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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자작시 -

별헤아림 2 1515

아버지
권선옥(별헤아림)



해 다 지는 저녁
이 가지 저 가지 옮겨 가는
까치의 바쁜 날개 짓
멀리 고속도로에는 차들이 지나간다.

놀란 퍼덕거림에
고개를 드시는 아버지
담배 한 대 피워 물자
기어드는 왕개미 두어 마리
툭툭 털어 내시는 거친 손마디에
굳은살의 흙발도 눈에 드는 밭둑 가

오밤중 달밤에도 부지런한 뒷모습 보이며
밭둑에 심은 매실나무 다섯 그루
두 해째 열린 매실 따 가라 기별하심에
덜 익은 모양새의 청매실을 따다보니
그 맛처럼 아리다.
붓고 퍼내는 시린 상큼함
우리들은 아직도 몰라
우리들은 아직도 멀어
못내 돌아서는 아버지의 과수원

목련꽃 필 때의
호들갑스런 봄의 찬사도
아주 멀어진 유월
그러나 육손 같이 돋아난 무성한 잎으로
아버지는 그대로 그늘을 드리운다.

< 2003. 6. 14. >



2 Comments
바다 2003.06.27 18:05  
  아버지

당신이 살아 계실 땐
전 그 이름이 싫었습니다.
부르기도 겁이 났습니다.

이른 아침이면 열린 대문으로
마른 기침 하시며 돌아오시던
당신의 모습을 전 피하고 싶었습니다.

아침진지를 맛있게 드시면서도
반찬타박을 하시던
당신이 너무 미웠습니다.

그 많던 농사일 어머니께 다 맡기고
추수할 때만 저울질하시던
당신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굳은 살 박힌 손으로 곱게 풀해
밤새워 다리미질한 모시옷 입고
팔자 걸음으로 대문을 나서시면
당신이 돌아오시지 않기를 빌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가위 성묘길 색동옷 입고
당신 옆에 졸랑졸랑 따라가면
너는 아들 못지 않게 으뜸이 되어야 한다는
그 말씀이 그립습니다 .

막내딸이 늦잠을 자면
찬물 묻힌 손으로 등을 쓰다듬으시며
잠을 깨우시던 그 손길이 그립습니다.

오가는 빈 손 나그네가
모두 편안히 머무르게 하시고
양손에 차비 쥐어 주시며
헛되이 살지 말라 이르시던
그 목소리가 그립습니다.

어느 여름날 아궁이에서
불장난하다 불을 내
벌벌 떠는 철부지 딸에게
더 좋은 집을 새로 지으면 된다고 웃으시던
그 인자한 얼굴이 보고 싶습니다.

딸아이가 방실방실 웃으며
온갖 재롱을 부릴 때
크고 넓은 생각을 가진
늠름한 모습의 아들을 볼 때는
더더욱 그리움이 갈증을 더 해 갔습니다.

아버지!!
그 이름이
앞산 그늘보다 더 큰 그늘이었음을
나의 삶의 버팀목이었음을....
이제는 불러도 대답 없는 그 이름이
저 큰 산처럼 다가옵니다
푸른 하늘처럼 다가옵니다

별헤아림님!!
덕분에 까맣게 잊고 있었던 아버지를 만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별헤아림 2003.08.01 17:55  
  바다님...!
전 아버지에게 부족한 딸이고,
짐스런 딸로 남을 것 같은 불안간이 생기기도 합니다.
우리 함께 근 산을 향하여
푸른 바다를 향하여
활짝 팔을 펼 수 있는 딸이 되어 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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