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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파의 가요곡

鄭宇東 1 1283
클래식파의 가요곡

난파 홍영후(蘭坡 洪永厚 1898~1941) 선생은
아호가 난파이고 예명이 나소운(羅素雲)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영후란 본명은 접어두고 홍난파 선생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였습니다.
그는 문학에도 조예가 깊어 1920년에 소설<처녀혼>을 쓰고 거기에
<애수>라는 바이올린곡을 발표했다가 훗날 1925년 김형준 선생의 가
사를 받아서 우리나라 가곡의 효시가 된 봉선화를 탄생시키었습니다.

이 후로 그는 우리정서로 봄처녀, 성불사의 밤, 장안사, 옛 동산에 올라,
금강에 살으리랏다, 사공의 노래 등의 주옥같은 가곡작품과
남북한 뿐만아니라 해외에서도 널리 불리는 고향의 봄, 낮에 나온 반달,
달마중, 오빠 생각, 퐁당 퐁당 등의 정다운 동요 작품을 작곡하였으며 
1935년대에는 신민요곡 <방아 찧는 색시의 노래, 녹슨 가락지> 등 7곡
과 <백마강의 추억, 내가 만일 남자라면>등 14곡의 가요를 예명 나소운
으로 발표하였다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가곡의 창시자한테 가요곡이
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고 그것도 자그만치 14곡이나 된다하
니 또 영화 춘향전에서 주제가를 작곡하기도 하였다니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처음 접하는 정보에 거저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츠뉴스(ARTS NEWS)에 의하면
난파선생은 가요가 유행하기 전 나소운이란 예명으로 신민요를
작곡하였는데 그 가사는 김수경(염복진의 예명)의 작품이었습니다.
(01) <방아 찧는 아가씨의 노래>(1931년),
(02) <녹슨가락지>(1931년),
(03) <압록강>(1934년),
(04) <오월 단오>(1936년),
(05) <청공 구만리>(1936년),
(06) <세골 큰 애기>(1936년),
(07) <방랑곡>(1938년) 등 7곡이 있습니다.

한국작곡가 사전(시공사, 1999)에서 알아보면
또 가요 14곡의 제목과 작곡연대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01) <백마강의 추억> (강남월, 1935)
(02) <님 의  향 기>    (이하윤, 1935)
(04) <내가 만일 남자라면> (홍희명, 1936)
(05) <내가 만일 여자라면> (홍희명, 1936)
(06) <외로운 사랑>    (김안서, 1936)
(07) <망  향  곡>      ( 1937 추정  )
(08) <유랑의 나그네> (이부풍, 1937)
(09) <청 춘  마 력>    (이부풍, 1937)
(10) <여 인  호 소>    (이부풍, 1939)
(11) <인생은 30부터> (1930년대 말)
(12) <임 실 은  배>    (    上 同      ) 
(13) <이역의 길손>    (    上 同      )           
(14) <다녀 가세요>    (    上 同      )

각설하고, 이에 관련하여
서양음악을 전공한 장건혁은 대중가요를 부르면서 예명을 이규남으로 불
렸습니다. 그가 부른 노래는 대부분 나소운과 전수린이 작곡한 작품이었
는데 이는 나소운(홍난파)가 후배 성악가를 사랑하고 아껴서 그런 배려를
하였다는 인정스러운 훈훈한 이야기입니다.

김동진 선생도 영화음악으로
"길은 멀어도" 에서 <저 구름 흘러 가는 곳> 을 작곡하여 작곡 당시에는
영화음악이라고 경원시 되었으나 이제는 가곡중의 가곡으로 즐겨 불려
지고 사랑받고 있습니다.
또 계용묵 소설 벙어리 삼용을 원작으로 한 연속극과 영화 "백치 아다다"
에서 주제가를 작곡하였습니다.
또 그리고 김내성 원작 청춘극장의 영화 산 넘고 바다 건너라는 영화음
악에서 <축배의 노래>를 작곡하였습니다. 남일해와 송민도가 노래
불러 히트한 곡으로 서양의 축배의 노래에 못지 않은 밝음과 호쾌함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명곡쯤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자 최영섭 선생은
태진아가 불러 히트한 <가버린 사랑>을 그의 필명 고운산으로 작사하고
예명 박인섭으로 작곡하였습니다. 이 가요곡의 저작권료가 클래식곡보다
더 많이 벌어와 효자노릇을 한다고 자랑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선배 음악가들의 음악관에는 장르에 구애되지 않고 우리의 정서를
순화-고양시키면 다 좋은 노래로, 즐겨 불리기를 원하였을 뿐입니다.
신귀복 선생은 이런 사명을 생활가곡으로 개념화하고 이의 정착과 보급
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생활하는 가운데 즐겁게 흥흥거리는 분위
기를 조성하는 일이야 말로 생활가곡의 좋은 실천례가 될 것입니다.
이런 희망이 위와 같은 일일연속 드라마나 영화음악의 작곡에서 좋은 성
과를 거두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들이 예술가곡계와 대중가요계를 융화
시키고 동시에 발전시키는 또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는 바야흐로 통섭과 융합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새로운 갈래들로 잘게 잘게 가르는 일을 능사로 여겨온 시절을 반성하고
일의 과정에 분석력을 필요로 하는 중간자의 역할에서 일을 마무리하여
결실하는 종합력으로 지향하는 종결자의 역할에 더 관심을 기울려야 합
니다. 부분적 고도의 전문지식이 구체적 사건의 해결에 역부족인 현상을
흔히 보아온 우리들은 복잡다단한 현실에 대처하여 학문과 사회현실등에
대한 통섭력과 융합력이 크게 요청된다 하겠습니다.
1 Comments
스윽펑 2014.12.10 19:17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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