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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밑에 선 봉선화야

노을 13 1336
길섶이나 어느 집 울타리 밑에서 키가 웃자란 봉선화를 본다.
어느새 여름이 그 막바지에 들어섰음을 느낀다.
봄에 전철역에서 농협 직원들이 봉선화 씨를 나누어주기에
받아놓고 심지도 못한 게으름이 생각이 난다.
올 여름에도 또 봉선화 물을 들이지 못하고 가을을 맞게 되었다.
해마다 벼르기만 하고 들이지 못하는 봉선화 꽃물,
그 선연한 붉은 색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어린 시절에는 여름에 치르는 가장 중요하고 재미난 일이
손톱에 봉선화 꽃물 들이는 일이었지.
장마가 그치고 뜨겁고 건조한 날이 계속되면
봉선화 꽃잎이랑 이파리를 따서 꾸득꾸득 말린 다음
넓적한 돌 위에 놓고 백반을 섞어 콩콩콩 짓이겨 놓는다.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 엄마는 세 딸들 손톱 위에 그것을
얹은 다음 낮에 따다 놓은 아주까리 잎으로 돌돌 말고
굵은 실로 칭칭 동여맨다.
때로는 살에 물들지 말라고 밀가루를 개어 손톱 주위에
돌아가며 붙이기도 한다.
손가락마다 새큼하고 풋내 나는 초록색 골무를 끼고
열 손가락을 벌린 채 자리에 누우면 동여맨 손가락이
욱신욱신거린다. 그래도 내일 아침이면 곱게 물들어 있을
손톱을 생각하며 기대에 차서 얌전하게 자야지 마음먹고
잠이 들지만 아침이면 손가락 몇 개는 비어 있기 일쑤다.
가슴을 두근거리며 손가락에서 동여맨 아주까리 잎을
살살 풀어내면 손가락은 엷은 분홍빛으로 물들어 퉁퉁
불어서 실로 동여맨 자국이 뚜렷하다.
가끔은 타는 듯한 붉은 색으로 착색이 잘 되기도 하지만
분홍색으로 연하게 물이 들어 있으면 왜 그리도 속상하던지...
손가락에 흔적처럼 남아있는 연한 꽃물도 다 빠지고 손톱에만
붉은 꽃물이 선연하게 보이면 그때 본격적으로 손가락은
손톱 덕분에 화사해지고 빛나게 된다.
소녀들이나 여인들은 누구 손톱에 물이 더 잘 들었는지 서로
보여주며 부러워하곤 했었는데...
손톱이 점점 길어 손톱 뿌리 부분이 하얀 초승달처럼 나오며
점점 커져 반달 모양이 되다가 나중에는 손톱 끝에만 붉은
초승달이 뜰 때가 되면 여름은 이미 가을을 준비하고 있다.

세상이 바빠져서인지 그 아름다운 풍습이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
매니큐어의 종류도 다양해져서 손톱 치장해주는 직업도 생겼다지만
나는 봉선화 꽃물 곱게 든 손톱이 더 정답고 이쁘다. 
마치 옛날 얘기가 되어버린 것 같은
봉선화 꽃물이 나는 왜 해마다 아쉽고 그리운 지 모르겠다.
울밑에 선 봉선화야
너도 소녀들 손톱을 곱게 물들여 주던 그때가 그리울까?

13 Comments
산처녀 2005.08.10 12:06  
  저도 안들이지만 이웃에 계시면 노을님의 손톱에 봉선화 자욱을 남겨
들이면 좋으련만 ...
바다 2005.08.10 13:09  
  너무나 아름다운 글..
읽고 또 읽고 싶습니다.
김경선 2005.08.10 13:42  
  모짜르트카페에 오시는
여성분들에게는
봉숭아물을 들여드리는 이벤트라도...
두 손가락에만 물들이면
노래하고 먹는데는 지장이 없겠지요.
서들비 2005.08.10 14:19  
  저도 올 여름엔
교회학교 꼬마들에게 꽃물을 들여줬어요.

중학생이 된 머슴애가 이제는 하지 않겠다고 하더니만
애기 손톱에만 해 주겠다고 꼬드겼더니,
옛 추억이 생각 났는지 선선히 응하대요.
6살 꼬맹이는 자기는 절대로 할 수가 없노라고 (남자라서.....  ^^)
끝내 넘어오지 않았어요.
아침에 선홍색으로 물든 손톱을 자랑하는 이쁜이들.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물이 더 이쁘게 들대요  ^^
하예가 2005.08.10 16:25  
  노을님!
어린시절의 그리움이 봉숭아에도 있었지요.~
저는 요즘 아파트 화단에 피어있는 봉숭아꽃을 바라만보고
물들일 용기를 내지못하고 있답니다.
유언비어(流言蜚語)인지 근거있는 의학적으로 정확성이 있는지를 몰라
감히(?) 용기를 낼수 없어 애만태웁니다.
축복둥이가 태어난후로 자주 병치레를 하다보니 병원갈일이 많아졌거든요.

노을님!
봉숭아물을 들여도 될까요?!
김 경선 원장님께 여쭤봐야 하나요...

노을 2005.08.10 16:32  
  하예가님 금시초문이네요. 봉숭아물 들이는 데 무슨 미스테리라도???
정말 김경선 선생님께 여쭤봐야지요. 짐짓 저희들의 향수를 깨기 싫어 가만히 계시는 건 아닌지 몰라요.
산처녀님, 아무래도 저도 낙향을 해야 할까봐요. 산처녀님으로 부터 전해오는 좋은 기운을 가까이서 받고 싶어져서요.
바다님, 이번에는 꼭 뵐 수 있지요? 목 길게 늘어뜨리고 기다립니다.
언제나 친절히 답글 주시는 김경선 원장님은 언제나 뵐 수 있을지요
서들비님 교회학교 선생님이시군요. 괜히 더 반갑네요.
언젠가 저 있던 교회에서도 성경학교 때 봉숭아 꽃물 들여주더군요.
모두 8월 가곡교실에서 뵐 수 있기를 고대하며..... 
우지니 2005.08.10 17:25  
  울밑에 선 봉선화의 고운빛갈
우리 손톱에 모두 담아 속삭이던 지난날들을
그리워하는 마음들은 다 같은 마음인가 봅니다.
노을님께서 지난 추억들을  자상하게 올려 놓으시니 봉선화에 대한 애정이 다시 새롭게 느껴집니다.
산처녀아우님께선 시어머님께서 금년에는 손톱에 봉선화 물 들여 달라고 아니하셨나요?
산처녀 2005.08.10 22:03  
  조금 젊어서 우리 어머니는 봉숭화 물들이면 저승가는길이 밝다고 함께 봉숭화 물들이자고 찧어서 아주까리 잎까지 준비하셨어요 .
그러면 손톰에 꽃잎 찧은것을 얹고 잘라치면 손가락이 화끈거리고 ...
허나 자고 일어나보면 젊은 나는 거의 다 빠저 나가고 얌전하신 우리 어머니는 곱게 남아서 손톱이 곱던 기억기 납니다 .
이제 연만하시니까 달밝을때 죽으면 가족들 명절에 더 불편하다고 안들이시더군요 ㅎㅎㅎ
현규호 2005.08.10 23:33  
  봉선화가 표준말이라는 데, 내겐 봉숭아가 더 마음에 와 닿네요.
봉숭아 물 들일 때 백반은 빼놓을 수 없는 메뉴였는 데 아무도 얘기하시는 분이 없으셔서 그냥 들어왔어요. 어떻게 했는 지는 나도 모르는 데.
사내애는 봉숭아 물들이면 왕따 당했거든요.
우지니 2005.08.11 07:33  
  노을님께서 백반을 섞어 콩콩콩 짓이겨 ....
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김경선 2005.08.11 07:37  
  봉숭아,
언제 들어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우리세대.
우리는 '유언비어'라 하면 신경이 곤두서나 봅니다.
 "봉숭아물, 왜?"
바다선생님의 수업이 다음 주에 있을 예정이니
우리 학생들은 근거자료를 찾아 봅시다.
 제가 찾아본 내용으로는
1) 봉숭아물을 열손가락에 들인 환자가 진찰을 받을 때,
    손톱의 상태를 관찰할 수 없겠지요?
2) 마취를 하는 동안 '혈중산소농도측정'을 하면
  실지보다 낮게 측정되는 방해요소가 된다고 하네요.

봉숭아꽃을 여름에 냉동하였다가 일 년 내내
들이는 분도 계시고, 상품화되어 있다고도 하시는데...   
노을 2005.08.11 11:18  
  저도 봉선화보다 봉숭아가 좋은데요. 입력을 하면 빨간 줄이 짝 그려지더군요. 현규호님, 좋으신대로 부르세요. 지금 여기는 여인천국인데 현선생님은 왕따 안시킬께요.
추억은 공유할수록 향기가 나는 것 같습니다. 삶이 모두 팍팍해서일까요?   
요들 2005.08.12 09:16  
  노을님~~ ^^*
이번 8월 만남에서는  봉숭아 꽃물 빠알갛게 물들인
손톱을  자랑하실건가요?

유랑인님~~  이쁘게 찍어 올려주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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