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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바다 6 2718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어느 날 친구의  시 한 편을 읽게 되었는데 전혀 생소한 말 한 마디가 있었다
  ‘丁香을 꿈꾸며...’

“丁香이 무슨 뜻이지?”
“丁香은 靑馬가 평생을 두고 사랑한 이영도 시인이야.
넌 연애편지도 안 써 보았구나!”
“그래, 나는 연애편지 한 번도  못 써본 바보였다. 이래도 바보고 저래도 바보다”
“누구나 젊은 시절 연애편지를 쓸 때는 靑馬의 편지가 모델이 되어
 으례히 보게 된다는 뜻인데 너 오해 안했지?”
“그럼,  오해는 무슨 오해를...”

그 날 이 후 도대체 얼마나 열렬한 사랑의 편지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그 편지들을 읽게 하고 흉내내게 하였을까?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는 좀 알 것 같은데
그 외에는 전혀 모르는 무식한 나.
나는 언젠가는 그 분들의 성결한 사랑의 편지를
때가 늦었지만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연말에 내가 해야 할 일들이 거의 마무리가 되어
작년 12월 말 경에 눈이 제법 많이 와서 길이 미끄러운데도
혼자서 눈 노래도 부르고 동요도 흥얼거리며
눈길을 걸어 충장로에 있는 서점을 찾아갔다

 먼저 음악서점에서 필요한 책을 산 다음 대형 서점으로 향했다
그 책은 아주 오래된 책일텐데 아직도 있을까?
중년여인이 그 책을 찾는다고 웃지는 않을까?
왠지 주위 사람들을 살펴보게 되고 뭔가 훔치러 온 사람처럼
연신 두리번거리곤  하면서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청마의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 라는 책이 있나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혹시나 그 책이 없다고 할까 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점원이 없다고 할까 봐 저만치 떨어져 있으려고 하는데

“여기 있습니다.”
“아! 있었군요.”

마치 거저 주기나 한 것처럼 고마워하며 돌아서는
내 모습이 너무나 우스웠다

도대체 이 나이에 누구에게
연애편지를 쓰려고 이 책을 샀는지...
읽어보려고 샀는지...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그 날 이후 나는 청마처럼 뜨거운 가슴이 되어
밤마다 조금씩 읽어가기 시작했다.

오늘은 유성에게 악보를 부치려고 우체국에 들리게 되었다
오랜만에 부쳐보는 편지라 우표값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어디에 편지를 넣는지도 잘 몰랐다
우표값은 단돈 190원

겉봉에 서툴게 써진 내 글씨를 보며 나는 丁香이 아닌
또 하나의 靑馬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여자이지만 丁香이 되는 게 아니라 靑馬가 되어
靑馬같은 뜨거운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그리고 우표를 붙이며 속으로 말해본다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그리고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나는 홀연히 우체국 문을 나섰다


유성님께 악보를 부치던 날  2003.2.4




6 Comments
음악친구 2003.02.05 00:02  
  우와~

바다님!

혹시 丁香이 광주에 살지 않던가요???
ㅎㅎ~

바다님은 海香~?

아름다운 분이세요~
deborah 2003.02.05 00:05  
  무슨 악보인지 되~게 궁금하당~~
미리내 2003.02.05 00:19  
  어라~~
아우님께서 오늘은 작문에 글을  올려놓으 셨구랴..^^

이렇게 그렇게  자주오시면  반갑고  좋지랴..나도 바다님처럼  연애 편지라는것은
꿈도 못 꾸었는디..ㅎ~

마지막 부분은  나도~~그예전에 본것같은 ...그리운이여~~~그럼 안녕이라는
그말이..........
평화 2003.02.05 10:18  
  바다님!
그러셨군요.이제사 읽으보셨군요.
제가 고등학교때 읽고선 청마 유치환님의 얼굴도 모르면서
제 가슴속에서 열렬한 사모의 꽃을 피웠더랬는데....

여고시절 전 청마와 정향처럼 아름다운 플라토닉러브를
꼭 하여보리라 다짐하였었지요.

아직도 청마는 제 가슴속에서 늘 그리운분으로 사모하는분으로 남아있습니다.
제 신앙처럼......

행복  - 유 치환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흘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방울 연현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성-━☆ 2003.02.05 10:36  
  바다님~!
마치 내가 청마의 연인 (이영도) 가 된 기분이네요
위의 글을 읽으니 너무 행복합니다

'사랑 했으므로 행복 하였네라' 이책은 저도 갖고 있지요
아주 오래전에  그 책을 수없이 읽곤 
좀 진부한 면도 있지만  가슴을 설레이며 
나도 이영도가  되었으면 하는 부러움을 산적도 있답니다
물론 연애편지를 안 써봤던건 아니지만...

바다님! 그래요 사랑은  역시  받는것보다 주는 기쁨이 크지요
나도 그 주는 기쁨을 느껴보렵니다
신재미 2003.02.05 21:16  
  바다님 잘 지내시죠?
멋진 글을 읽노라니 제 마음이 바다님의 마음에 빠져 드는듯,,
늘 즐거운 마음으로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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