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동 선생님을 보내드렸습니다.

오늘 이른 아침,
저와 윤교생 지휘자를 비롯한 다섯명의 내마노스탭은 선생님의 가시는 길을 배웅해드렸습니다.
아직 찬바람이 매서운데, 푸근하게 계시다가 날 풀리면 가셔도 될터인데
그 추위속에 그리 급하게 떠나실 줄 몰랐습니다.
평소엔 생각조차 없었는데...
갑작스런 사고소식을 접하고 이렇게 보내드리게 됨에 손은 떨리고 가슴은 비어 휑한 바람만 불었습니다.
사고 이틀전 마지막으로 저희와 함께 저녁식사를 한 후, 합창단 연습실에서 일본공연을 준비중인 저희 합창단 악보에
또박또박 한글 발음을 적어주시고 가셨는데 ...
늘 그랬듯이 그날도 말없이 뒤에서 기다리시다가
저를 보자 먼저 가시겠다며 악보만 넘겨주곤 그렇게 가셨습니다.
언젠가 제게, 일본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하셨던 생각이 납니다.
그날, 그 말씀이 생각났다면 저희가 모실테니 함께 다녀오십시다라고 했을텐데...
그랬다면 어쩌면 이런 비극이 없었을까요.
엊그제 중환자실에서 선생님을 만났을때 의식은 없었지만 숨쉬는 모습이 씩씩해 보였는데
몇시간후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보니 참으로 허망할 뿐입니다.
윤선생이 그랬습니다.
가족이상으로 가족처럼 생각하셨던 저희들을 기다리다 이제 만났으니 가신거라고요.
만감이 교차합니다.
선생님과 함께 했던 십오년의 시간속에 지난 일들이 영화필름처럼 돌아가면서 더욱 또렷이 떠오릅니다.
선생님을 보내드리고 돌아와 함께 했던 사진들을 정리해보고 있습니다.
참으로 많은 시간을 선생님과 함께 해왔더군요.
2001년 가평 가일미술관에서부터 작년 나루아트센터 공연까지...
여기저기 선생님의 흔적들이 여전히 살아 움직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늘 계셨던 선생님.
계실땐 몰랐는데,
이렇게 가슴이 허전한 것을 보면 제가 그동안 참 많이도 선생님을 의지하고 살아왔나 봅니다.
늘 웃으며 제게 다가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실때마다
듣는둥 마는둥 딴전을 피면서 관심없어 했습니다.
노인네 냄새난다고 가능하면 떨어져 앉으려 하고....
돌이켜 생각하면 참 불량하게 선생님을 대할 때도 많았던것 같습니다.
참 나쁜 놈이었습니다.
선생님은 항상 까만 가방 하나를 들고 다니셨지요.
그 가방의 배가 불룩하게 불러올때쯤 선생님은 저를 찾아 오셨습니다.
여기저기 행사에 다니시면서 자료가 될만한 것들을 모아 제게 넘겨주러 오십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껏 그 가방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가방이 얼마나 무거울까 생각하지도 않고 늘 꼬박꼬박 생각없이 받기만 했답니다.
어떤 여름날에는 땀을 삐적삐적 흘리시면서 그 무겁고 불룩한 가방을 들고 찾아오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어떨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냉수 한잔을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던것 같습니다.
행사때만 되면 궂은 일, 귀찮은 일은 늘 선생님 몫이었고...
진행이 매끄럽지 못하면 은근히 선생님을 원망하고 그랬습니다.
잘해드려야지..생각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받아주지 않는 저의 스트레스를 그동안
당신께 풀었던것 같습니다.
그래도 뭐가 그리 좋으신지 늘 웃는 모습으로
이래도 예예. 저래도 그래 그래 맞다.
그동안 선생님은 그렇게 저의 모든 것을 이해하시는 분이라 생각했었나봅니다.
저의 슬픔을 저보다 더 슬퍼해주셨고
기쁨은 저보다 더 기뻐해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모든 것을 모르는척 그렇게 품어 주셨습니다.
아니 그것은 비단 저에게만 하셨던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수많은 추모의 글에는
하나같이 선생님의 맑은 웃음과 다정한 손길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듯 선생님은 만나는 모든 이들의 웃음과 울음을 함께 나눠가지셨습니다.
모든 것을 베풀고 나면 이별할때 슬프지 않다고 합니다.
저희는 선생님께 해드린 것이 너무 없어 이렇게 눈물이 마르지 않나 봅니다.
노래를 사랑하시고 사람들을 사랑하셨던 선생님
아직은 함께 하실 일이 많을터인데....어쩌자고 그리 급하게 가셨습니까?
이런 저런 두런두런 하시고 싶은 말씀도 정말 많았을텐데...
불행중 다행일까요?
정선생님과 같은 날 유명을 달리하신 옛날 내마노합창단에서 활동하셨던 현규호 선생님께서도
오늘 같은 시각, 같은 장소 바로 옆방에서 한줌 재로 길동무 되어 가셨습니다.
누구와도 친구가 되고, 그렇게 쌓은 정이 많았으니 가실 때도 함께 가실 친구가 계셨던 것 같습니다.
이제 두 분 다, 무거웠던 육신의 짐을 내려놓으시고 평안하게 쉬시면서,
앞으로는 언제 어디든 마음 편히 훨훨 날아 저희들 가곡연주회장에 놀러오시라고 말씀드립니다.
내마음의노래 회원, 각지의 가곡애호가, 카페회원 등
그동안 선생님을 사랑하시고 떠나심을 애통해하며 조문해주신 많은 분들께
내마음의노래를 대표하여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2016년 1월 26일
내마음의노래 운영자 정동기 배상
저와 윤교생 지휘자를 비롯한 다섯명의 내마노스탭은 선생님의 가시는 길을 배웅해드렸습니다.
아직 찬바람이 매서운데, 푸근하게 계시다가 날 풀리면 가셔도 될터인데
그 추위속에 그리 급하게 떠나실 줄 몰랐습니다.
평소엔 생각조차 없었는데...
갑작스런 사고소식을 접하고 이렇게 보내드리게 됨에 손은 떨리고 가슴은 비어 휑한 바람만 불었습니다.
사고 이틀전 마지막으로 저희와 함께 저녁식사를 한 후, 합창단 연습실에서 일본공연을 준비중인 저희 합창단 악보에
또박또박 한글 발음을 적어주시고 가셨는데 ...
늘 그랬듯이 그날도 말없이 뒤에서 기다리시다가
저를 보자 먼저 가시겠다며 악보만 넘겨주곤 그렇게 가셨습니다.
언젠가 제게, 일본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하셨던 생각이 납니다.
그날, 그 말씀이 생각났다면 저희가 모실테니 함께 다녀오십시다라고 했을텐데...
그랬다면 어쩌면 이런 비극이 없었을까요.
엊그제 중환자실에서 선생님을 만났을때 의식은 없었지만 숨쉬는 모습이 씩씩해 보였는데
몇시간후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보니 참으로 허망할 뿐입니다.
윤선생이 그랬습니다.
가족이상으로 가족처럼 생각하셨던 저희들을 기다리다 이제 만났으니 가신거라고요.
만감이 교차합니다.
선생님과 함께 했던 십오년의 시간속에 지난 일들이 영화필름처럼 돌아가면서 더욱 또렷이 떠오릅니다.
선생님을 보내드리고 돌아와 함께 했던 사진들을 정리해보고 있습니다.
참으로 많은 시간을 선생님과 함께 해왔더군요.
2001년 가평 가일미술관에서부터 작년 나루아트센터 공연까지...
여기저기 선생님의 흔적들이 여전히 살아 움직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늘 계셨던 선생님.
계실땐 몰랐는데,
이렇게 가슴이 허전한 것을 보면 제가 그동안 참 많이도 선생님을 의지하고 살아왔나 봅니다.
늘 웃으며 제게 다가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실때마다
듣는둥 마는둥 딴전을 피면서 관심없어 했습니다.
노인네 냄새난다고 가능하면 떨어져 앉으려 하고....
돌이켜 생각하면 참 불량하게 선생님을 대할 때도 많았던것 같습니다.
참 나쁜 놈이었습니다.
선생님은 항상 까만 가방 하나를 들고 다니셨지요.
그 가방의 배가 불룩하게 불러올때쯤 선생님은 저를 찾아 오셨습니다.
여기저기 행사에 다니시면서 자료가 될만한 것들을 모아 제게 넘겨주러 오십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껏 그 가방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가방이 얼마나 무거울까 생각하지도 않고 늘 꼬박꼬박 생각없이 받기만 했답니다.
어떤 여름날에는 땀을 삐적삐적 흘리시면서 그 무겁고 불룩한 가방을 들고 찾아오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어떨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냉수 한잔을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던것 같습니다.
행사때만 되면 궂은 일, 귀찮은 일은 늘 선생님 몫이었고...
진행이 매끄럽지 못하면 은근히 선생님을 원망하고 그랬습니다.
잘해드려야지..생각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받아주지 않는 저의 스트레스를 그동안
당신께 풀었던것 같습니다.
그래도 뭐가 그리 좋으신지 늘 웃는 모습으로
이래도 예예. 저래도 그래 그래 맞다.
그동안 선생님은 그렇게 저의 모든 것을 이해하시는 분이라 생각했었나봅니다.
저의 슬픔을 저보다 더 슬퍼해주셨고
기쁨은 저보다 더 기뻐해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모든 것을 모르는척 그렇게 품어 주셨습니다.
아니 그것은 비단 저에게만 하셨던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수많은 추모의 글에는
하나같이 선생님의 맑은 웃음과 다정한 손길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듯 선생님은 만나는 모든 이들의 웃음과 울음을 함께 나눠가지셨습니다.
모든 것을 베풀고 나면 이별할때 슬프지 않다고 합니다.
저희는 선생님께 해드린 것이 너무 없어 이렇게 눈물이 마르지 않나 봅니다.
노래를 사랑하시고 사람들을 사랑하셨던 선생님
아직은 함께 하실 일이 많을터인데....어쩌자고 그리 급하게 가셨습니까?
이런 저런 두런두런 하시고 싶은 말씀도 정말 많았을텐데...
불행중 다행일까요?
정선생님과 같은 날 유명을 달리하신 옛날 내마노합창단에서 활동하셨던 현규호 선생님께서도
오늘 같은 시각, 같은 장소 바로 옆방에서 한줌 재로 길동무 되어 가셨습니다.
누구와도 친구가 되고, 그렇게 쌓은 정이 많았으니 가실 때도 함께 가실 친구가 계셨던 것 같습니다.
이제 두 분 다, 무거웠던 육신의 짐을 내려놓으시고 평안하게 쉬시면서,
앞으로는 언제 어디든 마음 편히 훨훨 날아 저희들 가곡연주회장에 놀러오시라고 말씀드립니다.
내마음의노래 회원, 각지의 가곡애호가, 카페회원 등
그동안 선생님을 사랑하시고 떠나심을 애통해하며 조문해주신 많은 분들께
내마음의노래를 대표하여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2016년 1월 26일
내마음의노래 운영자 정동기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