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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우리에서 기거하게 된 반항아 늦둥이

김형준 29 909
밥을 먹다가도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소화를 시킬 수가 없어서
수저를 놓고 먼 하늘을 바라봅니다. 나의 아들이 집 떠난지 이미
오랜 시간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그리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난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막내 아들을 생각할 때마다
너무도 보고파서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늦둥이와 같이 너무도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내 생명까지도 바쳐서 잘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모든 정성을 다 해서 키운 나의 귀한 아들인데....

어느 날 그 아들이 내게 와서 말했었습니다. 전혀 예상치도 않게
말입니다.

'아버지, 저 노잣돈 마련해 주세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요.'

이전에도 늘 짧은 여행을 하곤 했기 때문에 별 생각없이 적당하리라
생각하고 얼마를 주었습니다.

'잘 다녀오너라'

그런데 아들의 입이 뿌루퉁 한 것이었습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입니다. 평상시에는 그 정도만 주면 늘 기뻐서 웃음을
짓던 아들이 말입니다. '거참 이상하네'하며 좀 더 넉넉히 주었습니다.
하지만 찌푸려진 아들의 얼굴은 펴지질 않습니다.

'아버지, 이것 가지곤 턱도 없어요.
아버지 재산의 일부를 제게 떼어 주세요!'

머리가 번개에 맞은 듯한 충격이 내게 왔습니다.

'설마 이 아이가 집을 완전히 떠나려는 것인가'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평상시 친구를 사귀는 걸 봐도 그다지
신통하지 않은 아이들과 어울리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집을 떠나서는 고생만 할 것이 내겐 환히 보였기 때문입니다.

'얘야, 어딜 가려고 하느냐.
그래 얼마동안이나 가 있으려구'

'그런 것 제발 묻지 좀 마세요.
아버지 간섭에 숨이 막혀 죽겠다구요.
제 친구들 아버지 중에는 그렇게
늘 잔소리를 늘어 놓는 인간은 하나도 없어요.'

성이 나서 악을 질러대는 아들의 말이 왜 서운하지 않았겠습니까.
나도 인간인데 말입니다. 한 대 때려주고도 싶었습니다. 화를
바락 바락 내고도 싶었습니다. 허나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아들
이었기에 차마 심한 소리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내 그런
연약함이 아들을 점점 더 나쁜 길로 가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얘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없겠니?
갑자기 어디를 간단 말이냐'

'저도 이제 클만큼 컸습니다.
그만 좀 간섭하세요.
저도 독립해서 살고 싶어요.
제 인생을 살고 싶단 말이에요.'

하긴 아들의 말이 일리가 있기도 했습니다. 내가 너무 늘
보호막 속에서 자라도록 해서 말은 안했지만 힘이 들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은근히 안됐다는 마음도
들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래, 꼭 네가 먼 여행을 떠나겠다면
애비가 말릴 도리가 없구나.
허나 가끔씩이라도 연락을 해주겠니?
많이 보고 싶을 것 같아.'

'흥! 보고 싶기는.
아버지에게는 형이 있잖아요.
늘 형 칭찬만 하고, 난 야단만 치고.
사람 취급도 해주지 않잖아요.
내게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 준 적이 있어요!
정말 내 친아버지가 맞아요?
나도 날 정말로 날 사랑해주는
아버지가 있었음 좋겠어요.'

이번엔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그 아이가 내게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자주 말썽을 부리던
아이라서 늘 걱정을 했었습니다. 이 아이가 자라서 제대로
살려면 야단을 칠 땐 따금하게 야단을 쳐야된다는 생각에
마음 속으론 늘 눈물을 흘렸지만 아들이 잘 커주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가끔은 매를 들기도 했고, 또한 심한 말도
하고 벌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단 한 번도 화가 난 채로
내 성질을 통제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들을 혼 낸 적은 없습니다.

아들의 말이 맞습니다.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이 어찌 그리
다른지요. 같은 부모에게서 나온 자식들인데 말입니다. 큰 아들은
정말이지 말썽을 피운 적이 거의 없습니다. 늘 내 말에 순종을 하고,
학교에서 공부도 잘 하고, 좋은 친구들을 골라가며 사귀었습니다.
신경을 거의 쓰지 않아도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척척 잘 알아서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큰 놈이 늘 자랑스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맹세코 큰 놈을 작은 놈보다 더 사랑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작은 놈이 늘 내 마음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오늘은 또 어떤 말썽을 부릴까.
내 사랑하는 아들이 좀 착하고
부지런하게 살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살얼음을 숨 죽이며 걷는 심정으로 작은 아들의 장래에
대해 늘 걱정을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
정신적으로 좀 성숙해지고,
사회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태로
내 품에서 떠난다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도 너무나 많은 걱정이 있지만 아들을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집을 떠나 너무나도 많은 고생을 할 것이 뻔하지만 말입니다.
차라리 어려운 상황들을 많이 맞이하게 되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잘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한 편 위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 아들아!
네 말이 맞다. 이제 너도 성인이 되었으니
네 생각대로 하려므나!
허나 늘 네가 보고 싶을 거야.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용서해 다오'

이렇게 말하곤 재산의 큰 부분을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아까울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내 전 재산을 주어도 아까울
것이 없는 막내놈인데 말입니다.

'절 찾을 생각하지 마세요.
이제 다신 집에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요.'

막내놈은 그렇게 말 한 마디를 차갑게 뱉고는 떠나갔습니다.
북풍이 심하게 불고, 눈이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너무나도 생생합니다. 그뒤 이미 여러 해가
지나갔습니다. 하늘에 맹세합니다. 하루도 떠나간 그 아이를
잊은 날이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혼자 걷다가도 아들이
생각났습니다. 일을 하다가도 그랬습니다. 다른 이들과
담소를 나누다가도 아들 생각에 멍하니 있는 나를 친구들은
처량하니 바라봅니다. 산에 올라가면 큰 소리로 아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헛 것이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아들의
모습입니다. 꿈 속에서도 아들이 보입니다.

'아버지, 절 좀 도와주세요!
저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아요.'

꿈 속에 나타나 아들이 내게 이렇게 호소합니다.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아들은 먼 나라에서 내게서 가지고 간
모든 돈을 다 탕진해 버렸습니다. 술집 여자들과 정신 없이
놀아나고, 그 아이가 가진 돈을 보고 달려든 아부에 능한
새로 사귄 친구들과 흥청망청 쓰느라 남아날 돈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들은 그럴싸한 기술을 가진 것도 없었고,
성격이 매우 편협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 직장 생활을 할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도 그 아이에게 괜찮은 직업을 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가지고 있던 돈은 다 떨어지고 갈 데도
마땅히 없는 딱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자존심은 남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버지, 돈 좀 보내주세요!
저 곧 죽을 것 같아요.
밥도 제대로 못먹는 상태에요'

곧 그렇게 울부짖으며 내게 도움을 요청해 올 줄 알았습니다만
단 한 번도 연락을 취해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도 조금의
양심은 남아 있었던 것일까요. 내게 그토록 모진 소리를
하고 유산으로 남겨 주려고 생각한 재산의 대부분을 거의
강제적으로 뺏다 싶이 해 달아나 버린 아들이었습니다만
내 맘 속엔 그 아이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으로 늘
눈물의 강이 흐를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이제 다시 돌아오면 안 되겠니'

늘 그렇게 생각하며 혼자 눈물을 흘리곤 하였습니다. 혹 아들이
돌아오지는 않을까 싶어 시도 때도 없이 동구밖에 나가보곤 했습니다.

'뭘 하세요?'

하고 동네 사람들이 물으면

'아, 산책이 건강에 좋다기에
이렇게 늘 걷고 있는 거라오.'

하고 얼른 대답하곤 했습니다. 그리곤 얼른 돌아서서
눈물을 훔쳐댔습니다. 그럴 때마단 동네 사람들은 못본체
해줍니다. 나만 자식 가진 부모가 아닌데 왜 이토록 아들
생각이 나는 걸까요.

아들은 이제 남의 집 종이 되어 돼지 우리 치는 일을
하며 겨우 입에 풀칠을 해나가고 있다 합니다. 그 젊은 것이
밥도 맘껏 못먹고 주린 배를 채우느라 돼지들도 잘 먹으려
하지 않는 쥐엄열매를 먹어대는 모습을 생각하면 맘이
너무도 찢어지게 아픕니다. 냄새 나는 돼지 우리에서
지쳐 쓰러져 자고 있는 내 아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늘 따스한 밥을 먹으며 편안하게만 살던 그 아들이 말입니다.

'내가 어찌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있겠습니까.
아들이 그토록 고생을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쥐엄열매도 없어서 못 먹어서 삐쩍 말랐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부모가 음식을 목구멍에
제대로 넘길 수 있단 말입니까.'

아들 생각에 입술이 마릅니다. 생각 같으면 당장 가서
데려 오고도 싶습니다. 그 고생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마음이 찢어집니다. 내 집에는 그 아이가 원하는 모든 것이
다 있지만 아들에게 지금은 갈 수가 없습니다. 아들이
스스로 깨닫고 돌아오기를 기다릴 수밖엔 없습니다.
아픔을 알아야,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본인이
느껴야  돌아와도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걱정이 됩니다. 저렇게 밥도 변변이 먹지 못하다가
굶어죽거나 몹쓸 병에 걸려 큰 일이 나지 않을까 늘 마음을
졸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너무나 보호막 속에서만
자라난 아이였기 때문에 이젠 자신의 두 발로 서야만 살아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어야만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도 내 막내 아들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들의 창백하고 여윈 모습을 꿈에서 볼 때마다
정말 미치도록 그 아이가 보고 싶습니다. 너무나도 안돼서
가슴을 찢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허나 꾹
참고 내 아들이 제대로 된 인간이 되기를 소망하며 기다려
보려고 합니다. 꼭 성숙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오기를 바라렵니다.

그렇지만 그 아들이 보고 싶은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저 고개너머로 아들이 지금이라도
'아버지!'하며 오지 않을까 하루에
수십번도 고개 쪽으로 눈길을 주어봅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 너무도 보고 싶습니다!
29 Comments
김형준 2007.03.11 22:13  
  나와 가장 친한 분들 중에는
돼지 농장을 해서 적지 않은 수입을 얻은 분이 있다.
그분 말씀에 의하면 돼지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지저분한 동물이 아니란다.

허나 인간이 돼지우리에서 살면서
늘 돼지 냄새를 맡아야 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돼지밥도 충분히 없어서
늘 허기진 배를 쥐고 사는 신세가 된
부잣집 막내 아들의 처량함,
인간이 되어야 하겠기야 그런 힘든 과정을 그는 겪어야 했다.
김형준 2007.03.12 00:02  
  사랑하는 내 아들아!
얼마나 많은 날을 참고 기다리고 있는지 아느냐?
네가 어서 잘못을 깨닫고 돌아오길 이 애비는 기다리고 있다.
누구보다도 많은 사랑을 주었건만
왜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냐?

아들아, 내 아들아!
어서 돌아오너라. 생명이 다 하기 전에 오너라.
너를 위해서 준비해 놓은 그 많은 것들이
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단다.
다 너의 몫이란다.
비록 이미 많은 것을 주었다만
이 애비는 보다 많은 귀한 것들을 너를 위해 준비해 놓았단다.

어서 돌아오너라, 사랑하는 내 아들아!
정문종 2007.03.12 00:45  
  '돌아온 탕아'에 대한 성경구절 같군요 *^^* 회개하고 돌아오면 버선발로 쫒아 나가 맞아 들일텐데,,, 부모의 '마음' 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느껴야 하겠지요,,, 느낀후 회개하고 돌아와 용서를 구한다면 어떤 부모가 내 치겠습니까?
김경선 2007.03.12 07:17  
  인간돼지우리에서도 꽃을 피우라는 희생의 삶은
교육하면서 내 아들에게는 피하라는 말씀?
아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해줄 수도 다 해주어서도
안되지만, 아들을 숨막히게 하면 아들이 뛰쳐 나갈 수도 있지요.
이종균 2007.03.12 11:53  
  학문이야 노력에 따라 깊을 수도 낮을 수도 있다지만
진리는 체험을 통하여 깨우친다던
 옛 어른들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체험을 통해서 깨닫는 사람은 평범한 보통사람이요,
체험을 하고도 깨닫지 못하면 좀 아둔한 사람이며,
참으로 영특한 사람은 체험이 없이도 미루어 깨닫는 사람 아닐까요?

내 늦동이 막내 하나
마흔이 가까워도 아직 결혼할 생각을 않으니 나름대로야 이유가 있을테지만
아침 저녁 얼굴을 스치는 정도의 짧은 시간에도
아예 대화를 끊고 사는 심정!
작중의 애비 마음 아닐른지요?

김형준 2007.03.12 21:46  
  사랑하는 아들을 옳바른 사람을 만들어
보다 질적인 행복을 누리게 하고자 하는 것이
윗 글에 나오는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아들은 아들의 길이 있고, 아버지의 소망은 또 다르지만
그래도 그것이 하나가 되어서
보다 나은 삶을 아들이 살아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아들이 써 보낸 편지를 좀 있다가 올리겠습니다. (^)^)
물론 fiction입니다. 아는 분들은 다 아시지요.
김형준 2007.03.12 21:48  
  정박사님,
그렇습니다. 탕자의 비유와 유사한 글이지요.
윗글은 그리 크게 공을 들이지 않았습니다만
나중에 보다 더 섬세한 열정을 드려서
아름다운 단편 소설과 드라마로 만들 생각이 있습니다.
김형준 2007.03.12 21:49  
  김경선박사님,
역시 현명한 어머님이시네요.
자유가 자녀의 맘에 느껴져야
부모 자식 간에 너무 큰 충돌이 빚어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자유방임으로 놔두는 경우
그것도 문제이겠지요. 특히 10대에는
부모님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김형준 2007.03.12 21:53  
  이선생님,
소요산 잘 다녀오셨습니까.
선생님께서 그토록 좋아하시는 산행에
함께 참여하지 못해서 매우 미안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합니다.

체험이 없이도 깨달을 수 있다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아, 사랑하는 아드님으로 인해
마음 고생이 크시군요.
제가 처한 상황에서 뭐라고 말씀을 드리기가 힘드네요.
왜 그런지 잘 아시지요? (^__^)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아드님의 삶이 순조로이 풀리시길 소망합니다.
허나 그때까지라도
가장 사랑하는 아드님과
늘 미소와 즐거운 대화가 오고가기를 바랍니다.
결국 시간은 너무도 빨리 가니까요.

보고싶습니다!
김형준 2007.03.13 01:39  
  아들 꽁무니를 쫓아다녔다. 혹시나 천사가 될까 하고
천사는 커녕 짐승도 되지를 못했다. 못난 자식하며
구박을 늘 하자니 내 맘이 너무도 아프다. 왜 아필
자폐가 되었을까. 발달 장애도 아닌데 왜 비사회적인
성품으로 바뀌고 말았는가. 음악가의 집에서 태어난
것이 죄였단 말인가. 의사를 하면 안되었을까. 싫은
것을 자꾸 시키니 정신이 나가버리고 만 것인가.
기대를 적게 하고 자기가 원하는 걸 시킬 걸 이젠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음악을 하겠다면 시켜야 겠다.
비록 나이가 40이 다 되었지만. 아빠도 엄마도
음악인인데 결국 피는 속일 수가 없는 것일까.

아들의 아픔이 오늘도 고스란히 내 가슴에 피멍으로 왔다.
김형준 2007.03.13 14:15  
  왜 젊음의 때에는 성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일까?
아니 죽을 때까지 그러한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왜일까?
분명히 인간은 종교성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예술과 도덕, 철학 등 상위 개념의 추구 대상들을 지니고 있다.

성욕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이미 이생 사람의 경지를 넘어간 존재라고 볼 수 있다.
혹시 말로는 성욕이 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내가 만난 사람들은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성적인 욕망을 지니고 있다.
물론 그러한 욕망이 남아 있기에
보다 더 열정적으로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형준 2007.03.14 11:30  
  돼지가 말했다. '나랑 사는 것이 즐겁지?'
같은 돼지였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인간이 돼지와 동거하는 것을 즐기겠는가.
하늘 위에서 살던 사람이 사다리도 없이, 의지할 것도 없이
끝을 모르고 곤두박질 쳐서는 떨어진 곳이 돼지우리라니 말이다.
그래도 참 다행이다. 돼지가 자길 그토록 환영하니 말이다.
살다 보면 적응도 되겠지만 과연 다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돼지와의 삶에서 만족을 느끼려면 돼지가 되어야 하는데.
후회할 걸 왜 했냐고 잔소리들을 하겠지만 보다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돼지도 되어 보고, 쓰레기도 되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나 편하게만 살다 보면 '나' 밖에 모르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기 때문이다.
김형준 2007.03.14 20:59  
  내 몸속에도 돼지가 살고 있을까? 어떤 이에게서는 개 냄새가
나고, 어떤 사람에게서는 거미줄이 쫙 펼쳐져 있다. 당신은
무엇을 속에 감추고 살고 있는가. 어떤 이 옆에 가기만 하면
너무도 심한 악취가 나서 어찌할 수 없이 멀리 가게 된다.
신선한 풀잎과 같고, 상큼한 꽃내음과 같은 심성을 가진 사람이
봄과 함께 오려나. 봄처녀보다 그토록 착하고 옳바른 이와
동행하던 시절이 그립다.
김형준 2007.03.15 00:06  
  아버지가 보고 싶다. 늘 편할 때는 잘 몰랐는데
몸이 아프고, 마음도 힘들고, 영혼도 자고 있으려니
아버지 생각이 간절하게 난다. 하지만 뭘 해달라고
부탁을 하기가 어렵다. 아버지 말씀에 순종을 하지도 아니하고,
늘 반항만 하던 아들이었다. 모든 것을 부족하지 않게
해주셨는데도 불구하고 늘 불평을 늘어놓곤 하였다.
얼마나 철이 없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였던가.
다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고 싶다. 아버지 품안에 안겨서
따스한 숨결을 느끼고 싶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김형준 2007.03.15 11:20  
  술집 여자들과 놀 때 얼마나 즐거웠던가.
돈은 주머니에 넘쳐나고 있었고, 아무도 내게 간섭할 사람이
더 이상 없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 너무도 자유분방하게
살았었다. 돈이란 것은 쉬이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걸 전혀
깨닫지 못하고 말이다. 여자들은 나를 좋아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돈을 사랑했던 것이다. 사랑은 꼭 사람과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내게서 모든 돈이 떠나 갔을 때 친구고, 여자고 다들
떠나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곤 모든 것이 캄캄해졌다.
더 이상 빛은 보이지 않았고, 모든 것은 적이 되어 늘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러지 말라고 애원을 했지만
아무도, 어느 것도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아무리 반항하고 상처입히는 말을 해도
참고 늘 따스하고 인자하게 날 대해주셨었는데......

이젠 아버지를 볼 수가 없다.
어떻게 나같은 사람을 다시 아들로 받아 들이겠는가.
내가 받을 유산도 다 챙겨서 야멸차게 아버지를
떠나버려 모든 것을 방탕 가운데 탕진해 버린 나인데.

오늘도 아버지가 생각 난다.
내 사랑하는 아버지....
혹시 아버지도 가끔은 날 생각하시는 걸까.....

정말로 미안하다.
김형준 2007.03.16 14:34  
  하늘은 맑고, 구름은 낮게 뭉게 뭉게 피어있다.
봄이 왔고, 만물은 소생하려 한다. 아버지의 집은
지금 어떠한 상태인가.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하고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정말로 강하게 일고 있다. 용기를 내어야 할텐데...
김형준 2007.03.16 15:57  
  큰 아들은 그랬다. 모든 것이 계산적이었다. 자신의 진짜
감정은 다 숨겼다. 큰 아들이니 아버지가 가진 거의
대부분의 재산은 다른 형제들이 아닌 자신에게 돌아
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었다. 아버지가 모르는 곳에서는
별 이상한 미친 짓들을 다 하고 다녔지만 절대로 아버지
귀에는 들어가지 않도록 신경을 각별히 썼다. 영감의
귀에 자신의 잘못된 행동들에 대한 말이 전해지면 혹시라도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신뢰가 무너지고, 그로 인해
유산을 자신이 다 차지할 수가 없을 가능성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버지를 아버지로 진심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주판알을 튕기며 열심히 축재와
명예에만 신경을 썼다. 허나 아버지가 누구신가. 어찌 그런
큰 아들의 사악한 마음을 꿰뚫어보시지 않을까. 한 가족이
잘 되려면 그 가족의 리더가 역할을 잘 해야 한다. 다른
가족들은 전혀 돌보지 않고 자신만 영화롭게 살려고 하는
리더는 그 가족을 폭싹 망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아버지는 과연 누구에게 자신의 대를 잇게 하실까.
김형준 2007.03.16 23:54  
  아버지는 늘 나에게 관심을 가져 주셨다. 잘 알고 있었지만
형에 대한 열등감이 날 반항적인 성격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아버지의 사랑을 늘 받고 있었으면서도, 또한 아버지를 변함
없이 사랑하고 신뢰하고 있었으면서도 정작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아버지를 상처 주는 말들이었다.

다시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면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라고 먼저 말해야겠다. 과연 아빠의 집에 다시 갈 수 있을까.
김형준 2007.03.17 05:56  
  나의 아들들아, 너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느냐.
보다 밝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어떤 공헌을 하고 있느냐.

나의 딸들아, 너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너희 자녀들과 자손들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느냐.

오늘 먹고, 오늘 자고, 오늘 섹스하고, 오늘 싸는
그러다가 내일, 또는 모레 죽을지 모르니 더 신나게 놀자는
냉소적인 환락의 생활을 즐기고 있지는 않느냐.

지혜와 지식을 추구하고,
보다 나은 윤리적 삶을 사는 상위 사회의 건설을 위해
너희는 오늘 땀을 흘리고 있느냐, 피를 흘리고 있느냐
김형준 2007.03.17 14:46  
  세상은 변했다.
인간관계도 변했다.
부자유친, 부부유별 이러한 유교적 덕목들도 시대의
흐름을 타고 상당히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다.
장유유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더 이상 '나이'만을 가지고
윗 사람, 아랫 사람을 따지는 것은 좀 어색하다.
인격체와 인격체로 만나
나의 인격을 존중받기 위해 다른 이의 인격을 존중해
주려고 하는 배려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이다.

조금 나이가 많다고 해서
'내가 나이가 많으니까..'하며
함부로 대했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품위를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특히 술자리에서 개차반이 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은
더욱 더 조심해야 하며 정중한 자세를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평상시에는 용기가 거의 없던 사람이
술의 힘을 빌어 만용을 부리고,
호칭을 함부로 하고,
욕설을 난무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본다.

심신, 인격 수련이 덜 되었기 때문이다.
'장유유서'는 존재하나
자기보다 나이가 더 든 사람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나이가 덜 든 사람이 점점 더 어렵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는 '실수했습니다!'하면 되지만
나이 어린 사람에게는 그것이 거의 통하지 않는
사회로 접어들어가고 있음이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주고,
인격체로서 상대방을 더욱 높이려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시대이다.
김형준 2007.03.19 19:24  
  돼지가 춤을 추고 있다. 황금이 쏟아져 내린다.
아홉달 동안 인간은 돼지의 노예가 될 것이다.
아들도, 딸도 다 복돼지가 탯줄을 잘라 준다.
돈희, 돈기, 돈자, 돈순, 돈남, 돈파....
돼지와 돈은 돈과 돈의 이중창을 부른다.
돼지 멱 따는 소리가 시궁창으로 흐르며.
김형준 2007.03.20 00:04  
  죄가 많았다. 기운이 없었다. 빛을 잃어가고 있다.
쓰러지자 늑대들이 달려들었다. 잡아 먹고 싶어 이를 간다.
다시 일어나려 애써보았지만 기운이 회복되지를 않았다.
'죽으면 죽으리라, 때 되면 가리라!'하는 심정으로
오직 감사의 기도만을 올렸다.

'무엇에든지 감사를 드립니다!'

기운이 회복되었다. 인간의 기운이 아닌
신의 기운 즉, 성령의 기운이 차고 넘치게 되었다.
빛이 다시 꽉 채워지기 시작했고,
신의 능력과 지혜가 몸과 맘의 안팎에 충만하게 되었다.
김형준 2007.03.20 11:23  
  시간은 자석과 같은 힘이 있다. 그 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스스로 탄성을 지녀야 한다. 유연함과 자유로움이 있는 자는
언제든지 자기 스스로의 흡인력을 만들고, 다양한 활동을
이루어 내어 한 곳에 안주해 버리려는 유혹에서 쉬이 벗어날
수 있지만 그러한 능력을 습득하는데 실패하는 자는 늘 머리
뒷부분 한 구석에서 뒤로 끌어 당기려는 시간의 힘의
지배를 받고자 하는 마음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김형준 2007.03.20 23:10  
  평화를 구한다고 그 작은 아이가 말했다.
너무나 작고 애처로와 난 무릎을 꿇었다.
그 아이의 키에 맞추기 위해서 한 행위였다.
아이는 눈물을 흘렸다. 아무도 그러지 않았단다.
눈과 눈을 마주하자 그 아이의 문제가 보였다.
눈 하나가 없다. 검은 동굴만이 그 자리에 있었다.
뺨에는 칼자국이 깊게 파여 있었다.
왼팔은 팔꿈치에서 부터 그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
다리 하나도 거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겨우 자리를 지키는 눈만이 별처럼 반짝였다.
흉터 가득한 뺨이 미소를 지으며 세상을 밝혔다.
이 아이는 평화란 단어를 모른다. 허나 안다.
조용한 시간이 자신에게 찾아오면 좋겠다는 것을.
어른들이 조금만 덜 싸우면 덜 불안하리라는 것을.
평화는 큰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내 맘에서, 네 맘에서 우리의 의지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김형준 2007.03.21 11:29  
  서로의 눈을 보고 알았다. 사랑이 저 멀리에서
손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그 사랑의 싹이 커서 열매를 아름답게 맺게 되리라는 것을.
허나 그것은 불륜의 열매였고, 그것이 크게 되는 날엔
누군가 마음 속에 큰 상처를 입고 슬픔의 꽃이 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끌리는 것을 어찌할 수
없어 그들은 그 사랑이 커 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김형준 2007.03.22 01:15  
  누군가는 간다. 또한 누군가는 가지 않는다.
간다고 해서 더욱 좋을 것도 없고, 가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손해 볼 것도 없다. 대국적인 관점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개인의 삶 또는 한 나라의 운명을 크게 바꿀 수
있는 일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물론 작은 것들이
쌓여서 모르는 사이에 큰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늘 역사는 우리에게 그러한 것이
틀림이 없다는 것을 거듭해서 증명해 보여주고 있다.

가는 사람들은 즐거운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보다 더 좋은 시간들이
후에 마련되기를 바란다.
김형준 2007.03.23 15:31  
  '투자할 돈이 없나 보지?' 하고 누군가가 그에게 물었다.
오만가지 답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는 일단
말을 하지 않았다. 분노가 차오르고 있었다. '너 남아!'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저 넘어가기로 했다.
말로 싸우기 보다는 무언가로 보여주는 것이 그에게는
더욱 중요한 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약함을 자꾸 드러내
보이는 것은 유치한 행동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해 주는 것이야 말로 최대의 복수가 아닐까 싶다.
김형준 2007.03.23 18:12  
  죄인은 영원히 죄인이 될 수 없다.
큰 죄인은 사면 복권되고
작은 죄인은 영원히 죄인으로 남아야 하는가.

힘 있는 자는 몇 천억 내고 면죄받고,
지렁이와 함께 땅에 묻혀 사는 자는
아무리 꿈틀대보았자 부끄러운 이름도 없다.

작은 자를 대변한다고 떠드는 자는
큰 자의 그것을 계속해서 어루만지고 있다.
바로 그런 모습이 인간 세상의 참 정의이란 말인가.
김형준 2007.03.23 18:15  
  충성심에 불타는 자는 출세를 한다.
허나 너무나도 작은 우물 속에 빠져서
더 이상 넓은 물에서 살 수 있는 기술을 분실했다.
기 쓰고 잠시 더 머물다 갈 주군을 어루만지고 있다.
불쌍하다고 하기에는 그것이 세상의 norm이기에
어찌 아무 말도 할 수 업이 내 등만 보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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