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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세는 나이 日齡

鄭宇東 6 990
나는 오늘 1972년 6월 1일 현재로 일만 구백 서른 세 날을 산다.
< 註 : 나는 2013년 6월 27일 현재로는 이만 오천 오백 예순 이레를 삽니다.>
이것이 나의 일령(日齡)이다.

언제부턴가 나에게는 사람들이 해로 나이 세는 것은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의 한살이를 더
욱 짧게 하는 요인 같아서 불만이었다. 이런 나에게 카프카가 그를 따르던 문학청년 야누후에게
“이제 우리는 해로 사는 것이 아니다. 달로 사는 것도 아니다. 주 날 시간 분으로 사는 것마저도
아니다. 초로도 살고 있지 못하다. 그저 순간에 살고 있을 뿐이다“고 한 말이 영감처럼 나에게 비
쳐왔다.

오늘날 학문 문명의 발달은 온갖 사상(事象)에 대한 단위를 극대 또는 극소화하여 우리들의 우주
는 불가해의 무한이라고 하여도 좋을 만큼 그 개념의 내포(內包)를 단순화 시키면서 외연(外延)
을 꾸준히 넓혀온 것이다.
저간의 사정은 때매김의 단위에 있어서도, 종교나 거시세계를 운위할 때의 영원 또는 천문학적인
시간과, 양자세계나 미시세계를 논의할 때의 순간 찰나가 그러하다.
우리가 순간에 산다고 한 카프카의 말은 저러한 미시, 거시세계의 발견에 의한 인간사고 영역의
확대와 핵무기의 가공할 살인력의 위협하에 사는 현대인이 갖는 급박한 정신상황을 상징하면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급격히 변하고 있는 세정의 템포에 맞춘 명민한 판단과 신속한 행동
이 요구됨을 깨우쳐주는 말이겠다.

그런데 우리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해로서 나이를 먹고, 달로 봉급을 받고, 주로 휴일을 즐기며,
날로 변제일을 삼고, 시로 만날 약속을 하고, 분으로 기차가 내닫게 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
러다가 우주시대에 들어 투 원하고 카운트 다운하여 우주비행이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순간을
사는 것은 일부 학자들의 전유물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순간에 사는 지혜는 아득한 옛날에 꽃피었으니 그것은 인류가 땅위에 발딛고 선이래 헤
아릴 수 없이 많은 남녀의 애정을 나누는 불꽃튀기는 눈과 눈의 마주치는 순간들이었다.
이렇듯 순간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제 모습을 드러내어 짧고 급한 세상을 쨈새 있고 낭비 없이
살 것을 요구하지만 우리들은 구태의연히 너무도 게으른 삶을 영위하고 있다.

지난날에 대한 반성이나 앞으로 맞을 새날에 대한 다짐과 계획을 세모나 정초까지 미루다가 해로
나이를 세는 것은 나에게는 못할 짓이다. 챙기지 않고 보내버린 삼백 예순 날은 고스란히 손실이다.
왜 나이를 해로만 세어야 하는가? 법률문제라면 육법전서에 따라 해로 세어야겠지만 그 밖의 문제
는 그것에 맞는 나이를 가져서 안 될리 없다. 나는 여기서 잠시 바이블에서 아담이 구백 서른 살,
노아가 구백 쉰 살을 살았다 하는 것은 年아닌 매 계절이나 매달로 계산한 나이는 아닐지? 하는 의
문을 품는다. 수직사고에 수평사고를 가미할, 아니 후자를 전자에 우선 시켜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
는 것이다. 머리는 생각하는데 쓸 것이지만 나쁜 머리는 축구공으로 치고 차 날려버려도 좋지 않은
가?  방향 전환 때 쓰이는 차의 방향지시기는 분류된 그 명칭 때문에 절대로 조명이 안 된다는 고정
관념에 빠져버리지만 이것을 점등하면 역진할 때 후방을 비추어 주는 리어 라이트의 구실을 거뜬히
해 낸다는 사실도 알아야 하겠다.
                                                   
나는 해로 나이를 세는 굼뜬 달팽이 셈본을 버리고 싶다. 달로 조차도 느림보의 셈본이다. 해와 달
의 인지를 다한 역법에 의한 때매김은 인위적으로 더 나누어진 시, 분, 초의 단위들과 더불어, 신이
해를 띄우고 지움으로서 때매김 하는 것에 미칠 바 못된다. 날은 자연의 기본적이면서 최선의 운율
인 것이다. 이와 같이 신을 따르면서 자연의 운율에 조화되는 짜임새 있고 낭비가 없는 생활은 해
로 보다, 달로 보다는 날로 나이를 세는 것일 수밖에 없다.

옛날에 은 나라 탕왕은 그의 세숫대야에 盤銘(반명)으로 日新 <註> 이라 새겨놓고 날마다 구습의
나쁜 점을 버려 스스로를 새롭게 하며 끊임없이 덕을 닦아 진보하기를 힘쓴 나머지 세상에서 보기
드문 어진 임금이 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나와 같이 日齡쓰기를 권하면서 나와 우리 모두 日日新又日新 하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註 > : 大學에 湯之盤銘曰苟日新日日新又日新이라 한 글이 있다.

--------------------  韓一合纖 社報  19720601 8面  ------------------------------------------------------------------
6 Comments
오숙자.#.b. 2003.12.22 11:16  
  정우동 선생님,

평소에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에 대하여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우주란 하나의 세계속에서
내가살고 있는 지구,
그 지구중에도
대한민국,
그 안에 어느 지방 어느 도시에 각기 살고있습니다.

한 우주에 비하면
지구는 하나의 흙덩이!
그안에 보이지도 않는 미립자 속에 존재하고 있지요.

시간도
영원에 비하면
어느 한순간
인간의 삶도 그 한순간 속에 지나쳐 버립니다.

년수로 세이는 우리들의 나이
또한 달 수로도 세일 수 있겠고
일 수로도 세일 수 있겠네요.

저는 계산도 늘 어둡고 해서
우리 인간들의 나이를
한번 태어나서 언젠가 한번 돌아가니깐
모두들 "한살" 이라고 생각하며 지낸 셈 입니다.

좋은글 올려주시어 제가 부족했던 숫자 관념에서
마음을 좀더 세심하게
관심을 갖게 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유랑인 2003.12.22 11:47  
  누군가 그랬던게 생각나네요... 
나이가 먹어가면서 정말 슬픈건 마음이 늙어주질 않는다구...
시간을 세고 산다는게 또 하나의 강박이 아닐가도 싶은 생각이 드네요...
암튼 매시간 열심히 아름답구 조금 더 착해지구 내거를 찾기보다는 조금씩 덜어내며 살구..
그러구 싶습니다...  내내 행복하세요..
바다 2003.12.22 15:36  
  두 어르신들의 글에 새삼 머리숙여 배웁니다.

좋은 글 올려주신 정우동선생님
그에 걸맞게 멋진 화답을 주신 오 교수님
그리고 또 유랑인님

이렇게 내 마음의 노래회원들께서는 하시는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보약이 되어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답니다

세 분 모두 감사 드립니다
싸나이 2003.12.23 21:13  
  대단한 석학들의 말씀이 잘 이해는 안되도 조~~~씁니다.
오래 오래들 사십시요^^
충성!!
꽃구름언덕 2003.12.25 10:36  
  소년같으신 정 선생님께서 이천일을 넘게 사셨다구요?
놀라운 글을 뵈니 그 철헉적 사고는 한 5천일을 사신분인듯합니다.*^ ^*
늘 건강하시고 놀라운 깨달음 많이 주셔요.
가객 2003.12.26 08:40  
  선생님!
선생님의 글을 읽고 있노라니 그저 타성에 젖어 살아 왔던 지금까지의
생활방식에 대해 긴장감이 얼어납니다.
기껏해야 계절의 변화 속에서 세월의 흐름을 감지하며 살았으니까요.

한때는 一日在於寅이란 말에 맞춰 寅時에 하루를 열려고
백일남짓 시도를 했지만 말 그대로 시도에 그치고 말았었습니다.

한해가 저물어 가고 새해가 다가오는 시기임만큼
어려서 책상머리에 붙여놓고 모토로 삼고자 했던 日日新又日新을
다시금 새겨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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