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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한가운데로

별헤아림 4 1559
                  생의 한가운데로
                                              권 선(sun)

 과수원집 딸인 나는 어린 시절 무더운 여름이면
넓게 드리운 사과나무 아래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사과나무 잎새 사이로 보이는 맑은 하늘을 유달리 좋아했다.
큰 사과나무 아래 비료포대의 거름종이를 갖다 깔고는
작은 상을 펴고 숙제를 했다.
그늘 아래에 앉아 있다고 해서 시원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간간이 땀을 맨손으로 훔치기도 하고,
등줄기로 흐르는 땀방울의 흐름에 간지러움을 타기도 했다.

 그저께 가로수가 가을로 물드는 신천대로를 달리다,
문득 어린 시절 간간이 들리던 사과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낮잠을 자기도 하고, 그냥 눈을 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때론 정신없이 숙제를 하는 나의 어린 귀에 들리던 그 사과 떨어지는 소리를.
 떨어진 사과는 때로는 멀쩡하게, 때로는 모양새도 처참하게 멍들고 깨어진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크고 잘 익은 사과가 떨어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뛰어가서 주워다 흙을 떨어내고는 가까이에 두었다.
때론 단수가 들어 시커멓게 썩은 사과가 떨어지면
마땅히 떨어져야 하는 것이 떨어졌으므로 그냥 아무생각이 없었다.

 좀 자라서 단발머리 중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과학시간에 선생님께서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떨어진 사과는 중력에 의해서 지구의 중심을 향해 떨어진 거라고.
그 말씀을 들었을 때도 나는 어린 시절의 그 떨어지는 사과들을 생각했다.
약간 둔탁한 그 소리도 함께 기억하며.

 오늘 아침 약간 싸늘해진 초겨울의 찬 기운 속에
그 떨어지는 사과와 내가 하나가 된다.
꿈에서 깨어나 잠에서 깨어나와 싱겁게 아침을 맞이하듯,
나는 내가 매달려 있던 사과나무로부터 관계 맺었던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접어야 했던 수많은 꿈들. 이루지 못 한 아쉬운 것들.
나를 만나면 얻는 것과 잃을 것을 헤아리는 사람들로 얼룩진 ...  .
생의 한가운데로 나아간다.  생의 한가운데로 떨어진다.
어두운 소리 빛으로.

                                                          <2003. 10. 23>
4 Comments
오숙자.#.b. 2003.10.23 17:17  
  접어야 했던
많은 꿈들,
이루지 못한
아쉬운 것들,

생의 한가운데서
이제
시작 할 때 입니다

생의 한가운 데로
나아감도
생의 한가운데로
떨어짐도

생의 끝자락에
나아감 보다
생의 끝자락에
떨어짐 보다

얼마나
축복인가요.
정우동 2003.10.23 17:40  
  선과 악이
참과 거짓이
미와 추가
혼재하는 생의 한가운데로
영영 나락으로 추락하고 마는 사람들
깊은 나락에서 딛고 올라서는 사람들

늘 새로운 꿈에 부풀어
그꿈 이루어 내자고 애쓰며
등줄기에 흐르는 땀방울로 간지럽힘을 받던
그 시절이 가을타는 이 남자는
이 가을에 또 그립습니다.
애나/박 신애 2003.10.27 07:12  
  참 행복한 별 헤아림님!
그렇게 아름다운 추억을 가슴속에 간직하시면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지요
오늘도 생의 한 가운데로 떨어져
새롭고 좋은 추억 하나 가슴에 남게 된다면
나 역시 행복한 자 일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늘 행복의 꿈을 이루시는 님이 되시길 바랍니다
 
별헤아림 2003.10.27 23:27  
  오숙자 교수님 내일 영산 아트홀에서 뵐 수 있겠죠.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간 그저 그런 글에
교수님, 정우동님, 애나님께서  너무 멋진 댓글을 달아 주셔서
본의 아니게 행복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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