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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별헤아림 16 1570
아들의 편지
권선옥(sun)

며칠 전에 군대에 간 아들과는 별로 떨어져 본 기억이 없다. 고2 겨울방학 때, 앞산일신학원에 합숙 보낸 것 외에는. 그리고 2006년 12월 12일 군대 훈련소엘 간다고 동대구역 근처의 직업훈련원 앞까지 태워다 주었다. 동환이라고 여자 아이처럼 예쁘고 동안(童顔)인 친구와 함께 동반입대를 한다니, 혼자 떠나는 뒷모습이 여운처럼 남지 않으니 다행이란 생각도 했었다. 그래서 금호고속이라 씌여진 전세 고속버스를 타고 생전 가 본 적이 없는 낯선 곳으로 더나는 아들을 별로 마음이 아픈 것도 모르고 그렇게 보냈다.

군대에 아들을 보낸 대부분의 엄마들이 보낼 때는 어디 다니려 보내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다가는, 입던 옷을 부대에서 집으로 보내 오면 그 때서야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불며 통곡을 한다는얘길 들었었다.
화요일에 떠나 보냈었는데, 오늘 금요일 아침 출근길에 전화를 받았다. 우체국이라면서 자제분 소포를 경비실에 맡겨 두겠으니, 찾아가란다. 퇴근해서 모임 두 군데 거쳐서 밤10시 가까운 시간에 집으로 들어왔다. 통로 입구에서 어제 시험이 끝난 딸과 딸 친구가 딸의 생일이라서 함께 논다면서 들어서고 있었다.
책이 든 보조가방과 우유가 든 장바구니를 들여다 놓고선 경비실로 다시 가서 아들의 옷이 든 작은 박스를 찾아서 집으로 올라왔다.

박스의 측면에 적힌 글씨를 읽어 보니, 보낸 곳이 우편 번호 200-829 <강원도 춘천시 심북면 용산리 사서함 114-29>이다. 열어보니, 입고 갔던 옷과 함께 운동화와 속옷은 따로 투명 비닐에 넣어서 보내 왔다. 한 마디로 군대에서 정리정돈하는 것을 배운 티가 조금은 나는 듯했다. 옷 속에 혹시 편지라도 들어 있나 해서 박스를 열어 젖히고 찾으려다 보니, 박스 윗부분 안쪽에 검정색으로 씌여진 글씨가 눈에 띄었다.

To 권여사
난 잘 지낸다. 그러니 우리 권여사도 잘 지내고.
군대는 많이 힘든 곳이야. 그러니 먹는 거라도
잘 먹어야 해. 내가 전화를 하면 매달 돈을
조금 보내 주면 되(돼). 아마도 2주 후면 전화가 가능해.
모르는 번호는 받도록 해. 옷들은 다 빨아 주고
내 방은 백일 휴가 때 치울꺼니 걱정말고


남들은 옷 보내 오면 운다고 했는데, 우리는 여자 넷이서 깔깔 웃었다.
아들의 톤으로 읽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웃긴다*였다.
그 중에서도 <군대는 많이 힘든 곳이야>라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
명언처럼 가슴에 와 닿는다.

<2006. 12. 15.>
16 Comments
김경선 2006.12.16 09:34  
  권여사,권선생!
버얼써 군대 간 아들에게 편지 받을 나이가
되었나요?
또 지어낸 얘긴가 했는데...
지금은 웃지만 언젠가 혼자 울고 싶을 때가 있을 낍니다.
바다 2006.12.16 10:02  
  권여사!
ㅎㅎ
아들이 정말 유우머가 넘치는구려.

우리 아들 군에 입대한 날
우리는 연무대까지 가족이 함께 갔어요
늦은 나이에 입대하니 친구들도 서울에서 내려오고..

입영장병들은 연병장에 집합!!!
안내방송이 떨어지자 우리 아들 스탠드에서 그대로
제 아버지께 넙죽 큰절을 하며

아빠! 잘 다녀오겠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오네요.
그 날 얼마나 울어버렸는지.
그 다음에 옷이 왔을 때도 편지를 읽으며 하염없이 눈물이 나와
묵주를 들고 밖을 나갔지요 .
이제 제대하려면 5개월 반이 남았네요.

권여사의 아들도 금방 그렇게 세월이 지나리라 맏네요.
우리 엄마들이 할 수 있는 일 그저 기도라는 것...
건강히 군대생활 마치고 의젓한 청년으로 돌아오길 빕니다
별헤아림 2006.12.16 10:17  
  ㅎ.ㅎ.
저는 '국가의 아들'로 보내고 나니, 집에서는 머슴 하나 없어진 아쉬움.
장 봐 오면 박스 들어다 주고, 인터넷으로 디카, 의자 등등 물품 구매 담당 이사였었는데...... .

김경선 원장님.
바다님.

냉담하다가, 지난 주부터 다시 성당에 나갑니다. ^^*
수패인 2006.12.16 10:42  
  아들 군대갈때 아빠들이 많이 울고  옷 부쳐올때 엄마들이 많이 운다던데...별님 다우십니다. 모전자전 인감...
저는 군대보낼 아들은 없으니 딸 시집갈때 울려나요? 울면안돼 울면안돼.. 울어도 나팔 불고나서 울어야죠.
바리톤 2006.12.16 13:24  
  아드님의 유모어가 정말 재치있습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군대는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정말 시간이 안 가지만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정말 시간이 잘 가는 그런 곳 같습니다.

저도 1992년 대학 졸업후 군생활을 한 것이 엇 그제 같은데 벌써 14년이 흘렀습니다.

아드님이 건강하게 군 생활 잘 하고 재대후 대한민국의 남아가 되어 어머님의 품에 안기기를 바랍니다. ^^ 그렇게 될 줄 믿습니다.
에버그린 2006.12.16 13:40  
  권여사님? ㅎ.ㅎ
아드님이 입대를 했군요. 재미있는 친구네요~~
예전에 우리집 삼형제(오빠, 남동생 2)들 입대해서 옷 소포로 올적마다
붙들고 우시던 우리엄마가 생각하네요...요즘은 복무기간이 짧아져서
휴가 몇번오고 나면 어느새 제대를 하던데요... 제 조카도 한겨울인 2월초하루에 입대를 한다며 인사를 하고 간 지가 얼마 안된거 같은데... 그새 이라크에도 다녀오고 다음달 말이면 제대를 한다고 하네요...세월이 참 빠르다고 다시금 느끼고 있어요..토요일이면 심심하다고 집집마다
전화를 걸어 수다? 를 떨지요.. 군생활을 재미있어 하던데요. 말년 고참이라 무서운 사람은 없는데...신병(이병)이 제일 무섭다고 하더라구요?..ㅎ.ㅎ 아드님도 군복무 잘할 거예요~~~
이 글을 쓰는데 " 흐르는 나날들"이 흐르고 있네요....^*^.
자 연 2006.12.16 14:24  
  권 여자 !

필연은 군 가는날 장가가는 살림난날

손 없는 길일잡아 신식부모 연습아뇨

부모도 두번 부모 못함이니 모자상간 배움요


세상에 군대
없는 나라 지구상에서 쫏아냅시다...
훌륭한 시공간 훈련장 맞아요.
허여 그놈이 의연해지면
난 그럴줄 알았노라 @!#

혹 김구선생님 어머님 같소그려
니가 여기 있을놈아니니 어서가라던...
눈빛의 자신감은 세상을 바꿈니다 !

선생님 ~
불러보니 좋네라

고맙습니다 @@@

박성숙 2006.12.16 15:38  
  남의 아들은 군대 가면 금방 제대하고 나오는 것 같던데..

신검 받은 울 아들도 곧 군에 갈텐데 전 그 세월이 무지 길 것만 같아요.

권여사님 아들은 참 씩씩하고 유머가 넘쳐 군 생활 잘 할 것 같네요.

엄마 울게 하지 않고 웃게 한 아들 멋져요. 부럽네요.
dmifhqrp 2006.12.16 20:07  
  편지 내용이 효자인것 같군요.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다 큰 아들입니다 .
이제 시작 이지만 제대 할 때는 더욱 성숙한 아들로 성장 하겠네요 모쪼록 건강하게, 좋은 친구 사귀며(팔도친구), 군 생활을 잘 마치길 빕니다.

별헤아림 2006.12.16 20:58  
  수패인님.
바리톤님.
에버그린님.
자연님.
박성숙님.
오경일님.

나름으로
인터넷 검색해서 102보충대에서
<육군 12사단 을지부대>에 배치된 것을 알고는
12사단 홈페이지를 즐겨찾기에 추가시켰습니다.
요즘은 위문편지도 인터넷으로 쓴다는군요. ㅎ.ㅎ.
장미숙 2006.12.17 00:30  
  재미있게 보아왔던 드라마 <환상커플>에서의 나상실 버전으로
아드님의 편지를 읽어보며 저도 웃었네요.
지금 창밖엔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군요. 겨울 들어 가장 많은 눈이...
추운철에 군 입대한 아드님 생각이 날이 갈수록 더 하리라 여겨집니다.
어머니의 냉담을 풀어드린 효자 아드님께서
부디 건강하게 군임무를 마치도록 기도를 합하여 드릴께요~~
별헤아림 2006.12.18 00:53  
  맞아요. 장미숙 시인님.
<환상커플>에 나오는 '나상실'(한예슬 분). 그리고 '강철수'.
ㅋ.ㅋ.
그런데, 강원도 인제에도 눈이 많이 와서.
이 녀석 제설작업해야겠지요.
제발 편식하는 버릇 좀 고쳐서 나왔으면 좋겠네요.
세라피나 2006.12.18 16:14  
  맞아요~^^
헤아림선생님,    아드님다우신 멋진위트~^^

행여,  예쁜 엄마 눈가에 이슬 맺힐까
사려깊게  써,  내렸을  숨겨진 눈물이  괜스리~;;^^

제가,  평화롭게  안심하고^^  생활 할 수 있음은
국방의무의 책임을 다 하게 될  멋진 청년의  혜택임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선생님~^^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 하세요~!!^^
산처녀 2006.12.19 22:11  
  맏 아들이 군에 입대 하던 날
굳이 혼자 가겠다는군요. 엄마가 외롭게 돌아서는
모습 보고 싶지 안하다는거예요.
택시를 타고 휘리릭 가는 아들 녀석의 뒤통수에 대고 눈 한번 흘기고 ,
그러면 끝인지 알았는데 그때는 전화도 못 하던 시절
옷이 오는날 부터 근 한달여를 퇴근하고 돌아오면 주방에서
한시간씩 울고 들어가던 때가 그립네요.
아들녀석 없는 집이 왜 그리 쓸쓸하던지 ,
지금쯤 한참 사랑의 열병을 앓고 계실테죠?
Schuthopin 2006.12.20 02:53  
  역시 모전자전?
그놈 보고싶네요...
엄마를 쏙 빼닮은듯....^^

저도 권시인님 뵐때마다 웃거든요....ㅋㅋㅋ
별헤아림 2006.12.21 15:58  
  ㅎ.ㅎ.
세레피나님.
산처녀님.
휘자님.

훌륭한 것도 잘 사는 것도 싫고,
고만고만 행복하게 살겠다는 아들.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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