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자식들, 아버지
한 2년전에 신문에 실렸던 글인데 이 글을 읽으면서 마음에 팍-팍- 찔리는 부분이 많아서
신문글을 오려 놓았다가 제 홈피에도 올렸는데-
오늘처럼 이런 날이면 왜 꼭 부모님에 관한 글이 생각나는건지-
눈이 와서 더- 그런건지-- 글쎄..^^
부모님에 대한 마음은 항상 머리와 마음이 따로 논다는거 그게 가장 큰 문제죠?
지금부터라도 잘해드려야겠어요
사람들은 언제나 '다음에-' 하는데- 그러지 말고 '지금' 잘해드려야 나중에 통곡하며 눈물 안흘리지요
서로 다른 날짜에 실린 글이지만 여기엔 같이 옮겼습니다. 조선일보 기사였습니다.
<철없는 자식들>
'뭐 집을 잽혀야 쓰것다고 아나 여기 있다 문서허고 도장 있응게
니맘대로 혀봐라 이 순 싸가지없는 새꺄.
그날 은행에 가서 손도장을 눌러 본인확인란을 채우고
돌아오는 길에 말씀하셨습니다/
아침에 막걸리 한 잔 먹고 헌 말은 잊어버려라..
니가 어떻게 돈을 좀 애껴쓰고 무서운 줄 알라고 헌 소링게..'
강형철의 시 '아버님의 사랑말씀6'에는 한평생 노동일로 등뼈가 휜
아버지와 장성해서도 고단한 아버지에게 기대는 철부지 자식의 모습이 담겨있다.
자식 앞에 용빼는 재주없기는 위인 영웅이라고 다를 리 없다.
발명가 에디슨의 아들 윌리엄은 아버지 돈을 받아내 벌인 사업마다 실패해 실업자가 되었다.
에디슨이 생활비로 매주 40달러를 보내자 윌리엄의 아내가 시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는 금세기에 가장 위대한 분의 자식입니다.어찌 그 돈으로 살라 하십니까.'
에디슨은'남편에게 나처럼 열심히 일해 돈을 벌라고 하면 된다'고 잘랐지만
결국엔 농장을 사주고 말았다.
우리 속담에 "부모 속에 부처가 들어 있고 자식 속에 앙칼이 들어있다."고 했다.
엊그제 통계청이 발표한 청소년 의식조사를 보자니속담이 실감난다.
26%가 "결혼 후 생활비를 부모가 일부라도책임져야 한다."고 답했다.
결혼비용(85%)이나 집값,전세금(73%)도 부모가 내야 한다고 했다.
스무살 넘어서도 부모와 함께 사는 자식은 흔히 방값과 밥값을
치러야 하는 게 미국이라는 얘기는 꺼내지도 무안하다.
따져보면 지금 40~50대는 딱하리만큼 기구하고 낙백(落魄)한 세대라 할 만하다.
"사오정"으로 일찌감치 직장에서 쫓겨나고 노후도 불투명한 데다,
부모에게 효행하고도 자식에겐 기댈 게 없는 처음이자 마지막 "낀 세대"일 것이다.
어버이날,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묵은 격언으로
쓰린 가슴을 다스리기엔 우리 자식들이 자립심이 너무 빈약해서
그 앞날까지 걱정스러워진다.
고려장 설화를 다룬 김형영의 "따뜻한 봄날" 에서
아들은 꽃구경 가자며 어머니를 업고 산길을 나선다.
'어머니는 .. 한 움큼 솔잎을 따서/ 가는 길바닥에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하시나요/ 꽃구경은 안 하시고 뭐 하시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 하시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자식사랑 아무리 가없어도 영원한 짝사랑인가 보다.
<아버지>
아버지는 한겨울 돈 벌러 집나간 딸을 사흘 만에 데려와
뜨스운 아랫목에 앉혔다. 그리고 말했다. "넌 내 딸 아니다. 나가라."
아버지는 데모판만 쫓아다니는 아들의 종아리를 내리쳤다.
얼굴이 벌개진 아들은 콧김만 센데, 울안을 돌아간 아버지는 소리 죽여 우셨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한 유리로 돼 있네.
잘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보이지 않는다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라네."
뒷부분은 올 가을 사이버 공간을 적셔놓고 있는 '아버지는 누구인가'라는 산문시 일부다.
자식들의 눈에 아버지는 늘 이중 인격자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도 안하지만
혼자 차를 몰면서는 큰소리로 기도도 하고 주문을 외기도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 웃는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시킬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머금는 사람이다.
..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 어머니는 열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번 현관을 쳐다본다."
그 '아름다운 이중성'을 빅토를 위고는 시 "부성(父性)" 에서 이렇게 읊었다.
"영웅의 꿈은 세상밖에서 위대하고 집안에서 작아지는 것이라네."
시인 고은은 한 줄짜리 시 "아버지"에서 흉중을 불교적으로 털어놓는다.
"아이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 극락이구나."
"향수"의 시인 정지용에게 아버지 모습은 좀더 아련하다..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어제 발표된 "청소년 보호백서"를 보니 고교생 중 22%가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이
하루 1분 미만으로 나왔다. 대부분 "1분도 안되니!"라고 걱정이겠지만
어떤 세대에게는 1분도 과분했던 그 시절이 떠오를 것이다.
이젠 자식뻘 또래에게 아첨해야 그나마 행세할 수 있는 세상이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고 자화상을 그렸던
미당(未堂)이 그 세상을 버린지도 벌써 이태가 돼간다.
카프카가 죽기 직전 남긴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에서 아버지는
폭군적인 아버지상(像)의 전형이었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흐는 오늘날은 1주일에 10시간 30분을
인터넷에붙잡혀 있는 자식들에게 아비가 말걸기도 쉽지 않다.
김정현의 아버지, 조창인의 가시고기, 같은 작품이 벼랑으로 내몰리는
작금의 부성을 위로하고 있긴 하지만...
하기야 요즘 "훌륭한 아빠가 되자는 모임"은 수없이 많아도
"훌륭한 딸, 아들 되려는 모임"은 눈을 씻고 봐도 없으니.
신문글을 오려 놓았다가 제 홈피에도 올렸는데-
오늘처럼 이런 날이면 왜 꼭 부모님에 관한 글이 생각나는건지-
눈이 와서 더- 그런건지-- 글쎄..^^
부모님에 대한 마음은 항상 머리와 마음이 따로 논다는거 그게 가장 큰 문제죠?
지금부터라도 잘해드려야겠어요
사람들은 언제나 '다음에-' 하는데- 그러지 말고 '지금' 잘해드려야 나중에 통곡하며 눈물 안흘리지요
서로 다른 날짜에 실린 글이지만 여기엔 같이 옮겼습니다. 조선일보 기사였습니다.
<철없는 자식들>
'뭐 집을 잽혀야 쓰것다고 아나 여기 있다 문서허고 도장 있응게
니맘대로 혀봐라 이 순 싸가지없는 새꺄.
그날 은행에 가서 손도장을 눌러 본인확인란을 채우고
돌아오는 길에 말씀하셨습니다/
아침에 막걸리 한 잔 먹고 헌 말은 잊어버려라..
니가 어떻게 돈을 좀 애껴쓰고 무서운 줄 알라고 헌 소링게..'
강형철의 시 '아버님의 사랑말씀6'에는 한평생 노동일로 등뼈가 휜
아버지와 장성해서도 고단한 아버지에게 기대는 철부지 자식의 모습이 담겨있다.
자식 앞에 용빼는 재주없기는 위인 영웅이라고 다를 리 없다.
발명가 에디슨의 아들 윌리엄은 아버지 돈을 받아내 벌인 사업마다 실패해 실업자가 되었다.
에디슨이 생활비로 매주 40달러를 보내자 윌리엄의 아내가 시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는 금세기에 가장 위대한 분의 자식입니다.어찌 그 돈으로 살라 하십니까.'
에디슨은'남편에게 나처럼 열심히 일해 돈을 벌라고 하면 된다'고 잘랐지만
결국엔 농장을 사주고 말았다.
우리 속담에 "부모 속에 부처가 들어 있고 자식 속에 앙칼이 들어있다."고 했다.
엊그제 통계청이 발표한 청소년 의식조사를 보자니속담이 실감난다.
26%가 "결혼 후 생활비를 부모가 일부라도책임져야 한다."고 답했다.
결혼비용(85%)이나 집값,전세금(73%)도 부모가 내야 한다고 했다.
스무살 넘어서도 부모와 함께 사는 자식은 흔히 방값과 밥값을
치러야 하는 게 미국이라는 얘기는 꺼내지도 무안하다.
따져보면 지금 40~50대는 딱하리만큼 기구하고 낙백(落魄)한 세대라 할 만하다.
"사오정"으로 일찌감치 직장에서 쫓겨나고 노후도 불투명한 데다,
부모에게 효행하고도 자식에겐 기댈 게 없는 처음이자 마지막 "낀 세대"일 것이다.
어버이날,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묵은 격언으로
쓰린 가슴을 다스리기엔 우리 자식들이 자립심이 너무 빈약해서
그 앞날까지 걱정스러워진다.
고려장 설화를 다룬 김형영의 "따뜻한 봄날" 에서
아들은 꽃구경 가자며 어머니를 업고 산길을 나선다.
'어머니는 .. 한 움큼 솔잎을 따서/ 가는 길바닥에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하시나요/ 꽃구경은 안 하시고 뭐 하시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 하시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자식사랑 아무리 가없어도 영원한 짝사랑인가 보다.
<아버지>
아버지는 한겨울 돈 벌러 집나간 딸을 사흘 만에 데려와
뜨스운 아랫목에 앉혔다. 그리고 말했다. "넌 내 딸 아니다. 나가라."
아버지는 데모판만 쫓아다니는 아들의 종아리를 내리쳤다.
얼굴이 벌개진 아들은 콧김만 센데, 울안을 돌아간 아버지는 소리 죽여 우셨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한 유리로 돼 있네.
잘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보이지 않는다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라네."
뒷부분은 올 가을 사이버 공간을 적셔놓고 있는 '아버지는 누구인가'라는 산문시 일부다.
자식들의 눈에 아버지는 늘 이중 인격자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도 안하지만
혼자 차를 몰면서는 큰소리로 기도도 하고 주문을 외기도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 웃는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시킬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머금는 사람이다.
..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 어머니는 열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번 현관을 쳐다본다."
그 '아름다운 이중성'을 빅토를 위고는 시 "부성(父性)" 에서 이렇게 읊었다.
"영웅의 꿈은 세상밖에서 위대하고 집안에서 작아지는 것이라네."
시인 고은은 한 줄짜리 시 "아버지"에서 흉중을 불교적으로 털어놓는다.
"아이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 극락이구나."
"향수"의 시인 정지용에게 아버지 모습은 좀더 아련하다..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어제 발표된 "청소년 보호백서"를 보니 고교생 중 22%가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이
하루 1분 미만으로 나왔다. 대부분 "1분도 안되니!"라고 걱정이겠지만
어떤 세대에게는 1분도 과분했던 그 시절이 떠오를 것이다.
이젠 자식뻘 또래에게 아첨해야 그나마 행세할 수 있는 세상이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고 자화상을 그렸던
미당(未堂)이 그 세상을 버린지도 벌써 이태가 돼간다.
카프카가 죽기 직전 남긴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에서 아버지는
폭군적인 아버지상(像)의 전형이었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흐는 오늘날은 1주일에 10시간 30분을
인터넷에붙잡혀 있는 자식들에게 아비가 말걸기도 쉽지 않다.
김정현의 아버지, 조창인의 가시고기, 같은 작품이 벼랑으로 내몰리는
작금의 부성을 위로하고 있긴 하지만...
하기야 요즘 "훌륭한 아빠가 되자는 모임"은 수없이 많아도
"훌륭한 딸, 아들 되려는 모임"은 눈을 씻고 봐도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