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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그 스침 속의 만남

별헤아림 4 1152
토요일 오후, 그 스침 속의 만남
권선옥(sun)

퇴근하는 길에 배도 고프고 점심 준비하기도 귀찮아서 김밥을 사들고 들어 간다.
24시 김밥집은 어느새 단골이 되었다. 학교에서 3개씩 신청한 우유. 스물 다섯 살 때 지독히도 마셔댔던 딸기우유나 초코우유를 나이 탓인지 지금은 거의 마시질 않는다. 토요일이면 흰 우유 대신 나오는 초코 우유는 그대로 집으로 가져 간다. 그러면 아들과 딸 중 한 명은 내가 마시지 않는 것까지 처리를 한다. 신기하다. 저 맛이 탁하고 느글거리는 걸 어떻게 두 개씩이나~!
서둘러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갔다.
오후 3시부터 6시 40분까지 이어진 강의에서 거의 절반은 졸면서 들었다.
심장이 약한 탓에 식사 직후에는 심장에 부담이 가서인지 아니면 체력저하인지 잠이 쏟아졌다. 강의가 끝나고 밖을 나서니, 이미 밖은 어두워진 탓인지 거리의 붉은 불빛이 더욱 찬란하다. 혼잡한 출구에서 누군가 '선생님~!' 하고 활기차게 부르는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소향선생님. 2001년 성당중학교에 같이 있을 땐 아가씨였지만 풍문으로 결혼했다는 얘길 들었었는데 이미 딸 아이의 엄마라란다. 그리고 지금은 수원에서 살고 있단다. 친정에 아이를 맡겨 두고. 헤어질 때까지 서로가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사람 사이의 짧은 만남.

3년 전 성당중학교는 23학급이어서 25학급 미만는 양호선생님을 배정 받지 못 한 탓에 내가 대신 양호 업무를 분장하게 되었다. 국어 20시간, 한문 2시간에다 양호 업무까지 담당을 하고 있으니 공문 스트레스에 바쁘기도 했었다. 혼자서 보건실을 연구실처럼 사용하니까 부럽다는 선생님들도 많았었다. 소향 선생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욱 더 이해 못 할 일은 그 당시 교장선생님께서 내가 그 전 해에 심장 수술을 받아서 건강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해서 분장해 주신 업무었다. 수업이 빌 때는 교무실에서 여러 선생님들과 복작거리지 말고 피곤하니까 혼자 침대에 누워서 쉬라고 하셨다. 하지만 자기가 담당하는 보건실에서 수업이 빈다고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보람은 있었지만 무척 바빴다. 그래서 그 교장선생님이 시댁쪽으로 친척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다른 선생님들게서는 내가 마치 덤탱이를 쓴 것으로 생각들을 하시는 눈치였다. 나이든 선생님이 계셔서 한문도 두 시간 더 맡은 상태에서 양호까지 맡게 되었다고.
더러 철없는 중1 남학생은 내가 자기들반에 국어 5시간, 한문 1시간 그래서 담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탓에 허물이 없어서인지 철이 없어서인지 더러 황당한 질문을 한다.

- 선생님~! 선생님은 월급 엄청 많이 받겠네요? 국어선생님도 하시고, 한문선생님도 하시고, 양호선생님까지 하시니..... ! 월급 얼마 받아요? -
- ...... . -
황당해서 말없이 질문한 아이를 빤히 쳐다본다. 아이는 전혀 황당하지 않다. 그저 대답을 기다리는 호기심 많은 아이일 뿐이다.
그냥 웃음이 나와서 신경 안 쓰고 큰 소리로 웃어버린다.
아이는 그제사 얼굴을 붉히며,
- 왜요? 선생님.-
하고는 옆짝을 쳐다본다.
- 요놈아~! 월급은 같은데 바빠 죽겠다. -
했더니, 이해가 안 간다는 눈치였다.

지금 생각하니 그래도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시간으로 기억된다는 증거이다. 그저 무료한 일상에서 스치며 만난 아는 사람들 중의 한 아는 사람. 그 한 사람과 중앙파출소 근처에서 대구역까지 15분 가량 걸으면서 나눈 짧은 안부같은 대화로도 우리는 서로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느낄 수 있는 작은 행복을 줄 수가 있음이 소중하다. 좋은 추억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된 만남. 그것은 짧지만 기쁨으로 이어지는 인생의 작은 행복이다.

<2004. 9. 11.>
4 Comments
서들비 2004.09.14 10:03  
  일상의 기쁨이란걸
우리는 모르고 지내는 시간이 많죠.
지나고 나면
모두 아름다운 수채화 같은걸...............  ^^
별헤아림 2004.09.14 11:31  
  서들비님...^^*
음악회에서 사진도 찍고 예쁜 모습 뵈서 반가웠습니다.
다음에는 음악회 끝난 후  차도 한 잔 나눌 수 있기를~!
바 위 2004.09.14 17:06  
  그러셨네요... !

선생님 만한 계급장 훈장 있다던가요...
분위기가 궁금 아니 한건 아닌데...
스침 만나게 풀어 주심에 넌지시 님 얼굴을 그려보네요...
후덕하시리라고 생각하는데 까치가 대답대신하네요 ...
尊  글은, 편안한 글인거 맞지요 !!

건안 건심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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硏田無惡歲    酒國有長春

글쓰는 일에는 흉년이 없고                                 
술 나라에는 언제나 봄이라지오.   

 - 옛 시 한자락 놓고 갑니다 !   

    권  운 드림.....                     
별헤아림 2004.09.16 09:07  
  권운님께서는 한시를 많이 접하시는 듯하여 부럽습니다.
저는 한문이 어려워 국문과 선택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나 염려한 적도 있습니다.
가끔 국어과에서 한문을 지원하는 경우가 있지만 중1 이외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글 쓰는 일에 흉년이 없다'는 말 좋은 뜻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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