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연주.감상후기, 등업요청, 질문, 제안, 유머, 창작 노랫말, 공연초대와 일상적 이야기 등 주제와 형식, 성격에 관계없이 쓸 수 있습니다.
단, 영리 목적의 광고성 정보는 금지하며 무단 게재할 경우 동의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기존의 회원문단은 자유게시판으로 통합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루비아

barokaki 5 1015

아버지의 사루비아



뜨거운 햇빛이 내리 쪼이는 무덥고, 그리고

조용한 날이었다.

마당에는 사루비아와 칸나, 맨드라미등이

새빨갛게 불타고 있었다.

아버지가 가꾼 꽃이었다.

이외에도 아버지가 키운 꽃은 꽤 많았는데,

이를테면 채송화, 분꽃, 봉숭아, 장미, 접시꽃, 글라디올라스,

백일홍, 나팔꽃, 코스모스 등 등 이었다.

이들은 철을 바꿔가며 마당을 메웠다.

"경보야~~"

"예?"

"나들이 가자."

`왠 나들이? 이 더운데?`

아버지는 나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시더니

목행 다리 쪽으로 발길을 옮기셨다.

`아. 이번에도 또 목행 다리....`

걷는 동안 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셨고,

나 또한 말이 없었다.

아버지는 외로워 보였고, 나는 심심했다.


"서울은 얼마나 큰가요?"

"음. 아주 크지."

"이리루 가도 서울 나오나요?"

"물론..."

오가는 얘기도 이것이 고작이었다.

다리를 건너면 왼쪽으로 너럭바위들이 듬성듬성 있는 곳이 나온다.

아버지가 가는 곳은 그곳이었다.

아버지는 담배를 피워 물고,

나는 하릴없이 바위를 건너다니며 그렇게 오후를 보냈다.

저녁 무렵 어둠이 깃들고 강물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면

아버진 나를 불러 집으로 향했다.

........

........

어느 청명한 가을날 이었던가보다.

차고 맑은 바람이 불고 왠지 고즈넉한 오후였다.

그러나 이날 아버지는 부산을 떠셨다.

택시를 부르고 영화프로를 알아보는 등 전에 없던 난행을 보이셨다.

급기야는 검은 안경까지 턱 걸치시고는

예의 "경보야. 어디 좀 가자." 하셨다.

잠시 후 택시가 왔고 나는 검은 안경의 아버지와

대절택시를 타고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를 보러 시내로 향했다.

처지에 맞지 않는 특대였다.

무슨 영화인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뭐. 자동차 추격전을 벌이다 한대는 낭떠러지로 떨어져 불타고

한 녀석은 총에 맞아 건물외벽의 계단을 구르고 등 등 하는 영화였다.

아버진 영화를 보며 간간이 웃으셨다.

그렇지만 나는 역시 심심했다.

영화가 끝나고 부자는 모처로 향했다.

그곳도 어디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곳에는 뜻밖에도 아주 젊고 어여쁜 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빨간 바바리 코트를 입은.

영화에서 나온 여자보다 더 예쁜.

그 여자에게서는 엄마에게는 나지 않던 화장품 냄새도 살짝 풍겨왔고,

빨갛게 칠해진 뾰족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그것 역시 엄마는 갖고 있지 않았다.

그 여자는 알고있음이 뻔한데도 이름은 뭐니

몇 살이니 공부는 잘하니 하며 물어 왔는데 머쓱했다.

검은 안경의 아버지는 나를, 당신과 빨간 그 여자 사이에 끼우고

어느 음식집으로 갔다가 다방에도 갔다가 책방(보문당)에도 갔었는데,

그때 산 그림책은 어느 땐가 보이지 않더니 그후로 영영 볼 수 없었다.

그렇게 검은 남자와 빨간 여자는 영화처럼 시내를 난지 하였지만

나는 역시 심심하고 지루했다.

그날 저녁 난 엄마에게 오후의 일을 본대로 느낀대로 고해 바쳤고

그 덕분에 지금껏 아버지와의 영화구경은 절멸하고 있다.

그 후로도 아버진 그 여자를 계속 만났고,

마침내는 목격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목행다리에서 검은 아저씨가

어떤 여자와 팔짱을 끼고 걷더라는 둥,

요리집엘 다정히 들어가더라는 둥,

아버지의 로맨스가 엄마에게 전해지기에 이르렀다.

후에 엄마는 이런 말을 해 주었다.

두번째로 들어올 요량이라면 그렇게 해라

그게 아니라면 아가씬 결국 상처를 보고 말지 않겠느냐

젊은 사람이 앞길이 구만리 같은데 아이는 낳아서 어쩌겠다는 것이냐

다시 말하지만 형님 동생 할 작심 아니면 남편과의 관계를 청산해라

그랬다는 거였다. 참으로 하해와 같은 판결이었다.

이일로 그 여자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끝맺었지만,

아버진 끝내 빨간여자를 잊지 못했고

해마다 사루비아, 칸나, 맨드래미등을 키우며,

틈만 나면 나를 앞세워 목행다리로 나서곤 하셨다.


그때 그 여자가 `이대로 돌이 되어도....`하며 아버지께 건넨 시집은

지금껏 내 서가에 살아남아 아버지의 젊은 한때를 반추하고 있다.



*******************

`목행다리'는 충주시 목행동에 있는 한강다리입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기도 합니다.
5 Comments
서들비 2003.10.14 17:26  
  왜이리도 가슴이 애려 온대요.~~~^^*
바다 2003.10.14 20:02  
  아버지를 이해하는 아들이리라 믿네요. 참 아리면서도 간직하고 싶은 아름다운 이야기로군요
정우동 2003.10.14 21:20  
  누군가, 우리민요 아리랑은 아리고 쓰린 노래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시인이고 작곡가라면 온통 빨간색 추억 투성이인 '사루비아 아리랑'을 한번 만들어 볼텐데.....
운영자 2003.10.15 00:23  
  낯익은 이름, 오랜만이외다..목행다리에는 그런 슬픈전설이 있었군요...그리고 거기엔 17년전 이 사람의 흔적도 남아 있을게요.
음악친구 2003.10.15 23:03  
  아주 짧은 단편소설을 읽은 기분이 듭니다. 이 가을에 맞는 추억이 담긴 글 감사합니다. 근데~바로카키님은 바로가기님의 된발음인가요? 아님,무슨 깊은 뜻이?
제목
게시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