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연주.감상후기, 등업요청, 질문, 제안, 유머, 창작 노랫말, 공연초대와 일상적 이야기 등 주제와 형식, 성격에 관계없이 쓸 수 있습니다.
단, 영리 목적의 광고성 정보는 금지하며 무단 게재할 경우 동의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기존의 회원문단은 자유게시판으로 통합되었습니다.

2007년 우리 문화 예술계의 방향

탁계석 2 743
                                                    <주제발표>


                                        2007, 우리 문화예술계의 방향
 

                                                                                                                    탁계석
 

*가치 상실, 格 붕괴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

결국 '문화' 는 '가치'인데 우리는 지금 심한 가치의 상실로 고통을 받고 있다. 나는 오늘 이 시대가 마치, 한 번도 극장 구경을 하지 않은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극장에 와서 적응이 되지 않자, 어색하게 딴전을 피워 주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그 불쾌함이 공연이 끝날 때 까지 지속된 어느 우울한 날의 음악회 같다. 시도 때도 없이 박수를 쳐대고, 휘파람을 불어대는 그 무례함 앞에서 뭐라 해야 할까. 무섭고 두려울 뿐이다.
 
사실 80년대의 중후한 매니아 관객들은 열린 음악회 이후 양산된 철없는 관객들의 호기에 밀려 공연장에 발길을 끊고 말았다. 나는 무던히도 그 시절이 그립다.
아마도 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 후 10년은 우리 역사에서 다시 올수 없는 공연의 황금시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그 때 볼 것은 다 본 셈이다.
한동안 대중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공연의 상승하는 쪽과 떨어지는 쪽이 함께 혼돈되기 시작했다. DJ의 문화도 돈이 되어야 한다는 문화 산업논리는 공무원들을 설득하는데 주효했다. 일정 부분 납득이 가는 부분도 있지만 그 영역을 한정하지 않고 전 분야에 적용되는 우를 범했다.
수치 측정이 가능하고 무게로 달수 있는 문화의 계량화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이유 있는' 거대 자금의 이동은 때마침 불어온 자치단체장의 표심과 결탁해 유치찬란한 꽃을 피워댔다. 이름 하여 축제 공화국이다. 
스포츠 경기장 주변에나 있던 이동 행상들이 전국의 축제만 쫒아 다니는 신종 직업이 생길 정도로 전국이 사시사철 흥청망청 잔칫집 분위기가 되 버렸다. 돈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고 이것을 겨냥한 전문 호리꾼이 생겨나기도 했다.
밖에서는 북과 꽹과리를 쳐대고  공연장 한 켠 에서는 클래식이란 이름의 곡명도 모르는 실내악이 연주되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

그러다 갑자기 '과거사 스티커' 딱지를 부착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전 국민이 자나 깨나 불렀던  '고향의 봄' 은 교과서에서 삭제되었고, KBS 앞 난파 선생의 흉상은 더 망칙한 수모를 당하지 않기 위해 철거 명령을 받아 지금 기념 사업회가 보관중이다.  마산의 조두남 기념관도 오픈 직후 문을 닫고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이쯤이면 현명한 관객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경험으로 알 것이다. 예술가들은 감성과 이성을 보호하고 불청객과 다투어 체면을 구겨서는 안 된다. 신사는 신사다운 행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얼굴 감춘 공공성, 교활한 여우로 변신

TV만 켜면 먹자 타령이다. 어느새 삶의 궁극 목표가 웰빙이 되버렸다. 과연 그 깃대에 공을 넣기만 하면 인생이 완성되는 걸까. 이 역시 가치의 왜곡이다.
극장 역시 공공성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예전에는 관이 몰라서 답답하고, 예술가에 군림했는데, 경영이 도입되면서 교활한 여우가 되 버렸다. 극장의 공공성은 상업주의와 결탁해 마치 TV가 시청률로 치장을 하듯 수익성 재고로 짙은 화장을 한다. 세련미 없이 화장을 하는 천박스러움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극장의 철학이나 예술의 비전, 창조의 자궁 기능은 보이지 않는다. 극장의 꿈틀거리는 신경세포라 할 무대, 조명 등의 살아 있는 능력들이 경영합리화란 명분에 날려 쫒겨 났다. 이들이 극장 밖에서 살려다 보니 이 모든 것이 예술가들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공공은 외형적인 수치만 높여 점수를 받게 되고 이 성적표는 자신의 출세를 위한 담보물이 되었다. 공공극장은 오로지 좋은 성적을 위해 정답만 외우는 운전면허 시험장같이 변질되어 버렸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일이 아닌가. 공공 기관의 흑자 혹은 수익률 상승은 경영을 잘하는 것은 좋지만 말없는 절대 다수 예술가들의 피와 땀을 뺏는 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대관료 인상, 각종 부대 시설료 인상, 주차료 인상, 거대  광고의 편중 등은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 예술이 '순수'에서 '기초'로 바뀌었지만 오히려 기초는 밑둥 부터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기초'라는 말 대신 다시 '순수 예술'이란 용어를 찾을 것을 주장한다. 한 교향악단의 지방 연주회 티켓이 13만원을 호가하고 이를 만회하기 위한 지역의 고육지책은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시키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공익기관의 민간법인화가 이런 모습은 아닐 것이다.
공무원들이 무사안일을 벗고, 자율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소속 예술단체를 잘 살려 시민에게 적정한 가격에 좋은 공연을 보여 주어 시민의 문화 향수권을 신장시키는 것이다. 또 우수한 예술단체를 선정해 그들의 요구와 입장을 헤아려 주고 예술가들이 극장의 대접을 통해 예술가로서 당당한 자존심을 느끼게 하는 그런 극장을 우리는 원했다.
예술가들이 딴 곳에서는 몰라도 극장에만 가면 제 집에 들어 선 듯 편안하고 어께가 활짝 펴지는 그런 극장. 그래서 극장은 예술가의 자유와 이상이 끝없이 펼쳐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유의 공간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극장주인 가운데 그런 주인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마치 얼굴을 감춘 예식장 사장처럼, 호화하게 할수록 수익률이 올라가고, 각종 부대시설, 드레스, 화장, 사진, 비디오 촬영 등을 교묘하게 팔고, 또 식사 값이 1억원이 넘는 호화결혼식에 연예인들을 기획 아이템에 넣어 부추기면서 이것이 21세기 한국판 가문의 영광의 한 표준 모델인양 제시하는  세시 풍속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우리는 지금 너무 지나치게 혼탁한 상업주의 강물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자성이 필요하다. 
세상에, 국민이 세금을 내어  민간이 하지 못하는 공적 일들을 공정하게 해 달라고 심부름을 시켜 놓았더니 오히려 주인의 호주머니를 다시 터는 이중 과세를 시키고 있는 게 오늘의 공공 극장의 모습이다.
예전에 국립과 시립은 가격이 터무니없이 싸 가치를 떨어 트렸고 이제는 또 너무 비싸 민간의 알맹이도 없는 공연의 거품 가격 설정을 공인해 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난 견문이 모자라 잘 모르겠지만 지구촌 어디에 'VVIP석' 이란 게 있는가. 이런 것을 공공극장이 앞장서서, 또 이를 여과 없이 통과시키는 극장의 기능이 문제가 아닌가.  극장 평가가 수익성이 전부가 아니라 공익성, 창의력, 예술단체 신장, 관객 서비스 등 다양한 평가의 틀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문화 인사 시스템의 부재도 문제다. 영향력 있는 한 사람이 마음먹고  패스 한번이면 그대로 골인이 되는 구멍 뚫린 공공의 인사도 바로 잡아야 한다. 어짜피 이 판은 코드 판이니 코드로 끝내고, 전원을 다시 켠 후를 우리가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사색과 기쁨의 창의적 예술 네트워크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울 때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잘 사는 사람은 도시에서 살지 않고  멀리 떨어진 곳에 산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늘의 우리는 아직도 밀폐된 고층 아파트에서 가격 상승의 흥분감으로 살아가는 많은 분들이 적지 않다. 우리 예술가들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발로 뛰는 세일즈맨 같기도 하고 그 옛날 보릿고개 시절 밀가루 배급을 타듯 기금을 타기 위해 줄을 서는 모습이 측은해 보이기도 한다.
동서남북이 모자라는 듯이 뛰는 모습을 좋게 보면 열정이지만 어떻게 보면 저런 동동거림에서 사색은 언제하고, 또 창의성의 샘물이 과연 고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성과 감성이 조화되어야 작품이 좋아지는데 이성은 없고 정리되지 않은 촉발성의 감각만 날라 다니는 것 같으니 작품다운 작품이 나올 수 있겠는가. 농사를 지어 보면 아는 일이지만 들어설 자리가 없는 빼꼭한 곳에서는 씨알이 굵어지지 않는다.
이제 좀  뚝 떨어져 있으면서 경지에 오르는 자기 단련과 사색, 거기서 솟아나는 창의의 기쁨을 깨달아야 할 것 같다.

"그리해서 우리 時代에서,  앞으로 '문화 예술위원회가 무엇하는 곳이지요? 라던가, 난 그런 기금인가 뭔가 하는 것 안 탑니다?, 그기에 길들여지면 창의력이 죽고 자생 감각을 잃어 버려요, 그것 잘못 쓰면 마약 됩니다. 맞을 땐 좋지만 떨어지면 부들부들 떨어요. 온 정신이 기금 서류 작성과 누가 심사위원 되나 눈치 살펴야 하는데 그래서 호떡집 불난 듯이 작품 올려야 그게 작품입니까! 하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희망 사회로 간다 이 말입니다.
그리고 그 금단현상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지 아세요. 내가 아는 아주 착실하고 성실한 한 젊은 기획자가. 그야 말로 발이 붓도록 뛰어 나름대로 건강하게 유지하다 그만 기금을 한 번 타면서 판을 키웠고, 두, 세 번 더 기금 받아 이제 뭐가 좀 되겠다 싶었는데 그만 이번에 그 고약한 '형평성'에 걸려 버렸어요. 사무실도 늘리고, 직원도 더 뽑고 뭔가 막 더 잘해 보려고 했는데 문화부가, 기금 지원부서의 심사위원이 바뀌면서 "이 단체는 그간 혜택 많이 보았구먼", 하면서 단칼에 잘라 버렸어요. 이 사람은 충격을 받았어요. 문화부로부터 표창도 받고, 매스컴에서 날 만큼 낫고, 그러는 사이 동종 업종의 단체들이 우후죽순 벤치마킹해 쫒아오고. 이 단체는 지금 시한부 인생으로 숨을 헐떡이고 있어요. 정말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했는데. 어디다 호소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는 겁니다. 공공기금 잘못 길들어지면 파멸이에요. 이렇게 신세 망친 경우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이 있을 겁니다."

이처럼 자기 페이스를 잃어버린 후유증은 예술의 순수성과 자생력을 상실케 하는 역기능이다. 그래서 한편에선 이제는 예술 인력의 확장 성장 시대가 아닌 만큼 이 기금을 더  공공적 가치가 빛날 수 있도록 하고, 예술 자료관 만들기, 평가와 방향제시라는 바른 모습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단순히 연구없이 기금을 나눠주기 위해 방만한 인력구조도 줄여 기금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제 창의력이 있는 예술단체들 끼리 연대해 극장이 원하는 상품을 만들고 또 극장이 예술가들의 창의력을 사주는 극장 본래의 모습을 만들어 내야 한다. 평론가들은 오늘처럼 평가의 가치를 사회화함으로써 예술의 방향 제시를 하고 부단히 노력하는 예술가만이 살아남는다는  새로운 가치 정립을 해야 한다.
아무리 '시궁창 언어'가 난무하는 진흙탕 세상이지만 탁월한 예술가는 환경을 탓하지 않고 저 더러운 진흙의 뿌리 속에서도 환하게 향기를 걷어 올리며 웃는 연꽃의 승화 능력을 알아차리고 묵묵히 작업을 할 뿐이지 아니겠는가. 필자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2007년의 다짐이다.
2 Comments
권 운 2007.02.23 02:21  
  이제는 ...

이공간에도
들려 향유하고 생각하는 것도
네트웍 화가 요하지 않겠는가 ?

자문해볼수 있는 글이 반갑습니다.
끊임 없는 변화를 두려해선 안되는 찰나에 세워 졌습니다 !
새로운 패러다임을 성찰할수 있는 좋은 글이
자주 올려져 愚人를 계도함도 한편 사명맞지요.
마스터 프랜도 업데이트 돼야하고 시스템화 되어야
자생력이 보이지안겠는가 ?

우리 모두 소비자아닌가요 .
소비자가 일깨워져 인프라가 구성되면 변혁의파워 아닐런지요.
안 바꿀수없는 바람이 휘몰아 칠것입니다..
소비하며 즐기고 이익도 바른길로 유도도 가능하리라 사료됩니다.
문화도 경제 유통처럼 mvno 시대가 올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접목하는 선각자 준비하리라...
전문인이 가늠한 글의 양심이 바른문화 키울것입니다.
희망 찾는 일 같이 해야 하리라 사료 됩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노을 2007.02.23 13:36  
  평소에 느꼈지만 그렇게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정리해 주시니
속은 후련합니다. 워낙  잘못된 흐름이 거세어서 탁선생님의 논지에
공감하는 많은 분들이 좀더 힘을 모아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목
게시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