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노래(동요와 가곡)을 통한 효(孝)의 실천 음악회(구리시)
노래로 무슨 효를 실천 할 수 있을까?
라는 글을 내마노 자유 게시판에 쓴 경험이 제게는 있습니다.
노래를 배워서 그 배운 것을 부모님 앞에서 혹은 장인어른이나 장모님 앞에서
가족들 앞에서 노래로 행복한 웃음과 기쁨을 선사 한다면 이것이 바로
작은 효의 실천이 아닐까해서 그렇게 쓴 글이었지요.
아버지가 돌아 가신 지 언 23년.
그때 나의 어머니 나이가 43.
바로 지금 나의 나이다.
지금, 나의 여자 동창생들과 그때 그 일을 당하셨을 어머니를 비교하니 그때의 설움과 한숨이 나의 기를 콱 막아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 가시고도 눈물 한방울 자식들 앞에서 흘리시지 않았다.
이 기막힐 사실을 나는 불혹이 되어서 늦게나마 철들어서 알게 되었다.
아들만 4형제를 이 땅에 남겨두시고 그렇게 훌쩍 떠나신 아버지를 위해 흘릴 눈물은 당신에게는 아마도 한방울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자식들과 서울이라는 낯설고 물설은 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어머니는 남의 집 허드렛 일부터 빌딩을 청소하시는 일까지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죄다 경험하셨다.
지난 토요일은 아버지의 추도식으로 온 가족이 다 한자리에 모였다.
집을 나서며 가곡집을 성경책과 함께 챙길 때-아내가 내게 묻는다.
"노래책은 왜?"
나는 "그냥 그런 게 있어!"
11월 내가 무대에서 노래 할 때
어머니 께서 못 오셨기에 내가 이제 나의 어머니를 위해 노래재롱을 떨기 위해 그러는 나의 심산을 아내는 알 수는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 앞에서면 난 그냥 어린 아이다.
코 흘리며 찔찔 눈물 짜던 그런 아들이고 싶다.
내 머리위가 아무리 하얀 서리가와서 곱게 염색하신 당신의 머리보다 더 하얗다손쳐도 그냥 철부지 혹은 개구장이이고 싶다.
노래를 두 곡 부르고나니 7살 8살 어린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자기도 노래 한다고하여 내 아들이 두곡. 조카는 이에 질세라 태권도를 태극 1장에서 5장까지 훌륭히 마친다.
색동옷 입고 노모 앞에서 노모를 웃게 하기위해 춤추며 노래하던 늙은 아들의 효(孝)를.
난들 못할소냐.어제 밤에는 장모님의 목욕을 딸이 집에서 도와 드렸다.장인 어른이 5년 전에 하늘의 부름을 받고나서부터 부쩍 기력이 쇠하여 지셨다.그래서 한 겨울은 시골에 혼자 계시는 것보다 함께 있는 게 좋을성 싶어 직접 장모님을 모시고와서 함께 지내고 있는데........목욕을 한 후 발 맛사지를 크림을 발라 주무르면서 한국가곡집을 또 폈다.
내마노의 가곡집까지 근 한시간을 장모님을 위한 특별 연주회가 어제밤 우리집 거실에서 있었다.
황진이의 '꿈'도 '박연폭포'도 '금강산'도 '석굴암'도 '섬진강'도 '보리밭'도 '비가(슬픈노래)'도 '대관령'도 오직 그녀만을 위해서 연주했다.
그래서 그런 지
오늘 아침 그녀의 얼굴이 환한 사과빛이다.
아침사과를 수저로 갈아 그녀의 입안에 떠 넣어 드릴 때-나의 할머니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나도 모르게 코 끝이 찡해옴을 느꼈다. (2006.12,12)
이런 글을 다시 쓰는 심정으로 이번 공연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내마노 성악가들이 주축이 되었고 전준선 작곡가님과 윤교생선생님이 많은 조언을 아끼시지 않았으며,바리톤 류현열교수님과 소프라노 김영선,테너 박찬홍교수님께서 기꺼이 출연에 응해 주셨습니다.특히 내마노 동호인 베이스 정창식님의 스승이시기도한 테너 김선일 교수님께서 특별 출연을 하십니다.
순수 내마노 성악가들의 열정과 가곡사랑이
동요를 통해 우리 어린이들의 아름다운 정서를 심어 줄 이번 음악회에
내 마음의 노래 회원님들의 많은 성원과 관람을 부탁 드립니다.
감사 합니다.
라는 글을 내마노 자유 게시판에 쓴 경험이 제게는 있습니다.
노래를 배워서 그 배운 것을 부모님 앞에서 혹은 장인어른이나 장모님 앞에서
가족들 앞에서 노래로 행복한 웃음과 기쁨을 선사 한다면 이것이 바로
작은 효의 실천이 아닐까해서 그렇게 쓴 글이었지요.
아버지가 돌아 가신 지 언 23년.
그때 나의 어머니 나이가 43.
바로 지금 나의 나이다.
지금, 나의 여자 동창생들과 그때 그 일을 당하셨을 어머니를 비교하니 그때의 설움과 한숨이 나의 기를 콱 막아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 가시고도 눈물 한방울 자식들 앞에서 흘리시지 않았다.
이 기막힐 사실을 나는 불혹이 되어서 늦게나마 철들어서 알게 되었다.
아들만 4형제를 이 땅에 남겨두시고 그렇게 훌쩍 떠나신 아버지를 위해 흘릴 눈물은 당신에게는 아마도 한방울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자식들과 서울이라는 낯설고 물설은 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어머니는 남의 집 허드렛 일부터 빌딩을 청소하시는 일까지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죄다 경험하셨다.
지난 토요일은 아버지의 추도식으로 온 가족이 다 한자리에 모였다.
집을 나서며 가곡집을 성경책과 함께 챙길 때-아내가 내게 묻는다.
"노래책은 왜?"
나는 "그냥 그런 게 있어!"
11월 내가 무대에서 노래 할 때
어머니 께서 못 오셨기에 내가 이제 나의 어머니를 위해 노래재롱을 떨기 위해 그러는 나의 심산을 아내는 알 수는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 앞에서면 난 그냥 어린 아이다.
코 흘리며 찔찔 눈물 짜던 그런 아들이고 싶다.
내 머리위가 아무리 하얀 서리가와서 곱게 염색하신 당신의 머리보다 더 하얗다손쳐도 그냥 철부지 혹은 개구장이이고 싶다.
노래를 두 곡 부르고나니 7살 8살 어린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자기도 노래 한다고하여 내 아들이 두곡. 조카는 이에 질세라 태권도를 태극 1장에서 5장까지 훌륭히 마친다.
색동옷 입고 노모 앞에서 노모를 웃게 하기위해 춤추며 노래하던 늙은 아들의 효(孝)를.
난들 못할소냐.어제 밤에는 장모님의 목욕을 딸이 집에서 도와 드렸다.장인 어른이 5년 전에 하늘의 부름을 받고나서부터 부쩍 기력이 쇠하여 지셨다.그래서 한 겨울은 시골에 혼자 계시는 것보다 함께 있는 게 좋을성 싶어 직접 장모님을 모시고와서 함께 지내고 있는데........목욕을 한 후 발 맛사지를 크림을 발라 주무르면서 한국가곡집을 또 폈다.
내마노의 가곡집까지 근 한시간을 장모님을 위한 특별 연주회가 어제밤 우리집 거실에서 있었다.
황진이의 '꿈'도 '박연폭포'도 '금강산'도 '석굴암'도 '섬진강'도 '보리밭'도 '비가(슬픈노래)'도 '대관령'도 오직 그녀만을 위해서 연주했다.
그래서 그런 지
오늘 아침 그녀의 얼굴이 환한 사과빛이다.
아침사과를 수저로 갈아 그녀의 입안에 떠 넣어 드릴 때-나의 할머니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나도 모르게 코 끝이 찡해옴을 느꼈다. (2006.12,12)
이런 글을 다시 쓰는 심정으로 이번 공연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내마노 성악가들이 주축이 되었고 전준선 작곡가님과 윤교생선생님이 많은 조언을 아끼시지 않았으며,바리톤 류현열교수님과 소프라노 김영선,테너 박찬홍교수님께서 기꺼이 출연에 응해 주셨습니다.특히 내마노 동호인 베이스 정창식님의 스승이시기도한 테너 김선일 교수님께서 특별 출연을 하십니다.
순수 내마노 성악가들의 열정과 가곡사랑이
동요를 통해 우리 어린이들의 아름다운 정서를 심어 줄 이번 음악회에
내 마음의 노래 회원님들의 많은 성원과 관람을 부탁 드립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