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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꾸는 산

해아래 1 1764





<꿈 꾸는 산>




해아래(김필연)



요절한 어느 화가의
산 앞에 섰다
그의 산은 늘 꿈을 꾸고 있다
히끄므레 빛 바랜 구름에 싸여
몽롱한 그늘을 안은
초여름의 산, 그래
그의 산은 언제나 꿈을 꾼다

산 위로 보이는
쑥빛 하늘 그득 은빛 강물이
숨 죽이며 흐르고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소리
그 소리를 숨긴 산그늘 시작점엔
이슬이 하얗게
방울로 튀어 오른다

어둠인가 그늘인가
푸른 안개띠 두른 선잠 깬 들녘에
그림자 하나
우두커니 섰다 사라졌다
움찔 놀란 가슴
말간 풀잎차 한 잔 깊이 들이키면

목판화 속
산그림자 같은 사람
찻물 따르는 소리 마냥 선명해져서
보송한 걸음으로 다가선다
들에 풀처럼 풋풋한 내음으로
오래
물리지 않을 꽈리빛 웃음으로

어둠 흩어지는 새벽하늘 언저리
달 그림자 먼 곳에 산꽃이 피고
초여름 보리밭이 초록으로 일어선다
이윽고
꿈틀 소리내며 산은 꿈을 깬다




***목판화 앞에서

마티스이다가 샤갈이다가 가끔 나혜석이기도 했던 내 캔버스,
지금 비 젖는 오후 조심스레 수채화 물기를 닦아내고 날 무딘 목판화
한 점 새기고 있다. 무딤의 미랄까, 이 나이 언저리에 자의든 타의든
날 무디어진 나 같기도 하고 살면서 놓쳐버린 숱한 언어들이 목판화 속
빈 틈에 숨은 듯도 해서다. 그래서 가끔은 목판화 속 빈틈이 실상인 듯
혼동할 때도 있다. 새삼 그 애매한 실체를 좇아 나는 오늘도
목판화 앞에 서 있다.


1 Comments
장미숙 2004.01.26 13:36  
  보면 볼수록 산의 깊이로  끌려드는 시인님의 시에
꿈을 꾸는 듯 한 참을 머물게 됩니다.
새해를 맞아 <꿈꾸는 산>을 품게 하시니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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