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연주.감상후기, 등업요청, 질문, 제안, 유머, 창작 노랫말, 공연초대와 일상적 이야기 등 주제와 형식, 성격에 관계없이 쓸 수 있습니다.
단, 영리 목적의 광고성 정보는 금지하며 무단 게재할 경우 동의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기존의 회원문단은 자유게시판으로 통합되었습니다.

*^**괴팍한 할망구*^*

수패인 15 815

**"괴팍한 할망구"**

 
얼마 전 북아일랜드의 한 정신의학잡지에 실린
어느 할머니의 시를 소개합니다.

스코틀랜드 던디 근처 양로원 병동에서
홀로 외롭게 살다가 세상을 떠난 어느 할머니의
소지품 중 유품으로 단 하나 남겨진 이 시는
양노원 간호사들에 의해 발견되어 읽혀지면서
간호사들과 전 세계 노인들을 울린 감동적인 글입니다.

이 시의 주인공인 "괴팍한 할망구"는 바로
멀지않은 미래의 우리 자신들 모습이 아닐런지요?

 
당신들 눈에는 누가 보이나요,
간호원 아가씨들.
제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를 묻고 있답니다.
당신들은 저를 보면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나요.

저는
그다지 현명하지 않고
성질머리는 괴팍하고...
눈초리마저도 흐리멍텅한 할망구일테지요

먹을 때 칠칠맞게 음식을 흘리기나 하고
당신들이 큰소리로 나에게
"한번 노력이라도 해봐욧!!"
소리질러도 아무런 대꾸도 못하는 노인네.

당신들의 보살핌에
감사할 줄도 모르는 것 같고
늘 양말 한짝과 신발 한짝을
잃어버리기만 하는 답답한 노인네.

목욕을 하라면 하고
밥을 먹으라면 먹고...
좋든 싫든 당신들이 시키는 대로
하릴없이 나날만 보내는 무능한 노인네.

그게 바로 당신들이 생각하는"나"인가요.
그게 당신들 눈에 비쳐지는"나"인가요.
그렇다면 눈을 떠보세요.
그리고 제발
나를 한번만 제대로 바라봐 주세요.

이렇게 여기 가만히 앉아서
분부대로 고분고분
음식을 씹어 넘기는 제가
과연 누구인가를 말해줄께요

저는 열살짜리 어린 소녀였답니다.
사랑스런 엄마와 아빠 그리고
오빠, 언니. 동생들도 있었지요.

저는 방년 열여섯의 처녀였답니다.
두 팔에 날개를 달고
이제나 저제나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 위해
밤마다 꿈 속을 날아다녔던.

저는 스무살의 꽃다운 신부였네요.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면서
콩닥콩닥 가슴이 뛰고 있던
아름다운 신부였답니다.

그러던 제가 어느새 스물다섯이 되었을 땐
아이를 품에 안고
포근한 안식처가 되고 보살핌을 주는
엄마가 되어 있었답니다.

어느새 서른이 되었을 때 보니
아이들은 훌쩍 커버렸고
제 품에만 안겨있지 않았답니다.

마흔살이 되니
아이들이 다 자라 집을 떠났어요.
하지만 남편이 곁에 있었기에
아이들의 그리움으로 눈물로 지새우지만은 않았답니다.

쉰살이 되자 다시금
제 무릎 위에 아가들이 앉아 있었네요
사랑스런 손주들과 나,
난 행복한 할머니였습니다.

암울한 날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남편이 죽었거든요.
홀로 살아갈 미래가
두려움에 저를 떨게 하고 있었네요.

제 아이들은 자신들의 아이들을 키우느라
정신들이 없답니다.
난 젊은 시절 내 자식들에게 퍼부었던 그 사랑을
또렷이 기억하지요.

어느새 노파가 되어버렸네요.
세월은 참으로 잔인하네요.
노인을 바보로 만드니까요.

몸은 쇠약해져 가고
우아했던 기품과 정열은 저를 떠나버렸어요.
한때 힘차게 박동하던 내 심장 자리에
이젠 돌덩이가 자리 잡았네요.

하지만 아세요?
제 늙어버린 몸뚱이 안에 아직도
16세 처녀가 살고 있음을요.
그리고 이따금은
쪼그라든 제 심장이 콩콩대기도 한다는 것을요.

젊은 날들의 기쁨을 기억해요.
젊은 날들의 아픔도 기억하고요.
그리고 이젠
사랑도 삶도 다시 즐겨보고 싶어요.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니
너무나 짧았고
너무나도 빨리 가버렸네요.
내가 꿈꾸며 맹세했던 영원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서운 진리를
이젠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모두들 눈을 크게 떠보세요.
그리고 날 바라보아 주세요.
제가 괴팍한 할망구라뇨.
제발,
제대로 한번만 바라보아 주어요
"나"의 참모습을 말이에요.
 
15 Comments
고광덕 2006.07.13 16:15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지요.
정말로 머지않아 찾아올...
그래도 요즘은 80 까진 청춘이라니 열심히 노래 불러야지요...
요셉피나 2006.07.13 23:57  
  요번주 월요일 아침 조회 때 저희 병원 병원장님께서 이글을
읽어주시길래 무척 감동적이어서 가슴 깊이 와닿았었지요
특히나 노인환자분들의 인생을 새삼 떠올려보며
더 많이 존중해드리고 더욱 사랑하고 이해하며 배려해야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아름답게 나이들어 가야겠다는 다짐도 하였습니다.

언젠가 세월속에 묻혀버릴 우리들의 아름답고 진정한 삶의 모습도
늙어진 먼훗날엔 영원한 그리움으로 간직되겠지요.

수패인님!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강성순 2006.07.14 10:10  
  괸시리 마음이 울컥해지네요..
노을 2006.07.14 10:14  
  '빨강머리 앤'의 '앤과 마을사람들'편에 나오는 할머니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괴팍하고 심술궂어 모두 싫어하던 할머니의 다락방에서 발견된 너무도 사랑스러운 소녀의 사진... 할머니의 소녀쩍 모습에서는 현재의 할머니를 상상할 수 없었지요.
한 인간의 연륜 속에는 그렇게 세월 따라 빚어진 제각기 다른 모습들이 있지만 우리는 눈에 보이는 모습이 전부인 줄 알고 삽니다.
마음이 아파오네요.
변해가는 내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이는 모습만 보고 그 사람을 규정짓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도 듭니다.
괴팍했던 그 할머니, 마치 속에 진주를 품은 울퉁불퉁한 조개처럼 느껴져요. 수패인님, 마음을  마구 흔들러주셨어요. 감사합니다.
 
산처녀 2006.07.14 10:39  
  마음이 찡해집니다. 그래요 누구던 젊어서 아니 어릴때부터
분홍빛 꿈을 지니고 삶이란 여울 속을 지나오면 저 할머니와  같은
차례대로의 인생을 맞게 되겠죠.
우리네 삶도 조금 지나보면 웃던 저사람의 모습을하고 있는것을 발견하고 가슴이 쿵해 올때가 점점 생기는군요 .
좋은글 잘 읽었읍니다.
서들비 2006.07.14 11:57  
  자연의 순리 
그 마져 아름답게 볼수 있지 않을까요?
^^*
노을 2006.07.14 13:48  
  가슴이 찡한 게
혼자 읽기 아까워
저희 동문 홈피에 옮겼습니다.
거기 가면 할망구들이 많거든요.
허락하시는 거지요?
에버그린 2006.07.14 14:29  
  .....한달에 한번 독거어르신들을 찾아 뵙는 봉사를 하고 있는데...
어제 한달만에 다시 찾아 뵈니... 눈에 띠게 많이 쇠약해들 지셨더군요..
이 푹푹찌는 무더운 여름 장마철.. 주거환경이 대부분 지하 긴골방들이고.. 빗물이 방으로 흘러 들어 장판을 적시고 통풍이 안되어 곰팡이 냄새가 심하게 많이 나고.. 전기요금 아까워 형광등도 못킨 캄캄한 지하골방들.. 그 습하고 찌는 더위에도 낡고 작은 선풍기 마져 틀지 못하고 계시다가... 우리가 가서야  불켜시고, 선풍기 틀어 주시며. 너무 고마워 하시는 어르신들.....
손발이 시리고 허리가 아프시다고들 하시고.. 입맛이 없어서 그나마 복지관에서 가져다 드리는 도시락도 못드시겠다고 하시더군요..  80세에서 93세까지의 어르신인데... 거의 자식들 얘기는 안하십니다. 
그중 한 할머니가 생각나네요.  93세에 곱게 나이드신.. 젊으셨을때 참
고우셨겠어요? 했더니 손으로 입을 막고 수줍게 웃으시는 할머니....
몇번을 뵙고서인지..어제 자식 얘기를 해 주시던군요..
아들하나 딸하나 두셨는데.. 외아들이 28세(1961년도)에 군에 가서 순직하고... 공직에 계셨던 남편분은 아들 보내고 마음 고생하시다가 7년만에 아들따라 가셨다고...아드님이 살아있으면 지금 73세라고 하시며 눈시울 적시는데... 70세의 따님은 자식의 계속되는 사업 실패에 이곳 저곳 시골로만 다녀 만나 볼 수가 없다고 하시더군요. 통풍하나 안되는 지하 골방에서 ... 소방서와 연결되는 전화기와... 복지관과 연결되는 전화기...  119와 연결된다는 목걸이를 지니시고...  하루 하루를 복지관에서 찾아주는  사회복지사와 자원봉사자를 기다리며 지내시는 할머니.. .
내가 너무 오래 살아 하시며..  미안해 하시던 모습...가라 하시면서도 제 손을 놓지 않으시던  할머니.....돌아오는 발걸음이 너무나 무거웠습니다.........
해야로비 2006.07.14 14:57  
 
나이드신 친정어머니가 여자인듯...자신을 가꾸고...꿈을 말씀하실때..
이해하지 못하고 귀담아 듣지 못했던...나....
어느덧...세월이 흐르니..이제...우리 아이들이 그때의 내 모습같아요.


에버그린님.....훌륭한 일을 하시고 계시군요.
보통 마음으로 지속하기 어려운 일인데....저도 몇번을 하다가는 결국 손을 놓고야 말았답니다.

일단, 마음만 앞서 있었지....익숙치 않은 환경과...악취에 쌓인 곳에서 봉사하기란 제 자신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훌륭하십니다.



서들비 2006.07.14 15:34  
  이번에 어머니께 갈때는 뭘 사다 드리면 좋을지
생각해 봐야겠어요.  ^^*
아까 2006.07.14 21:29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시어머니를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세라피나 2006.07.14 22:08  
  만약, 이글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하늘나라  할머님께서, 얼마나  애석해 하셨을까요..

마음이 아리네요. 그리고...두렵네요.
어쩌면, 조금  남은  젊음으로,  여유를 부리고 있는
 저, 자신은 아닌가?.....생각 해 봅니다.

이렇게  인생을  감동적으로,  반추하신 그 분
진정, *멋진,청춘*을  사신분에  틀림없어요...!

 .


 


여울목 2006.07.15 17:02  
  참으로 오랜만에 이곳에 들렀답니다.
근데 이글이 어린 제 가슴에 너무도 아리게 박히네요.
친정엄마생각나는건 물론이거니와 절 힘들게 했던.많이도 미워했던 시어머니 생각도 나네요. 그분도 한때는 젊은 여인이었을것을...
많은 생각들을 하게하는글입니다.
근데 왜이렇게 가슴이 시큰하죠?
밖에 비가와서 더 그런가.....
갈대 2006.07.17 14:01  
  누구에게나 다가올 세월인데...
평생 젊을 것 처럼 살아가는 자신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연락도 못드린  친정어머니가 문득 생각나 한번
뵈러가야겠다고 마음먹기도 하고...
수패인님 ,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서로의 자랑만 가득한 것 같아 사이트를 멀리 했었는데
오늘은 보람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산나 2006.07.17 20:42  
  머리에 서리를 얹었어도
열 아홉 적 설렘과 부끄러움
내일에 대한 기다림과 기대
뜻모를 그리움과 아련함이
고스란이 남아 있는
'나'를 생각하면...

간호사들에게
느-을 강조하는 말
어머니...할머니...
아직도 설렘이 있는
아름답단 말에 가늘게 눈 흘기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띄우는
여인네라는 것을...

제목
게시물이 없습니다.