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편지
아들의 편지
권선옥(sun)
며칠 전에 군대에 간 아들과는 별로 떨어져 본 기억이 없다. 고2 겨울방학 때, 앞산일신학원에 합숙 보낸 것 외에는. 그리고 2006년 12월 12일 군대 훈련소엘 간다고 동대구역 근처의 직업훈련원 앞까지 태워다 주었다. 동환이라고 여자 아이처럼 예쁘고 동안(童顔)인 친구와 함께 동반입대를 한다니, 혼자 떠나는 뒷모습이 여운처럼 남지 않으니 다행이란 생각도 했었다. 그래서 금호고속이라 씌여진 전세 고속버스를 타고 생전 가 본 적이 없는 낯선 곳으로 더나는 아들을 별로 마음이 아픈 것도 모르고 그렇게 보냈다.
군대에 아들을 보낸 대부분의 엄마들이 보낼 때는 어디 다니려 보내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다가는, 입던 옷을 부대에서 집으로 보내 오면 그 때서야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불며 통곡을 한다는얘길 들었었다.
화요일에 떠나 보냈었는데, 오늘 금요일 아침 출근길에 전화를 받았다. 우체국이라면서 자제분 소포를 경비실에 맡겨 두겠으니, 찾아가란다. 퇴근해서 모임 두 군데 거쳐서 밤10시 가까운 시간에 집으로 들어왔다. 통로 입구에서 어제 시험이 끝난 딸과 딸 친구가 딸의 생일이라서 함께 논다면서 들어서고 있었다.
책이 든 보조가방과 우유가 든 장바구니를 들여다 놓고선 경비실로 다시 가서 아들의 옷이 든 작은 박스를 찾아서 집으로 올라왔다.
박스의 측면에 적힌 글씨를 읽어 보니, 보낸 곳이 우편 번호 200-829 <강원도 춘천시 심북면 용산리 사서함 114-29>이다. 열어보니, 입고 갔던 옷과 함께 운동화와 속옷은 따로 투명 비닐에 넣어서 보내 왔다. 한 마디로 군대에서 정리정돈하는 것을 배운 티가 조금은 나는 듯했다. 옷 속에 혹시 편지라도 들어 있나 해서 박스를 열어 젖히고 찾으려다 보니, 박스 윗부분 안쪽에 검정색으로 씌여진 글씨가 눈에 띄었다.
To 권여사
난 잘 지낸다. 그러니 우리 권여사도 잘 지내고.
군대는 많이 힘든 곳이야. 그러니 먹는 거라도
잘 먹어야 해. 내가 전화를 하면 매달 돈을
조금 보내 주면 되(돼). 아마도 2주 후면 전화가 가능해.
모르는 번호는 받도록 해. 옷들은 다 빨아 주고
내 방은 백일 휴가 때 치울꺼니 걱정말고
남들은 옷 보내 오면 운다고 했는데, 우리는 여자 넷이서 깔깔 웃었다.
아들의 톤으로 읽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웃긴다*였다.
그 중에서도 <군대는 많이 힘든 곳이야>라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
명언처럼 가슴에 와 닿는다.
<2006. 12. 15.>
권선옥(sun)
며칠 전에 군대에 간 아들과는 별로 떨어져 본 기억이 없다. 고2 겨울방학 때, 앞산일신학원에 합숙 보낸 것 외에는. 그리고 2006년 12월 12일 군대 훈련소엘 간다고 동대구역 근처의 직업훈련원 앞까지 태워다 주었다. 동환이라고 여자 아이처럼 예쁘고 동안(童顔)인 친구와 함께 동반입대를 한다니, 혼자 떠나는 뒷모습이 여운처럼 남지 않으니 다행이란 생각도 했었다. 그래서 금호고속이라 씌여진 전세 고속버스를 타고 생전 가 본 적이 없는 낯선 곳으로 더나는 아들을 별로 마음이 아픈 것도 모르고 그렇게 보냈다.
군대에 아들을 보낸 대부분의 엄마들이 보낼 때는 어디 다니려 보내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다가는, 입던 옷을 부대에서 집으로 보내 오면 그 때서야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불며 통곡을 한다는얘길 들었었다.
화요일에 떠나 보냈었는데, 오늘 금요일 아침 출근길에 전화를 받았다. 우체국이라면서 자제분 소포를 경비실에 맡겨 두겠으니, 찾아가란다. 퇴근해서 모임 두 군데 거쳐서 밤10시 가까운 시간에 집으로 들어왔다. 통로 입구에서 어제 시험이 끝난 딸과 딸 친구가 딸의 생일이라서 함께 논다면서 들어서고 있었다.
책이 든 보조가방과 우유가 든 장바구니를 들여다 놓고선 경비실로 다시 가서 아들의 옷이 든 작은 박스를 찾아서 집으로 올라왔다.
박스의 측면에 적힌 글씨를 읽어 보니, 보낸 곳이 우편 번호 200-829 <강원도 춘천시 심북면 용산리 사서함 114-29>이다. 열어보니, 입고 갔던 옷과 함께 운동화와 속옷은 따로 투명 비닐에 넣어서 보내 왔다. 한 마디로 군대에서 정리정돈하는 것을 배운 티가 조금은 나는 듯했다. 옷 속에 혹시 편지라도 들어 있나 해서 박스를 열어 젖히고 찾으려다 보니, 박스 윗부분 안쪽에 검정색으로 씌여진 글씨가 눈에 띄었다.
To 권여사
난 잘 지낸다. 그러니 우리 권여사도 잘 지내고.
군대는 많이 힘든 곳이야. 그러니 먹는 거라도
잘 먹어야 해. 내가 전화를 하면 매달 돈을
조금 보내 주면 되(돼). 아마도 2주 후면 전화가 가능해.
모르는 번호는 받도록 해. 옷들은 다 빨아 주고
내 방은 백일 휴가 때 치울꺼니 걱정말고
남들은 옷 보내 오면 운다고 했는데, 우리는 여자 넷이서 깔깔 웃었다.
아들의 톤으로 읽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웃긴다*였다.
그 중에서도 <군대는 많이 힘든 곳이야>라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
명언처럼 가슴에 와 닿는다.
<2006. 1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