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한가운데로
생의 한가운데로
권 선(sun)
과수원집 딸인 나는 어린 시절 무더운 여름이면
넓게 드리운 사과나무 아래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사과나무 잎새 사이로 보이는 맑은 하늘을 유달리 좋아했다.
큰 사과나무 아래 비료포대의 거름종이를 갖다 깔고는
작은 상을 펴고 숙제를 했다.
그늘 아래에 앉아 있다고 해서 시원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간간이 땀을 맨손으로 훔치기도 하고,
등줄기로 흐르는 땀방울의 흐름에 간지러움을 타기도 했다.
그저께 가로수가 가을로 물드는 신천대로를 달리다,
문득 어린 시절 간간이 들리던 사과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낮잠을 자기도 하고, 그냥 눈을 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때론 정신없이 숙제를 하는 나의 어린 귀에 들리던 그 사과 떨어지는 소리를.
떨어진 사과는 때로는 멀쩡하게, 때로는 모양새도 처참하게 멍들고 깨어진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크고 잘 익은 사과가 떨어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뛰어가서 주워다 흙을 떨어내고는 가까이에 두었다.
때론 단수가 들어 시커멓게 썩은 사과가 떨어지면
마땅히 떨어져야 하는 것이 떨어졌으므로 그냥 아무생각이 없었다.
좀 자라서 단발머리 중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과학시간에 선생님께서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떨어진 사과는 중력에 의해서 지구의 중심을 향해 떨어진 거라고.
그 말씀을 들었을 때도 나는 어린 시절의 그 떨어지는 사과들을 생각했다.
약간 둔탁한 그 소리도 함께 기억하며.
오늘 아침 약간 싸늘해진 초겨울의 찬 기운 속에
그 떨어지는 사과와 내가 하나가 된다.
꿈에서 깨어나 잠에서 깨어나와 싱겁게 아침을 맞이하듯,
나는 내가 매달려 있던 사과나무로부터 관계 맺었던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접어야 했던 수많은 꿈들. 이루지 못 한 아쉬운 것들.
나를 만나면 얻는 것과 잃을 것을 헤아리는 사람들로 얼룩진 ... .
생의 한가운데로 나아간다. 생의 한가운데로 떨어진다.
어두운 소리 빛으로.
<2003. 10. 23>
권 선(sun)
과수원집 딸인 나는 어린 시절 무더운 여름이면
넓게 드리운 사과나무 아래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사과나무 잎새 사이로 보이는 맑은 하늘을 유달리 좋아했다.
큰 사과나무 아래 비료포대의 거름종이를 갖다 깔고는
작은 상을 펴고 숙제를 했다.
그늘 아래에 앉아 있다고 해서 시원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간간이 땀을 맨손으로 훔치기도 하고,
등줄기로 흐르는 땀방울의 흐름에 간지러움을 타기도 했다.
그저께 가로수가 가을로 물드는 신천대로를 달리다,
문득 어린 시절 간간이 들리던 사과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낮잠을 자기도 하고, 그냥 눈을 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때론 정신없이 숙제를 하는 나의 어린 귀에 들리던 그 사과 떨어지는 소리를.
떨어진 사과는 때로는 멀쩡하게, 때로는 모양새도 처참하게 멍들고 깨어진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크고 잘 익은 사과가 떨어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뛰어가서 주워다 흙을 떨어내고는 가까이에 두었다.
때론 단수가 들어 시커멓게 썩은 사과가 떨어지면
마땅히 떨어져야 하는 것이 떨어졌으므로 그냥 아무생각이 없었다.
좀 자라서 단발머리 중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과학시간에 선생님께서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떨어진 사과는 중력에 의해서 지구의 중심을 향해 떨어진 거라고.
그 말씀을 들었을 때도 나는 어린 시절의 그 떨어지는 사과들을 생각했다.
약간 둔탁한 그 소리도 함께 기억하며.
오늘 아침 약간 싸늘해진 초겨울의 찬 기운 속에
그 떨어지는 사과와 내가 하나가 된다.
꿈에서 깨어나 잠에서 깨어나와 싱겁게 아침을 맞이하듯,
나는 내가 매달려 있던 사과나무로부터 관계 맺었던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접어야 했던 수많은 꿈들. 이루지 못 한 아쉬운 것들.
나를 만나면 얻는 것과 잃을 것을 헤아리는 사람들로 얼룩진 ... .
생의 한가운데로 나아간다. 생의 한가운데로 떨어진다.
어두운 소리 빛으로.
<2003. 10.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