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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번개에 배락맞은 하룻강아지 (경주 번개 참석기)

정용철 1 1696
(황덕식 작곡가 카페에 올린 글을 복사하여 올립니다.)


천둥번개에 배락맞은 하룻강아지 (경주 번개 참석기)| 자유게시판
지족 | 조회 2 |추천 0 |2013.06.19. 10:49 http://cafe.daum.net/hdsgagok/4tMj/1045 


저녁에 예정된 술자리가 파토나고나니 정해놓은 소실도 없는 주변머리에 마땅히 하릴이 없다.

빈 입을 쩝쩝 다시다가 문득 김경선 소프라노가 '내마노'에 쳐놓은 번개가 번개처럼 떠오른다.

집구석에 간들 토끼같은 새끼가 있나, 여우같은 마누라가 있나(있긴 하지만 야시와는 거리가...)?

애라이~,

번개치는 데 가서 소나기 구경이나 하자고 오랫만에 대구-경주 고속도로를 탔다.

몇년 전만 하여도 출장이다 골프다 하여 이 길을 부단히도 달렸건만?

 

시간 여유가 있어서 뱃속을 채우려고 요석궁 부근으로 갔다.

원효대사가 파계하고 요석공주를 탐하려고 뛰어내렸다는 월정교 보수공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서

휘황한 조명속에 멋떨러진 모습을 보이고,

최씨 밥상이라는 교동 한옥 식당에 들러 맛대가리 없는 밥상을 만 삼천원이나 주고 삼켰다.

안내판에는 다르게 적혀있으나, 서울대 국문과를 나온 다소 음탕한 고등학교 고문 선생님이 가르쳐준

서라벌 저잣거리를 해메며 궁시렁거리던 원효행자의 글귀가 생각난다.

 

我有撑天柱 하니 誰借沒柯斧 인가?

'하늘을 떠받힐만한 기둥을 갖고 있으니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빌려주겠는가?'

 

아무도 모르는 이 말을 이해한 무열왕이 마침 과수가 된 요석공주를 은밀하게 주선하여

해동공자 설총을 태어나게 한 비화(卑話)이다.

 

"정 사장님, 어딥니까?"

황덕식 선생님께서 한 시간 전에 드린 전화에 빨리도 답을 하셨다.

'대릉원' 고분군을 돌아 불밝힌 첨성대를 따라가니 왼쪽에 '마리오 델 모나코'란 커다란 간판에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내부에는 정장을 한 오페라 가수의 초상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이리 저리 구면들과 너스레를 떨며 수인사를 나누고 김원장 맞은 자리에 앉았다.

"정 사장님, 오신 김에 노래 한 곡 하이소, 좀 낮은 거로.."

인사치레인지는 모르나 번개를 친 김경선씨가 권한다. 나의 공력을 이미 아는지라 '좀 낮은 거'라는 토를 단다.

옆에 앉은 부용 최정란씨에게 프로그램을 빌려서 살펴보니 채사무엘이란 분이 '내 맘의 강물'과 또 한 곡을 부르기로 했는 데,

유고로 불참이란 말을 듣고 안내서에 기재된 '내 맘의 강물'을 그냥 부르겠다고 했다.

김원장이 같잖다는 표정이나 '간 큰 놈이 널장사한다.' 는 평소 신조(?)에 따라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도 모르고 Bb 최고 난이도 가곡을 연습도 없이 냉큼 집어삼켰다.

다른 사람들 연주 중에 '아,아~' 속으로 목청을 점검하니

어제 새벽 두시까지 마신 술독에 성대가 경주터널 바닥보다도 더 뻣뻣하다.

포기하고 가사를 읊조리니 둘째 줄이 통 기억이 안 난다.

안 재호 교수님께 악보 갖고 있나 물어서 차에 둔 가곡집을 갖고 왔다.

이 노래 불러 본 지도 일 년은 좋게 넘은 듯 한데..?

'내가 언제 준비하고 연주한 적이 있나?' 스스로 정신을 가다듬고 순서를 기다렸다.

그래도 요즈음 Chegerida 의 High C 를 무난히 발성(노래는 모름, 오로지 스빼 에~~~ 만)하는 처지라

자신을 밑기로 했다.

대구 박범철 테너 문하에 최고 수준의 태생적(胎生的) 음치라는 간단한 자기 소개로

박교수님 체면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초를 치고 연주를 했다.

연주 결과야 하늘도 알만하다.

진행하는 이마에 테너가 테너는 곧 죽어도 원 키로 끝까지 간다는 멘트와

김 이수, 안 재호씨가 확실한 테너라는 진지한 평에 씁슬한 입맛을 다시 한 번 다시고,

 

"이만한 천둥 번개에 살아남은 것이 어디냐?' 며

겁 없는 강아지는 어두운 찻길에 보일듯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귀가를 재촉했다.
1 Comments
열무꽃 2013.06.19 11:22  
경주에서 번개맞기를 잘 하셨지예?
안동양반의 입가근육이 우째그리
위로 옆으로 잘 움직임은 대구박가회의
교육 덕분임이 분명하외다.

오는 겨울 (12/2째 토 오후) 경북청도에서
만나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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