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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바와 함께 다녀온 친정

바다박원자 7 1492
밀바와 함께 다녀온 친정

 지난 추석 때 찾아뵙지 못한 부모와 같은 큰언니 내외를 찾아뵙기 위해
 좋은 것은 남편 몰래 먼저 실어놓고 별것 아닌 것만 그 앞에서 들고 나온다.

오랜만에 밀바의 테이프를 들고 차에 오른다.
오늘은 나도 밀바처럼 매혹적이고 정열적이며 요염하고 섹시한 여자가 되어볼까?
차에 오르자마자 밀바를 만난다.
듣는 사람에 따라 반응이 다르겠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도 밀바의 목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다.
특히 지중해의 장미나 리코르다, 넬리멘씨타가 좋다.
여자인 나도 이렇게 녹이는데 남자들은 오죽할까?

가는 길 양옆에는‘어서 오십시오.’라는 간판이 여기저기서 눈에 들어온다.
저렇게 나를 어서 오라는 곳이 많은데 내가 가는 곳은 나의 친정이다.

길가에서 가냘픈 미소로 무리 지어 인사하는 코스모스의 해맑은 인사를 받으며 
밀바와 함께 어느 새 무안에 도착했다. 초당대학교 건너편으로 3년 동안 매일 같이
8km나 걸어서 다녔던 중학교가 아직도 잘 있는지 궁금하였다.

이젠 초등학교 옆을 지나면서 물청소를 하던 시절을 그린다.
초등학생 시절 비가 오면 학교 길은 질퍽거리고 땅 위의 온 흙이 고무신에
엉겨 붙어 시멘트 바닥이던 교실이 설익은 시루떡이 으깨진 것처럼 교실은
흙으로 범벅이 되어 학교 옆 개울에서 물을 길러 새끼줄로 바닥을 문질러
청소하던 시절. 교실 바닥에 새우가 팔딱거리며 죽어가던 그 그리운 시절을
그리며 마을 안길로 접어든다.

멱을 감던 시내는 우리들의 추억을 모두 흘러 보내 버린 채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어머니가 문을 열고 나오실 것만 같은 집에 도착하니 앞산 마루에
둥그렇게 보금자리를 마련한 두 분의 봉분의 묘가 보인다.
그냥 마당에서만 절을 올린다.

큰언니와 얘기하다가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려고 제일 먼저 혼자 사시는
당숙 집에 들르니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놈은 자식이 있어도 마누라 없는
놈이라며 당신의 속가슴을 다 내어 보이시며 내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우시니
같이 따라 운다. 윗주머니에 몇 푼의 용돈을 넣어드리고 다시 마을길을 돈다.

벌써 몇 채가 빈 집이 되고 쓰러지고 지금 살아계신 분들이 돌아가시면
유령의 마을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고향을 돌보지도 않고 제 부모가 죽어가도 모르고 객지에서 날개도 못 펴고
사는 친구 녀석들 보고 싶지도 않다.

동네 사람들의 생명수였고 영혼의 쉼터였던 우물도 가본다.
그 철철 넘치던 동화 속의 우물은 상수도 개발이란 이름아래 콘크리트 철창에
갇혀 숨도 못 쉰다.

길가에 때늦게 만발한 백일홍 봉숭아가 나를 반기는 것 같아 ‘손대면 툭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현철의 봉선화 연정을 속으로 부르며 집에 돌아와 손톱에
물들일 생각으로 한 움큼 따서 가방에 담는다.

그리고는 다시 광주로 향한다.
막 출발하려는데 먼 친척 형님이 보따리를 올망졸망 챙겨 종종 걸음으로 나와 집이
송정리라 한다. 순간 거짓말을 한다. 가다가 들릴 곳이 있으니 무안까지만 태워다
드리겠다고 하니 무안 앞에 큰골에서 남편과 만난다며 그 곳에서 내려달라고 한다.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이 뺏길까 봐 거짓말한 것이 순간 부끄러웠다.
오늘만큼은 혼자서 있고 싶었다.
아니 정열적이고 요염하고 매혹적인 밀바와 동행하고 싶었던 것이다.
7 Comments
오숙자.#.b. 2003.09.21 17:15  
  바다님 친정 나드리를 다녀오셨네요.
친정,
말만 들어도 정겨운 느낌
더우기 어머니의 손길과 사랑이 담겨있어
그냥 말만 들어도 그리움이 밀려옵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면 언니나 오빠네가 친정이 될 수 도 있지만
그래도 그 느낌은 다른것 같아요.

친정 다녀오는 바다님이 부러우네요.

다음에 밀바와 맘껏 동행할 기회가 또 있을겁니다
한번 만들어 볼까요...
바다 2003.09.21 17:22  
    늘~ 그리운 교수님!
친정 !
말만 들어도 그냥 콧날이 시큰해진 이름이지요.
교수님도 친정이 많이 생각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가을이 가기전에 밀바랑 교수님이랑
그리고 우리 그리운 사람들끼리 동행 한 번 해 볼 수
 있기를 학수고대 해봅니다
그것도 변산반도쪽에서요.
선운사의 단풍 내소사 주변의 절경들
그리고
가을바다
참 좋을 것 같아요
음악친구 2003.09.21 23:27  
  죄송해요
전 친정이 아래층이예요
친정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내 친구들이 날 얼마나 부러워 하는지...
근데 가까이 있을수록 소중함을 모른다고 어떨땐 힘들다고 엄마한테 짜증도 부리니~
난 맞아야 돼~맴매~때찌~때찌~

하지만 친정나들이 하는 설레임은 모르니 밀바를 들을일도...
전 욕심도 많죠?

하여튼 밀바와 함께 친정 나드리 잘하고 오셨어요
서들비 2003.09.22 11:32  
  행복한 시간을 가지셨군요.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아픈것도 ......
저도
어린시절 잠시 살았던
아주 그림같은 곳이 있었는데,
행여나,
그 고운 모습들이 망가져 있지아 않을까 걱정되어서
가 보고 싶어도
냉큼 가 볼수가 없어요.
그냥
마음속의 환상으로 남겨 둘까나?......
나리 2003.09.22 13:08  
  ^*^  바다님! !  ^*^
아까 2003.09.22 15:08  
  5남매 막내로 자란 저는 정도 많고 눈물도 많아요.
어느날 박금애 선생님이 저에게 그대 그리움을 추천해 주셨어요.
그걸 듣는 순간 얼마나 눈물이 쏟아지던지.
거의 통곡 수준이었습니다.
몇날 몇일 그 노래만 들었습니다.
울고 또 울었지요.
엄마 아버지 다 살아계신데 왜 그리 엄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지.

일찌기 어머니를 여읜 애들 아빠에게 이 노래를 틀어 주며
" 당신도 분명 그리운 사람이 있을거야.
  그리운 사람 생각하며 한번 들어봐." 하는 순간 또 눈물이 줄 줄

아들이 엄마 왜 그러냐고.
그냥 눈물이 줄줄 흘러요.
사실은 엄마가 보고 싶어서인데.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져요.

토요일 음악회가 끝나고 박금애 선생님이 그대 그리움을 작곡한 분이라고 인사를 하래요.
너무 반가와 가까이 갔는데.
또 눈물이 줄줄 흘러요.

그분께 제가 눈물 흘린 얘기를 하며 자꾸자꾸 흐르는 눈물을 닦았지요..

바다 선생님.
저요 10월 10일 금요일 오후에 친정 갈 거에요.
마침 11일 토요일에 수업도 없고
친정 제사인데 오빠야도 오고 다들 온대요.

우리 엄마 얼굴 눈에 박아 와야겠습니다.
 
바다 2003.09.23 10:26  
  아까님!
정 많고 맑은 샘물 같은 아름다운 아까님을 만나게 되어 더 없이 기쁘군요.
오랜만에 친정에 가서 모든 분들 눈에 담고 따뜻한 마음 가슴에 담아 오셔요.
마치 밧데리를 충전하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또 그리워지면 또 가서 충전하시고...
살아계셔도 보고 싶은 부모님.
돌아가시면 더욱 사무치게 보고싶은 부모님이랍니다. 
잘 다녀오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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