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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의 정

정영숙 7 1817
1. 고모의 정
 

  해마다 여름이 오면, 지리산 자락에 계시는 고모로부터 연락이 온다.
"종호에미냐? 언제휴가 올끼고? 올 때 꼭 전화하고 온네이"
고모의 가냘픈 전화 음성을 듣고 난 나는
그날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발을 덤벙덤벙 헛짚고 다닌다.
그리고 마음은 고향산천을 향해 뛰어 다닌다.
 
  아름다운 내 고향 함양.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과 쓰레기로 오염된 땅이지만 내가 어릴 때는 감격스럽게 아름다운 산천이었다.
우리 가족은 일주간의 휴가를 얻어 고모의 집을 향하여 버스를 탔다.

  버스의 창틈으로 코를 간지럽게 하는 그윽한 풀꽃 향기는 온몸을 사그라지게 녹여 주었다. 뿐만 아니라 차창 유리알 사이로 필름처럼 돌아가는
고모의 소탈한 표정은 나로 하여금 무언의 미소를 짓게 하였다.
 
  항상 인정덩어리를 손에 쥐고 계시는 고모를 만난다는 보고픔에 버스가 천천히 가는 것 같은 성급함이 왔지만, 가슴을 누르고 누르는 사이에 차는 고모의 집 입구까지 왔다.
"고모! 고모!"
큰소리를 지르며 부르니까 밭에서 일을 하다가 달려온 고모는
“아이구 내 강생이 왔구나!" 하고
만나자마자 내 엉덩이를 톡톡 때린다.
아들딸이 결혼을 하여 손자까지 얻은 나를 보고 고모는 강생이라고 부른다.
그래도 나는 고모 앞에서는 강아지가 되어 졸랑졸랑 꼬리를 흔들며
돌아다니고 싶다.

  고모는 작은 체구인데 키가 크고 잘생긴 아들을 넷이나 낳아 두 아들은 외국에, 두 아들은 한국에 살고 있다.
며느리들이 어찌나 효성이 지극한지 보는 이로 하여금 기쁨과 시샘이 졸졸 흐르게 한다. 복뎅이 우리고모, 점심 식사 후 산 수박을 툭 쪼개어
나의 입에 넣어주며
"내 새끼 많이 묵어라이. 내 강생이 순하기만 했지
욕심이 없어서 만날 동생들한테 뺏기기만 하고.
아이 내 귀여운 강생이..."
또 고모부가 참나무에서 따온 표고버섯을 맛있게 복아 주며
“새끼야! 많이 묵고 많이 커 라이"라고 하니까
가만히 앉아 웃고 있던 딸이 참았던 웃음이 폭발하여 그만 밥상이 좀 어수선하게 되었다. 딸이 하는 말
“고모할머니는 엄마가 지금 몸무게가 몇 키로 그램인데 먹고 커라 합니까?"하며 또 비식비식 웃었다.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토종꿀에다 약초, 약술, 열매 등을 따와서 입에 넣어준다. 또 얼굴을 쓰다듬어 면서
“ 내 강생이 어찌 그리 큰오빠를 쏙 빼 닮았을까!
나는 천국가신 오빠가 생각나면 강생이 사진보고 오빠를 부른다이...
그 말에 나도 눈물이 핑 돈다. 어머니도 목멘 소리로
“그건 맞다. 좋호 에미가 꼭 오빠를 닮았지. 얼굴, 식성까지 꼭 닮았지”

  칡넝쿨 걷어치우며 산길 깊숙이 들어가면 아무도 모르는 야외 목욕탕이 있다. 하나님과 우리들 밖에 아무도 모르는 독탕 이다.
우리들은 여기가 <에덴동산> 이라고 즐거워하며 물장난을 치고 논다. 고모는 달콤한 향기 풍기는 꽃가지를 끊어와 나의 머리에 꽂아주며
"새끼야 우찌 이리 예쁠 꼬, 목욕 깨끗이 해라이-"

  또 계곡을 타고 올라가면
피서객들이 텐트를 처 놓고 짚시 촌을 이루고 있다. 지리산 계곡의 물은 힘차고 맑게 흐른다. 나는 물살을 잡으며 올라 가다가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하였다. 뒤에서 미심쩍어 따라오던 고모는 내가 발을 헛디딜 것 같이 느끼면 깜작 놀라
"아이구! 업어줄까?"
참으로 어이가 없어 배꼽을 잡고 웃을 지경이다.
겨우 40kg이 조금 넘은 고모가 70kg의 질녀를 업고 물살을 헤쳐 간다니...

  내 새끼 많이도 컷다며
엉덩이를 두드리는 고모를 몇 일간 보아오던 딸이
“고모할머니는 엄마만 너무 좋아 하는데 이모가 질투 내겠다"며 미안쩍어 하였다. 그 말에 공감이 가지만
낸들 막을 둑이 없어 정이 터저 나오는 대로 흘러버릴 뿐이다.

  내일 떠나자는 약속을 한 우리 가족들은 6일간의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도란도란 하였다. 그중 딸이 느끼는 바를 말하면서
엄마는 조금 반성해야 된다고 지적하였다.
왜냐하면, 고모할머니는 엄마를 너무너무 사랑 하시는데, 엄마는 조카와 질녀들한테 호랑이 같이 무서운 고모로 통하고 있으니, 이번 기회에 깨닫고
고치라는 것이었다.

  충고를 듣고 보니 맞는 것 같다. 나도 고모인데 조카와 질녀들은 나만 보면 무서워서 살살 피하고 말을 안 한다.
대학졸업을 한 조카들, 꼬막내기 조카들, 심지어는 한집에 살다시피 한 여동생의 아들딸도 이모가 무섭다며 인사만 하고 나간다.
오늘날까지 한 번도 그들에게 꾸중이나 작난 삼아 헛 주먹도 올린 적이 없는데 왜 호랑이라는 별명을 가졌는지 몰라서 고모에게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고모! 나는 고모가 좋은데 조카들은 나를 피하거든요.
어찌하면 돼요? 내손에 가시가 돋친 것도 아니고
내 눈에 권총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만 보면 슬슬 피해 도망만가니,
아마 나죽고나면 울어줄 조카 놈들은 하나도 없을 것 아닙니까?“
하고 반 농담으로 물었더니 고모가 펄쩍 뛰며
“고 년 놈들이 피해? 네가 얼마나 순하고 좋은데, 어릴 때 좀 말이 없어서 내가 땅바닥을 치고 말을 시켰다만-,
그래도 입을 열었다면
씨가 되는 말을 하여 요게 뭐가 되여도 될 것 같아
내가 얼마나 자랑을 하고 다녔는데“ 라며 열을 올렸다.

  질문의 판단을 정확하게 하지 않고
그저 나를 어릴 때 업고 기른 사랑만 남아 내편만 들고 있으니 답 찾기는 어려웠지만, 말수가 적고 했다면 씨가 꼭 박히도록 했다는 그 냉정함이
나로 하여금 반성의 요지가 되었다.

  이름 모를 새들이 푸드득 푸드득 날고
밤이면 꾸르륵 꾸룩 시를 읊는 듯한 운율을 느끼게 하는
지리산 깊은 곳에, 여름이 오면 구름과 산이 한 몸 되여
어울리는 산꼭대기에 살고, 봄, 가을은 들꽃을 꺽어 면류관을 쓰고
다니는 -에덴의부부-인 고모부 내외는
겨울이 오면 마을로 내려와 장작불을 지핀다.

  초록의 산과들은 내 영혼을 분홍빛으로 곱게 물들이고
돌 뿌리를 차고 가는 하얀 물살은 오염된 회색의 물을 깨끗이
정화시켰다. 낭만이 조개껍질처럼 깔린 고향의 정취를
가슴과 눈에 담고 우리는 숨이 막힐 듯한 도심의 생활터전으로 돌아왔다.
내년 여름에 고모님이 또 오라는 정다운 음성을 들으리라 생각하고---.

  이 글을 써서 수필집을 낸 3년 후에 고모와 고모부님은 천국으로 가셨다
7 Comments
열무꽃 2008.08.10 08:05  
아이구 내 강생이 많이 묵어래이!
천국에서 미소 짓고 계시겠심더.
정영숙 2008.08.10 18:57  
김경선원장님! 더운데 어찌 보냅니꺼 ?저는 자녀들과 바닷가에, 또 사랑샘가족들과 거제바닷가에 가서 쉬었습니다. 병원도 휴가안냅니꺼? 길고긴 수필을 끝까지 읽어주시니 고맙습니더. 여름만 오면 고모님 생각이 납니다. 아마 천국에서도 많이먹고 많이커라 할것 같습니다.ㅎㅎㅎㅎ
아참! 22-24일까지 쉼터 가족들과 지리산에 가는데 우짜면 좋겠습니꺼? 강목사님께 부탁좀 해주이소.
열무꽃 2008.08.11 07:40  
정영숙샘,
사람생식구들이랑
지리산 다녀 오시소.
창동사거리의 여름은
좀 덥습니다.
도월화 2008.08.12 15:32  
정영숙 선생님, 무더위에 건강, 건필하고 계시나요.. 저도 어릴 적엔 방학 때마다 할아버지와 큰고모 계시는 고향마을을 찾곤 했지요. 정영숙선배님도 요즘 부쩍 더 고모의 정이 그리워지시죠.^^ 정겨움이 달빛처럼 차오르는 글 감사합니다.
정영숙 2008.08.13 22:16  
수필가 도월화님, 여기 내마음에 들어왔네요. 해마다 여름이 오면 우리 가족들은 고모님을 그리워한답니다.그리고 이 글을 고모님의 아들들도 읽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이야기 한답니다. 참으로 제 고모님은 인정빼고는 자랑할것이 없지만 그 인정과 사랑이 다른것 다 갗춘것 보다 많지요.고밉습니다. 도월화님!
열무꽃 2008.08.19 07:22  
정샘, 주말 함양일대를 여행하며 일두 정여창고택을 다녀 왔습니다.
좌 안동, 우 함양을 설명하며 효를 특히 중요시 했던
일두할아버지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는 저 또래의 후손은
300년이 넘은 집을 아름답게 보수해서 살고 계시대요.
우째 알고 왔습니꺼 하시기에 마산의 정영숙선생님께서
일두할아버지 이야기를 하시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울산의 조카 정원종원장님 생각도 났구요.
정영숙 2008.08.19 22:12  
함양을 다녀오셨군요. 거기는 유교. 성리학의 맥을 이어가는 분들이 살고있는 곳인데 제 할머니가 기독교를 믿고 문중회의에서 쫓겨난 고택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잘 안갔는데 그래도 후손이라 요즘은 오빠랑 자주 갑니다. 일두선생님의 효심에 관하여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는데 막상 저는 그렇지를 못합니다.
정원종 조카는 일두 정여창의 17대손 저는 16대손 입니다. 참말로 기독교 하고는 아닙니다.
김원장님 남의 조상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럼 수동의 남계서원과 상림숲의 역사의 인물도 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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