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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인에게 배우며

김형준 10 780
사마리아인에게 배우며

                                      김형준


강도가 노상에서 나를 찔렀다.
나의 옆구리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

저 멀리서 목사님께서 오시고 있다.
목청껏 큰소리로 외쳐댔다.

목사님, 저를 살려주세요.
119에 전화를 해주세요.

목사님이 내 옆에 와서 물끄러미 쳐다보셨다.
'아니, 예배시간이 다 되었잖아!
 미안해요, 교회에 가서 예배 인도해야 해요.'

전화 한 통화 해주시면 안되나.

피가 샘물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정신이 조금씩 혼미해지고 있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

다시 고개를 들어보니 저 멀리서 대학교수님이 오신다.

교수님, 교수님! 저 좀 살려주세요.
강도 만나 죽어가고 있습니다.

교수님이 그 지적인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동정이나 연민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미안해요. 나는 지금 수업이 있어요.
학생들이 내가 빨리 오기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가까운 약국에 가셔서 붕대를 사다 주시면 좋았을텐데.

하늘이시여! 저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귀어 왔던 부유한 친구가 걸어오고 있었다.

친구여, 내 사랑하는 친구여. 나를 좀 살려줘.
내가 이렇게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어.

그 친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누구세요. 날 아세요?
잘 사세요.
당신이나 잘 하시고.

사업가의 웃음을 웃으며 그도 내게서 멀어져 갔다.

신이시여! 저 죽어요. 살려주세요.

근사한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 씩씩하게 걸어왔다.
아마도 꽤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 같아 보였다.

민중의 지팡이
정의의 사도
대한민국 경찰 간부

경찰이시여, 저를 살려주세요.
제발 병원에 데려가 주세요.
전 강도를 만나 죽어가고 있답니다.

역시 그 경찰간부는 베테랑답게 침착했다.

사건이 몇시에 발생했습니까?
범인의 인상착의는요?
제가 부하 직원 보내드릴 테니 자세히 설명하세요.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는듯 태연히 내 곁을 지나갔다.

나는 거의 죽음에 다가 가고 있었다.
내가 의지하던 내가 믿었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배반했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
나의 종교 지도자도, 나의 친구도,
교육자도, 경찰도 위기에 처한 나를 모두 외면했다.

내 몸이 죽는 것보다 내 신뢰가 무너진 것이 더욱 슬펐다.

저기에서 얼굴이 시커먼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약간 무섭기도 하고, 기분 나쁘기도 했다.
동남아에서 왔을까, 아프리카에서 왔나, 아님 미국의 소수민족.
도저히 신뢰할 수 없었다. 우리 민족도 아니니까.
내 마음이 '대-한민국'을 외치려 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살려달라고 외치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민족인 그 존경받는 모든 이들이 지나쳐버렸다.
외국인이 그것도 얼굴이 까만 사람이 나를 도와주겠는가.

나는 이제 어떠한 희망도 품을 수 없었다.
드디어 죽음의 사자가 내 주위를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저승으로 가야할 때가 되었나 보다 하고 체념을 했다.

더 이상 여기에서 살면 뭐하리.
이젠 가리라.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이 세상이 싫다.
눈을 감았다. 두 손으로 찔린 옆구리를 감싸 안았다.
세상과 나 사이에 있는 문을 걸어 잠구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아, 그런데 그 까만 사람이 내게 급히 뛰어왔다.
쿵쿵대며 무섭게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강도 당한, 부상 당한 나를 또 때리고 강도질할까 두려웠다.

죽음과 맞닥드린 순간에도 그러한 공포가 생겼다.

뭔가 말을 하려 했다.
아마 영어와 우리말을 섞어하고 있나보다.
잘 이해할 수가 없다. 무서웠다. 싫었다.

내가 자신을 이해 못하자 조용히 일어나 택시를 잡았다.
나를 부드럽게 감싸안고 택시 뒷좌석에 태웠다.

나를 납치하려나 보다.
이젠 정말 죽었다.
내 수중에는 별로 돈이 되는 것도 없는데.
차라리 다 주고 싶었다.
내 친한 사람, 내가 믿는 사람들이 다 배신한 마당에,
다 죽어가는 마당에 무엇이 아깝겠는가.

나는 택시 안에서 기절을 하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같았다.
그토록 많은 피를 흘렸는데.

간호사의 말이 하마터면 큰일 날뻔 했단다.
나를 데리고 온 까만 사람이 자신의 양복 상의로
칼에 찔린 피나는 옆구리를 막아주어서 살 수 있었단다.
그 허름한 차림의 외국인이 내 병원비를 다 내 주었단다.
이름도 밝히지 않고, 전화번호도 남기지 않고.
혹시 병원비가 더 필요하면 자신이 나중에 와서 다 내주겠단다.

나는 두리번 거리며 그 사람을 찾았다.
내가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꼈을 때 그가 나를 구했다.
내가 믿었던 모든 것들을 포기했을 때 그가 나를 안았다.
내가 나 자신조차도 신용할 수 없을 때 그가 나를 사랑해주었다.

나는 살아났다.
내가 신뢰할 수 없었던, 두려워 했던, 별로 좋아하지 않던
그 국적을 알 수 없는, 언어가 통하지 않던 그 외국인 근로자 덕분에.

그가 나의 믿음을 회복시켰다. 인간에 대한.
그가 나에게 사랑을 돌려주었다. 낯선 이에 대한 애정을.
그가 나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었다.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도록.

오늘도 나는 그 사람을 생각하며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누군가가 또 내게 환멸을, 불신을, 분노를 일으키는 일을 할 때
그 날 그가 나를 위해 몸소 보여준 진실하고 순수한 사랑의 행위를 생각한다.

나도 그 얼굴이 깜한 사마리아인처럼 살아야지.
조그만 것이라도 이웃에게, 남에게 도움이 되어야지.
내가 한 행위에 대해 인정받으려 하지 않고, 내세우려 하지 말아야지.

조용히 숨어서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바로 그것이 말도 통하지 않는 그 사마리아인이 내게 주고간 평생의 교훈이었다.

오늘도 나는 그 사마리아인을 닮으려 애쓰고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러한 사마리아인이 되고 싶다.

겉만 번드르르한, 겉만 인격자인양 치장한 어리석은 인간이 되지 않고
비록 겉은 어눌하고, 순진하고, 어리석게 보이지만 마음이 따스한, 진실된
그러한 사마리아인이 되고 싶다. 내게 다가온 그 착한 사마리아인 처럼




10 Comments
하늘곰 2006.03.20 04:28  
  지금 이 시간에도 자기들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절대 복종을 요구하고 또 자신들의 오류를 감추기 위해 절대 순종을 요구하며 세상은 살 만 하다고 속이는 사람들이 5% , 그것이 아니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5%, 나머지는 순한 양이 되어 살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90% 나는 그 중 어디에 속하는 사람일까? 나는 그 중 어디에 속해야 가장 행복할까? 나는 .......
해야로비 2006.03.20 08:54  
  묵묵히 내 자리를 지키고 내 일을 하는 사람....
처음 새겼던 생각대로....시간이 지나도 그대로 할 수 있는 사람... 그런사람이 되면...누구를 원망하지도 않고...자족할 수 있지 않을까...
자족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사마리아인을 닮아 가고자 하는 마음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 생각만을 갖기에도 지금 나는 마음의 여유도 없고.....남에게 도움이 되기보단.. 내가 손해를 보고 있지는 않나 조바심하게됩니다.
김형준 2006.03.20 10:47  
  하늘곰님(Mr. Heavenly Bear)!
세상은 참 불공평할 때가 많이 있는 것 같아요.
큰 틀에서 함께 사는 세상을 이루려고 하기 보단
내가 속한 그룹, 특히 엘리트 그룹만을 위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평안히 살려면 조금은 양보하고,
많이 나누며, 항상 남을 생각하는 삶을 사는
소수에 속하는 것이 그래도 가장 보람있게
사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형준 2006.03.20 10:50  
  해야로비님!
잘 지내십니까? 이제 얼마 안있으면 다음
가곡부르기 모임에서 만나뵙겠습니다.
늘 봉사하시고, 수고하시는 모습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에는 해야로비님께서도 노래를 하나 하시면
어떠시겠습니까? 작년 12월이었나요? 시낭송
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조금 밑지면서 사는 삶을 살기로 했답니다.
손해보니까 아쉽고 짜증날 때도 있지만
특히 나보다 조금 못한 사람들에게 밑지는
것은 전혀 아깝지가 않는 것 같아요.
이미 해야로비님은 시간을 나누시고,
노래를 통한 봉사를 실천하고 계시니
남에게 도움이 되고, 헌신하는 삶을
실천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파도 2006.03.20 11:23  
  또 한번 자성하고 다독이게 되네요~~
김형준 2006.03.20 11:32  
  파도(Ocean Wave)님!
공동체의 삶은 참 오묘한 것 같아요.
인생엔 늘 내면과 외면의 세계가 있네요.
내외면이 거의 비슷한 사람도 있고
또 너무도 다른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요.
겉으론 사랑을 부르짖고, 박애를 부르짖지만
속으론 나 자신의 이익을 늘 추구하는 사람도 있고,
말로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지만
행동으로 늘 조용히 나눔과, 베품의 삶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지요.
비록 겉으론 초라하고 비록 배움이 별로 없고,
비록 생김이 매력적이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더 정이 많고, 더 나누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가진 것이 많아지면 질 수록 조금이라도
나누고, 베푸는 것이 더 아깝고 힘든 것일까요.
우리 모두가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크고 어려운 숙제를 껴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요한 바다에 자주 밀물과 썰물을 만들어
주시는 파도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파도가 없으면 우리가 사는 바다는 아마
아무런 일도 없는 양 그냥 태평하게 잠을
잘 지도 모르니까요. 깊은 물 속에서
작은 물고기들이 큰 물고기들의 등살에
늘 신경성 정신질환에 빠져서 언제 또
위기가 올까 전전 긍긍 하는 지도 모르고요.
감사합니다.
탑세기 2006.03.20 11:53  
  모든 사람이 선한 사마리아인만 같으면 세상은 좀더
아름다울 텐데요.....
저는
봉사를 한적이 없어서 얼마전부터 생각 한것이 시내 나가서 걸을 기회가 되면 무거운 짐을 들고 가시는 분이 계시면
쫒아가서 들어드리곤 합니다

첨엔 쑥스러웠는데 지금은 익숙해져서
남 녀 노 소 불구하고 하지요 그리 하고나면
참 행복해지더군요 ...
김형준 2006.03.20 12:23  
  탑세기님!
한 번 상상해 보았습니다. 탑세기님 뒤를 걸으며
탑세기님께서 다른 분의 무거운 짐을 덜어드리는
모습을 보고 있는 나의 모습을요. 나눔이란 그렇게
다른 이가 힘들어 할 때 말없이 다가가 무거움을
나누어지는 것이겠지요. 시간으로, 물질로, 마음으로,
기도로, 사랑으로, 미소로.....
나눔을 실천하시는 삶이 부럽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더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해봐야 겠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해 불평할 것이 아니라
내게 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으로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눔을 실천해야 겠지요. 좋은 실천적 삶의 모델이
되어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송인자 2006.03.20 14:57  
  이건 어떤 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시는 글인가요?
아님 진짜 강도를 당하신건가요?
사실 여부를 떠나서...
암튼 감동적인 글입니다.
부디 몸,마음 모두 건강하시길 빕니다.^^
김형준 2006.03.20 23:17  
  송인자님!
질문 감사드립니다.
제가 위에 쓴 글은 실제 상황과 상징적
상황을 접목한 것입니다. '목사님'은
그저 기독교의 리더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고,
모든 종교의 리더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른 캐릭터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강도
당한다 하는 것도 신체적인 강도행위만을
뜻하지 아니하고 여러 다른 면에 있어서의
뺏고 빼앗기는 상황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잘 지내십시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