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파계사를 오르며
팔공산 파계사를 오르며
권선옥(sun)
10월 추석연휴가 기다리고 있는 10월 2일 월요일.
왠지 일상의 업무에서 해방되는 시간이 많아 오히려 따분한 날.
교무실에 청소하려 온 학생들을 시험기간이라 교무실 출입하지 말라면서 서둘러 내몰고는
교직원 친목회를 위해서 팔공산으로 향했다.
시험기간 첫날에 주로 교직원 친목회 행사를 한다. 감포에 회 먹으로 간다거나, 청도 운문사로 가기 위해 관광버스가 학교로 오면 제일 눈꼬리가 올라가는 인간들이 학생들이다. 자기들은 시험공부하느라 힘이 드는데 선생님들이 놀러 간다면서 쫑알쫑알 따라오면서 야린다.
그러면 '야~! 이것들아, 너그들은 시험 끝나는 날 극장 가고 시내에 나가고 난리치면서... . 우리 선생님들은 집에도 못 가고 주관식 채점하는데 말이야~.'라고 되받아 줘야만 아무 소리도 못 한다.
그래서 놀러 갈 때는 말없이 사싸- 싸-악 사라져야 한다. 그래도 간혹 '선생님들 어디 가세요?'라고 묻는 학생들이 있으면. '으~응. 선생님들 단체로 두 시간 연수가 있어서... 바쁘다 . 그러니 너그들도 빨랑 집에 가서 시험 공부 해래이~.'하고는 거짓말을 하는 편이다.
장소는 가끔씩 얼굴을 비치기도 하는 탈렌트 유퉁의 국밥집이 있는 바로 옆 '청둥오리집'이라고 했다.
정해진 장소엘 들어서니, 이것은 식당이라기 보다는 기업이었고, 건물도 왠지 북한의 급식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100명 정도 들어가 봐야 손님이 있다는 말도 못 할 정도이니, 아마 600명 정도는 능히 수용할 것 같았다. 그래서 누군가 '우리 빨랑 밥 먹었으면 생산량 증대를 위해 서둘러 일터로 가야지. ㅋ.ㅋ.' 농담도 했었다.
네 명이 한 테이블에서 청둥오리 한 마리 반을 먹고, 죽까지 먹고나니, 배가 불렀다. 배가 부르니, 다음에 가져온 삶은 오리알은 모두들 먹지 않고 단체로 들고서 만지작거렸다. 따끈하고 매끈한 것이 만지기에 좋기도 하겠다. 모두들 집에 가져 간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옆 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먹고 있는 친목회장의 오리알을 달라고 했다. 가져 가라고 하더니, 계산하는 자기말을 제일 잘 듣게 되어 있으니, 얘기해서 더 받아 주겠다고 해서, 오리알을 양손에 쥐고는 '아들 하나, 딸 하나. 됐어요.'하고 거절했더니, '남편 안 주고, 아들 딸 줄려구?' 하셨다. '남편 안 줘요.'했더니, '남편을 줘야 되돌아 오지.'하셨다. 나머지 세 명의 여인네들은 삶은 오리알을 남편 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실실 웃기만 하고 토를 달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나만 아들 딸 챙기는 별종이 되어 버렸다.
국어과 황선미 선생님이 파계사로 올라갔다가 저녁 5시 쯤에 내려 오자고 했다. 난 기분이 별로니까, 그냥 가야겠다고 했다. 차를 학교에 두고 온 탓에 식당 승합차를 타고 바로 가려고 생각했는데, 승합차가 두 시간 후에야 출발한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그냥 따라서 걷기로 했다.
파계사 입구 매표소까지는 차로 가서는 그 다음부터 걸어가자고 했다. 대구문협회원인 시인 김선옥 선생과 황선미 선생님은 많이 먹지도 않으면서 미식가들이어서 음식점 위치와 기타 상식 등등 참 아는 것도 많다. 거기에 비해서 대충 먹고 머리 굴리지 않고 대충 운전하면서 살고 있는 나는 한참이나 열등생이다. 그래서 가끔씩 끼이는 다른 선생님들은 말할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한 마디로 나도 시끄러워서 같이 다니기가 싫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길 상식도 부족한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관리자 선생님들은 술이 취해서 올라오다가 퇴약볕에 체력도 달리고 잔머리도 못 굴리시니까 돌아갔는지 파계사에는 그림자도 비치질 않았다.
매표소를 지나서 좀 올라가니, 나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그윽한 못이 보여서 카메라에 담고는 다시 산길을 올랐다. 경내로 들어서니 우람한 나무들이 세월을 말해 주듯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음에 수다들도 기가 꺾이는지 귀가 쉴 틈이 생겼다. 전통툇마루를 보자, 모두들 걸터 앉고 싶은 충돌이 한결 같음이라. 행동이 뒤처지는 나는 툇마루에 적힌 작은 글씨를 읽어 보았다.
<마루에 걸터 앉지 마세요.>
동작 빠르게 앉아있는 두 아낙에게 말했다.
"앉지 마. 앉지 마. 여기 <걸터 앉지 마세요.> 요렇게 적혀 있다 아이가."
했더니, 그들이 엉거주춤 일어나는 척했다.
가만히 생각하니, 사실 내가 더 앉고 싶었다. 그래서'
"에~이. 그래도 앉아라. 앉아라. 고마 앉아뿌라."
내가 앉기 위해서 그들에게 앉으라고 권했다. 그랬더니 한 명이 자기도 그 글자 읽었는데 그래도 너무 앉고 싶어서 앉았다고 했다. 어쩌면 앉지 말라는 데도 앉았다고, 스님께서 나오시면 꾸중을 들을 지도 모르지만, 모두들 절간의 툇마루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추녀끝 목어소리도 들어보았다.
지붕의 용마루 너머로 흐르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흰구름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위쪽으로 좁은 산령각(山靈閣)에서 창모자 쓴 아낙이 뭔가를 기원하는 모습도 보였다.
모두들 한 장소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어도 맞이하는 가을의 모습은 모두가 다르겠지. 이직 이른 가을빛을 맞이하는 모습들은 모두가 다르겠지. 아마 그렇겠지.
굳이 차에 두고 오라고 해도 부득부득 가방과 함께 들고오는 조영미 선생님의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그녀의 마음은 어떤 가을빛이며, 이 가을 유달리 아파하는 나의 가을빛은 또 무엇이며, 두어 달 뒤 초겨울이면 군대엘 간다는 우리 아들의 가을빛은 또 어떤 가을빛일까.
<2006. 10. 9.>
팔공산 파계사 전경1
권선옥(sun)
10월 추석연휴가 기다리고 있는 10월 2일 월요일.
왠지 일상의 업무에서 해방되는 시간이 많아 오히려 따분한 날.
교무실에 청소하려 온 학생들을 시험기간이라 교무실 출입하지 말라면서 서둘러 내몰고는
교직원 친목회를 위해서 팔공산으로 향했다.
시험기간 첫날에 주로 교직원 친목회 행사를 한다. 감포에 회 먹으로 간다거나, 청도 운문사로 가기 위해 관광버스가 학교로 오면 제일 눈꼬리가 올라가는 인간들이 학생들이다. 자기들은 시험공부하느라 힘이 드는데 선생님들이 놀러 간다면서 쫑알쫑알 따라오면서 야린다.
그러면 '야~! 이것들아, 너그들은 시험 끝나는 날 극장 가고 시내에 나가고 난리치면서... . 우리 선생님들은 집에도 못 가고 주관식 채점하는데 말이야~.'라고 되받아 줘야만 아무 소리도 못 한다.
그래서 놀러 갈 때는 말없이 사싸- 싸-악 사라져야 한다. 그래도 간혹 '선생님들 어디 가세요?'라고 묻는 학생들이 있으면. '으~응. 선생님들 단체로 두 시간 연수가 있어서... 바쁘다 . 그러니 너그들도 빨랑 집에 가서 시험 공부 해래이~.'하고는 거짓말을 하는 편이다.
장소는 가끔씩 얼굴을 비치기도 하는 탈렌트 유퉁의 국밥집이 있는 바로 옆 '청둥오리집'이라고 했다.
정해진 장소엘 들어서니, 이것은 식당이라기 보다는 기업이었고, 건물도 왠지 북한의 급식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100명 정도 들어가 봐야 손님이 있다는 말도 못 할 정도이니, 아마 600명 정도는 능히 수용할 것 같았다. 그래서 누군가 '우리 빨랑 밥 먹었으면 생산량 증대를 위해 서둘러 일터로 가야지. ㅋ.ㅋ.' 농담도 했었다.
네 명이 한 테이블에서 청둥오리 한 마리 반을 먹고, 죽까지 먹고나니, 배가 불렀다. 배가 부르니, 다음에 가져온 삶은 오리알은 모두들 먹지 않고 단체로 들고서 만지작거렸다. 따끈하고 매끈한 것이 만지기에 좋기도 하겠다. 모두들 집에 가져 간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옆 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먹고 있는 친목회장의 오리알을 달라고 했다. 가져 가라고 하더니, 계산하는 자기말을 제일 잘 듣게 되어 있으니, 얘기해서 더 받아 주겠다고 해서, 오리알을 양손에 쥐고는 '아들 하나, 딸 하나. 됐어요.'하고 거절했더니, '남편 안 주고, 아들 딸 줄려구?' 하셨다. '남편 안 줘요.'했더니, '남편을 줘야 되돌아 오지.'하셨다. 나머지 세 명의 여인네들은 삶은 오리알을 남편 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실실 웃기만 하고 토를 달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나만 아들 딸 챙기는 별종이 되어 버렸다.
국어과 황선미 선생님이 파계사로 올라갔다가 저녁 5시 쯤에 내려 오자고 했다. 난 기분이 별로니까, 그냥 가야겠다고 했다. 차를 학교에 두고 온 탓에 식당 승합차를 타고 바로 가려고 생각했는데, 승합차가 두 시간 후에야 출발한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그냥 따라서 걷기로 했다.
파계사 입구 매표소까지는 차로 가서는 그 다음부터 걸어가자고 했다. 대구문협회원인 시인 김선옥 선생과 황선미 선생님은 많이 먹지도 않으면서 미식가들이어서 음식점 위치와 기타 상식 등등 참 아는 것도 많다. 거기에 비해서 대충 먹고 머리 굴리지 않고 대충 운전하면서 살고 있는 나는 한참이나 열등생이다. 그래서 가끔씩 끼이는 다른 선생님들은 말할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한 마디로 나도 시끄러워서 같이 다니기가 싫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길 상식도 부족한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관리자 선생님들은 술이 취해서 올라오다가 퇴약볕에 체력도 달리고 잔머리도 못 굴리시니까 돌아갔는지 파계사에는 그림자도 비치질 않았다.
매표소를 지나서 좀 올라가니, 나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그윽한 못이 보여서 카메라에 담고는 다시 산길을 올랐다. 경내로 들어서니 우람한 나무들이 세월을 말해 주듯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음에 수다들도 기가 꺾이는지 귀가 쉴 틈이 생겼다. 전통툇마루를 보자, 모두들 걸터 앉고 싶은 충돌이 한결 같음이라. 행동이 뒤처지는 나는 툇마루에 적힌 작은 글씨를 읽어 보았다.
<마루에 걸터 앉지 마세요.>
동작 빠르게 앉아있는 두 아낙에게 말했다.
"앉지 마. 앉지 마. 여기 <걸터 앉지 마세요.> 요렇게 적혀 있다 아이가."
했더니, 그들이 엉거주춤 일어나는 척했다.
가만히 생각하니, 사실 내가 더 앉고 싶었다. 그래서'
"에~이. 그래도 앉아라. 앉아라. 고마 앉아뿌라."
내가 앉기 위해서 그들에게 앉으라고 권했다. 그랬더니 한 명이 자기도 그 글자 읽었는데 그래도 너무 앉고 싶어서 앉았다고 했다. 어쩌면 앉지 말라는 데도 앉았다고, 스님께서 나오시면 꾸중을 들을 지도 모르지만, 모두들 절간의 툇마루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추녀끝 목어소리도 들어보았다.
지붕의 용마루 너머로 흐르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흰구름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위쪽으로 좁은 산령각(山靈閣)에서 창모자 쓴 아낙이 뭔가를 기원하는 모습도 보였다.
모두들 한 장소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어도 맞이하는 가을의 모습은 모두가 다르겠지. 이직 이른 가을빛을 맞이하는 모습들은 모두가 다르겠지. 아마 그렇겠지.
굳이 차에 두고 오라고 해도 부득부득 가방과 함께 들고오는 조영미 선생님의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그녀의 마음은 어떤 가을빛이며, 이 가을 유달리 아파하는 나의 가을빛은 또 무엇이며, 두어 달 뒤 초겨울이면 군대엘 간다는 우리 아들의 가을빛은 또 어떤 가을빛일까.
<2006. 10. 9.>
팔공산 파계사 전경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