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생이 같이 개성없는 가곡은 이제 그만
제 개인적인 사견입니다만,
한국가곡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범생이 같은 가곡>,
또 하나는 <문제아 같은 가곡>.
범생이 같은 가곡은 글자 그대로 기존의 서양식 작곡 매뉴얼에 따라 마치 입시에서 모범답안처럼 작곡한 가곡을 말합니다.
현실적으로 이렇게 작곡하는 게 가장 안전합니다.
대부분의 작곡가들이 이 방식대로 작곡을 하며, 이런 작곡가들의 가곡 작품이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런 범생이 같은 가곡을 구체적으로 예로 들면, 한 두 곡이 아니겠습니다만,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가곡이 김효근의 <눈>입니다.
<눈>은 가사 처리 문제만 빼고 나면, 마치 100점짜리 모범 답안 같은 가곡입니다.
음악적 구성, 반주 처리, 화성 처리 등등 기존의 작곡 매뉴얼 기준대로하면 거의 완벽합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눈>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냥 듣기에는 아주 편안한데, 음악적인 구조나 전개 방식이 너무 평범합니다.
한 마디로, <눈>은 작곡자 개인적인 작곡 언어가 거의 없습니다.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이라면 무조건 예, 예하는 범생이처럼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적 주관이나 주체성이 없습니다.
엄친아의 인생은 마치 통속 드라마처럼 과정과 그 결과가 너무 뻔합니다.
속칭, 명문대를 나와 판사나 검사, 의사 등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갖게 되고,
이 사회의 주류층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범생이 같은 가곡도 이와 비슷해서 들으면 아주 편하고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유통도 잘 됩니다. 상품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음악적인 긴장감이라든가 새로움 같은 것은 전혀 없습니다.
음악전문가들에게는 통속 드라마 같아서 별로 재미가 없지요.
반면에 문제아 같은, 반항아 같은 가곡을 쓰는 작곡가는 그리 흔치 않은데,
굳이 예를 들자면, 이건용 같은 작곡가를 들 수 있겠습니다.
이건용은 음악적 주체성이 강해서 기존의 서양식 매뉴얼대로 작곡을 하는 것에 대해 거부를 합니다.
그래서 그의 가곡 작품은 기존의 가곡에 익숙해져 있는 분들한테는 영 불편하게 들립니다.
솔직히, 저도 이건용 가곡은 그리 편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그의 주체적인 음악 논리에는 공감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풍겨나는 정서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범생이 같은 가곡 작품을 무조건 거부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 가곡 작품이 너무 많다는 것, 아니 그냥 시류에 휩쓸려
그런 범생이 같은 작품을 지향하는 주체성 없는 음악적 태도를 지적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수인 선생의<내 맘의 강물>이나 김동진 선생의 <가고파>도
굳이 분류하자면, <범생이 같은 가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분들의 가곡 작품들은 선율이 워낙 미려하고, 유려해서 충분히 인정해줄 만합니다.
하지만 <내 맘의 강물>이나 <가고파>만큼 수준이 안 되는 범생이 같은 가곡은
더 이상 음악 시장에 안 나왔으면 싶은 게 제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추신>
그러나 <내 마음의 노래>사이트에서 만큼은 어떤 종류의 가곡 작품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 올렸으면합니다.
저는 <내마노>사이트를 통해 감상도 하지만, 가곡작품 연구실로 더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내마노>만큼 가곡작품을 연구하기에 좋은 사이트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가곡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범생이 같은 가곡>,
또 하나는 <문제아 같은 가곡>.
범생이 같은 가곡은 글자 그대로 기존의 서양식 작곡 매뉴얼에 따라 마치 입시에서 모범답안처럼 작곡한 가곡을 말합니다.
현실적으로 이렇게 작곡하는 게 가장 안전합니다.
대부분의 작곡가들이 이 방식대로 작곡을 하며, 이런 작곡가들의 가곡 작품이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런 범생이 같은 가곡을 구체적으로 예로 들면, 한 두 곡이 아니겠습니다만,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가곡이 김효근의 <눈>입니다.
<눈>은 가사 처리 문제만 빼고 나면, 마치 100점짜리 모범 답안 같은 가곡입니다.
음악적 구성, 반주 처리, 화성 처리 등등 기존의 작곡 매뉴얼 기준대로하면 거의 완벽합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눈>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냥 듣기에는 아주 편안한데, 음악적인 구조나 전개 방식이 너무 평범합니다.
한 마디로, <눈>은 작곡자 개인적인 작곡 언어가 거의 없습니다.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이라면 무조건 예, 예하는 범생이처럼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적 주관이나 주체성이 없습니다.
엄친아의 인생은 마치 통속 드라마처럼 과정과 그 결과가 너무 뻔합니다.
속칭, 명문대를 나와 판사나 검사, 의사 등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갖게 되고,
이 사회의 주류층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범생이 같은 가곡도 이와 비슷해서 들으면 아주 편하고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유통도 잘 됩니다. 상품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음악적인 긴장감이라든가 새로움 같은 것은 전혀 없습니다.
음악전문가들에게는 통속 드라마 같아서 별로 재미가 없지요.
반면에 문제아 같은, 반항아 같은 가곡을 쓰는 작곡가는 그리 흔치 않은데,
굳이 예를 들자면, 이건용 같은 작곡가를 들 수 있겠습니다.
이건용은 음악적 주체성이 강해서 기존의 서양식 매뉴얼대로 작곡을 하는 것에 대해 거부를 합니다.
그래서 그의 가곡 작품은 기존의 가곡에 익숙해져 있는 분들한테는 영 불편하게 들립니다.
솔직히, 저도 이건용 가곡은 그리 편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그의 주체적인 음악 논리에는 공감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풍겨나는 정서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범생이 같은 가곡 작품을 무조건 거부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 가곡 작품이 너무 많다는 것, 아니 그냥 시류에 휩쓸려
그런 범생이 같은 작품을 지향하는 주체성 없는 음악적 태도를 지적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수인 선생의<내 맘의 강물>이나 김동진 선생의 <가고파>도
굳이 분류하자면, <범생이 같은 가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분들의 가곡 작품들은 선율이 워낙 미려하고, 유려해서 충분히 인정해줄 만합니다.
하지만 <내 맘의 강물>이나 <가고파>만큼 수준이 안 되는 범생이 같은 가곡은
더 이상 음악 시장에 안 나왔으면 싶은 게 제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추신>
그러나 <내 마음의 노래>사이트에서 만큼은 어떤 종류의 가곡 작품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 올렸으면합니다.
저는 <내마노>사이트를 통해 감상도 하지만, 가곡작품 연구실로 더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내마노>만큼 가곡작품을 연구하기에 좋은 사이트는 없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