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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가난한자의 수명

정영숙 2 789
부자와가난한자의 수명


경남의 일부지역을 제외하고 내린 눈은 추위에 떨고 있는 겨울사람들을 따스하게 덮여 주고 있다. 내가살고 있는 이곳에도 하얀 눈이 내려 주었으면 좋으련만 기후마저 차별을 하고 올 듯 말듯하며 바람에 가루만 뿌리고 사라졌다.
눈으로 인하여 마음이 심산한데 그간에 소식이 없었던 T여사가 눈 속을 달리며 왔다. 아주 오랜만의 만남이라 무척 반가웠다.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면서 지난날을 묻는 과정에 깜작 놀란 사실을 들었다. 나는 그 사실에 인간만사 ‘새웅지마ꡑ라는 말이 얼마나 깊은 진리인지 새삼 깨달았다.
70년 초였다. T여사는 나와 같은 직업인 피아노 교사였다. 그의 남편은 제일제당 대리점을 하였다. 둘째 아들이 내 아들과 같은 학년이고 직업이 같으므로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렇게 친근한 사이는 아니지만 만나면 서로의 생활을 느낄 수는 있었는데 옷차림이나 취미 돈 씀씀이로 보아서 나보다는 월등하다.
서로 조심스레 만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돈을 좀 차용해 달라고 부탁을 하여 갑자기 나에게 돈이 없어서 다른 사람의 돈을 빌려서 주었다. 그 돈을 빌려 준지 두 달 되여 靑天霹靂{청천벽력} 같은 사건이 생겼다.
T여사의 집이 시장 안에 있었는데 그 시장에 대 화재가 나서 일순간에 집을 태워 버리고 가족들이 오갈 때가 없게 되었다. 나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 T여사의 가족6명을 앞뒤도 생각지 않고 우리 집으로 오게 하였다.
우리 집 아래층에 세준 사람들을 사정사정하여 내여 보내고 8개월을 한집에서 살았다. 불이나자 그녀의 남편 사업도 부도가 났다. 빚쟁이들이 우리 집을 밤낮없이 찾아와 난동을 부리고 억울한 소리도 하고 갔다.
당시 T여사의 시숙 집은 재벌에 가까웠다. 커다란 건물도 많고 어딘가 시장 안에 가게를 세준 곳도 많았다. 나는 보다보다 딱하여 그 큰집을 찾아갔다. 시숙은 만날 수도 없어서 동서를 만나 이야기를 하였다.
“준호(가명)큰어머니, 지금 동생집이 어떻게 된 줄을 알지요? 도와주세요. 그 세놓은 집 한 칸만이라도 기거하게 하여 주세요. 세상 사람들이 다 보고 있습니다,, 라고 했더니, 그 말이 떨어지자 화를 내며 “ 뭐라고? 난 그렇게 못 하요. 내가 어떻게 벌은 돈인데 도와주라고요? 우리 동생 가족을 도와주는 것은 고마운데 나를 설득시키지는 마세요 " 라고 하며 대단이 감정석인 말을 했다.
물론 돈을 모으기 위하여 고생을 하였고, 시동생과 자기들의 생활수준이 다르게 살아왔다는 것을 이해는 하였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몇번 설득을 하다가 포기를 했다. 무안을 당하고 나오면서 맘속으로 “ 그래, 잘 먹고 잘살아라. 형제지간 어려울 때 안도와주고 언제까지 잘사나 두고 볼 터이니! ,, 라고 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니 T여사의 가족은 이사를 가 버렸다. 섭섭하고 걱정이 되었지만 나로서도 별 수가 없었다. 그 후 풍문에 들으니 서울서 고생고생을 하며 살고 있다고 하기에 찾아갔더니 옥탑 방에 월세를 주면서 작은 식당을 하고 있었다.
식당도 잘 되지 않았던지 다시 살았던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이것저것 일을 벌려 보아도 실패만 하고 또 서울로 떠났다. 사람이 살다보면 뭔가 잘 풀릴 때는 계속 잘 풀리고 안 풀릴 때는 실타래 감기듯이 뱅뱅 꼬이며 풀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 꼬이는 인생표본이 T여사라고 할까? 그른데 그녀가 성공을 하여 나를 찾아 왔다.
사람은 누구든지 성공을 하여야 고생스러웠던 과거를 솔직하게 털어놓게 된다. T여사는 서울서 기반을 잡고 사는데 월수입이 대단하다. 罪{죄}되는 일이 아니고는 다 하면서 세 아들 성공 시켜 먹고살만하게 해 주었고, 특히 막내아들을 프랑스유학 5년을 시켰는데 지금 화랑을 경영하며 잘 살고 있다고 한다. 또 구제에 게으르지 않게 사는 것이 생활신조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기뻤다. 그리고 존경을 했다. 이런저런 질문하는 과정에 준호 큰집은 어떻게 사느냐고 물었다. 참으로 놀랐다. 그렇게 많은 재산을 자식들이, 특히 맏아들이 사업한다고 다 날린 후에 암으로 죽은 지 오래며, 남어지 아들은 부모재산 믿고 허랑방탕 하다가 외국가서 죽기도 하고 가정이 엉망이 되어 소식이 없다고 한다. 형님내외는 죽은 지 몇 년 되는데 준호 큰어머니는 병들어 오갈 때 없어서 자기 집에 와 살다가 죽었으며. 그리고 그 큰집 손자는 자기들이 도와주고 있다고 하였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이 부자가 삼대를 못가고 가난도 삼대를 안 간다고 하였다. 35년 전에 내 앞에서 그렇게 큰소리치던 사람이 삼대는커녕 한순간에 그 모양으로 허물어지다니! 이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고 불쌍한 사람이 있다면, 돈을 많이 가진 자가 잘 쓸 줄 모르고 사는 사람이다. 타인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 아까우면 하다못해 자기 혈육 만이라도 베풀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양심이 아닌가.
부자가 되는 조건을 부정적으로 말하면, 구두쇠가 되어야한다. 돈을 사랑하고 돈을 우상화 시켜야 한다. 타인의 길흉사에 사람노릇을 하지 말아야 한다. 철학. 신학. 예술 등의 정신세계를 높이는 책은 절대로 읽지를 말고 무신론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손대대의 삶을 항상 걱정하고 살아야 한다. 절대로 남의 말에 귀를 돌리지 말아야 한다. 善하다는 단어를 그분의 사전에서는 삭제해야 한다. 불로소득에 눈이 밝아야 한다. 부정한 돈을 받는데 거리낌이 없는 배짱이 있어야 한다. 사업을 하되 인정사정없이 남의 것을 빼앗을 수있는 배포가 넓어야 한다.
한편 부자가 되는 조건을 긍정적으로 말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부지런해야 한다. 근검절약하고 저축을 생활 화 해야 한다. 돈을 벌기위한 수단이 뛰어나야 한다. 어디가, 무엇이 돈이 될거라는 선견지명이 있어야한다. 그 외도 긍정적인 조건이 많다. 청빈한 삶을 행복지수로 삼고저 하면 위에서 말한 부자의 조건과 반대로 행하면 된다고 본다.
돈은 이 지구가 도는 순간까지는 같이 돌아야 한다. 온 세계 사람들은 돈을 돌리기 위하여 계속 분투하며 살고 있다. 그렇기때문에 인간이 생존하는 이상은 돈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돈도 돌아다니자면 숨을 쉬고 살아야 될 것 아닌가. 이왕 돈에 쉼표를 찍으시려면 위의 글 중에 등장한 짧은 수명의 부자가 되지 말고, 구제를 생활신조로 삼고 살고있는 지혜있는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사람에게 내 가족과 일가친척들, 그리고 이웃들이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물론 하나님도 자손대대로 그 이름이 빛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글쓴이-정영숙

 
 
 
 
 
 
2 Comments
정창식 2007.02.03 07:57  
  충격 회한 통쾌함과 반가움으로 얼룩지셨겠습니다.
정영숙님의 이야기는 요즘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군요.
어찌 그뿐이겠습니까.
가진자가 없는자의것을 더 빼앗아 가는 현실이 아닙니까.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되어야지요.
만일 티여사님이 큰집에서 도움을 받았었더라면
그렇게까지 성공할수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티여사님과의 재회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동균 2007.02.03 10:28  
  초년기 고생 고생하다가 중년에 와서 팔자가 늘어지길레
하느님은 공평하시다고 했더니,
금방 일이 꼬여 하느님도 무심하시다고 넋두리를 하는데,
다시 평지가 나타나는듯, 또 계곡이 나왔다.
하느님, 어지러워 못 살겠다고 하였더니,
하느님께서는
내가 원하는대로 내 욕심 채워 주는 분이 아니라고 일러주셨다.
오묘한 하느님의 뜻을
아무런 거부감없이 받아 들이는 마음을 위해 좀더 기도해야겠다.
선뜻 아래층을 내어 주신 정영숙님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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