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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함박눈

우지니 17 976
'순아! 빨리 일어나 냇갈에 (시냇물)  멱감으로 가거라"
반세기가 훨씬 지난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겨울 방학 때의 추억이다.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사랑채에 들러 오시면서 아직도 아랫목에 누워있는 저를 보시더니 친구들 모두 다  냇갈에가서 멱을 감고 있다는 말씀이시다.  그때는 제가 막내여서 아버지께서 항상 저를 건드리며 장난을 잘 하셨는데  중학교 갈 무렵 바다가 태어나는 바람에 그만 막내의 사랑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 날따라 함박눈이 많이 내린 추운 겨울 아침이었다. 
그런데 친구들이 냇갈에서 멱을 감고 있다고 하시는 아버지...
언제나 재치있는 유모어로 항상 웃음을 자아 내시던 아버지...

올 겨울들어 모처럼 오늘 아침 눈이 소복히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성당엘 갔는데 신부님 강론말씀은 하나도 들리지 아니하고  내 머리에는 아버지 생각으로 가득하여 갑자기 너무나 뵙고 싶은 생각에 어떻게 미사가 끝났는지도 모르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들이 어렸을 때의 우리동네 냇갈은 태봉산에서 내려오는 물 줄기로 창포바다를 향해 늘 맑게 흐르고 있어서 여름이면 모두들 멱을 감고 수영도 하면서 물속기기 연습도 하고 때로는 붕어나 장어도 잡고 갈이라는 깨끗하고 날쌘 물고기들의 고향이던 우리 동네 냇갈. 
언제부터인지 공해로 인해 오물만이 가득한 냇갈을 볼 때마다 가슴이 너무나 많이 아프다.

우리들이 어렸을 때 태봉산은 가수 남진씨 가문의 선산으로 산 일을 할 때는 그 근방 잔칫날이었다
그리고 그 산줄기를 쭉 이어가면 산봉우리에 어마어마하게 큰 절구통처럼 생긴 모습의 바위가 묻혀 있는데 주민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모두 힘을 합해서그 바위 뚜껑을 열고보니 그 속에는  고려정종 24년 이라고 쓰여 있었고  왕자의 태를 담은 옥항아리가 있었다 (뚜껑을 열때가 1954년경)
지금 생각해보면 그 높은 산꼭대기까지 그 큰 바위를 어떻게 운반했을까 지금도 수수께끼로 남는다.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유모어가 넘치신 분이셨고 누구나 친구처럼 대해 주셨다.
우리집엔 사랑채에 상하방이 있었고 마루가 뺑둘러 있어서 우리동네의 휴게소처럼 사용하고 언제나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공동쉼터이기도 했었다.
우리 가족끼리 있어 본 기억이 없다 .
언제나 이웃과 함께 살았었고 찬 물이라도 이웃과 함께 나누시려는 아버지와 어머니

오늘 아침 모처럼 내려 쌓여있는 눈을 보니 아버지께서 지금도 생존해 계시다면 지역사회를 위하여 무슨 구상을 하시고 계실까?
그시절 학교를 더 보내주지 아니한다고 무척이나 투정을 부리고 아버지를 원망도 많이 했지만 아버지께서는 여자들은 여학교만 나와서 결혼을 잘하면 제일 잘하는 일이라며 여자가 직장생활을 하는 것을 반대하시더니 시대가 바뀌니 바다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공직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키셨다

언제나 우리 가족보다는 이웃의 아픔을 먼저 헤아리시려는 아버지 나름데로 사회에 공헌한 점을 지역주민들이 높이 평가하여 돌아가신 후 18년이 지난 1988년 12월 28일에 서울에서~목포가는 청계북교 뒷 동산 고속도로 승강장 옆에는 "덕 암 선 생 박양규 의 공적비" 라고 세워져 있다. 학교를 안보내 준다고 원망스럽던 아버지... 이제 나도 나이를 먹어서인지 공적비를 볼 때마다  아버지가 존경스럽습니다.

하필이면 눈이 제일 많이 내린 날 아침 아버지께서
" 순아! 냇갈에 친구들 멱감고 있으니 얼릉 일어나서 너도 가서 멱감고 오너라"
하시던 아버지...
많이 보고싶어요.
17 Comments
정우동 2005.01.16 17:08  
  탐스러운 함박눈과 함께 오시는 후덕한 아버님 생각
어리숙한 민초들이 세워준 송덕비가 최고비입니다.
덕 암 선생 박양규님의 공적비에 멀리서 절합니다.
달마 2005.01.16 17:13  
  死界 (((

忘覺은
다 平溫 하외다

믿어도 그만
아니 믿어 到 만

아니리 요만
다 죽다 깨어도

행복 한 줄은
죽어도 모를 놈이

큰 말씀에 배움
새기며 살다 갑니다 +++
서들비 2005.01.16 20:27  
  부모님께서는 기다려주지 아니하시고
철이 들 즈음이면
떠나시고 아니계시지요~~
배주인 2005.01.17 09:55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앞이 뿌연해 지는것은
왜일까요....
그리운 시간입니다.
simon 2005.01.17 14:12  
  그러니까 바다님과 우지니님이......
그렇군요.
훌륭하신 아버님의 따님답게
넉넉한 마음으로 이렇게 좋은 일을 하시는군요.

문득 스치는 조그마한 일들에서도 부모님을 생각하는 것,
이젠 우리도 모두 나이가 들기 때문일까요?
산처녀 2005.01.17 18:07  
  아버지 !
언제나 아버지라는 단어는 가슴아픔이 전해저오지요.
우지니언니의 아버님도 어\\ㅏ주 훌륭하신 분이셨군요.
마을에 공덕비를 바라볼때마다 마음은 항상 겸허해지시겠읍니다
언니 우리를 덜가르킨 아버지의 원망을 이제는 풀러버려야겠지요.
훈훈한 글 잘읽었읍니다
가객 2005.01.18 11:02  
  우지니님과 바다님의 고향은 고려시대 왕자의 태를 묻은 곳으로 참 유서깊은 마을이군요.
고려초기 왕들은 세력이 취약하여 지방 호족과의 통혼을 많이 하여 지방을 아우르는 정책을 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지니님 고향 인근 출신의 왕비가 있어서 그곳에 태를 묻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지니님 아버님께 공적비를 세워 상찬을 드릴 정도로 훌륭한 분이셨네요. 게다가 시골에서는 뵙기 힘든 유머도 풍부한 멋진 분이셨구요.
우지니님의 글을 읽으면서 제게도 훌륭한 아버지로만 가슴에 남아 있는 선친 생각이 나는군요.
오숙자.#.b. 2005.01.18 12:52  
  우지니님의 어린 시절 아버님 말씀에
저역시 아버님 생각이 절로 납니다
지역사회를 위해 업적을 세우신 훌륭한 아버님.
그러기에 훌륭한 따님들을 두셨군요
공적을 기리는 덕암 박양규 님의 공적비는
지역사회에 자랑이며
한 가정에 萬事 本 이 되신 어른이십니다.
우지니 2005.01.18 13:51  
  언제나 존경하는 정우동선생님. 달마선생님.
오랫만에 하얀 눈이 내린 아침을 맞고보니  철이 없을 때 아버지께서 저를 놀리시던 추억이 떠오르며 갑자기 뵙고싶은 생각에 두서없는 난필을 올리게 되었답니다.
선생님들의 과찬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우지니 2005.01.18 14:02  
  여학생같이 어리고 예쁜 서들비님 그리고 아직 직접뵙지 못해서 얼굴도 모르는 배주인님 서투른 저의 낙서랄까?요 관심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버지가 천국으로 여행을 떠나시고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야 철이 조금은 든 것 같습니다.
우지니 2005.01.18 14:42  
  simon 님. 산처녀님.
우리들이 어른이 되어보니 세상사가 그렇게 마음데로 되지 않음을 뒤 늦게야 깨닫게 되는군요. 
어렸을 때 아버지를 많이 원망하고 투정도 부리고  자랐었지요.
이유는 왜 남자만 대학을 보내느냐?는 불만이었지요. 그때는  6. 25 사변이 온 나라를 가난속으로 빠뜨렸지요. 버스는 구경도 못하고 중 3 때 추럭을 대절해서 타고 해남 대흥사로 수학여행을 갔으니까요.
더구나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때는 우리학교가 너무나 허술해서 바람이 세차게 불때는 일찍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왔답니다. 학교가 쓰러진다고.  유리창이 끼워져야하는 학교유리문은 집에서 짠 무명베로 대신 끼우고 그렇게 물자가 귀하고 가난했던 시절이었답니다.
그런 사정으로 아버지께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새로 학교를 벽돌로 현대식으로 지어야 한다고 지방교육구청으로 도교육청으로 열심히 건의하고 협조를 받아내서 새로 학교를 짓게 되었답니다 .
그래서 이제는 인가가 나와서 학교를 지어야 되는데 나라형편이 어려우니 자금이 제때에 안 나오니까 우리가 아니 아버지께서 먼저 자금을 융통하여 공사를 진행하였는데 정부에서는 돈이 잘 안 나오니 우리 재산이 거의 다 들어 갈 수 밖에요.  제가 운이 없었든거지요.
하필이면 그때라 제가 학교를 중단 할 수 밖에 없었답니다
그리고 우리 집 짓기 위해 기와공장을 차리고 일하시는분들 주무시는 집을 또 한채 지었는데 우리집 기와를 다 구어내고나니 인부들 숙박하던집에  왠 걸인들을 다모여서 살도록하고 끼니때마다 그분들에게 밥을 갖다주고 아뭏든 우리 아버지 하늘나라에서도 얼마나 바쁘게 지내실까 궁금하거든요.
아버지가 계신곳은 구수한 유모어에 몇십년을 미리 예측하시는 통찰력이 있으시다고 주윗분들의 말씀을 들었답니다. 
우지니 2005.01.18 15:21  
  언제나 자비로우신 오숙자교수님!
오교수님께서도 매우 훌륭한 일을 하시고 계심에 마음을 다하여 감사드립니다. 지덕을 겸비했다고해서 다 베푸는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후배들을 위하여 좋은 문화를 창달하기 위하여 불편하신 건강도 감추시고 수고하시는 오교수님께 행운의 여신이 늘 함께하시기를 빌며 내내 건강하시옵소서.
과분한 칭찬의 말씀에 감사드리며 어디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우지니 2005.01.18 16:16  
  동호회 회장님 반갑습니다.
우리동네 건너편에 태봉이라는 마을이 있고 그 뒤산을 태봉산이라고 하지요. 회장님 말씀데로 고려시대에 세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이곳에서 왕비를 뽑아서 사는동안에 왕자의 태를 산봉우리에 모셨던 것 같습니다. 회장님 생각에 동감이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 큰 바위를 어떻게 산봉우리 까지 운반했을까?
저는 그것이 너무나 궁금하답니다 하기야 옛 유적들이 남아 있는곳을 보면 불가사이한 일들이 많지요.

철 없이 아버지께 투정을 부렸지만 저희들은 아버지가 하신 일 백분의 일도  할 수 가 없음이니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꼭 많은 돈을 모아서 남을 돕는 것 보다는 있는 그데로 그 범위 안에서 나름데로 이웃과 함께하시고저 하신 것 같습니다.
아내와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는데 제가 칠불출이 된것 아닌지
여러 선생님들 용서해 주세요.
제 서투른 글에 귀 기우려주신 회장님  감사합니다.
별헤아림 2005.01.25 12:40  
  우지니님 오랜만입니다.
이렇게도 넉넉하신 성품으로 이웃에게 마음을 주시고 사셨음에
따님들도 아름다운 마음씨로 친구와 이웃들을 감쌀 줄 아는 마음을
닮았나 봅니다.
그런데 저는 추운 겨울날 아침에 wake up은 되었는데 get up이
잘 안되더군요. 그럴 때면 우리 아버지께서
"안 일어나-냐~@@@..!" 호통이셨는데
그저께 4박 5일을 아버지집에서 밤낮으로 누워서 뻗쳤는데도
아무 말씀도 않으시더군요. 교육적 효과가 없음을 아시고는...^_^*
그리고 현재 70대 노인이 소형 무비카메라 찍사로 진출하셨습니다.
여행과 놀이 문화에 심취하시어 소형 카세트로 민요와 뽕짝음악도 삽입하여
다시 일반 비디오 테입으로 편집도 하면서 부지런한 것도 팔자인가 봅니다.
우지니 2005.02.05 00:22  
  별헤아림님 반가워요.
모처럼 눈이 하얗게 쌓인 것을 보니 아버지생각이 떠 올라서 서투른 낙서를 해보았답니다.
 지난번 행사때 집에 손님이 와서 일주일간 머물면서(딸손님) 병원엘 가서 검사하려고 왔는데 애기가 있으니 정신이 없어 제가 빨리 와 버렸답니다...
별헤아림님 못오신다고 그러는 줄 알았었거든요. 가곡 발표회때 건강이 안좋은데도 오셨다는데.  못 뵈어서 아쉽습니다.. 방학동안에나 몸조리 좀 잘하시고 개학을 하셔야 할텐데 .지금도 많이 힘드시겠네요.
학교일만 하시고 조금 쉬셔야 하는데 재주가 많은 사람들은 이것 저것 다 관여하다보면 과로가 겹쳐도 병이 나겠지요.
별헤아림님 아버님께서는 멋쟁이 이시네요. 아버님이 재주가 다양하시니 별헤아림님께서도 아름답고 애잔한 글을 쓰시는 재능이 있나봅니다. 부디 별헤아림님 건강하시옵고 가정에 .행운이 가득하시고 건필하시기를 빕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별헤아림님댁에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이니 2005.02.06 23:02  
  우지니님 안녕하세요?
님의글 읽으며 전 엄마생각에 가슴이 저려오네요...
그리도 자상하시고 후덕하신 님의 아버님처럼
제 어머니도 부처님 같으신 분이셨는데.....
.
막내딸로 사랑만 흠뻑 받고 자랐지
어머니 생전에 제대로 효도도 못하고 보내드렸답니다
언제나 말없이 믿어주시고 지켜봐주신 어머니.....
그립습니다......

자식을 길러보니 이제야 알것같습니다, 부모님 마음을....

우지니 2005.02.20 19:19  
  이니님 고맙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렸을 적에는 사랑을 받기만 한 것 같지만 사랑을 받는 것도 하나의 효도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누구를 좋아하면 그 순간은 우리 마음이 행복하거든요. 그러므로 부모남께 우리가 효도를 다 못해드려 가슴이 아프지만  부모님께서는 우리들을 보고계시는 동안은 부모님께서도 좋으셨을 거라고 생각되는군요. 또 우리들이 내리 사랑으로 우리 아이들을 보면 행복한 마음이 들지요.
세월이 이렇게 흐른 후에야 누구나 부모님 마음을 알게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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