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석 풍경(除夕風景)
제석 풍경(除夕風景)
권선옥(sun)
한두 달 전부터 몸이 극도로 부실해지는 탓에
늘 비실비실거리면서 기본적인 일들만 겨우 하는 처지였습니다.
그래서 사이트에도 전과달리 뜸해진 편입니다.
며칠 전 크리스마스 가까운 날 뒤늦은 시간에 한숨 자고 일어나서
아들이 컴을 꺼려다가 "엄마 컴퓨터 할래요"해서 "응."하고는 이리저리 다녀 보는데
알림음과 함께
'벼리야. 니 산타옷 나줘'하는 쪽지기 날아 온다.
아들에게 오는 <세이 쪽지>임을 아는 까닭에 무시하고 글을 읽노라니 또 쪽지가 날아온다.
"왜 대답이 없노. 산타옷 번쩍거리는 빨간 옷 내 줘~!"
그냥 두니까 아래쪽에 주황색 아이콘이 그득하다. 그래서
나 - "벼리 잔다."
아들 친구- "카지 말고 옷 나 줘. 응!'
나 - '잔다니까-."
아들 친구-"장난 치지 말고 응. 산타옷 나줘."
나- "니도 자라-!
아들친구-"잠이 안 온다."
워드 속도가 느려서 쏟아지는 쪽지를 삭제하면서 답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답장이 밀리자,
아들 친구 - "와 대답이 없노?"
나-'나 벼리에미다. 벼리 잔다. 니도 고만 들어가서 자거라."
아들 친구- "주기 싫으면 그냥 싫다고 해라."
나 - '주고 싶어도 줄 줄 몰라서 못 준다.'
아들 친구- "그냥 주면 되잖아."
나 - ' 니 이름 뭐고?'
아들 친구- "나 이재원.'
나- "재원아. 벼리 잔다. 그리고 난 벼리엄마고. 못 믿겠으면 전화해 봐라"
아들 친구- '지금 PC방이라서 전화 못 한다."
나 - "나 벼리엄마 맞다니까~!"
아들 친구 - "나는 재원이 아빠다.'
나- "나 벼리엄마 .... ^^* 시인(?) 권선옥이다."
아들 친구- "....?????@"
나 - "------ 고만...~! 끝"
또 어떤 때는 알아듣도 못하는 닉네임이 뜨면서
쪽지로'빨랑 공유하라'는 멘트가 날아온다.
공유가 뭔지 알아야 공유를 하지 그래서
모른 척하고는
"내용이 뭔데..?
하면
"나도 모른다. 공유해 보면 알 거 아니가.."한다
"공유할 줄 모른다"하면
"말이 많다. 잔소리 고만 하고 빨랑 공유해라"
닥달이다. 그러면 감당을 못 해서 줄줄이 차례로 꺼버리다 보면
어디 공유하는 항목이 보이기도 한다.
- 우리 교장 선생님은 과학 장학사도 하신 분이어서 그런지 기계를 잘 다루십니다.
전직하시면서 급식실 아줌마들까지 70여명 교직원들의 휴대폰 번호를 다 입력해 놓으셨다.
그러시더니 크리스마스날에는 새벽 2시 36분에 축하하는 문자메시지를 날리는 바람에
여러 사람들에게 얘기거리를 제공하시고 윗사람이라는 거리감을 좁혀 주셨다.
수시로 사석에서는 '**오빠' 아니면 '오라버님'이라고 할 정도로.
- 즐거운 성탄인사와 새해인사를 나누면서 번호가 저장이 안 된 곳에서 오는 문자메시지는
때로 수첩을 꺼내어 확인을 하든지 다시 전화를 걸어 보면서 확인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이트든지 운영자님께 전화를 할 일이 있으면 사이트에 가서
아래 부분에 적혀 있는 휴대폰으로 전화를 합니다.
그런데 어제 밤 자다가 알림음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11시 40분 경에 날아온 새해 메시지. 받아보니 이름이 뜨질 않아서 수첩과 교직원 전화 번호를 쭈우욱 훌터봐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딘가 뒷 번호가 낯이 익으면서도
생각이 나질 않아서 바로 전화를 해 보려다 밤도 깊은 시각이라 그냥
-- 누구시온지- 잠도 없나뷔여--
하는 문자로 답장을 하고는 책을 좀 보다가 자 버렸습니다. 잠결에 수시로 들리던 문자 메시지 도착 알림음을 확인해 보니 '내 마음의 노래' 운영자님와 함께 보낸 이의 이름들이 대부분 적혀 있었습니다. 남들은 '해맞이'한다고 야단일 터인데 나는 새 해가 중천에 뜨는 낮 12시가 넘도록 자 버렸습니다. 2004년의 피로를 다 풀어 버리기라도 하듯이. 자리에서 깨어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 알파벳 P - 이는 분명 하루 중 오후이다. 이러고도 복 받으면 세상이 불공평한 것이겠지요.
내일도 일요일 성당에 주일 미사 전까지만 일어날 생각입니다.
부족함이 많아 남의의 잎에 자주 오르내리면 오래 살려나?
<2005. 1. 1. 토요일>
- 운영자님을 비롯한 <내 마음의 노래> 가족 여러 분~!
저만 빼고 두루두루 복 많이 받으시옵고 건강하시고 바라시는 일 모두 이루어지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