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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무엇인가?

동녘새벽 8 805
사랑               
                            배동인


사랑은 그리움을 먹고사는 불사조라
새벽마다 새로이 깨어나
날마다 새 삶을 살아가누나.

사랑은 또한 순간의 만남을 영원으로 이어주는 강물이로다.
그러나 때로는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속삭임의 넋이어라.

기쁨과 슬픔, 절망과 희망의 바다 가운데
너와 나는 사랑과 앎으로 세워진 이정표를 따라
헤엄쳐 나아가노니

서로를 주고받으며 하나됨을 향하여
동녘새벽 큰 별을 좇아
날아오르는 힘이러라.
                                          (2006.02.11)
8 Comments
동녘새벽 2006.02.11 10:47  
  위 글은 '가곡사랑'의 '애청가곡' 방에 조경옥 님의 글 "영원한 사랑"(이중창 가곡: 오숙자 시, 오숙자 곡) 속에 올린 저의 댓글 중 일부입니다.
정우동 2006.02.11 22:37  
  사랑은 마주 보고 웃고 우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랑은 공동의 목표를 향하여 하나되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미네르바 부엉이가 물러간 동녘새벽의 큰 별을 쫓아 쫓아서.
동녘새벽 2006.02.12 00:40  
  정우동 님, 반갑습니다. 실은 제가 주로 '가곡사랑' 집에서 지내다가 여기에 오랜만에 들러보니 좀 서먹서막한 감이 없지 않지만 '가곡사랑' 집이나 '내마노' 집이나 모두 우리 가곡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이는 한 가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 머물고있는 게 거북스럽게 느끼진 않습니다.

근데 우선 위의 제 글과 관련하여 '시'에 대해 얘기하고싶습니다: 위 글은 시라는 형식(옷)을 입고있지만 하나의 산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의 묘미는 행간에 여백 또는 비약이 있다는 데에서 맛볼 수 있지요: 독자가 어떤 이해나 생각으로 채우며 읽어야 하는 여백이죠. 그래서 다른 한편으로 그게 특정 시의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거나 얼른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시라는 형식 자체가 안고있는 이런 의미의 모호성 때문에 저는 시쓰기를 꺼려하고 오히려 산문 형식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위의 글에서 구태여 시라는 옷을 입혀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한 저의 생각의 일단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랑'이라는 주제가 너무 심오하고 무겁기 때문입니다: 그 해답을 아마 산문으로도 충분히 풀이해내기가 어려우리라고 짐작합니다. 요컨대 저의 '사랑'에 대한 부족한 이해 때문에 시 형식에 의지하여 위의 글 정도로 저의 사랑관을 어렴풋이나마 표현해본 겁니다. 너그러우신 아량으로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정작 '사랑'에 관해서 얘기하자면 길어지고 복잡해집니다. 참 사랑은 감성적인 차원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가령 남녀간의 사랑의 경우나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의 경우에도 어떻게 상대방을 대하는 것이 그/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될 것인가에 대한 앎(지식), 곧 이성적, 지적인 차원의 생각이 필요하게 됩니다. 제가 보기에 젊은 신혼부부들이 그들의 사랑의 한 열매로서 자연스레 나오는 자녀출산을 앞에 놓고 새로 태어난 인간인 유아를 어떻게 다루는 것이 그 애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이 될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과학적 지식을 습득했는지 또는 학습하고있는지 매우 의문스럽게 여깁니다. 참사랑하기의 방법과 수단에 관한 올바른 지식의 결핍이 빚어내는 결과가 곧 사랑의 무책임성으로 나타납니다. 이 세상엔 무책임한 부부나 부모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위의 글에서 중간에 "사랑과 앎"을 언급했지요: 이는 제가 존경하는 러셀에게서 따온 것인데 그의 '좋은 삶'의 정의를 떠올린 겁니다. 그는 "좋은 삶이란 사랑으로 일깨워지고 앎으로 이끌어지는 삶이다"(The good life is one inspired by love and guided by knowledge. - in his essay 'What I Believe', in: his book 'Why I Am Not a Christian')라고 정의했지요.
그래서 참 사랑을 위해선 무작정 온갖 열정을 다 쏟기를 삼가하고 사랑의 절제가 필요한 경우도 있음을 과학적 앎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정 선생님께서 특히 주목하신 대목은 사랑의 다른 차원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가령 호치민은 평생 독신으로 지냈는데 이는 그의 사랑이 어느 여인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그의 인민들, 베트남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투쟁으로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그의 사랑은 남녀간의 개인적 사랑보다는 민족공동체의 인간다운 삶의 실현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었지요. 그게 바로 '큰 별'을 향한 사랑의 한 사례이겠지요?
윤교생 2006.02.12 01:08  
  배동인 선생님 안녕하세요?
참으로 오랫만에 뵙습니다.
새해 인사도 못 드리고...
서면으로나마 인사 드립니다..

올해도 건안하시고 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旼映오숙자 2006.02.12 09:24  
  조금전에 언제나 빠른소식 전해주는 박원자 시인으로 부터 배 교수님의 글을 전해 듣고 금새 왔습니다.

배교수님의 <사랑>이란 시를 읽고
떠오르는 글이 생각났습니다

<東으로부터>라는 기타 와 첼로를 위한 이중주를 일본 오사까에서 열리는 국제음악제에서 위촉받았던 곡에대한 작품해설 중에 일부를 옮겨봅니다.

생략
.
.
아침은 빛으로 열리고 그것은 곧 시작을 의미한다
그 빛은 어디로 부터 오는가
나는 바다와 산과 구름과 안개속으로 퍼지는 그 아침의 빛으로부터 시작되는
동녘의 신비에 아플듯 저린 가슴으로 늘 감동하곤 한다.
그것은 형태 이전의 것에 대한 자연의 존재, 理性 이나 槪念에 의해서
느껴지기 보다는 감각적인 어느 순간에 의해서 만나는 신비의 느낌이다.
빛이 열리는 동녘에 숨겨져 있는 그 신비를 캐 보자
모든 존재의 아름다움은 <東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
.
하략

서로를 주고 받으며 하나됨을 향하여
새볔하늘 별을 좇아
날아오르는 힘이러라.

다시한번 음미 해 봅니다. 
 
 
 
배동인 (2006-02-10 15:47:31) 
 
오숙자 선생님의 홈피(<a href=http://ohsookja.com/)에 target=_blank>http://ohsookja.com/)에</a> 들어가 '작품감상실'에서 "동으로부터"를 처음으로 조금전에야 들었습니다: 표현키 어려운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여러번 들어봐야겠습니다. 그밖에 선생님의 다른 작품들도 시간나는 대로 감상하렵니다.

위의 제 글을 '시'라고 말씀하시지만 '사랑'이라는 주제가 워낙 심오하고 무거워서 산문으로도 풀이하기 어려운지라 시라는 형식을 빌어 모호하게나마 저의 생각을 표현해본 것입니다. 그러니 시 아닌 시, 시의 형식을 입은 간단한 산문, 불완전한 산문으로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대개의 경우에 시라는 형식은 그 내용의 모호성을 품고있는 듯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요. 그런 모호성에 기대어 어떤 느낌이나 생각을 어렴풋이 표현하고싶을 때 사람들이 시 형식을 즐겨 사용하지 않나 여겨집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시는 저의 성미엔 맞지 않는 듯하고 오히려 어느 정도 명확하게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산문형식을 저는 선호합니다.
그리고 위의 '사랑'은 지난 입춘 쯤에 쓴 건데 그대로 아침에 여기에 올렸다가 이내 두세 군데를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저의 지극히 부족한 생각의 일단을 표현해본 것이니 기탄없이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누구나 죽는 순간까지 배움은 끝이 없으니까요.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배동인 (2006-02-10 18:51:23) 
 
저의 글 '사랑' 가운데 "새벽하늘 별을 좇아"를 "동녘새벽 큰 별을 좇아"로 수정합니다: 별은 어차피 하늘에 있는 것이고 오 선생님의 기악곡 "동으로부터"의 의미를 수용하는 뜻에서입니다. 
 
 
 
배동인 (2006-02-11 06:40:53) 
 
옹색스러운 시로부터 해방되고자 하여 '불완전한 산문'이 좀더 완전한 산문으로 엮어져 '사랑'이 다시 태어났습니다:

사랑

사랑은 그리움을 먹고사는 불사조라
새벽마다 새로이 깨어나
날마다 새 삶을 살아가누나.

사랑은 또한 순간의 만남을 영원으로 이어주는 강물이로다.
그러나 때로는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속삭임의 넋이어라.

기쁨과 슬픔, 절망과 희망의 바다 가운데
너와 나는 사랑과 앎으로 세워진 이정표를 따라
헤엄쳐 나아가노니

서로를 주고받으며 하나됨을 향하여
동녘새벽 큰 별을 좇아
날아오르는 힘이러라.

(2006.02.11) 
 
 
 
오숙자 (2006-02-12 01:52:08) 
 
배동인 교수님.

가슴속에 품은 이야기들을 표현 하는데
어찌 형식이 필요하겠습니까..?

저는 詩文學의 형식이나 틀을 잘 모릅니다만
교수님의 <사랑>은 저에게
자연을 넘나드는 심오하고도 드넓은 사랑의 詩로서 마음에 닥아옵니다.
멋진 시 다시한번 마음 깊이 음미합니다. 
동녘새벽 2006.02.12 10:09  
  하이고, 오숙자 선생님, 고맙기 이를 데 없습니다: 수고스럽게 저와의 대화를 일일이 다 가져오셨네요. 근데요, 지금 먼저 윤교생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다시 오겠습니다: 잠깐 실례합니다.

윤교생 선생님, 반갑고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오랜만에 여기에 들러서요. 인사가 늦었지만 다행히 오늘이 마침 정월대보름이니 오늘까진 새해인사를 너그러이 받아주시겠지요? - 이 새해에 복을 많이 받으시기를, 동시에 "날마다 새 삶을" 즐겁고 보람차게 누리시기를, 건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산다는 게 어찌 보면 싸움, 투쟁이지요: 자기와의 싸움, 세상과, 이 사회와, 국가와의 싸움 투성이이니까요. 우리가 서로 자주 못 만나더라도 저는 늘 윤 선생님을 비롯하여 내마노와 여러 회원님들을 잊지 않고 생각할 겁니다.

오숙자 선생님, 저는 시인이 아니고 앞으로도 시인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위의 저의 글을 '시로서' 읽으셨건, 제가 선호하는 대로 산문으로 보셨건 간에 좋은 느낌을 받으셨다니 감사드립니다. 사실 생각이나 느낌을 더구나 짧게 표현하기가 무척 어렵지요. - 그래도 이번에 제가 만용을 부려서 시도해보았을 뿐입니다. 여러모로 엉성하고 미흡한 점이 많아요. - 앞으로도 살짝 저에게 개선점을 귀띰해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참, 박원자 시인님께도 이 기회에 뒤늦게나마 간접적으로라도 안부인사를 드립니다: 올해에도 좋은 시를 많이 들려주시고 내내 건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랑노래 2006.02.17 23:14  
 
생명의 존재라면 사랑의 존재라네
사랑을 받기위해 사랑을 주기위해
태어난 존재들이기에 사랑없인 살수없네!
동녘새벽 2006.02.19 11:35  
  사랑노래님, 반갑습니다.
묵은 의문이 떠오릅니다: 모든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에 대해 항상 사랑할 수 있는가? 기독교 윤리에서 설파하듯이 나는 나의 모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로서 사회학개론에서 나오는 내집단(in-group)과 외집단(out-group)의 구별과 각 생명체의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반목과 증오를 직시하게 됩니다. 곧 사랑노래님께서 주신 말씀은 일단은 다만 내집단 안에서만 유효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런 현실적 관찰도 사랑하기를 어떤 관점과 차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견해가 나올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러한 구별도 인류의 진화의 산물이라면 앞으로 내집단이 외집단도 사랑할 수 있게 될 날이 오리라는 희망찬 전망을 가져봐야겠지요? - 가령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에서 울려퍼지는 "모든 사람들은 형제자매가 되도다"(Alle Menschen werden Brueder!)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우리의 구원한 비원으로서 우리 모두의 삶의 원동력이 되었으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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