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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추석 풍경 (문예사조)

송인자 9 1139
우리 집 추석 풍경

                                                                  송인자 
  “나도 어디 갈 데가 있으면 좋겠다.”
  회사 소장님이 중추절을 기해서 움직이는 “민족 대이동”을 놓고 하시는 말씀이다. 고향에 부모 형제 한 분도 안 계신다는 소장님의 그 말씀 속에 뭔가 허전함이 느껴진다.

  “그러게요. 한데 가야만 하는 젊은이들이 그것을 알까요?”
  올 추석에는 나도 시골에 계시는 시어머님께 다녀올 생각이다. 결혼 후 20년간 모시고 살던 시어머님을 지난 7년 동안 명절에는 뵙지를 못했다. 말 못할 여러 사정이 있어서였지만 생각하면 몹시 죄송스러운 일이다.

  대신 맏며느리라는 위치 때문에 명절에는 단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던 친정어머님은 뵈올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친정에 가니 맏이인 언니가 좋아했다. 해마다 명절 하루 이틀 전이면 음식 장만을 위해 친정을 가야했던 언니 가라사대,
  “나도 이제 며느리도 보고 한 마당에 잘 됐다 이제 네가 고생 좀 해라” 명절 음식뿐만 아니라 엄마가 늦둥이들을 키우는 동안 동생들 도시락을 싸는 등 곁에서 온갖 뒷바라지를 했던 언니다. 자매로서 남다른 애틋함과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기에 언니에게 힘이 된다는 게 뿌듯했다. 그래서 시골에 가지 못한 지난 몇 년간 시집에서 익힌 솜씨로 친정엄마를 흡족하게 해드렸다.

  올해부터는 음식 준비를 올케에게 맡겨도 될 것 같다. 그동안 언니와 내 보조역할만 했던 올케도 시집온 지 5년이 지났으니 충분히 해낼 것이다. 큰일을 책임지고 해봄으로써 차츰 어른스러워지리라.

  친정엄마가 명절 음식에 특별히 신경을 쓰는 것은 조카들 때문이다. 많은 친인척이 서울에 살고 있는데 그 중 친정엄마가 가장 웃어른이시다. 인사성 밝은 외사촌들은 명절을 전후해서 꼭 찾아뵙는다. 또 우리 형제와 많은 손주들까지 들이닥치기 때문에 친정집은 언제나 시끌벅적하다.

  지난해에도 추석 하루 전날 점심을 먹고서 갔다. 엄마는 여느 해처럼 모든 음식 재료를 손질해서 차곡차곡 냉장고에 넣어두셨다. 내가 솜씨를 발휘해서 각종 나물을 볶아내고 산적을 만들 때쯤 올케가 도착했다. 공무원인 올케는 늦게 도착한 것이 미안했는지 쭈뼛거린다.

  "고생 많지? 아이를 데려오지 그랬어, 이럴 때라도 친정엄마 편하게 쉬게 해야지“ 내가 반갑게 말을 걸자 긴장이 풀린 듯 "오늘 당직이었어요. 죄송합니다." 하며 활발하게 소매를 걷어붙이고 "이리 주세요, 제가 할게요" 한다.

  딸만 키우던 엄마가 42세에 본 늦둥이 남동생은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이다. 바람피우던 아빠가 아들이 없어서라며 구박을 해서 엄마의 설움이 컸었는데 그것을 한방에 날려버린 동생이다. 크는 동안도 속 썩이지 않고 잘 자라주었다.
  대학 때 좋아하던 여자와 군대 전역하자마자 결혼을 하더니, 채 2년도 안되어 엄마의 소원을 풀어주듯 깍은 밤같이 잘생긴 아들을 안겨드렸다. 그때 엄마의 기뻐함은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다. 그리고 매월 엄마의 통장으로 생활비도 넣어드리는 착한 아들이다.

  내 올케는 친정 식구들과 달리 체구가 자그마하고 조용조용하며 우리에게 없는 장점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우리와 정 반대되는 성품을 지닌 올케를 식구들은 모두 예뻐한다.

  남동생은 결혼 후 처가 옆에 살고 있다. 동생네가 결혼과 동시에 분가를 하게 된 것은 순전히 맏언니 덕분(?)이다. 유일한 아들인 남동생에 대한 기대가 컸던 엄마는 처음에 분가시키자는 의견에 반대하셨다. 그런 엄마를 언니가 결혼 전에 설득했다.

  "엄마는 성격도 급하고 부지런하신데 공부만 하다가 온 며느리가 성에 안 찰 것은 뻔하잖아요. 엄마와 마누라 사이가 안 좋아 봐요. 그럼 아들이 중간에서 고생한다고요, 엄마가 며느리 나무라면 며느리는 자기 남편을 긁어댈 텐데 그럼 엄마 아들 병나서 빨리 죽어요."

우리 엄마 그 말에 뜨끔하셨다. ‘천금같은 내 아들 병나면 안 되지’하셨을 것이다.
  물론 직장 생활을 계속해야할 올케가 아이를 낳은 후도 걱정이 됐다. 일흔이 넘으신 엄마가 돌보기에는 버거운 일이니까. 대신 올케의 친정 엄마는 그때 갓 쉰이 넘었다니 용돈을 좀 드리고 맡겨도 좋으리라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친정엄마는 막내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엄마는 아들 손자는 한달에 한두 번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대신 네 살짜리 외손녀 재롱에 흠뻑 빠져 사신다. 그게 여러모로 좋아보였다. 아들과 꼭 같이 살아야한다는 생각은 이제 다시 생각 해 볼일이다. 하기야 요즈음에는 젊은 자식들보다 노인들이 자식과 살기 싫다고 할 정도라니 그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엄마는 송편만큼은 전날 안 만드시고 한가위 날 다들 모였을 때 만들게 하신다. 그것은 반죽 만져보고 싶어 하는 손주들에 대한 배려에서다. 작년에도 한쪽에서는 송편을 빚고 한쪽에서는 쪄내서 뜨거운 송편을 먹었다.

  내가 시어머님을 찾아뵙지 못한 몇 년 동안, 자식들에게 한없이 너그러우신 시어머님은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신다.
  “괜찮다. 여름에도 얼굴 봤잖냐. 길도 복잡한데 오려고 애쓰지 마라.”
  그러나 그렇게 말씀하신다고 그 마음을 모를 우리내외는 아니다. 그럴 때마다 송구스러워하며 전화를 끊었었는데 올해는 당당히 내려가서 뵐 것이다.

  요즈음은 명절을 지내는 풍경이 참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해가는 걸 느낀다. 젊은 사람들은 예전처럼 무조건 시댁에서만 뭉그적대면서 명절을 보내지 않는다. 내 동서들만 봐도 언제나 명절 하루 전날 시댁에 온다.

  그리고 밤늦게 까지 지지고 볶으면서 동서들끼리 남편흉도 보고 자식 자랑도 하고 아파트를 새로 샀다는 등 몸이 어디가 아프다는 등... 그동안 하지 못했던 대화들을 나눈다. 그리고 명절날 점심을 먹고 나면 곧바로 친정으로 달린다.

  그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 집 뿐만 아니라 아이들 아빠 사촌들이나 주변에서도 매 한가지여서 이제는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맏이였던 나는 예외였다. 친정이 너무나 멀고 또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서였다. 그래도 체념을 해서인지 별로 힘든 줄은 몰랐다. 나는 가지 못하지만 동서들이 그렇게 친정을 찾는 것은 마치 내 일처럼 기뻤다. 나는 원래 태생이 맏이였던 모양이다. 그랬던 내가 최근 몇 년간 가지 못하게 되자 고맙게도 둘째 동서가 내 역할을 한 모양이다. 그래서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는 가 보다.

  시댁에 갈 생각을 하니 시어머님뿐만 아니라 친언니 같다며 나를 따랐던 동서들이 반가워하는 그림이 어른거린다.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명절이라는 제도화된 형식이 아니라 해도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순수한 마음으로 이웃을 끌어안고 가족과 함께 하는 미덕은 길이길이 보전되어져야 마땅하리라.

<문예사조> 2006. 12월 수록
9 Comments
바 위 2006.12.07 16:36  
  며누 님 中 황녀야 종부라 하더니다.

근본이 사랑이면 임 자가 솔선수범

예쁘니  다 예쁘더냐  음덕조차 자신감요.


仁은 산이요 子(知)는 물이라
송 숭나라 가풍 부럽답니다...
존 글 고맙습니다 @@@
김형준 2006.12.07 23:1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추석날 가족 모임이란 주제를 통해서 자신과
가족분들의 생활에 대해 그림처럼 잘 표현해 주셨네요.

가족들 사이에도 위 아래 불문하고 서로 배려해 줌으로써
보다 더 깊은 정이 들겠지요. 묘사해 주신 가족에게서 그러한
배려하는 따스한 마음씨를 느껴씁니다.
산처녀 2006.12.08 10:22  
  명절이면 나가 있던 가족들이 모여서
그간의 이야기 꽃을 피우는 모습이 담담히
들어 있네요. 변해가는 세태가 들어 앉아 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
별헤아림 2006.12.08 13:51  
  나이가 들수록 젊은이들에게 많이 양보하시는 어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수패인 2006.12.08 15:59  
  명절후 증후군을 앓는 주부들이 많다는데 지혜롭게 보내시는 모습이 훈훈 합니다. 어릴적 우리 딸들의 명절때 소원이 뭔지 아세요? 남들처럼 차타고 시골 가는것... 부모님이 서울에 계시니 갈일이 있어야죠../막혀서 생고생 하는건 모르고...
송인자 2006.12.08 17:34  
  바위님, 김형준님, 산처녀님, 별헤아림님, 수패인님 ......
님들이 계셔서 내마노의 회원 문단방이 활성화 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 끝없는 관심에서 내마노 홈피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위의 글은 "명절증후군"을 앓는 젊은댁들을 보면서 ....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썼던 글입니다.
세상만사 모든일은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는 ...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
장미숙 2006.12.08 18:29  
  사는 냄새가 향긋하게 피어나는 송 작가님의 글을 제게 온 책에서
만나게 되다니.. 직접 만난 듯 반갑기만 합니다~
종종 합창코너에서 열정어린 님의 글을 읽으며
그 넓고 깊은 상상력과 재치로 희곡이나 시나리오 글에도
관심을 가지시면 좋겠다는 생각했답니다.
작가님의 아름답고 진솔한 이야기 자주 들러주시어요.
송인자 2006.12.09 12:43  
  장미숙시인님,
칭찬 고맙습니다.^^
문예사조는 언제 송년회 한답니까?
그때 만나게요.^^
오실수 있는거죠?
장미숙 2006.12.09 14:27  
  그러게요~
문예사조의 송년회에는 제가 한 번도 참여해 본 적이 없어요.
가끔씩이나마 짝꿍과 함께 하는 저의 유일한 나들이가
<내마음의 노래> 행사이기에 그 때 뵈어요~~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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