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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골마을의 이야기

김건일 1 1758
가라골 마을의 이야기

1.먼당밭

김건일



마을에는 아직 먼동도 트지 않았다
햇빛이 아직 앞산 머리를 넘어오지 않아서
창호지 문살에는 아직 어둠에 물들어 있었다
하고지비 노인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찬물에 얼굴을 대충 씻고
지게에 괭이 삽 낫 새끼줄을 얹고
사립문을 나선다
허리 꼬부러진 앞집 양목사의어머니가
새벽 예배의 종을 치고 집으로 돌아오다
하고지비 노인과 마주친다
두 사람 다 마을에서 제일 먼저 일어나는 사람
목사 어머님은 교회의 새벽종을 치고
하고지비 노인은 먼당밭으로 밭을 일굴러
뒷산으로 오른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다네
나에게는 딛고 선 이 땅 뿐




어둠 속에서도 하고지비 노인에게는
딱딱하게 발에 닿는 땅의 촉감이
든든하게 어떤 힘을 온 몸에 전해주고 있었다


먼당밭에 도착하자 그제야
앞산머리에서 햇빛이 하늘로 퍼지고 있었다
노인은 지게를 언덕에 내리고
어제 밤 늦게 까지 쫗던 밭이랑에
괭이로 내려쫗기 시작했다
괭이를 내리쫗을 때 마다 땅은 깊이 패여서
부드러운 흙으로 부셔졌다
딱딱하던 땅이 부드러운 흙으로 부셔지면서
맨흙의 땅이 한이랑 씩 한이랑 씩 밭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가라골 마을은 산골짜기 였다
깊은 산골짜기도 아니고
얕은 산골짜기라서
마을에서 평평한 곳이라고는
30 가호가 들어선 집터 뿐이었고
마을의 귀퉁이로
가느다란 개천이 흐를 뿐이고
집 근처에 100평 넓으야 500평 정도의 텃밭이 고작이었다
노인은 많은 밭을 가지고 싶었다
노인이 밭을 만들 곳은 앞산 아니면 뒷산 이었는데
앞산은 조씨의 산이고 뒷산도 낮고 평평한 곳은 팔촌 내감동생의 땅이라 노인이 손댈 곳은 뒷산의 먼당인 산머리 땅 뿐이었다 먼당밭이었다


노인이 밭을 일구는 작업은 꽤 오래전 부터의 일이다
아니 노인이 태어날 때 이전 부터의 일이었는지 모른다
부모로 부터 아무것도 물려 받지 않고 3 형제는 이 가라골 마을로 들어왔다
면사무소와도 멀리 떨어져 있었고
길이라고는 차가 한대 간신히 지나다닐 신작로가 있었는데 마주오는 차를 피할려면 차가 서로 뒷걸음질을 쳐서 조금 넓은 길이 나와야만 차가 다닐 수 있는 낙동강 강변의 조그만 두메산골 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산골짜기는 노인이 오로지 땅을 밭으로 만드는데는 더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하루 종일 땅을 산을 점심을 굶으면서 쫗아도 누구하나 비웃는 사람도 없는 두메산골 이었다


노인은 밭을 만드는것이 재미기 났다
울퉁불퉁 잡나무와 돌덩이와 아무렇게나 엉킨 풀들을
괭이로 쫗아나가면 엉망진창인 땅이 부드러운 흙으로
발에 푹신 푹신 밟히는 흙살 많은 밭으로 땅은 변해 가고 있었다 땀을 흘릴 때 마다 못쓰는 땅이 푹신 푹신 좋은 땅 밭으로 바꾸어져 가고 있었다 일을 하고 나면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온몸은 피곤도 하였지만 온몸은 맹열하게 피가 돌고 식욕이 끝없이 솟구쳐 왔다 꼭두새벽 부터 아침 나절 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게 밭을 일구니 밭은 벌서 앞마당 보다 넓어져 있었다 앞마당 텃밭 보다도 조금도 못하지 않은 밭이 먼당산 꼭대기에 밭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노인의 입가에는 만족의 웃음이 이 밭에서 자랄 작물이
눈 앞에서 파랗게 일렁이고 있었다
콩 팥 보리 옥수수 밀 배추 무우 고구마 감자
마치 그것들은 지금 당장 다 자란듯이 노인의 눈 앞에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돌아오는 지게에는 잔솔가지와 풀뿌리들이 한짐 얹혀져 있었다 아침은 쌀밥도 아니었다 보리밥 이었다 보리밥에 된장국 이었다 된장에 며루치 몇마리 풋고추 몇개 뜨물을 부어서 솥에 넣고 청솔가지로 불을 때면 보리밥이 끓어면서 풀풀 보리밥물이 넘쳐서 된장뚝배기에 들어가고 보리밥솥이 한번 푸르르 끓어서 넘치고 조금 있다가 뜸을 들이는 불을 한번 더 짚힌 후 솥뚜겅을 열고 소나무 주걱으로 보리밥을 슬슬 이기면 보리밥이 푹 퍼져서 사발에 고봉으로 올라 붙는다 밥상에 보리밥과 된장국과 풋고추와 풋김치가 오르면 노인은 숟가락 보리밥을 한술 뜨서 입에 가져가기가 바쁘게 된장과 풋김치가 입에 술 술 넘어간다 밥 한그릇이 순식간에 다넘어간다


아침밥을 불이나게 먹어치운 노인은 돼지 마구간과 소의 마구간에 구정물과 살겨를 타주고 밭을 일구다 가져온 풀나부랑이들을 한아름씩 마구간에 넣어죽는 쉴 틈도 없이 또 지게를 지고 뒷산길로 오르고 있었다


나에게는 꿈이 있다네
이 꿈을 어디다 둘꼬
아무데도 둘데가 없다네
꿈을 지고 산으로 오른다네
멀어서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먼당밭은
내 꿈을 심을곳
아무도 모른다네 내 꿈이 묻혀 있는곳
봄이 되면 잎파리 피듯
내 꿈이 돋아나는것을
아무도 모른다네


노인은 비탈진 오르막 산길을 넘어지지도 않고 잠시도 쉬지 않고 오르고 있었다 그의 주머니에는 인삼 몇뿌리와 인절미 몇개와 물병이 있었다 지금 오르면 점심 때도 노인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집으로 왔다가 갔다가 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인삼을 일하면서 입에 넣고 씹어서 자시고 물 한모금 마시고 인절미 한개를 입에 넣고 물마시고 일하면서 틈틈이 음식을 잡수시며 밭을 일구었다 노인이 내려쫗는 산땅은 맨땅이라서 괭이도 튕겨져 나오는 생땅이지만 노인의 줄기찬 괭이질로 아무리 단단하고 돌들이 뒤엉켜 있어도 노인이 몇번만 괭이질을 하면 땅은 부드러운 팥고물 모양 부드럽게 부셔졌다 노인의 밭은 자꾸 자꾸 시간이 지날수록 넓은 밭으로 산땅은 모양이 바뀌어져 가고 있었다


내손은 요술쟁이 손
내손이 가면 어떤 땅도
부드러워 지고
내손이 가면 어떤 밭에서도
곡식이 쏟아진다네
마을 사람들이 흉년에 배가 고파서
양식을 구하려 천지 사방을 찾아다녀도
누구 한사람 아는척 하지 않네
곡식이 없다는 말 왠 말인가
땅이 없어서 곡식을 못 길렀단 말인가
땅이 없다면 바위 위에라도 흙을 퍼얹고
거름이 없다면 개똥 쇠똥 이라도 거름을
주어만 봐
왜 곡식이 자라지 않는가
게을러 가지고선 얻어 먹으려 다니는가


노인의 밭은 이제 그 넓이가 엄청나게 커져서 천평이 넘었다 노인은 그 밭에 대국밀을 심었다 생땅이라 처음이라 퇴비도 주지 않아서 땅이 척박해서 다른곡식은 잘 자라지 않았지만 가을에 밭에 이랑을 짓고 발로 툭툭 차면서 대국밀 씨앗을 뿌리고 잿거름을 뿌린후 발로 툭툭 차서 씨앗을 묻으면 가을비가 몇번 뿌리면 밭이랑에서는 대국밀 잎이 흙을 뚫고 파랗게 쏫아올랐다 겨울이지나고 초여름에 대국밀은 어른 키만큼이나 자라서 길죽 길죽한 알맹이를 달고 있었다 대국밀은 양식이 잘되지 않았지만 닭모이로 주기도 하고 소의 여물로 주기도 하고 물에 불여서 하이얗게 곡물이 빠져나오면 그것으로 밀가루를 만들어 국수나 밀가루떡 호박 범벅죽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대국밀 수확 후에는 고구마를 심었는데 붉은 고구마가 먼당밭에는 잘되었고 밭뚝에는 참박을 심었다


보리도 아니고 밀이면서
참밀이 아니라서 맛이 없어서
아무도 반기지는 않지만
키가 어른 키만한 대국에서 건너온 종자 대국밀
그래도 배고플 때 대국밀로 끓인 호박 범벅죽
아니 먹을 수 없어
양대콩 둥둥 뜬 호박죽 양미간 찡그리며 둘러마시네


대국밀을 수확한 후에는 고구마를 주로 심었다. 고구마는 아무 곳에나 잘 자랐다 고구마를 가을에 수확한 후 종자 고구마는 따뜻한 방안에 큰 사구단지에 흙을 담아서 그 흙 속에 고구마 종자를 묻어 두면 봄에 고구마에서 군데 군데 씨눈이 터지고 푸른 씨의 잎이 뾰족이 내밀면 앞마당 텃밭에 5자 깊이로 넓게 땅을 파고 1자 정도에는 부드러운 흙을 쳐서 넣고 그 흙위에 두엄과 퇴비를 1자 정도 뚜게의 거름을 넣고 다시 부드러운 흙을 한자 정도 넣고 그 다음은 푹 썩은 독하지 않는 퇴비를 한뼘 쯤 부드러운 흙과 섞어서 깔고 그 흙 속에 씨고구마를 심고 다시 그 위에 흙을 한뼘 쯤 덮고 짚으로 덮고 맨 위에는 가마니로 덮어 둔다 밤에는 가마니로 덮지만 햇볕이 쨍쨍 내려쬐이면 가마니를 걷고 고구마 묘판에 물을 듬뿍 주면 묘판에서는 더운 열기와 함께 김이 아지랑이처럼 피어 오르고 1주일 정도 지나면 깔아 놓은 짚사이로 고구마 종자순이 제법 파랗게 잎파리 모양을 하고 쏘옥 쏫아오른다. 나날이 고구마순은 물을 주면 새파랗게 줄기를 뻗어나갔다 그것은 그침이 없는 생명력 이었다 아무도 말리지 못하는 뻗어나감 물만 먹으면 한발 씩 한발 씩 끝 모르게 그것은 뻗어 나갔다 비 라도 한줄기 흠뻑 맞으면 그것은 산이라도 덮을듯이 묘종판에서 텃밭 전체를 점령 하듯이 묘종판 부근은 왼통 고구마순이 천지를 지배하고 있었다 하고지비 노인은 소를 몰아 고구마밭 이랑을 만들고 있었다 이랴 이랴 소를 힘차게 몰아부치며 고구마 밭이랑을 듬직하게 만들어 나갔다 노인이 일할 때는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하여 소는 콧구멍에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흘떡이고 있었다 한나절을 밭을 갈다가 소가 너무나 숨이 가빠 흘떡이자 노인은 그제서야 이마의 땀을 소매로 문지르고 소를 산언덕의 풀밭에 풀어 주었다 소는 숨을 흘떡이면서도 푸르고 부드러운 바래기풀을 혓바닥으로 싸악 감아서 입으로 와싹 와싹 뜯어 먹고 있었다 노인은 물 한모금 마시고 찰떡 한개를 입에 넣자 씹지도 않았는데 찰떡은 꿀떡 목 안으로 넘어갔다 노인은 큰 인절미도 입에 넣기가 무섭게 입에서 두어번 오물거리면 떡이 씹히지도 않고 목으로 넘어 갔으나 한번도 얹히거나 체하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너무나 열심히 일해서 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어서 용광로 같은 체온이 음식물을 순식간에 삭히는 것이리라 하고지비 노인은 푸른 하늘을 보면서 아침 나절에 갈아 놓은 밭을 둘러 보고 저녁 나절 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천여평이 넘는 고구마 밭을 갈고 이랑을 다 만들어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도 거들어 주지 않고 오직 소와 노인 만이 아득한 산의 꼭대기에서 밭을 만들고 이랑을 만들고 고구마를 심어야 하는 것이다 고구마 순은 그날이나 그다음날 아침에 반드시 비가 와야만 심지 그렇지 않고 심을 려면 천평이 넘는 밭이랑에 일일이 고구마 포기에 물을 주어야 한다 노인은 구름이 짙어지자 더욱 신이 났다 비가 오면 밭이랑은 못 만든다 흙이 짓이겨져서 이랑을 만들 수 없으므로 비가 후두둑 내리기 전에 고구마밭 이랑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고구마순을 반뼘 씩 고구마 잎이 3닢이나 4닢이 달리게 잘라서 소쿠리에 수북히 담아 놓는다 고구마순을 심는 것은 마을 아주머니들이 한다 노인이 지고온 고구마순을 반뼘 씩 잘라서 고구마밭 이랑에 1자 간격으로 끝없이 심어 나간다 넓은 밭은 고구마순이 까뭇 까뭇 온 밭을 채워 나간다 고구마 순을 다 심는데도 일꾼들 3명이 하루를 꼽박 일해야 다 심는다 그것도 노인이 옆에서 고구마순을 열심히 날라다 준 때문이지 여자들에게만 맡겨 두면 이틀이 걸려도 다 심지 못한다 저녁 무렵 기다렸던 비가 앞산에서 바람소리를 내며 후두둑 떨어지며 먼당밭으로 비가 몰려 온다


비가 오네
앞산에서 후두둑 소리를 내며
촉촉한 물기가 콧구멍으로 달콤한 냄새를 품기며
성큼 성큼 다가오네
빗방울이 한방울 떨어지면
땅은 가슴을 열고
뜨거운 가슴을 활짝 열고
눈망울을 크게 뜨고
똑똑히 똑똑히 비의 눈망울과
눈을 마추며
비를 입으로 빨아 들이네
미친듯이 미친듯이
정신 없이 정신 없이
황홀하게 황홀하게
이제는 지긋이 눈을 감고
깊은 심음 까지 하면서
땅은 비와 혼연 일체가 되어
자지러지네
비가 오네 비가오네
이대로 죽어도 좋을
미칠듯이 좋은 비가 오네
1 Comments
바 위 2006.02.06 19:12  
  가라골 마을 어디쯤인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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