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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어머니와 딸

조성재 5 815

제가 이 분을 서울시민대학에서 알게 된 것은 아마도 2004년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광화문빌딩에서 공부할 때입니다. 성악의 이해반에서였습니다.

친구분의 소개로 서울시민대학에 오게 되었다는 이 분은 첫 인상이 무척 깔끔한 분이라는
인상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숙명여자대학교에서 가정학을 전공하셨다는 그 분은 천상
가정주부의 모습 그것이었습니다. 남편은 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있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두 부부가 조용히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60대 초반이지만 무척이나 청순하고 젊어보여서 만년 여대생같은 분입니다. 조용조용하면서도 조곤조곤 할말은 다 하고야 마는 침착함과 어떤 강한 의지도 엿보이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이분이 2005년도부터는 반장인 저를 도와 성악의 이해반에서 총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반장인 저의 지명에 의해 본인은 고사했지만 총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반장은 표면적으로만 반을 대표할 뿐,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은 총무였습니다.
수업시간에 악보를 복사해 온다든가, 음악회에 단체로 참석할 일이 있으면 회비를 걷는다든가, 수료식후에 뒤풀이를 할때 음식비를 거출한다든가 하는 모든 일은 총무가 하게 되어있었습니다. 작년 5월달에는 남이섬 나미나라의 초청으로 우리 성악의 이해반과 가곡교실반이 함께 노블가곡제를 갖게 되었었는데, 이 모든 수발도 총무의 몫이었습니다.

이 분은 전적으로 제가 신뢰할 수 있고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나이로 보면 저보다도 한참 위인 누님같은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이분은 제가 무엇을 부탁하든지 안색 한 번 변하지 않고, 싫어하는 기색 없이 모든 일을 조용히 묵묵히 해 나가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 이 분 주위에는 일을 함께 도와 주시는 분들도 생겨났습니다. 어떻게 보면 협동총무라고나 할까요 ?
대학 동창인 한 분과 신실한 세 분까지 네 분이 항상 이분과 함게 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팀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악의 이해반을 이끄는 반장으로서 촘무님만이
아니라 도와주는 팀원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어렵지 않게 반을 이끌 수가 있었습니다.

작년에 제가 시민대학 학생봉사회 회장이 되었을때에 총무는 회장이 지명하게 되어있었습니다. 저는 총무로서 능력이 있어 보이는 어느 분에게 부탁을 드렸지만 그 분이 고사하시는 바람에 결국에는 같은 반에서 총무를 하고 있는 이 분에게 총무직을 부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이 분에게는 참 버거운 일일수도 있었지만 이 분은 늘상 그래왔듯히 묵묵히 총무직을 수락하고 저를 도와 학생봉사회 총무직을 지금껏 수행해 왔습니다.
이런면에서 저는 이 분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금년에도 함께 대외적인 봉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은 어린이들을 위한 동요제에 천명의 합창단원으로 참가한 일입니다. 지난 5월 1일부터 2일까지 제25회 MBC창작동요제 녹화가 잠실 올림픽홀에서 있었는데 이분은 저와 함께 이틀동안을 리허설과 녹화하는 일에 꼬박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방송 카메라에 얼굴이 잡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곳에 어린이들이 있었고, 동요가 있었기에 한국 동요 발전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참여한 것입니다. 우리 서울시민대학에서는 23명이 참여했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보람있었는지 모릅니다. 방송에는 얼굴 없는 소리로만 참여한 결과가 되었지만, 이 행사를 위해서 우리는 많은 시간 연습을 해야 했습니다.

이분이 금년 봄 내내 가슴앓이를 했습니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아직 미혼인 마흔이 다 되어가는 딸 때문이었습니다.
결혼을 안하고 있는 것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딸로부터 전해 들은 뜻밖의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딸은 자신의 두 개의 신장중에 하나를 신부전증으로 고생하는 사촌 남동생에게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온 것입니다. 그 사촌 남동생은 미국 미네소타주립대학교에서 생명공학을 연구하는 사람인데 누군가로부터 신장을 이식받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분의 딸이 기꺼이 자신의 생명같은 신장 하나를 기증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 남편 될 사람도 아니고, 친 동생도 아니고, 사촌을 위해서...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이 소식이 청천벽력과도 같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내 몸과도 같은 딸 자식이 생명과도 같은 신장을 기증하겠다니... 몇 밤을 잠을 못 이루고
딸 아이의 향후 건강을 염려하고 고민했다고 합니다. 신장을 하나 떼어내 주고 나면 딸아이가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것인가... 건강은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혹 부작용이라도 생긴다면... 수술 과정에서 무슨 의료사고라도 난다면...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밤잠을 설치고, 본인의 표현대로라면 '지옥'과도 같은 몇밤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며칠전...
이분은 마음을 정리했다고 합니다.
딸 아이가 하고자 하는 그 거룩한 일에 마음을 같이 해 주기로...
그래서 딸 아이의 신장을 이식하는 현장에 딸과 함께 하기 위해서
우리 서울시민대학 수료식이 있는 다음날인 6월 20일 미국으로 출국하기로 했다합니다.
딸 아이의 신장을 기증 받는 사촌 남동생의 어머니인 친 동서와 함께 나란히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간다고 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

세상은 자신의 신장 하나를 위험을 무릅쓰고 기꺼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이분의 딸과 같은 사람들로 인해서 아름다워지는 것이며 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인가 봅니다.

한동안 많은 번민과 고민 속에서 괴로워했지만,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한 딸의 갸륵한 선행에 기꺼이 동참하기로 한 어머니... 그 어머니에 그 딸입니다 !

아 !
서울시민대학에 이처럼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분이 있다는 사실이 저는 무척이나
기쁘고 행복합니다 !

어디 이 분 뿐이겠습니까 !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서울시민대학에는 이웃을 위해 묵묵히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수 많은 수강생들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 !


2007년  6월  11일
서울시민대학 학생봉사회
회장  조  성  재  올림


♣ 이 글은 열흘전에 써서 서울시민대학 자유게시판에 올렸던 글입니다.
이곳에 이 글을 소개하는 것은 바로 내일 이 분의 따님이 미국에서 신장을
사촌 남동생에게 이식해 주는 수술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20일날 출국해서 지금 딸에게 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성원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 이 글의 주인공 박영주님은 지난 19일 서울시민대학 제21기 수료식에서
서울시장상을 수상했습니다.

♣ 사진설명 : 한 가운데 서 있는 분이 이 글의 주인공인 박영주님이고,
맨 왼쪽분이 숙명여자대학교 동문인 한향희 님이고, 그 옆분이 오정혜님,
그리고 박영주님 오른쪽으로 김숙자님과 이애자님입니다.
작년 가을에 경기도 가평 남한강변의 가일미술관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 요 며칠 제가 너무 자주 글 올려서 죄송합니다. 이곳에 오니 너무 좋아서
그런것이니 어여삐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팽~ 돌다가 제자리 찾을거에요.



5 Comments
송월당 2007.06.23 00:28  
  조성재 목사님을 이 사이트에서 자주 뵈니 제가 너무 좋아요.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삶을 사시는 모녀의 행운을 빌겠어요.
요들 2007.06.23 06:16  
  <팽~ 돌다가 제자기 찾을 거예요.>ㅎㅎ 표현이 넘 재미 있네요..
사진속의 온화한 미소를 제가 닮을 수 있을까요?
건강하세요.  ^^*
김메리 2007.06.23 13:37  
  아하~목사님이셨군요~~몰랐어요 ㅎㅎ
김메리 2007.06.23 13:54  
  어머니처럼 따님도 빛나는 마음씨를 가지셨군요
오늘 수술하시네요~~
조성재 2007.06.29 09:11  
  미국에서 박영주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는데 지난 6월 23일날 신장이식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회복중에 있다고 합니다. 성원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박영주님은 7월 15일날 귀국길에 오른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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