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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 홈 콘서트에 다녀와서

鄭宇東 3 884
지난 11월 11일 일요일
제3회 가곡의 날 선포 기념일을 맞아 종로구 홍파동 소재
난파 홍영후선생의 옛집에서 기념식을 겸한 난파홈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생존해 계신 음악가중 최고령인 김성태선생은 거동이 불편하셔서 참석 못하고
우리 음악계의 원로인 김동진선생 구두회선생 최영섭선생을 모신 자리에
미술계의 기린-행운아 김흥수 화백과
시단-출판계의 강민 시인이 초대된 유명 음악가 연주가 문학가 시인 화가등
문화-예술 각계 인사들이 망라된 총집결장이었습니다.

종로구에서 난파선생 구가옥을 사들이고 리모델링하여
난파기념관에서 장차는 난파공원으로 가꾸어 가는 구청장님과
이 기념관시설을 수탁관리하는 전KBS PD 이선생님과
기념사업을 크게 도우고 있는 작곡가 한지영님과 시인 한여선님께와
난파선생이 작곡한 작품으로 연주해 준
성악가 바리톤 김관동님 소프라노 최금숙님 내외분과
하프와 바이올린을 연주한 현역 국회의원 사모님 연주가들과
소리가 곱고 행동이 귀여운 어린이 합창단등 출연인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蘭坡 洪永厚선생은 1898년 경기도 화성 태생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이며 평론가이자 교향악단의
지휘자가 되었고 또 음악전문지의 발행인이면서 단편도 쓴 문학가였습니다.
김형준선생의 시에 작곡한 봉선화는 서양식 우리가곡의 효시가 되었고
또 어린이를을 위한 수많은 주옥같은 동요를 작곡하였습니다.

난파선생과 시인과 작곡가의 명콤비를 이룬
노산 이은상선생은 이날 보여준 어느 자료영상인터뷰에서
홍난파선생은 천재이므로 천재의 특권으로
친일의 굴레와 오명에서 무조건 면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나라를 빼았기고 배달민족 전체가 수모를 받은 질곡의 일제치하에서
개개인 각각인 누구라도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강요된 삶을 살아야 했던
그 시대의 아픔을 이해하고 자잘한 흠쯤은 보듬어 안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의 작은 새머리 짧은 생각으로는
공산독재치하의 음악인은 물론 짜르의 폭정시대에 작곡한
러시아의 음악가는 외면 못하고 아니 좋아하고 심지어 편애까지 하면서
타의에 의하여 납북되고 또 이념에 충실하여 월북한 음악인과
망국수난 일제치하의 불가항력적이었던 음악가만 힐난-비판하는 것은
형평-공평한 처사가 결코 아니다고 생각합니다.

음악회의 끝 순서로
이원수선생의 시에 작곡한 고향의 봄을 제창하면서
난파선생께서 친일 굴레의 긴 겨울을 벗어 털고
선생뿐만 아니라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음악가 문인 예술가들에게도
해빙 해방의 봄이 어서 오기를 비는 마음 간절합니다.




 ㅡ 누가 날더러 사이트에서 "떴다" 카데예 ㅡ

요즘 유행세태어에 [지공거사] 라는 말이 있습니다.
만 65세가 되어 별 볼 일도 없는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거(지같은) 사(람이)
이라고 풀이합니다.
하마 이 나이도 지나고 최남선 선생의 명호 육땅(화투놀이 66)에 이르러서
쉬고 있는 친구들과 달리 우리사이트에서 삶의 활력소를 얻는데서
스스로도 만족스럽고 또 남들도 그렇게 좋게 보아주니 즐겁기도 합니다.

음악연주회나 문화세미나등에 참석 할라치면
시인의 모임에 가면 낯이 서니까 무슨 작곡가인가 질문받고
음악인 작곡가의 모임에 가면 무슨 작가 시인인가 질문받고
교수님들을 만나면 어느 (대)학교에 나가느냐하는 질문을 흔히 받습니다.

오늘도 이 행사 참석자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시문학 분야에서 한여선시인이 소개하니 내가 무슨 시인이라도 된 듯 하였고
음악분야에서는 신귀복선생이 또 소개하니 내가 무슨 작곡가라도 된듯한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나중에 삼성동에서 누구를 만나니
동석하였던 내마음의노래합창단 윤교생지휘자가
빛나는 모임에 선택초대 받아 참석했다는 은근한 자랑에
나도 초대받아 참석하였고 더구나 그런 자리에서 두번이나 소개 받았으니
누구 말마따나 나야말로 우리사이트에서 뜬 한 사람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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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바다박원자 2007.11.15 10:16  
예술가들은 오직 그 분의 독창적인 예술혼을
 어떻게 표현했는지만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우동 선생님의 글에 공감합니다.

 그리고 ...
선생님께서 뜨셨다는 것은 우리 가곡이 <내 마음의 노래>가 떴다는 말일 것입니다.
앞으로 더욱 뜨셔야제이  ㅎㅎ
_()_()_()_
규방아씨민수욱 2007.11.15 23:28  
감동의 밤이 되셨겠군요...^^
이영례 2007.11.16 11:47  
좋은 소식, 좋은 글들 올려주시기에 어떤 분이신가 궁금하였는데...
이제 궁금증 해소!!
열정과 많은 시간을 우리 가곡 발전에 쏟아주시니 대단히 감사하고 존경스럽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욱 더욱 뜨심에 부족함이 없으실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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