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음악회 못오신 분들을 위해
역시 동작 빠르시네요.
둘이 지하철 같이 타고 세 정거장 전에서 먼저 내리신 미리내님이 먼저 '예술의 전당'이란 글을 올리셨네요.
늦었지만 -집에도 아직 못 가고- 못 오신 분들을 위해 기억에서 지워지기 전에 관람후감을 한마디 쓰고 가야 도리가 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못 간다고 해놓고 가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멍청해서 늘 그러하듯이 영문도 모르고 불쑥 모임에 자주 가거든요.
죄송하게도 오늘도 구체적으로 무슨무슨 가곡을 부르는 음악회인지 얼핏 듣고 잊어먹고는 초대권도 없이 2부에 가까스로 시간에 대 갔습니다.
이안삼 선생님 만나 주시는 초대권 받지 않았으면 되돌아갈 뻔 했다니까요.
제1회 가고파회가 주최한 한국이 나은 작곡가 93세의 김동진 선생님 사제 음악회였습니다.
그 연세에 곳곳한 자세로 한점 흐트러짐 없이 앉아 계시는 뒷모습이라도 보려 얼마나 뒤에서 두리번 했게요.
공연장은 자그마한 리사이틀홀이었으니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VIP는 센터에 주고 않아 계시잖아요.
한 250여석이 되는 좌석이 거의 가득 찼고 두리번거리며 시간 좀 끌다가 보니 마지막으로 2층에 의자에 착석을 하게 된 거 같습니다. 공연장에서 마지막에 앉아보기는 처음입니다.
1부에 이미 선생님이 작곡하신 <수선화>, <내마음>,<님이여>는 연주가 끝이 났고 2부 끝순서로 <목련화> <가고파><금강산찬가>가 연주되었습니다.
중간에 김희정 소프라노의 <산이 저만치서><바람> 박범철 테너의 <내맘의 강물><가을을 보내며> 동명이인 김희정 소프라노의 <가을을 보내며><님이 오시는지>가 두분 김도실님, 정혜경 피아니스트의 반주로 연주되었습니다.
마지막 김동진 선생님의 곡으로 마무리를 하러 무대로 나오신 최원범 교수께서 <목련화>를 부르시고 나서 간단히 멘트를 하셨거든요? 두 달전에 한갑을 맞으셨다는 말씀을 하셨고 몸 상태가 안 좋지만 스승님 앞이니까 부른다고 하자 격려의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목련화>를 1974년도에 선생님께 본인이 처음 받아 부른 곡이었는데 미국에 가서 공부하느라 애석하게도 부르지 못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히트는 엄정행 선생이 했다는 말씀이 속에 내포돼 있는 거겠죠.
<가고파>를 부르실 때는 특이한 손모션이 잘 어울리기도 했습니다. 그 곡이 끝나고 나서는 객석에 양해를 구하고 무대 밖에 나가셨다가 날겨란을 마시고 다시 들어오셨답니다.
"몇 개의 계란을 드셨느냐고요?"
저야 모르죠.
그 짧은 시간에 나가셔서 몇 개의 날계란을 깨 드시고 들어오셨는지를요.
하여튼 눈깜짝할 사이니까 여러 알 드신 것 같지는 않아요.
하여간 들어오셔서 마지막곡인 <금강산 찬가>를 부르셨거든요.
그 곡에 들어가기 전에 작사자이신 그 이름도 유명한 정치근 선생님을 관객에서 찾아 일어나시도록 하셨답니다.
"장로님 오셨지요? 어디 앉아 계십니까?"
제가 앉은 바로 옆, 옆자리에 앉으신 장발 노인께서 엉거주춤 일어서시더군요. 언제 뵈도 알 수 있을 만큼 확실히 옆에서 뵐 수 있었습니다.
전 그 곡을 처음 들었는데 하여간 오싹하더라고요.
마지막 연주곡이 끝나자 김선생님께서 자그마한 체구이시지만 건강하신 곳곳한 모습으로 무대에 오르셨고 13명의 작곡자 제자들이 무대에 올라 스승께 고개숙여 일동 인사를 드릴 때 한국의 가곡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듯하였습니다. 그 역시 감개무량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는 박범철 터너께서 부르신 <추국>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만,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차를 마시며 하다가 들으니가 1부에서 한 <백두산>과 2부의 <금강산찬가>가 역시 오늘의 하이라이트가 아닌가 하시더군요.
찻값은 제가 이번에 계산하려고 했는데요-그럴 이유가 있어서- 그런데 박금애님이 중간에 미리 내셔다 하여 민망했습니다. 최종 7명이 남아 차 한잔 나누고 헤어답니다.
둘이 지하철 같이 타고 세 정거장 전에서 먼저 내리신 미리내님이 먼저 '예술의 전당'이란 글을 올리셨네요.
늦었지만 -집에도 아직 못 가고- 못 오신 분들을 위해 기억에서 지워지기 전에 관람후감을 한마디 쓰고 가야 도리가 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못 간다고 해놓고 가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멍청해서 늘 그러하듯이 영문도 모르고 불쑥 모임에 자주 가거든요.
죄송하게도 오늘도 구체적으로 무슨무슨 가곡을 부르는 음악회인지 얼핏 듣고 잊어먹고는 초대권도 없이 2부에 가까스로 시간에 대 갔습니다.
이안삼 선생님 만나 주시는 초대권 받지 않았으면 되돌아갈 뻔 했다니까요.
제1회 가고파회가 주최한 한국이 나은 작곡가 93세의 김동진 선생님 사제 음악회였습니다.
그 연세에 곳곳한 자세로 한점 흐트러짐 없이 앉아 계시는 뒷모습이라도 보려 얼마나 뒤에서 두리번 했게요.
공연장은 자그마한 리사이틀홀이었으니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VIP는 센터에 주고 않아 계시잖아요.
한 250여석이 되는 좌석이 거의 가득 찼고 두리번거리며 시간 좀 끌다가 보니 마지막으로 2층에 의자에 착석을 하게 된 거 같습니다. 공연장에서 마지막에 앉아보기는 처음입니다.
1부에 이미 선생님이 작곡하신 <수선화>, <내마음>,<님이여>는 연주가 끝이 났고 2부 끝순서로 <목련화> <가고파><금강산찬가>가 연주되었습니다.
중간에 김희정 소프라노의 <산이 저만치서><바람> 박범철 테너의 <내맘의 강물><가을을 보내며> 동명이인 김희정 소프라노의 <가을을 보내며><님이 오시는지>가 두분 김도실님, 정혜경 피아니스트의 반주로 연주되었습니다.
마지막 김동진 선생님의 곡으로 마무리를 하러 무대로 나오신 최원범 교수께서 <목련화>를 부르시고 나서 간단히 멘트를 하셨거든요? 두 달전에 한갑을 맞으셨다는 말씀을 하셨고 몸 상태가 안 좋지만 스승님 앞이니까 부른다고 하자 격려의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목련화>를 1974년도에 선생님께 본인이 처음 받아 부른 곡이었는데 미국에 가서 공부하느라 애석하게도 부르지 못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히트는 엄정행 선생이 했다는 말씀이 속에 내포돼 있는 거겠죠.
<가고파>를 부르실 때는 특이한 손모션이 잘 어울리기도 했습니다. 그 곡이 끝나고 나서는 객석에 양해를 구하고 무대 밖에 나가셨다가 날겨란을 마시고 다시 들어오셨답니다.
"몇 개의 계란을 드셨느냐고요?"
저야 모르죠.
그 짧은 시간에 나가셔서 몇 개의 날계란을 깨 드시고 들어오셨는지를요.
하여튼 눈깜짝할 사이니까 여러 알 드신 것 같지는 않아요.
하여간 들어오셔서 마지막곡인 <금강산 찬가>를 부르셨거든요.
그 곡에 들어가기 전에 작사자이신 그 이름도 유명한 정치근 선생님을 관객에서 찾아 일어나시도록 하셨답니다.
"장로님 오셨지요? 어디 앉아 계십니까?"
제가 앉은 바로 옆, 옆자리에 앉으신 장발 노인께서 엉거주춤 일어서시더군요. 언제 뵈도 알 수 있을 만큼 확실히 옆에서 뵐 수 있었습니다.
전 그 곡을 처음 들었는데 하여간 오싹하더라고요.
마지막 연주곡이 끝나자 김선생님께서 자그마한 체구이시지만 건강하신 곳곳한 모습으로 무대에 오르셨고 13명의 작곡자 제자들이 무대에 올라 스승께 고개숙여 일동 인사를 드릴 때 한국의 가곡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듯하였습니다. 그 역시 감개무량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는 박범철 터너께서 부르신 <추국>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만,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차를 마시며 하다가 들으니가 1부에서 한 <백두산>과 2부의 <금강산찬가>가 역시 오늘의 하이라이트가 아닌가 하시더군요.
찻값은 제가 이번에 계산하려고 했는데요-그럴 이유가 있어서- 그런데 박금애님이 중간에 미리 내셔다 하여 민망했습니다. 최종 7명이 남아 차 한잔 나누고 헤어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