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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양표 교수님에게

홍양표 교수님,
댓글로는 모자라는 것 같아 따로 글을 씁니다.

홍 교수님의 글, 주장에서 느낀 것인데,
'자연' '자유','정열' 이 세 가지는 하나로 묶어질 것 같습니다.

자연과 자유를 예찬하는 정열을 보았고, 또
무대에서의 매너를 갖춘 프로다운 열창에서
이 세 가지의 연결 고리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50대 이상은  보수적 경향이고 젊은 층은 대체로 진보적 경향을 띠고 있습니다.
물론 개인차는 있지요. 연세가 많은 이들 중에도
'그 가사를 왜 고치나'에 대하여
말하기를
"아직도 분단 시대의 사고 방식에 얽매어 있는가"
하면서 보수꼴통이라 매도합니다.

나도 연령이 있는지라
어떤 좌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가
당한 일이 있습니다.
그는 젊은이가 아니라 
내 또래의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이들은 대개 식자가 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보수층을 제 발 아래로
낮추어 보는 교만이 숨어 있습니다.

여기서 이런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보수, 진보의 편들기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가곡 가사에 한정을 짓고 얘기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운 금강산>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불리는 곡인데,
금강산 방문할 때에 북한측은 이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했습니다.
물론 가사의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남북이 극한 대립을 할 때 나온 가곡이니만큼 북한에 거슬릴 만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나 작시자, 작곡자의 입장에서 보면
남북한 전국민이 부르는 가곡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음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하겠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고쳤을 거라고 저 자신도 추측할 뿐입니다.

나의 주장은 고칠 바에는 올바로 고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문법에 맞게,
말(가사 내용)이 되도록 고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못 가 본 지 몇 해"라고 고쳐서 새로 나온 책에는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성악가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이렇게 부르는 실정입니다.

"가 본 지 몇 해"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못 가 본 지 몇 해"는 같은 뜻 같으나 말의 내용상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못 가는 지 몇 해"하면 될 것을,또는
"가 본 지 몇 해"하면 문장으로서 훌륭합니다.

왜 내가 이것을 이전부터 집요하게 주장응 벌여 나가고 있느냐 하면
이 곡은 우리 가곡 중 명곡의 하나입니다.
새로 배우는 학생들은 잘못된 가사로 배워 자꾸만 번져 나가기 때문에
우리 말의 [바른 말 고운 말] 차원에서 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편할 텐데 골치 아픈 일을 들추어 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홍양표 교수님,
'자유'와 '자연'이 진리임을 찬양함에 대하여 크게 공감합니다.

좀스럽다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맞춤법의 진리를 주장하고 싶습니다.
15 Comments
열무꽃 2008.12.24 16:36  
고진숙샘,  이왕에 좀 더 자세히 가르쳐 주세요.

1) 더럽힌 지  몇 해 -> 못 가 본 지 몇 해

2) 2절 짓밟힌 자리 -> 예대로 인가

누가 언제 수정하였나요?

차라리 경상도식으로 "몬 가 본 지"로 부를까예?
고진숙 2008.12.24 21:12  
열무꽃님, 되게 웃기시네요.
'몬 가 본 지'가 뭡니까?

경상도 사투리로 해도
'몬 가 본 지 몇 해'는 말의 이치가 안 맞습니다.
왜냐고요?
'가 본 지 몇 해'는 말이 됩니다. 3.8선이 생기기 전에  가 본 사람은
 '가 본 지 몇 해'라고 하면 되지만,
3.8선이 생기기 전에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사람이

"가 본지 몇 해"라고 할 수 없을뿐더러
"못 가 본 지 몇 해"는 말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생전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사람이 "몇 해"라니 어불성설(語不成說)이잖아요.
그러니 가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야 "몇 해"
운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가곡 가사는,
"못 가 본 지 몇 해"라고 고쳐서 '못 가 본 사람, 즉 가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몇 해"ㅡ이
렇게 해 놓았잖아요.
못 가 봤는데 어떻게 몇 해 운운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이 말이 이치가 맞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겠지요.
 
길게 설명하니까 더 어려울 듯 싶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가 본 지 몇 해"는 이치에 맞는 말이고
"못 가 본 지 몇 해"는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못 가는 지 몇 해" 이렇게 고치면 이치도 맞고 곡에도 아주 훌륭히 들어맞는 말입니다.
열린세상 2008.12.24 19:07  
나는 아래에 [ -> ]로 나타낸 바대로 바꾸었으면 정말 좋겠네요!! - 만구 내 생각입니다!!

1. 누구의 주재런가 밝고 고운 산 그리운 만 이천 봉 말은 없어도
    이제야 자유 만민 옷깃 여미며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 후렴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더럽힌 지 -> 가 본 지] 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2. 비로봉 그 봉우리 [짓밟힌 -> 드높은]자리 흰구름 솔바람도 무심히 가나
  발 아래 산해만리 보이지 마라 우리 [다 맺힌 원한 풀릴 -> 헤어진 형제 만날] 때까지

3. 기괴한 만물상과 묘한 총석정 풀마다 바위마다 변함없는가
  구룡폭 안개비와 명경대 물도 장안사 자고향도 예대로인가
고진숙 2008.12.24 21:29  
좋은 생각을 해 보았군요.
다 잘 들어맞고
이치에도 부합하는 말입니다.

언젠가 이 가사 문제를 작곡자 최영섭 선생님과 만난 자리에서
거론했더니 '못 가 본 지 몇 해'의 비합리점을 수긍을 하면서
고친 분은 작시자 한상억 시인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더 새로운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좋은 가사로 사사로이 고쳐 부른다면 더 어지러울 수가 있으므로
이것도 삼가야 할 문제라 봅니다.
바 위 2008.12.25 08:11  
진솔하신 토론에
귀 쫑긋 눈이밝아 집니다...

큰 성탄에 좋은날 이루십시요.

고맙습니다.
홍양표 2008.12.25 10:06  
고진숙 선생님, 
깊은 생각과  자연, 자유, 정열을 가지신 형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네. 자연은 최고의 존재여서 자연법은 만유의 근원, 법의 원천이라 하지요.
너무 무한, 절대, 신비이며 무엇보다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어서,
너무 아름다워서, 고마워서 노래하며 사랑아니할 수 없지요. 
이 무한한 의미, 신의 창조라 해서 사랑하며 외경(畏敬)하는 자연을 자유롭게, 정열을 가지고 대하게 되지요.

그리운 금강산!
한상억 님의 시에 붙인 최영섭의 곡

저는 자유를 사랑한(민주화 교수이기도 하지만) 사람으로 자유가 무엇이란 걸
그저 큰 범주, 무한 범주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는 제가 논문으로
거의 마지막에는 정열적인 결론을 한국 삼대학회의 대 세미나에서 거듭 강조했지요.
시간과 지면이 크게 요하는 말이지만
결론은 보수와 진보는 하나입니다. 누구에게나 하나입니다.
구약성서와 단군신화, 그리스 로마 신화 등 그 존재론적 의미를 부정하지 않고
조상제사를 몇천년 지키는 인류는 모두 보수(保守), 보존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빨리(자유, 급진), 때로는 천천이 신중히(보수).

저는 한상억님의 그리운 금강산을 그저 언론의 자유, 표현 자유의 "양도할 수 없는 인권"으로
 변호한 것 뿐입니다. 북한 당국, 어버이, 태양이 지배하는 북한은 더욱, 그 내용중
"짓밟힌", "더럽힌지", "맺힌 원한", "못 가본지", "자유만민" 등이 싫을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싫다면, 금강산에서 못부르게 하고 싶다면
순수 자연의 미를 묘사한 새 곡을 지어야지요.
다 알고, 자유롭게 입에 익숙해 진 금강산을 이제 어찌 하겠습니까?
저는 개작한 내용을 거의 알지 못합니다. 
남한만 부르면 되지요.

새로운 제작에 고선생님 참여해 주셔야 겠습니다.
고진숙 2008.12.25 16:36  
홍양표 교수님, 이 글에 감사함을 보냅니다.
<그리운 금강산>을 부분적이나마 가사를 고치는 것을 나도 사실은 언짢은 심정입니다.
이미 입에 익혀진 가사(노래)를 수십년이 지난 지금 고쳐 놓았자 매니아들이 따라와 주지 않
으면 헛수소가 되고 맙니다.

진보적인 이들은 남북 평화 무드가 조성되고 있고 통일을 지향하는 국책에 위배된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고치기를 요망할 겁니다.

그러나 북한을 의식하여 기존 가곡의 가사를 고치는 것 자체가 많은 문제를 야기시킬 우려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다른 예술 분야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고 학술 분야에까지 많은 사례가 논란으로 떠올라 혼란을 야기할 것이 뻔합니다.(현재 논란되고 있는 교과서 문제처럼) 

사실 홍 박사님의 의견을 들어 봐서 해결책을 찾고자 하여 먼저 콜한 것이었는데,
그 해답을 암시하는 말을 보았습니다.

"순수 자연의 미를 묘사한 새 곡을 지어야지요"

 "다 알고, 자유롭게 입에 익숙해진 금강산을 이제 어찌하겠습니까?"
 
상기 두 구절에서만 보아도 홍 박사의 지론인 [자연]과 [자유]가 나왔습니다.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예술은 시대의 산물인만큼 그 시대의 진실을 표현한 시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의 자유,표현의 자유가 엄존하는 한, 고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20세기 시대 상황 아래서 지은 시나 노래를 21세기에 들어 많은 변화를 가져온 지금
그 표현의 뿌리를 뒤집는 내용으로 수정이랄지 개정이랄지 어떤 모양으로도 고치지 말아야 하고
여기에 역사성을 부여해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
전날에 문제 삼았던 것은 고치려거든 문법적 이치에
맞는 말로 고쳤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글이었습니다.
최선진 2008.12.25 18:10  
문제 악곡의 작사자 또는 가창인이, 과거에 금강산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고 전제한다면, "못 가본 지 몇몇 해" 는 옳다고 여기는 의견은 일치한다고 판단해도 되겠지요?
그리고 어떤 일을 실행 못 한 경우, 못 한 사실의 강조에서는 "못" 자를 동사 앞에 놓는 것 아닌지요?
    예:  못 갔다;  못 먺었다;  처럼.
외국의 글에서 예를 들어 보면;
   
    .......
    Tis better to have loved and lost
      than never to have loved at all
      ......

이 시련에서 never 는 우리 글의 "못"에 해당된다고 여겨도 좋지 않을 까요?
고진숙 2008.12.26 14:28  
최선진님은 내가 문제 삼는 내용을 잘못 짚고 있습니다. 내가 문제 삼는 것은 동사 앞에서 부정을 의미하는 부사인 "못"의 사용법의 잘잘못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못 갔다"
"못 먹었다" 등은 다 쓰는 말이고 따라서 잘못이 없습니다.

내가 주장하는 포인트는 말(문장)에서 그 말이 이치에 맞느냐 하는 문제를 다룬 것입니다.
"못 가 본 지 몇 해"에서 '못'의 사용이 틀렸다기보다 '못' 다음에 쓰인 말이 이치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최선진님의 말대로
작시자가 과거에 금강산을 탐방한 일이 있다면 구태여

"못 가 본 지 몇 해" 로 쓸 이유가 없지요.
"가 본 지 몇 해" 로 해야 옳은 것입니다

가 보지 못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못 가 본 지 몇 해"는 잘못된 말이 아니지 않으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잘못된 말입니다.
이유는 간단한 겁니다.
최선진님이 제시한 말로써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못 갔다"를 활용하면
"뉴욕에 못 갔다"(갈 예정이었는데 무슨 사정이 돌발하여 못 갔다)는 말로 이해가 갑니다.

"나는 뉴욕에 못 가 봤다"로 활용해 봅시다.
그런 사람이,
"뉴욕에 못 가 본 지 몇 해인가"
뉴욕에 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이런 말을 썼다면 이치에 맞느냔 말입니다.
또 가 본 사람이라도 "가 본 지 몇 해"하면 될 것을 가지고

"못 가 본 지 몇 해" 해도 이치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못 가 본 지 몇 해"는 어느 경우에도 쓸 수 없는 잘못된 말입니다.
열무꽃 2008.12.26 06:06  
고진숙,열린세상,바위,홍양표,최선진님,

그런데 제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언제부터 (개사)해서 부르기 시작했나요?
운영자 2008.12.26 09:01  
금강산을 만들어낸 조물주의 위대함을 표현한 ‘누구의 주재(主宰)런가’는 악보가 출판될 때 ‘주제런가’로 잘못 인쇄되는 바람에 그렇게 굳어졌습니다. 실수로 인한 의도되지 않은 개사였으며,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이 열리면서 중요한 몇 부분을 수정하게 됩니다. ‘더럽힌 지 몇 해’는 ‘못가본 지 몇 해’, ‘짓밟힌 자리’는 ‘예대로 인가’, ‘맺힌 원한 풀릴 때까지’는 ‘맺힌 슬픔 풀릴 때까지’ 등 세 구절입니다.
고진숙 2008.12.26 14:43  
운영자님에게서 한 정확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의 주재(主宰)런가'가 인쇄 전의 본원고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현 가사 그대로 주제 (主題)로 생각했습니다. 조물주가 금강산의 주제를
아름다운 산으로 지었다는 표현으로 받아 들이고 있었습니다.
말이 되는 이상 이제 고치기에는 어려울 뿐 아니라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열무꽃 2008.12.26 09:32  
시원한 운영자님의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고진숙 2008.12.26 14:49  
열무꽃님, 관심이 남달리 많은 것에
마음이 편하고 기쁩니다.

"몬 가 본 지 몇 해"라고 경상도 말로 해도
잘못이란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까.
고맙습니다.
홍양표 2008.12.26 15:48  
누구의 主宰! 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신비와 장대, 오묘...
신 외에는 없습니다. 우주의 신비는 과학을 절대 초월합니다.
'존재에 직면했을 때 심한 無力, 겸허해야 마음이 통하는 세계가 되는데' "내게 종교적이라 부를 만한 것이 있다면 과학으로 밝힐 수 없는 우주에 대한 무한한 감탄이다" (아인슈타인). 

저는 "못가본 지"는 가보지 못한 국민 모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여겨 고진숙 님의 문법에
긍정하고 싶네요.

그리운 금강산은 즐겨, 감동적으로, 차원 높은 격정으로 불렀습니다.
"짖밟힌", "더럽힌지", "맺힌 원한", "못 가본지", "자유만민" , "찾을 날 왔나", 등은
매우 현실적인 의협, 울분이랄까. 관련자를 일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왜, 짓밟고 더럽혔는지, 누구로 부터 찾는 건지... 그냥 이 위대한 대자연, 신의 주재 작품에 감동하며, 분개도 하며 불렀지요.
사랑하면, 너무도 사랑하면 분개하게도 되지요.  사랑을 가로막은 상황을 괴로워하며.
새도, 멧돼지도 자유롭게 다니는데,
어머니의 생사도 알려 주지 않고,  편지도 못하고,
금강산 갔다가 총 맞아 죽고, 조사도 사과도 아니 하고, 슬퍼하지도 않고,
정말 무서운 세상입니다.

저는 자유가 그리워, 자유로운 대 자연으로 갑니다.
감금하는 자연은 안 가렵니다. 제 자유영혼이 싫어합니다.

그래도 금강산은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자유는 그대로 자유입니다. "마음대로"  "남을 해치지 않는다면"(인권선언, J.S.Mill)
무엇이나 할 수 있습니다.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은 제정할 수 없다"( 프랑스 헌법, 인권선언, 등)고 하지요. 고발당해서 처벌당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리운 금강산"은 고발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유 후진국 북한 당국은 이를 모릅니다.

우리 자유롭게 부릅시다. '금강산이 부르고 있는데'
불러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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