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다 부른 노래, 나의 시낭송
못 다 부른 노래, 나의 시낭송
권선옥(sun)
나에게 있어서는 ' 시낭송'은 '시 낭송'이라기 보다는 '시 낭독'이라고 하는 편이 바른 표현일 듯하다. 왜냐하면 일상에 쫓기다보니 시를 외우는 성의도 부족하고, 시 낭송을 배워 본 적도 없다. 오히려 그 꾸밈을 싫어하여 그냥 읽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처음 김경선 원장 선생님의 제1회 '내 마음의 노래 테마여행' (섬진강 벚꽂의 노래 ) 행사 발표의 글을 읽으면서 마음은 벌써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진주를 지나 하동에 이르는 길을 따라 고속도로로 운전을 해 가다보면 시와 함께 떠오르는사람들이 있다.
한 사람은 임긍수 작곡 <아득히 먼 날 먼 곳에>의 모티브가 된 외국영화 <허리케인>을 보여 준 대학 동창생이고, 한 사람은 '이동할의 음악 정원' 정기모임에서 처음 만난 '푸르른 날'님이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별 볼일 없는 나에게 생일 선물을 사 준 사람들이다.
<아득히 먼 날 먼 곳에>의 모티브를 제공한 대학 동창생은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했었고, 고교 때 IQ 검사에서 전교 1등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서울까지 가서 재수를 했지만 낙방해서 우리 대학에 온 삐딱한 멋쟁이였다. 아버지께서는 진주 근처의 의사가 없는 문산보건소의 소장을 하신다고 했다.
대학 2학년 때는 '아모레 타미나 콤팩트'를, 대학 3학년 때는 '표범무뉘가 있는 갈색 스카프'를, 대학 4학년 때는 장식품 인력거꾼'을 선물했다.
지금 그 사람 그 얼굴은 잊혀졌는데, 3년 내리 보낸 <선물 목록>만은 20 여 년이 지났는데도 또렷이 기억된다. 그러고 보면 나도 '유심론적인' 인간형이라기보다는 '유물론적인' 속물형 인간임에 틀림이 없다.
또 한 사람은 2005년 10월 '이동할의 음악 정원' 제2회 정기 모임이 동대구역 부근의 '제이스호텔'에서 열린다는 메일을 받았다. 나는 그 카페에 들어가서 글을 쓴 기억도 없다. 무지 심심했던 토요일 오후,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호기심마저 생겼다. 그리고 아주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행사이므로, 유흥비로 회비 3만원쯤은 지출해도 괜찮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지금은 알고 지낸다고 할 수 있는 수산나 조화복님과 지금 다음 카페 '이수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자주 들어 오시어 글을 남기시는 송도전(송도의 전흥수)님을 처음 만났다.
창원에서 온 회원 '푸르른날'님이 후원금도 두둑하게 내는 눈치였다. 속으로 '저런 인간형은 돈 좀 있다고 후원금 내고 으스대는 과시형이겠지...?' 나와는 상관관계가 아주 멀리 떨어진.
정식행사가 끝나고 2차로 수성못을 가는데, 일본에서 왔다는 무지 재미있는 회원님들을 비롯하여 미인들 몇 명이 우루루루 이왕이면 벤츠를 타 보자면서 몰려들 갔다. 속으로 '하이구...쯔~쯔. 속물들 하고는...... . '하면서, 점잖게 남해에서 왔다는 영어학원 원장과 동승하여 대구의 어떤 여성회원님의 소나타를 탔다.
수성못가의 '청송얼음막걸리'에서 파전과 무침 등을 안주로 술을 한 잔씩 걸쳐 가는 과정에서 할리 회장이 회비 2만원씩 더 걷자고 하는데, 또 예의 그 돈 많아 보이는 인간이 '자기가 내면 안 되냐'고 한다. 그러자 아무래도 운영자는 회원이 돈 자꾸 내면서 운영자보다도 인기 올라가는 것이 싫은지 어떤지, 회비를 걷는 쪽으로 몰아갔다.
그런데 나의 그 '안티'가 무너진 것은 노래방에서이다.
노래방에 들어서자, 일착으로 마이크를 잡더니만, 내가 좋아하는 가곡 <님이 오시는지>를 아주 멋들어지게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 이유로 그전에는 말도 않다가, 취재차 홍콩서 온 여기자 외 경남 팀 몇 명을 태우고 전국 체전이 열리는 울산으로 먼저 출발하려고 운전석에 앉아서 내다보는 그에게
"See You Later~~!"라고 술김에 혀가 꼬부라졌는지 영어로 말했고, 다시 '운전 조심해서 잘 내려 가라'는 등등의 인사를 주고 받았다.
그 후 우리 아들 수능 시험일 전날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시인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든 무엇이든 생일 선물을 받거나 축하 전화를 받거나 하는 일이 싫어서 지워 버렸지만, 나의 홈페이지에 공개된 생일 이틀 전이었다. 학교에서 퇴근도 하기 전에 전화가 와서 대구에 아는 사람 병문안을 왔던 길에 꼭 만나고 가겠다고 했다. 미리 생일을 축하한다면서 사겠다는 저녁식사를 하면서, 바로 다음 날부터 지리산에 3년 정도 갈리는 쉼터 공사에 들어간다고 했다. 내가 요즘도 들고 다니는 비싸 보이는 핸드백을 생일 선물로 받았고, 나는 꽤나 여러 장의 CD와 책을 보냈다.
닉 네임으로 인하여 미당 서정주의 '푸르른 날' 시가 생각 난다고 하자, 자신에겐 미당 서정주의 여러 편의 시보다 내가 쓴 졸시 한 편이 더 가치 있다는 뻔한 거짓말 시리즈에 그 때는 그냥 웃어 넘겼다.
두 달 후, 겨울 방학 때 마산 가곡교실을 가고 오는 길에서 이렇게 먼 길을 벤츠를 타고 왔으니, 휘발유값 무지 들었겠다는 속물적인 계산 뒤에는 그래도 짠한 작은 감동이 있었다. 그렇다고 길고 오래 만난 인간관계도 아니니 생각나는 정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푸르른 날... 맑는 날...해 ...그늘...' 그래서 누군가를 위해 시 한 편 정도는 써 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해의 꽃>은 그렇게 쉽게 쓰여진 시이다.
- 사람과의 만남에는 길어서 아름다운 만남이 있고, 짧았으므로 아름다워지는 만남이 있다.
일에서 벗어나 쉬기 위해서 마련하는 지리산 쉼터 공사에 오히려 구속받는 아이러니컬한 심정을 전하면서 쉼터가 완성되면 그곳의 친구들 맴버로 초대할 터이니 이수인 선생님 가족도 모시고 오라고 했다. 그 쉼터가 마음이 따뜻한 이들로 채워지기를 바라면서 공사를 하고, 맴버들을 구색에 맞게 챙기는 것은 그 친구의 미래이지, 나의 일과 나의 터전이 있는 나의 미래는 아니다. 때문에 나는 그가 공사하고 있다는 지리산 가까운 곳에서 하는 행사라, 생각은 하지만 알리지는 않는다. -
그렇게 되어서 김경선 원장님께 처음 시 낭송을 <아득히 먼 날 먼 곳에>와 <해의 꽃>으로 하겠다고 말씀 드렸더니, '시간 관계상 한 곡(?)만 하라'고 하셨다. 속으로 '시 두 편 다 낭송해 봤자 노래 한 곡 부르는 시간의 1/2인 2분밖에 안 걸릴 텐데?..... 그리고 월매나 (얼마나)음악에 열중하셨으면 시 한 편이 아닌 한 곡이라 하셨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웃으면서 <해의 꽃>과 <아침에>라는 시 두 편을 보내면서, 어느 것으로 할까요 저는 분부 대로 하겠습니다 했더니 공지글에 <해의 꽃>으로 올려 놓으셨다가 나중에 <아침의 노래>를 덧붙이셨다. 제목이 <아침에>인데 하는 생각도 잠시 원래의 시 제목인 <아침에>보다는 <아침의 노래>가 더 어울릴 것 같아서 아예 시 제목을 바꾸어 버렸다.
해의 꽃
권선옥(sun)
그늘에서 자라는 풀은
등 뒤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보고
그늘에서 자라는 풀은
붉은 노을을 보진 못 해도
해가 지는 것을 알고
햇빛을 보지 못 해도
햇살을 받지 못 해도
보고픈 마음만큼이나
긴 그리움으로 자라납니다.
보지 못 한 햇빛인 양
받지 못 한 햇살인 양
하늘빛 당신을 닮은 해의 꽃을 피웁니다.
하늘빛 당신의 향기가 나는 해의 꽃을
곱게 고웁게 피웁니다.
아침의 노래
권선옥(sun)
십이월의 달이
산마루를 넘으며 죽어갈 때
지나간 세기가
덩그러니 떨구고 간 여인은
이젠 잠을 청하지 않으리라.
가슴 속의 아우성이
쉽게 얼어 버린 침묵처럼
이젠 기웃거리지 않는다.
그러나
울음을 참고 있는
익모초의 짙은 향내가
한 개 한 개
잃어버린 생명들을 토해 낸다.
별빛이 사라지면
감추어진 예리한 눈이
은빛 나래를 펴듯
하늘색 침묵이 걷히고
상아빛 베일 아래서
어린 마음을 소유한 님프의 숨결은
포물선을 그리며 하루의 좌표를 설정한다.
또
한 포기의 뿌리를 내리렴.
메마른 강가에서
윤회는 강물처럼 흐르고
그들의 대화는 서리로 몸을 씻고
되돌아보니
아직도 뜬 눈으로 흐르는 강물
여기 살아 있어
이제 밤은 다시 돌아앉고
새벽이 울린다.
긍정의 노래를 부르며
징검다리 건너는 아이처럼
아침을 걷는다.
<2004. 4. 16.>
권선옥(sun)
나에게 있어서는 ' 시낭송'은 '시 낭송'이라기 보다는 '시 낭독'이라고 하는 편이 바른 표현일 듯하다. 왜냐하면 일상에 쫓기다보니 시를 외우는 성의도 부족하고, 시 낭송을 배워 본 적도 없다. 오히려 그 꾸밈을 싫어하여 그냥 읽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처음 김경선 원장 선생님의 제1회 '내 마음의 노래 테마여행' (섬진강 벚꽂의 노래 ) 행사 발표의 글을 읽으면서 마음은 벌써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진주를 지나 하동에 이르는 길을 따라 고속도로로 운전을 해 가다보면 시와 함께 떠오르는사람들이 있다.
한 사람은 임긍수 작곡 <아득히 먼 날 먼 곳에>의 모티브가 된 외국영화 <허리케인>을 보여 준 대학 동창생이고, 한 사람은 '이동할의 음악 정원' 정기모임에서 처음 만난 '푸르른 날'님이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별 볼일 없는 나에게 생일 선물을 사 준 사람들이다.
<아득히 먼 날 먼 곳에>의 모티브를 제공한 대학 동창생은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했었고, 고교 때 IQ 검사에서 전교 1등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서울까지 가서 재수를 했지만 낙방해서 우리 대학에 온 삐딱한 멋쟁이였다. 아버지께서는 진주 근처의 의사가 없는 문산보건소의 소장을 하신다고 했다.
대학 2학년 때는 '아모레 타미나 콤팩트'를, 대학 3학년 때는 '표범무뉘가 있는 갈색 스카프'를, 대학 4학년 때는 장식품 인력거꾼'을 선물했다.
지금 그 사람 그 얼굴은 잊혀졌는데, 3년 내리 보낸 <선물 목록>만은 20 여 년이 지났는데도 또렷이 기억된다. 그러고 보면 나도 '유심론적인' 인간형이라기보다는 '유물론적인' 속물형 인간임에 틀림이 없다.
또 한 사람은 2005년 10월 '이동할의 음악 정원' 제2회 정기 모임이 동대구역 부근의 '제이스호텔'에서 열린다는 메일을 받았다. 나는 그 카페에 들어가서 글을 쓴 기억도 없다. 무지 심심했던 토요일 오후,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호기심마저 생겼다. 그리고 아주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행사이므로, 유흥비로 회비 3만원쯤은 지출해도 괜찮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지금은 알고 지낸다고 할 수 있는 수산나 조화복님과 지금 다음 카페 '이수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자주 들어 오시어 글을 남기시는 송도전(송도의 전흥수)님을 처음 만났다.
창원에서 온 회원 '푸르른날'님이 후원금도 두둑하게 내는 눈치였다. 속으로 '저런 인간형은 돈 좀 있다고 후원금 내고 으스대는 과시형이겠지...?' 나와는 상관관계가 아주 멀리 떨어진.
정식행사가 끝나고 2차로 수성못을 가는데, 일본에서 왔다는 무지 재미있는 회원님들을 비롯하여 미인들 몇 명이 우루루루 이왕이면 벤츠를 타 보자면서 몰려들 갔다. 속으로 '하이구...쯔~쯔. 속물들 하고는...... . '하면서, 점잖게 남해에서 왔다는 영어학원 원장과 동승하여 대구의 어떤 여성회원님의 소나타를 탔다.
수성못가의 '청송얼음막걸리'에서 파전과 무침 등을 안주로 술을 한 잔씩 걸쳐 가는 과정에서 할리 회장이 회비 2만원씩 더 걷자고 하는데, 또 예의 그 돈 많아 보이는 인간이 '자기가 내면 안 되냐'고 한다. 그러자 아무래도 운영자는 회원이 돈 자꾸 내면서 운영자보다도 인기 올라가는 것이 싫은지 어떤지, 회비를 걷는 쪽으로 몰아갔다.
그런데 나의 그 '안티'가 무너진 것은 노래방에서이다.
노래방에 들어서자, 일착으로 마이크를 잡더니만, 내가 좋아하는 가곡 <님이 오시는지>를 아주 멋들어지게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 이유로 그전에는 말도 않다가, 취재차 홍콩서 온 여기자 외 경남 팀 몇 명을 태우고 전국 체전이 열리는 울산으로 먼저 출발하려고 운전석에 앉아서 내다보는 그에게
"See You Later~~!"라고 술김에 혀가 꼬부라졌는지 영어로 말했고, 다시 '운전 조심해서 잘 내려 가라'는 등등의 인사를 주고 받았다.
그 후 우리 아들 수능 시험일 전날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시인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든 무엇이든 생일 선물을 받거나 축하 전화를 받거나 하는 일이 싫어서 지워 버렸지만, 나의 홈페이지에 공개된 생일 이틀 전이었다. 학교에서 퇴근도 하기 전에 전화가 와서 대구에 아는 사람 병문안을 왔던 길에 꼭 만나고 가겠다고 했다. 미리 생일을 축하한다면서 사겠다는 저녁식사를 하면서, 바로 다음 날부터 지리산에 3년 정도 갈리는 쉼터 공사에 들어간다고 했다. 내가 요즘도 들고 다니는 비싸 보이는 핸드백을 생일 선물로 받았고, 나는 꽤나 여러 장의 CD와 책을 보냈다.
닉 네임으로 인하여 미당 서정주의 '푸르른 날' 시가 생각 난다고 하자, 자신에겐 미당 서정주의 여러 편의 시보다 내가 쓴 졸시 한 편이 더 가치 있다는 뻔한 거짓말 시리즈에 그 때는 그냥 웃어 넘겼다.
두 달 후, 겨울 방학 때 마산 가곡교실을 가고 오는 길에서 이렇게 먼 길을 벤츠를 타고 왔으니, 휘발유값 무지 들었겠다는 속물적인 계산 뒤에는 그래도 짠한 작은 감동이 있었다. 그렇다고 길고 오래 만난 인간관계도 아니니 생각나는 정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푸르른 날... 맑는 날...해 ...그늘...' 그래서 누군가를 위해 시 한 편 정도는 써 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해의 꽃>은 그렇게 쉽게 쓰여진 시이다.
- 사람과의 만남에는 길어서 아름다운 만남이 있고, 짧았으므로 아름다워지는 만남이 있다.
일에서 벗어나 쉬기 위해서 마련하는 지리산 쉼터 공사에 오히려 구속받는 아이러니컬한 심정을 전하면서 쉼터가 완성되면 그곳의 친구들 맴버로 초대할 터이니 이수인 선생님 가족도 모시고 오라고 했다. 그 쉼터가 마음이 따뜻한 이들로 채워지기를 바라면서 공사를 하고, 맴버들을 구색에 맞게 챙기는 것은 그 친구의 미래이지, 나의 일과 나의 터전이 있는 나의 미래는 아니다. 때문에 나는 그가 공사하고 있다는 지리산 가까운 곳에서 하는 행사라, 생각은 하지만 알리지는 않는다. -
그렇게 되어서 김경선 원장님께 처음 시 낭송을 <아득히 먼 날 먼 곳에>와 <해의 꽃>으로 하겠다고 말씀 드렸더니, '시간 관계상 한 곡(?)만 하라'고 하셨다. 속으로 '시 두 편 다 낭송해 봤자 노래 한 곡 부르는 시간의 1/2인 2분밖에 안 걸릴 텐데?..... 그리고 월매나 (얼마나)음악에 열중하셨으면 시 한 편이 아닌 한 곡이라 하셨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웃으면서 <해의 꽃>과 <아침에>라는 시 두 편을 보내면서, 어느 것으로 할까요 저는 분부 대로 하겠습니다 했더니 공지글에 <해의 꽃>으로 올려 놓으셨다가 나중에 <아침의 노래>를 덧붙이셨다. 제목이 <아침에>인데 하는 생각도 잠시 원래의 시 제목인 <아침에>보다는 <아침의 노래>가 더 어울릴 것 같아서 아예 시 제목을 바꾸어 버렸다.
해의 꽃
권선옥(sun)
그늘에서 자라는 풀은
등 뒤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보고
그늘에서 자라는 풀은
붉은 노을을 보진 못 해도
해가 지는 것을 알고
햇빛을 보지 못 해도
햇살을 받지 못 해도
보고픈 마음만큼이나
긴 그리움으로 자라납니다.
보지 못 한 햇빛인 양
받지 못 한 햇살인 양
하늘빛 당신을 닮은 해의 꽃을 피웁니다.
하늘빛 당신의 향기가 나는 해의 꽃을
곱게 고웁게 피웁니다.
아침의 노래
권선옥(sun)
십이월의 달이
산마루를 넘으며 죽어갈 때
지나간 세기가
덩그러니 떨구고 간 여인은
이젠 잠을 청하지 않으리라.
가슴 속의 아우성이
쉽게 얼어 버린 침묵처럼
이젠 기웃거리지 않는다.
그러나
울음을 참고 있는
익모초의 짙은 향내가
한 개 한 개
잃어버린 생명들을 토해 낸다.
별빛이 사라지면
감추어진 예리한 눈이
은빛 나래를 펴듯
하늘색 침묵이 걷히고
상아빛 베일 아래서
어린 마음을 소유한 님프의 숨결은
포물선을 그리며 하루의 좌표를 설정한다.
또
한 포기의 뿌리를 내리렴.
메마른 강가에서
윤회는 강물처럼 흐르고
그들의 대화는 서리로 몸을 씻고
되돌아보니
아직도 뜬 눈으로 흐르는 강물
여기 살아 있어
이제 밤은 다시 돌아앉고
새벽이 울린다.
긍정의 노래를 부르며
징검다리 건너는 아이처럼
아침을 걷는다.
<2004.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