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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헤아림 조문과 왕족발

홍양표 5 1540
별 헤아림을 별나라로 보내고 우리는 <한양 왕족발>집에 모였다.
  대구 파티마 병원 영안실, 권선옥 장례 실에 들러 조문.
  황덕식 선생은 선옥이 시에 자신이 작곡한 CD를 유족에게 건네주고 어머니의 시 사랑, 노래사랑, 영원히 남게 될 예술의 혼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나는 자녀에게 반 쯤 화를 내기도 했다. "Life is short, art is long."  “왜 어머니의 큰 뜻을 몰라. 청개구리도 죽은 후는 어머니 말을 들었잖아.” 
  별 헤아림은 주로 밤에만 보아서 그런 가 새파란 색시로 알고 있었는데 쉰둘, 다 큰 자녀와 동생들이 상주 석에 있어 맞절을 했다. 신랑은 안 보였다. 이름도? 외로웠겠구나. 외로웠으니 시가 나오지. 심장병을 앓고 대용 기계를 차고 다닌 걸 아무도 몰랐단다.
  외로움과 심한 고통 속에서 사랑도, 시도 더 진하게 배어나올 수 있음을 다시 실감했다. 모두가 괴롭고 인생이 고통이지요. “십자가 길,” “좁은 문,” “苦海,” “人生八苦,”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는 이 고해를 기쁨으로 바꾸는 힘을 신으로 부터 부여받았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고 했지.
  보고 싶구나, 별 헤아림이여! 내마노 추모음악회를 열자고 합니다. 당신은 외롭지 않아요.

  2차 <왕족 발> 소주모임! 카! 소주 맛. 장례식장에서도 이구동성 “소주”를 원하며 들이켰다. 예수님도 최후 성만찬에서는 강제로 준 “내 피.” 모두가 주(酒)님을 사랑하는 데에는 예외가 없었다. 서울에서 우동아우, 양만춘 아닌 만식이, 권혁민과 키가 더 커 보이는 아들 기헌이, 마산에서 다리에 철심박고 올라온 황덕식, 뒤 늦게 찾아 와 내몰래 술값을 낸 대머리, 정열의 사나이 이동균, 더 늦게 합세한 유랑인과 손종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노래, 노래사랑의 흥분과 정열, 대구에서 크게 번창해 가는 박범철 노래모임, 그 모임을 더 활짝 열라는 요구, “아마추어” 어쩌고 하는 수식어 떼어버리고 모두 똑같이 즐기고 한 통속이 되어야 하는 내마노 노래잔치 등등.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겼다.
 
  이거다 내 마음의 노래의 에너지가. “어떻게 이런 일에 똑같이 참가할까?” 말이 나왔지만 정들고, 갈수 있으면 가고, 못가면 댓글과 조전치고, <마음의 노래>대로 행동하면 되겠지. <왕족발>에 오면 더 정들게 되고, 더 보고 싶고 만나게 되는 거겠지.
  사랑은 노래이고 정이고 만남이고 소주다. 그래서 세상을 사랑의 왕족발 세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우리의 궁극목표로 삼아야 하겠지요.
  별 헤아림을 별나라, 하늘나라로 보내고, 잠시 슬퍼하고는 산 사람은 <왕족발>의 사랑을 즐기는 거다.
  별 헤아리는 님, 당신 덕입니다(2009년2월16일).
5 Comments
바 위 2009.02.16 12:30  
박사님 ~
참석 못했습니다.
사표와 훈교하심에 모두위안 받습니다.


시인이시여 / 권 운

비보를 귀에넣고 눈감으니 먹먹하네
눈물은 소리없이 넘처나도 속절없고
살다가 가는것이야 귀천인들 있을까만

그중에 아픔벗해 애처러이 살다 간이
그 눈빛 마주보며 아픔비켜 잘가셨소
알고도 죽어 주는이 오죽하면 가시랴

 삼가 명복을 빕니다.

  고맙습니다.
나그네 2009.02.16 15:09  
지난 겨울 병원에 가기로 예약된 날이었다. PT(항응고 검사) 수치를 점검하고 약국에서 기다리다 무심코 밖을 보니, 지난 해 5월 병원에 며칠 입원할 당시에 옆 침상에서 늘 성경책을 읽던 아주머니가 보였다. 인사를 하고는 집이 안강이라고 해서 가는 길에 동부정류장까지 태워다 주기로 했다.
대뜸 '그 때 병원에서 우리 아저씨 오셨을 때 봤죠?'하는 것이었다. '네.' 했더니. '얼굴 생각나요?'한다. '아이들과 같이 왔을 때, 보니까 피부가 조금 검었지만 키도 크고, 잘 생겼고, 성격 좋아 보이데요.' 했다. 약간의 불필요한 말까지 한 셈이다.
"나 병 간병한다고 애쓰고 그랬었는데...... , 먼저 가버렸어요. 한 6개월 쯤 되네요.' 한다.
자기의 죽은 남편을 내가 기억하거나 말거나 그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는지는 생각하고 따지지 않기로 했다. 살아남아 있는 자와 죽은 자와의 순서 없는 이별은 그저 물음표 없는 평서문으로의 마침이다.

어느 날 더 일찍 죽으리라 생각되었던 나는 이렇게 살아있건만...... .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살아있던 날들을 추억해 본다. 떠난 사람이 영원히 침묵하는 돌아올 수 없는 이별.

그리하여 살아있는 나는 살아있는 날들을 위하여 수행도 하고, 침묵으로 무언으로 속을 끓이다 다시 죽었다 태어나도 글을 쓰는 국어 선생님이고 싶다는 생각에 정착했다. 더 알고 싶고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토요일이면 강의를 들으려 간다. 다섯 시간이 넘는 풀 코스. 반은 졸면서 듣는 강의이지만 나는 또 다른 무한대의 갈망으로 바다를 본다.

더 늦기 전에 억지도 부려 본다.
살아있는 너와 나의 이별의 거리에서.

<2007. 3. 14.>

* 미적으로 승화된 시 한 편을 접하며 산 자가 죽은 자를 추억하는 그리움을 배운다.*


권선옥 선생님은 자신의 지병이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았던 듯 합니다.
어느 문학지에서 옮겨봅니다..
정용철 2009.02.16 15:28  
서울과 마산 등지에서 귀하신 문상객들을 교수님께서 맞으셨군요.
이동균 선생이 합류했다니 우리 지역 상가인데 손님들께 체면은 유지한 듯 하여 다행입니다.

저는 박범철 선생과 오후 3시경에 문상하고 각 각 소관이 있어서 돌아 왔습니다.
모두들 합류하시는 줄 알았으면 늦게라도 찾아뵈었을텐데 송구하옵니다.

모두들 건강하셔서 후학들의 눈시울을 젖게하지 말아주시옵소서.
홍양표 2009.02.16 23:35  
박범철 교수님 정용철 님 권선옥 시인을 조문하시고, 감사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노래와 말씀과 지도에 빨려 들어간다고 합니다.
가곡에 잠기는 건 그 시에 잠기는 것이며,
무한한 변화와 사랑의 길이지요. 큰일 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정용철 2009.02.17 13:53  
박선생이 자기 카페에도 읽기만 하고 글을 쓸 줄 모르기 때문에
저가 대신하여 예를 올립니다.
박선생이 교수님의 지침을 무겁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동균선생 이하 저희들도 열심히 돕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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