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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는 향기로운 행위, 그렇지만...

김형준 10 800
오늘은 늘 가기 싫어하는 병원에 어쩔 수 없이 갔다.
초등학교 때 나를 괴롭혔던 신장염으로 인해 가야만 했던 병원,
2002년 8월에 발생한 교통사고로 인해 4개월 동안 입원해야 했던 병원.

하지만 오늘은 큰 마음을 먹고 가까운 사람과 함께 갔다.
내 신체상의 어느 부분에 이상이 생긴 지가 꽤 오래 되었는데
병원에 가서 검사 조차하지 못하고 있다가 가서 예약을 했다.
특진을 받기 위해서.
음악적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

병원문을 나서서 돌아오는 길에 어느 자그마한 가게 옆을 지나갔다.
이전에도 한 번 가보았던 가게였다.
어느 시민단체에서 운영하는 향기가 넘치는 가게이다.

책과 음악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그 가게는 책꽂이 몇 개에 꽂혀 있는
책들과 CD 등으로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한비자 해설집, 이청준님의 '서편제', 히브리어 교재를 샀다.
아직 큰 목적이 생기지 않아 '히브리어'를 배우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언젠가는 배워야 할 언어로 마음에 고히 품고 있어서
히브리어 교재를 사는 것이 참 즐거웠다.
당장은 사용하지 못할 책이지만 미래을 위해 투자를 하는 것이다.

이리 저리 둘러보니 가곡과 성가곡 CD가 몇 장 보였고,
Viener Staatsoper와 여러 성악가들의 연주로 된
오페라 아리아들을 담은 중고 CD가 보이기에 얼른 집어 들었다.
모든 다른 물품들과 마찬가지고 책과 CD도 매우 낮은 가격을 매겨놓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이것들도 구입하였다.

여러 볼 일을 보고, 집에 들어와 오페라 아리아 CD를
CD player에 넣고 틀어 보았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리라는 큰 기대감을 가지고.

'참 실망이다!'

물론 비싸지 않은 CD였으니 별 손해도 없었다.
사실 '손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것 자체가 이웃들과 조금이나마
나누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허나 그 CD는 전혀 들을 수 없을 정도의 상태였다.
아무리 참고 들으려고 해도 그저 소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음악의 음질 자체가 도저히 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왜 그런 CD를 어떤 사람이 내놓았을까?'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첫번째 반응은 약간의 '화'였다.
얼른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꾸었다.
하나의 좋은 지혜를 얻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이웃과 나누기 위해서는
누구라도 믿고 쓰고 들을 수 있는 정도의 질이
유지되어 있는 것을 내놓아야 한다.'

라는 참 고마운 지혜를 배웠기 때문이다.
아직 뭔가를 딱히 잘 내놓지도 못하는 나의 처지이지만
그래도 이웃과 사랑과 정성을 나누는 경우에는
받는 분이 기뻐할 수 있을 정도의 질이 갖추어져 있는 것을
정성스럽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너무나도 질이 좋지 않은 CD의 상태에 실망스러워
곧바로 쓰레기 통에 던져넣으려다가 그냥 가지고 있기로 했다.
내 마음이 쓸데 없이 높아지거나, 남을 잘 이해하지 못할 때
그 CD를 들으면서 나의 마음에 겸손함과 참음, 이해심을 불어넣고 싶었다.

수많은 음악가들이 참여해서 만들어진 예술 작품인 그 CD
어느 분들의 귀와 마음과 영혼을 상당히 오랫동안 즐겁게 해주었을 그 CD
이제 낡았다고, 잘 들리지 않는다고 내가 그냥 막 버리는 것은
실례가 될 것 같았다.

비록 나중에는 버리게 되더라도 잠시라도 소중히 간직하고 싶었다.
이미 좋은 질의 음악에 익숙해진 내 귀에게, 내 마음에게
아주 좋지 않은 질의 음악도 들을 형편이 되지 않은 분들을 생각하라고
그래도 '음악이 너의 삶에 들어온 것 자체가 얼마나 축복이냐'고
내 스스로의 못난 마음에 반성할 수 있는 거울 역할을 하라고
그 CD를 그냥 가지고 있기로 했다.

갑자기 그 어찌보면 너무나도 보잘 것 없는 CD가 다정한 애인같이
사랑스럽고 멋져 보여 뽀뽀도 해주고, 따스하게 껴안아 주었다.

지혜는 똑같은 사물이나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얻어질 수도 있고, 아예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 가게에 언젠가 다시 가게 될 것이다.
물론 내가 찾는 것은 다시 책과 CD가 될 것이다.
중고 CD가 보이면 또 사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약간은 주저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허나 그것을 내놓으신 분의 양심을 믿고 다시 사게 될 것 같다.

어차피 그곳에서의 구매 행위는 그저 뭔가를 싸게 구한다는 마음과 더불어
누군가에게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다음에도 '꽝' CD에 걸리더라도 상당히 오랫동안 그 CD를 간직하고
있게 될 것이다.

다시 뽀뽀해주고 껴안아 줄 것이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주었을 그 기쁨과 즐거움을 상기하면서.
그 예술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많은 분들이 들인 노력을 감사하면서.

다시 조그마한 지혜를 배울 것이다.
그러한 지혜는 많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매우 소중한 것이다.
10 Comments
김경선 2006.07.06 07:21  
  참말로 좋은 경험에 대한 좋은 글을 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형준선생님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구에게 주어질 물건일수록
더 세심한 AS가 필요하네요.
김형준 2006.07.06 23:05  
  김원장님!
늘 즐겁게 생활을 하시는 것 같아 제 마음이 기쁩니다.
이번 마사 모임에서 '루이스레이크 호숫가에서'를
이중창으로 다시 부르시는 지요.

남에게 주는 것이 내가 쓰는 것 보다
가능하면 더 좋은 것이어야 겠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늘 넘치는 삶을 사시길 기도드립니다.
유랑인 2006.07.07 09:52  
  ^^  ~~~
누구를 위해 내어 놓는다는 건 즐겁지요~
김형준 2006.07.07 15:44  
  유랑인님!
매월 내마노 offline에서 정성껏, 애정을 가지고
사진 찍으시는 모습을 보면 늘 감사함을 느낍니다.
물건이 아니라,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정신적 노동의 제공도
다 '기부'이며 '나눔'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아무 댓가성 없이, 이웃들과 나눌 수 있는 그 마음 자체가
이미 축복을 '마니 마니' 받은 행복한 삶이라고 믿습니다.

들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바 위 2006.07.07 20:48  
  산이 부자임
물 흘려 베품이라
자연 귀뜀요


고맙습니다...
세라피나 2006.07.07 21:39  
  상대의, 마음들을  애절하게  다독여 주시는 넓은 포용의
*미*를  서슴없이,^^ 선사하시는  구체적인?^^ 분 인 듯해요.
제가, 잘 보았나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하고 ,누군가가 물으면 ,
'자선사업'
이라고
 대답을 가지고 다녔던 '오만' 했던 순간이있었어요.
이제는, 주제^^를 너무 잘 알기에 절대^^ 말  못하지요.^^
 
김형준 2006.07.08 00:49  
  바위님 오셨다 가셨군요.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 돈어 여유있는 사람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오늘 저녁
어느 모임에 갔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돈, 돈, 돈, 돈'을 끝없이 외치면서
어떻게 하면 돈을 모으는가에 대해 원치 않는 설교를 쭉 들으면서
제 머리 속에 드는 의문은

'돈'을 저렇게 열심히 부동산으로, 주식으로 벌면 뭐라려고
저렇게 하루 종일 돈만 생각할까'라는 생각이 자연이 들었습니다.
열심히 땀 흘린 노동의 댓가로서 만들어진 재산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보다 가치 있는 것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인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한 마디도 하지를 않았습니다.

차라리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최소한 '사랑하는 마음'이라도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것이 보다 옳은 삶이 아닐까 하고 느꼈습니다.

찾아와 주심 감사드립니다!
김형준 2006.07.08 00:51  
  저는 아직 마음이 그다지 넓거나 깊지를 못해서
늘 자책하고 괴로워 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도 어떻게 하면 늘 약자의 편에 서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은 합니다만,
실천을 그다지 잘 하는 편이 못됩니다.
평생 조금씩 깨달음을 얻는 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저와 시간과 생각과 삶을 나누심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김형준 2006.07.10 12:09  
  수백억의 자산을 가진 70대 중반의 노인분을 알고 있다.
언젠가는 사회를 위해 무언가 큰 일을 하고 싶어하신다.
헌데 문제는 그분의 목표는 수백억을 더 번 다음에
그런 일을 하실 예정이라는 것이다.

수억이 채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살고 계신 분이 있다.
이분은 꾸준히 비록 작은 금액이지만
남들에게 알리지 않고, 소외되고 그늘진 구석들을 찾아가
살며시 사랑의 손길을 정규적으로 펴신다.

우리는 과연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김형준 2006.07.12 17:54  
  마이크로 소프트(Micor Soft)사를 창설한
빌 게이츠가 하버드대학교를 중퇴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피시(PC)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operating system을 만들어
단번에 미국 최고의 갑부로 올라선 게이츠.
나는 그의 강연을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자기가 쓴 책에 대한 홍보를 위한 강연이었다.

너무도 많은 돈을 벌고도 기부에 인색하다 하여
미국의 언론에 의해 한동안 맹폭격을 당한 적이 있다.
그런 그가 현재는 '빌 & 맬린다 재단'에서 행하는
자선 사업들로 인해 큰 칭찬을 받는다.

주식 투자의 천재인 Warren Buffet도 게이츠의 자선에 대한
열정을 이해하고 천문학적인 숫자의 돈을 게이츠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 한다.

우리의 마음과 사랑을 '기부'하고, 우리의 '시간'을 기부해보자.
보다 신나고 멋진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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