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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영토 - 시도 읽읍시다

모탕 5 1939
세간에 한창 뜨고 있는 "독서권장 프로그램"("하자하자하자"라던가)을 두고 말이 많습니다만
이 TV 프로그램으로 인하여 책읽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던 애들이
서점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는 이상 신드롬을 두고
고무적인 현상으로 파악하는 관측이 지배적인 듯합니다.

TV 프로그램으로 인해 청소년 독서량이 늘어나고
그로 인해 좀 더 성숙한 청소년 문화가 열린다면 이 아니 반가운 일이겠습니까만
문제는 상당수 청소년의 독서 열풍이
진정 독서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아 책을 가까이 하게 된 것이라 보기엔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는 데 있습니다.
뜨고 있는 TV 프로그램에 대해 할 얘기가 없으면 시대에 뒤처지는 것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요행(메스컴을 타는 일)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는 우려와 함께
작금의 베스트셀러만 권장하는 독서 유도 방식이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진단한 전문가의 의견이
변방의 군소리 정도로 여겨지고 있는 데서 저는 비애감을 느낍니다.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는 책 몇 권을 읽지 않았대서
잘못된 독서를 하고 있지는 않냐고 비아냥 거리는 걸 접할 때면
때로 분노감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베스트셀러의 대열에 든 책을
(베스트셀러가 반드시 베스트 북인 것은 아니지요)
몇 백 년 동안 꾸준히 읽혀 확고하게 베스트 북으로 자리잡은 책보다
가치 기준을 높게 책정하는 듯한 프로그램 진행은
얄팍한 상술(TV 프로그램도 상품이지요)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라 여겨보면서...

다들 레이몬드 위버 교수의 얘기를 아시겠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한 분들을 위해 다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한 여대생이 컬럼비아 대학의 레이몬드 위버 교수에게
요즈음 한창 인기 있는 베스트 셀러를 읽었느냐고 물었을 때의 일입니다.
교수가 아직 읽지 않았다고 말하자,
그 여대생은 무척이나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출판된 지 석 달이나 지났으니 빨리 읽어보시라고 하였다지요.
그러자 교수는 그 여학생에게 단테의 <신곡>을 읽었느냐고 물어 보았지요.
여학생이 아직 읽지 않았다고 말하자
"이 책은 나온 지가 600년이 넘었으니 빨리 읽게."라고 했다는 바로 그 이야기..

독서가 시류를 타는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시류에만 묻혀버린다면 고전이란 필요조차 없는 것이겠지요.
새 작가, 새 책은 계속해서 나오고 유행은 끊임없이 만들어질 테니깐...

내가 아는 한 양반이 최근에 읽은 책 몇 구절을 들먹이며 무척 신이 나서 떠들기에
제가 익히 알던 얘기인지라 그 내용이 거의 그대로 나오는 고전 한 권을 소개하였더랬는데
얼마 후에 그 양반이 내게 전화를 했더라구요.
아무래도 젊은 작가가 그 고전을 표절한 듯하다면서...
그러나 전 그게 표절이라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책의 저자는 그 고전을 읽어보았을 것이고
그 고전에서 따온 것이라는 걸 굳이 밝힐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을 테니깐...

서론이 길었네요.
제가 오늘 진짜 하고싶은 얘기는 소설가의 대부분이 시인으로 등단했다가
시는 포기하고 소설을 쓴다는 그저 그렇고 그런 얘기입니다.
그들의 시에 대한 열정이 식어서라거나
시가 문학적으로 뒤떨어지는 양식이어서가 아니라
시를 지어서는 밥 먹고살기 힘든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시에서 소설로 전향한 일군의 작가들을 볼 때면
글을 쓰는 이나 책을 만드는 이나 책을 파는 이들이
결국에는 수요자(고객)의 요구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이 시대의 준엄한 논리, 그에 수반하여 점점 더 왜소화되어 가는 시인의 영토가
그저 안타깝게 여겨질 따름입니다.

시는 시대로 소설이나 여타 글과 마찬가지로 분명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것임에도
시집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일은 점점 더 줄어들고(아예 없다시피 하지요)
대학에는 시를 배우려고 하는 학생이 해마다 줄어들고
시를 배웠다는 이들마저 소설로 시나리오로 발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나마 인터넷에서 읽을 거리로 시를 요긴하게 취급하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시집이 팔리지 않는다면 좋은 시는 지어지기 어렵고 종국에는 시도 자취를 감추고 말겠지요.

시인은 늘 가난했지만 지금처럼 그리 서럽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내 시를 사랑하듯이 내 삶도 사랑해 주리라고 여기는, 그런 꿈속에서 사는 시인이 아직껏 있어
우리는 시를 인터넷에서 무시로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인들의 분노가 폭발한다면 "소리바다 ' 사태와 같은 일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를 양해하는 그들 시인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마음으로, 이 가을에
베스트셀러는 아니래도 자기에게 맞는 시집 한 권쯤은 사서 읽도록 합시다.
시인의 영토가 점점 왜소화되어 마침내 시가 이 땅에서 사라지기 전에...
5 Comments
박금애 2002.09.08 10:51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도 아마 모탕님의 생각에 동감 할 것같습니다.

"내시를 사랑하듯이 내 삶도 사랑해 주리라고 여기는 그런 꿈속에서 사는 시인이 아직껏 있어-----."
그 꿈속을  가볼 수 있는 시를 찾아 서점에 가야겠습니다.

모탕님!
잘읽었습니다.
 




규방아씨(민수욱) 2002.09.08 11:11  
  책이라는거
시라는거
많은 분들이 좋다해서 좋은 책이기 보다는
내가 읽어서 좋다는 느낌을 받았을때
그 책을 읽음으로 행복을 느꼈을때...
정말 좋은 책이 아닐까 하네요...


ㅎㅎ
저 같은 경우
어려운 책은 모르거든요..
그저 아름답고 맑은 동심의 이야기가 나오는
서정적인 책이 좋더라구요...
평화 2002.09.08 22:49  
  모탕님! 시 예찬론 잘 읽었습니다.
당연히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
제가 시도 음악처럼 사죽을 못써거던요.
시도 음악처럼 사람의 영혼을 맑게 해주고
지혜를 주는 힘을 지녔다고 저는 생각한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올가을엔 음악만큼이나 시도 읽어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래봅니다.
모탕님! 늘 평화롭고 건강하십시요.


2002.09.09 00:33  
  요즘 인터넷을 보급으로 가벼운 시들이 내용과는 엇각을 이루는 영상에 담겨 띄워지고 있는 것을 자주 봅니다.

  시의 대중화 차원에서 탓할 수만은 없으나 시를 제대로 읽으려면 본인이 직접시집을 사서 읽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는 분들과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편히, 자주, 많이, 그리고 비용 안들이고 거저 읽는 것보다 한권이라도 사서 값을 치르고 옳게 읽는 독서 문화.
  세계 축구 4강에 발맞춰  경제 4강 말들하는데 우리가 문화 4강에 들려면 우선 시읽는 독자가 늘어야 하고 그것도 시집을 사서 읽는고정 수효가 확보되지  않으면 어림없겠지요.
 

       
 
평화 2002.09.10 16:14  
  모탕님 말씀에 한말씀 덧붙여....

"시가 위안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시는 마음을 채우면서 얻어지는것이 아니라 비우면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인가?
그것은 곧 마음을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멀리 하는것, 다시 말하면 마음속의 평정을 유지하면서 끝없이 사물의 본질에 다가서는 일 그 자체라고 보면 될것이다.
또한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동심으로 돌아가는 일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시인은 끝없이 유리 마음을 닮고자 하는 자들이다. 맑은 유리창에는 밤사이 별이 와 머무르고, 때론 먼 바다가 남실남실 떠오르기도 하며, 티 없이 해맑은 소년 소녀의 눈망울이 멈춰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바쁜 일상 가운데 가끔 쳐다보는 하늘의 한가로운 구름 한 조각이 우리의 삶에 한 가닥 위안일 수 있듯이, 이따금 시는 우리의 고달픈 영혼을 달래주는 청량제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상이 시인이며 부산교대 교수이신 이해응님의 글을 읽고 요약한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모든 예술은 다같은 목적으로 인간 수양의 한 방편이 될 수 있다라는 말도 덧붙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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