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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강에 너의 혼은 은빛 날개 타고...

김형준 15 777
죽음은 철학자를 생겨나게 한다.
따스한 햇빛은 행복한 마음을 주고,
천둥과 번개는 신을 두려워 하는 마음을 가져다 준다.

정말로 '죽은 이'만 서러운 것인가.
눈물이 주루륵 난다.
당신의 그 명랑하고 유모러스하며,
늘 깔깔대며 웃던 생전의 모습이 환히 맘에 비쳐오기 때문이다.

그 생기와 발랄했던 것을 미루어 볼 때
보다 더 오래 오래 사실 것 같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갓 70을 넘기시곤 모든 이들이 예외 없이 걸어야 할 길로 가셨다.
그래도 본인이 좋아하시는 것들을 하다 갔으니 덜 외로우실까.
또한 따르고 섬기던 하나님의 나라로 가셨을 터이니 기쁘실까.

가신 이는 진실로 말이 없다.
허나 아직 산 날이 많이 남은 이들의 맘 속에서
여러 가지 말을 하실 때도 있고, 오래 함께 사실 수도 있다.

아픔이 많이 있었나 보다.
분노도 때론 맘 깊이 간직을 했었다.
시간이 지나면 다 후회하거나 미안해 할 일들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그리도 힘들다.

남은 자들은 다시 힘겨운 불협화음 속으로 빠져들 것인가.
잡음을 일으키는 자들은 늘 전쟁을 사랑하게 되고,
은은하고 아름다운 하모니를 추구하는 자들은
평화와 안식을 찾고 구하며 또한 누릴 권한이 주어지게 된다.

산 자들아 죽은 자에게서 배우자!
가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용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용서받을 자세를 우선 갖추도록 하자.

똑똑한 자는 더 똑똑한 자가 있음을 기억하며
현명치 아니한 자는 현명한 자에게서 들으라.
가면 오지 않는 길인데
왜 우리 모두는 그리도 아옹다옹하는 걸까.

그대도 누군가를 미워하며 괴롭히려 하고 있는가.
버리자, 내려놓자, 그리고 무릎 꿇고 깊이 반성하자.
그러면 진정한 평화가 내면 속에 퍼져 나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15 Comments
이종균 2007.04.19 12:47  
  지난 일요일 12시,
나도 친구 하나를 잃었습니다.

지난 여름
남부 독일의 알프스 자락을 함께 오르내리던
무쇠 같던 그가
몸저 누운지 한 달만에 이승을 등졌습니다.

내 주위에 아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떠났지만
가장 친한 친구라는 점에서
그 아픔은 다른가 봅니다.
이 아픔을 뭐라 표현해야 될른지요?...

월요일 밤,
김박사님 우렁찬 목소리 들으러 가겠습니다.
김형준 2007.04.19 23:56  
  이선생님,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해 드립니다.
혹시 돌아가신 분이 유럽에 사시는 친한 그 분이세요?

가장 친하신 친구분의 별세,
제가 아직은 충분히 이해할 수 없는 경우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많이 눈물 흘리지는 마세요.
아마 돌아가신 분도 이선생님과 같이 좋은 친구분이
있으셨다는 것만으로도 다음 생에서도 늘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다녀 왔습니다.
제일 앞 줄 중앙에 앉아서 듣자니
각 파트마다 시끄럽게 들려와서 하모니를 느끼기 위해서는
약간 뒷쪽에서 듣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허나 덕분에 첼로 소리와 바이올린 소리, 비올라 소리를
각각 잘 들을 수 있었습니다.

월요일 밤에는
가능하면 우렁찬 소리보다는
첼로의 선율과 같이 모든 음이 연결이 되어 있고
고음에 가서 보다 더 정제된 음악적인 표현을 할 수
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이선생님을 뵙게 되어 기쁩니다.
늘 건강하시고 기쁨이 넘치시길 빕니다!
김형준 2007.04.21 00:43  
  죽음은 늘 주변에 있었다.
단지 그것을 심각하게 의식하지 못했을뿐.
일주일에 4번에 걸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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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을 데려가고 있다.
그래도 감사하는 법을 배우며
자그마한 제비꽃, 새잎 등과 대화를 나누며
하루종일 죽음 속에서도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김형준 2007.04.21 13:17  
  불안과 미확인의 강을 건너
보다 아름다운 세계에 이를 것을 믿으면서 걸어간다.
피곤함이 몰려 오고, 아픔과 슬픔이 강물처럼 넘실대도
저 건너편에 나를 반기는 사랑하는 이가 미소 짓고 있는 걸
늘 상상하며 소망하며 길을 걸어간다.
입에서는 늘 찬양의 소리가 끊기지 않으며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자그마하게 내면의 우주 속에서 퍼진다.
김형준 2007.04.22 06:20  
  누구나 다 어디론가 향해 가고 있다.
목적지를 알고 가는 이도 있고,
그저 이리 저리 헤매이는 이도 더러 있다.
죽음은 인생의 목표가 아니지만
죽음이란 관문을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다 한 번씩은 거쳐 가야 한다.
지극히 제한적인 예외들은 있었지만 그런 것은 거의 존재치 않는다.

죽음의 강을 잘 건너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덕을 쌓고, 보다 성숙한 삶을 살며,
다른 이들을 보다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했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김형준 2007.04.23 01:54  
  삶은 유지하고 있다고 하나 이미 죽은 자들도 많이 있다.
다른 이들을 배려하지 아니하고 자신만을 위해 사는 자들은
이미 삶의 환희를 맛 볼 수 없는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남을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만을 자꾸 내세우고
내 얼굴만을 반짝반짝 비추려 하지는 않나 늘 살펴 보아야 한다.
거울이 너무나고 흐릿해져가고 있다.
김형준 2007.04.24 10:23  
  당신은 강의 이편과 저편을 자유로이 오고 갈 수 있는가.
생명이 죽어 썩어질 마당에 다른 생명들이 춤 추며 노래하고 있다.
생명의 환희가 그대 가는 길에서 끊임없이 기쁨의 함성을 지르고 있다.

밝고 환한 날이었다.
잘 가소서!
김형준 2007.04.25 10:52  
  때론 다시 넘어올 수 없는 그 강을 건너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가장 존경하던 그도 그곳으로 이미 가셨고,
나와 가장 친하던 이들도 몇몇 이미 건너가셨다.

아직은 무언가를 남겨야 할 것이 있기에
생명을 유지시켜 주시는 것 같다.
그것들이 무언인지 빨리 깨달아 실천하고 싶다.
김형준 2007.04.26 09:57  
  생명이 있는 동안 죽음을 곰곰히 살펴보면
지혜자의 삶을 살게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하루살이 모양으로 일상에 바빠 살다보니
벌써 인간 수명의 많은 거리를 달려 왔다.

지혜야, 어디 있느냐?
김형준 2007.04.28 21:45  
  반은 이승에, 다른 반은 저승과 더불어 사는 것이 생명이다.
저승은 과연 어디인가.
그곳도 차원이 다를 뿐 우리가 살고 있는 이승과 같은
우주 속에 있는 그 어느 공간이 아닐까.

무례한 인간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으면서
다른 이들을 낮추어 보는 것이 눈에 띈다.
아픔을 속으로 숨기고,
열등감을 들키지 않키 위해 기를 쓰는 까닭이다.
김형준 2007.04.29 09:08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다 한다.
오만한 자의 높은 코도 새로울 것이 없으며,
구걸하는 할아버지의 굽신거림도 그러하다.
오면 자연히 다 가게 마련이고,
또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서 삶을 진행하게 된다.

나는 오늘 과연 무엇을 이루고 내일로 갈 것인가.
또 그대는?
김형준 2007.05.03 11:14  
  당신은 가면서 시 한 수를 남겼다. 내게.
나는 그것을 누군가에게 보여 주었고.
그는 '꽤 잘 썼다!' 칭찬해준다.
당신이 남기고 간 유산이다.

난 당신이 가장 사랑하던 'Amazing Grace'를 여러 번 불러 보았다.
김형준 2007.05.04 10:20  
  삶을 사는 이들은 여전히 축복을 느낀다.
비록 의식적인 수준에서는 그러하지 않을지라도.
저승에 대한 불확실성이 아픔과 괴로움을
참고 견디게끔 한다.
그것이 햄릿이 느꼈던 것이며,
인류사에서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가벼이 끊지 않았던
동력이다.

물론 인간에게는 삶에 대한 의지가
신에 의해서 창조시에 입력이 되었었다.
김형준 2007.05.04 23:14  
  기쁜 만남은 모두다 새로운 탄생임을 깨닫게 되었다.
헤어짐은 캄캄한 죽음과 같음도 진하게 다가왔다.
결국 죽음은 헤어짐이며, 탄생은 만남임을 하루동안에 배웠다.

다시 만남은 태어남이지만 과연 그것이 그리 쉬운가.
차라리 새로운 만남을 통한 생명의 창조가 더 쉬운 것은 아닐까.
김형준 2007.05.05 13:16  
  막 피어난 들꽃 속에서 난 생명-죽음-생명-죽음이란 연속적
사이클을 보게 되었다. 꽃 속에서 잎새를 보았고 잎새에서
낙엽을 보았고, 벌거숭이가 된 잔가지들이 보였다. 파란 싹이
나는 뒤에 숨어 있는 줄기와 가지는 검은 색을 띠고 있다는 것을
이젠 명확하게 느끼게 되었다.

생명이란 푸르를 때 즐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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