. 오늘도 왠지 공허하고 쓸쓸해서 허세를 부려 내 허무를 다독여 본다. 이것은 늙음의 속성인가. 내 혈관을 흐르는 좁은 마음, A형의 특성인가.

우리 현대인들은 너무나 바쁘게 살고 있다. 그러다가 서서히 노년이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할 일이 줄어드니 공허하고, 경제적으로도 곤고해지니 무시당하는 것 같고, 몸도 이곳저곳이 아프니 슬프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는 게 나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노인에게는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선견지명과 통찰력이 있다. 또 나름대로의 주관이 서 있기에 쉽게 부화뇌동하지도 않는다.

누구도 리허설을 거치지 못한 인생사로다. 체득되지 못한 우리의 삶은 허점투성이요 막연한 두려움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스승님께서는 오늘도 본인의 실수를 줄이려 노력하고 계십니다.”라고 전했다던 공자님 제자 말씀처럼 나도 몸을 낮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련다. 깊은 자기성찰로 보다 합리적이며 사려 깊은  멋진 인간이 되어야겠다.

늘 상 내다보는 창밖의 풍경이 새로워 보이는 것은, 계절이 다르고, 날씨가 다르고, 내 마음 상태가 달라서 일 것이다. 화가 나서 주절대면서도 오늘도 세상을 품을 만큼 큰 그릇이 되자고 다짐해본다.
9 Comments
송인자 2015.03.22 00:14  
정동기 운영자님, 정우동 선생님을 비롯한 정다운 님님님들!!! ^^
송인자 참으로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그사이도 아주 이따금 들어왔으나
그때마다 살며시 기웃거리다만 나갔었지요.
앞으로는 자주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해피한 날들 되십시오.^^
열무꽃 2015.03.24 11:59  
송인자님, 참 오랫만이네요.
노년이신가요?
가끔 향기 맛보고 싶어예.
송인자 2015.07.19 19:20  
열무꽃님, 반갑습니다.
정말 오랜만이죠?
반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장미숙 2015.04.01 14:09  
내마음의 노래에서 다시 뵈니 반갑습니다~
송인자 2015.07.19 19:21  
장미숙선생님도 잘 계셨지요?
반가워요. ^^
바다박원자 2015.04.20 17:07  
송인자 님!
 참으로 오랜만에 오셨군요. 이 회원문단이 많이 외로울 거예요. 이제 좋은 분들의 글이 자주 올라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반가워요.
송인자 2015.07.19 19:22  
박원자선생님, 정말 반가워요. ^^
지금도 서울 가곡 교실에 이따금 오시나요?
뵙고 싶네요. ^^
해야로비 2015.06.10 16:09  
반갑습니다.
송인자언니~~~
송인자 2015.07.19 19:23  
반가워. 해야^^
너무 오랫동안 보지 못했네
잘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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