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의 하얀 집
언덕 위의 하얀 집
산행을 할 것인가?
코스모스를 보러 갈 것인가?
4명의 의견이 가을 코스모스 쪽으로 일치를 이루고 신나게 달린다
감기몸살에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지만 일단은 회색빛 도시를 탈출한다는 게 기쁜 일이었다
모두가 가슴을 비우고 섬진강변 국도를 따라 신나게 달리니
마치 연인사냥을 나서는 기분이었다
한두 살 더 먹으나 적게 먹으나 그리운 이에 대한 동경은 다 똑같았다.
들판에는 한창 제 모습의 진가를 발휘하는 억새들이 무리지어 바람에
산들거리며 은빛 물결을 이룬다
나무들 또한 버릴 준비에 한창이지만 사람의 눈에는 그저 남의 아픔은 아는지
모르는지 신이 가을에만 주시는 아름다운 선물로만 생각한다.
한참을 그렇게 달리다가 이름 모를 쉼터에서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모두가 말을 잊는다. 저마다의 가슴에 묻은 추억을 생각하는 듯 아니면 미래에
어디선가 불쑥 나타날 것만 같은 꿈속의 왕자를 생각하는 듯...
섬진강 물은 맑기만 하고 말없이 지혜롭게 흘러만 가고 있었다
그 강물은 절대 지나간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으며 오직 자기가 가야할 길만 묵묵히 가고 있는 것이었다
주중의 오후의 가을 국도변은 비교적 한적하고 코스모스가 도열하고
있는 곳을 달리는데 아무런 장애를 주지 않았다
뒤늦게 피는 녀석들이 가느다란 허리를 흔들거리며 반기는 모습이야말로 앙증맞고
오가는 이들에게 사랑을 더 많이 받는 것 같았다
얼마쯤 달렸을까?
차 문을 닫는 소리가 너무 커서 깨어보니 도착한 곳은 언덕 위의 하얀 집이었다
하얀 집에 어울리지 않게 돌아가는 물레방아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카페 안으로 들어간다
사람만 빼놓고 거의 다 하얀 색으로 맞이하는 마담의 얼굴이 어딘지
낯이 익은 것 같았지만 내 시선은 하얀 그랜드 피아노의 하얀 악보에 머문다
Song sung love( 그리운 노래) Tombe La neige(눈이 내리네)
차를 주문하고 물어 본다
" 저 음악 지금 연주하실 수 있나요?"
"저녁 7시 이후에 오시면 직접 들을 수 있습니다".
차를 마시는 동안 El condo pasa가 흐르고 이어서 Gloomy Sunday가 흐른다.
돈데보이도 흐른다
여기서 나는 잠시 사람의 향기를 생각해 본다
헤이즐럿향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헤이즐럿향이 나고
바닐라향 커피를 마시는 사람에게서는 바닐라향이 나는 것 같았다.
나는 솔잎차를 마셨기 때문에 솔잎향이 났을까?
일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향기로 남을 수 있을까?
남에게서는 나지 않는 나만의 독특한 향기는 어떤 것일까?
은은하면서도 상대방이 기억해줄 수 있는 향기는 어떤 향기일까?
후리지아 향일까?
장미향일가?
아카시아 향일까?
구수한 된장찌게 같은 향일까?
써빙하는 마담이 자꾸 뭔가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로 흘끔흘끔 쳐다본다
다시 또 하나의 음악 흐른다.
부드럽고 달콤하고 특유의 저음에다 차분하면서 어딘가 들어본 것 같은 음성이다.
이 가을에 꼭 맞는 노래인데 속으로는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 노래는 릴케 같은 내 마음 속의 친구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일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마담에게
" 지금 흐르고 있는 저 음악은 누구의 무슨 노래이지요?"
"잠깐만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 DJ에게 물어봐 드릴게요"
"이브 몽땅의 고엽이랍니다."
" 아, 그랬구나!"
"선생님, 저 H학교의 선생님의 제자 조명옥입니다"
"그래! 정말 반갑구나. 82년도 H 학교였니? 결혼은?"
"아직 안했어요 선생님은 21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
" 아니야, 세월이 21년이나 흘렀는데 많이 늙었지?"
" 선생님은 정말로 안 늙으셨어요."
"그럼 21년 전에 내가 이렇게 미리 늙었었구나 ."
나는 21년 전의 그 어린아이를 다 자란 명옥이를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안아본다.
그리고 집에 와서 다시 한번 언덕 위의 하얀 집을 가볼 날을 그리며
고엽(Autumn leaves)을 찾아보고 들으며 생각에 잠긴다.
산행을 할 것인가?
코스모스를 보러 갈 것인가?
4명의 의견이 가을 코스모스 쪽으로 일치를 이루고 신나게 달린다
감기몸살에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지만 일단은 회색빛 도시를 탈출한다는 게 기쁜 일이었다
모두가 가슴을 비우고 섬진강변 국도를 따라 신나게 달리니
마치 연인사냥을 나서는 기분이었다
한두 살 더 먹으나 적게 먹으나 그리운 이에 대한 동경은 다 똑같았다.
들판에는 한창 제 모습의 진가를 발휘하는 억새들이 무리지어 바람에
산들거리며 은빛 물결을 이룬다
나무들 또한 버릴 준비에 한창이지만 사람의 눈에는 그저 남의 아픔은 아는지
모르는지 신이 가을에만 주시는 아름다운 선물로만 생각한다.
한참을 그렇게 달리다가 이름 모를 쉼터에서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모두가 말을 잊는다. 저마다의 가슴에 묻은 추억을 생각하는 듯 아니면 미래에
어디선가 불쑥 나타날 것만 같은 꿈속의 왕자를 생각하는 듯...
섬진강 물은 맑기만 하고 말없이 지혜롭게 흘러만 가고 있었다
그 강물은 절대 지나간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으며 오직 자기가 가야할 길만 묵묵히 가고 있는 것이었다
주중의 오후의 가을 국도변은 비교적 한적하고 코스모스가 도열하고
있는 곳을 달리는데 아무런 장애를 주지 않았다
뒤늦게 피는 녀석들이 가느다란 허리를 흔들거리며 반기는 모습이야말로 앙증맞고
오가는 이들에게 사랑을 더 많이 받는 것 같았다
얼마쯤 달렸을까?
차 문을 닫는 소리가 너무 커서 깨어보니 도착한 곳은 언덕 위의 하얀 집이었다
하얀 집에 어울리지 않게 돌아가는 물레방아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카페 안으로 들어간다
사람만 빼놓고 거의 다 하얀 색으로 맞이하는 마담의 얼굴이 어딘지
낯이 익은 것 같았지만 내 시선은 하얀 그랜드 피아노의 하얀 악보에 머문다
Song sung love( 그리운 노래) Tombe La neige(눈이 내리네)
차를 주문하고 물어 본다
" 저 음악 지금 연주하실 수 있나요?"
"저녁 7시 이후에 오시면 직접 들을 수 있습니다".
차를 마시는 동안 El condo pasa가 흐르고 이어서 Gloomy Sunday가 흐른다.
돈데보이도 흐른다
여기서 나는 잠시 사람의 향기를 생각해 본다
헤이즐럿향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헤이즐럿향이 나고
바닐라향 커피를 마시는 사람에게서는 바닐라향이 나는 것 같았다.
나는 솔잎차를 마셨기 때문에 솔잎향이 났을까?
일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향기로 남을 수 있을까?
남에게서는 나지 않는 나만의 독특한 향기는 어떤 것일까?
은은하면서도 상대방이 기억해줄 수 있는 향기는 어떤 향기일까?
후리지아 향일까?
장미향일가?
아카시아 향일까?
구수한 된장찌게 같은 향일까?
써빙하는 마담이 자꾸 뭔가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로 흘끔흘끔 쳐다본다
다시 또 하나의 음악 흐른다.
부드럽고 달콤하고 특유의 저음에다 차분하면서 어딘가 들어본 것 같은 음성이다.
이 가을에 꼭 맞는 노래인데 속으로는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 노래는 릴케 같은 내 마음 속의 친구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일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마담에게
" 지금 흐르고 있는 저 음악은 누구의 무슨 노래이지요?"
"잠깐만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 DJ에게 물어봐 드릴게요"
"이브 몽땅의 고엽이랍니다."
" 아, 그랬구나!"
"선생님, 저 H학교의 선생님의 제자 조명옥입니다"
"그래! 정말 반갑구나. 82년도 H 학교였니? 결혼은?"
"아직 안했어요 선생님은 21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
" 아니야, 세월이 21년이나 흘렀는데 많이 늙었지?"
" 선생님은 정말로 안 늙으셨어요."
"그럼 21년 전에 내가 이렇게 미리 늙었었구나 ."
나는 21년 전의 그 어린아이를 다 자란 명옥이를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안아본다.
그리고 집에 와서 다시 한번 언덕 위의 하얀 집을 가볼 날을 그리며
고엽(Autumn leaves)을 찾아보고 들으며 생각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